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9
28. 쇼핑
우 팀장님 말대로 지방 스케쥴이 시작되자 로드 매니저가 같이 움직이게 되었다. 태주가 원톱으로 나오는 영화였으니 다행이지, 독립 영화 촬영장에 스태프를 세 명이나 데리고 다니는 것은 확실히 과했다.
만약 연차가 좀 있는 배우와 함께 촬영하는 현장이었다면 반려동물까지 데려오는 태주를 못마땅해 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너무 더워요. 이러다 스태프들 전부 쓰러지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직 초여름인데 벌써 32도라니.”
지방이라 버스킹을 보는 사람이 별로 없자, 준희가 나서서 사람들을 모으는 장면을 찍고 있었다. 준희와 단역만 나오는 장면이라 태주는 그늘에서 대본을 보고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더워진 날씨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매니저님 아까 사거리에 아이스크림 전문점 있었죠? 이 신 끝나고 아이스크림 한 번 먹어요.”
“예. 형식아, 아이스크림 가게 갔다 올 테니 자리 지키고 있어.”
“제가 갔다 오겠습니다.”
형식은 바짝 긴장한 상태로 견우에게 자신이 다녀오겠다고 대답했다. 태주는 형식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다. 형식이 미나 누나나 자신에게는 안 그런데 견우에게는 설설 기는 느낌이었다.
“매니저님 형식 씨요, 원래 아는 사이세요?”
“역시 그렇게 보입니까? 한때 사범으로 있던 도장의 제자였습니다.”
“도장이요?”
“예, 합기도요.”
“태주야, 매니저님 합기도 4단, 태권도 3단이셔. 너 정도는 3초면 될걸.”
“누나! 그래도 10초는 버티지 않겠어요?”
“호호호. 그래 10초 해라.”
실제로 경험 많은 유단자들이 얼마나 센지 아는 태주였다. 매니저는 겉보기에도 단단한 사람이었는데, 실제로도 꽤 무술을 단련한 사람이었다. 형식이 제자로 있었다면 둘 다 무술을 익힌 사람이라는 얘기이니 앞으로 안전은 문제없을 것 같았다.
“전 정말 더운 게 너무 싫어요. 차라리 추운 게 나아요.”
“나도 솔직히 추운 게 나아. 더우면 화장도 다 지워지고, 손이 얼마나 많이 가는지. 정말 네가 땀이 많은 체질이 아니라서 다행이야.”
태주가 더위에 불평하고 있었지만, 앞으로 삼 주는 더 야외 촬영을 해야 했다. 태주의 단독 신에서 NG가 거의 없어 촬영 속도가 빨랐지만, 야외 촬영은 날씨나 장소섭외 등 잠재된 문제 때문에 어떻게 될지 몰랐다. 오늘 같은 더위도 문제가 된다.
가뭄이라는 뉴스대로 비는 오지 않았지만, 벌써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시작되어서 큰일이었다.
“아이고 우리 태산이 더워요? 얼음 좀 줄까?”
“누나 태산이랑 밴에 가서 쉬세요.”
“갈 거면 너도 같이 가. 체력 관리해야지.”
“그러십시오. 제가 여기서 지켜보겠습니다.”
태주는 촬영현장을 확인하고 밴에서 쉬기로 했다. 무슨 문제가 있는지 촬영 진도가 전혀 나가지 못하고 있었다. 제작진도 배우들도 표정에 짜증이 서렸다. 때 이른 무더위에 사람도 동물도 모두 지쳐가고 있었다.
*
“태주, 걱정이 있어?”
“응?”
“이렇게 되었어.”
희가 얼굴을 한껏 찌푸린 채 태주의 눈앞으로 날아올랐다. 태주는 재밌는 표정을 짓는 희 덕분에 잠시 웃는 얼굴이 되었지만 금세 표정이 나빠졌다.
“태산이를 데리고 촬영장에 다니고 있어. 그런데 솔직히 태산이한테 너무 힘든 환경이야. 태산이가 혼자 있으려 하지 않으니 어쩔 수 없지만. 요새 날이 너무 더워져서 걱정이야.”
“으응. 태산이는 태주랑 같이 있고 싶어 해.”
“알아. 나도 같이 있고 싶어. 하지만 너무 더워서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걸.”
“태주, 상점에 가자. 태산이한테 필요한 걸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소모품 탭만 이용하고 있었다. 장비 탭이나 기술 탭도 있는데 전혀 이용하지 않았다. 태주는 좋은 상품을 기대하며 상점을 뒤지기 시작했다.
“와, 이게 다 뭐야. 펫용품이 이렇게 많았어?”
“태주, 이거, 이거. 꼭 사야 해.”
“쿨링 밴드? 착용 생물의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해줍니다?”
연한 하늘색의 쿨링 밴드는 손목 굵기의 팔찌처럼 보였다. 태산이가 착용하기엔 좀 작아 보였지만, 상점 상품은 마법이 걸린 것도 있으니 괜찮을 것 같았다.
“이거 내가 차도 괜찮을까?”
“태주?”
“아니, 나도 더위를 좀 많이 타는 편인데. 큼.”
희가 쿨링 밴드와 태주를 번갈아 쳐다봤다.
태주는 모른 척, 쿨링 밴드를 하나 더 샀다. 검은색이었다.
“흠흠.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상점엔 정말 많은 용품이 있었다. 미리 둘러보지 않은 자신의 무심함을 욕했다.
“이거 진짜 좋다.”
태주는 상점에서 산 휴대용 접이식 펫 텐트를 펼치며 감탄했다. 반으로 접힌 기둥을 연결하면 이 층짜리 휴대용 텐트가 된다. 가슴 높이에 바깥에서 입구를 잠글 수도 있었다. 온도 조절 마법도 걸려있어서 계절에 상관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넓지는 않았지만, 태산이가 혼자서 쓰기엔 괜찮았다.
“진작 살걸. 이걸 모르고 괜히 고생을 시켰어.”
“태주 이것도 사자.”
“응? 숨숨집? 고양이 집?”
거대한 마카롱처럼 보이는 고양이 집이었다. 귀여운 모양이었는데 설명에 보니 호랑이 굴처럼 체력회복 능력이 부가되어있었다. 차 안에 두면 좋아 보여서 바로 샀다.
“희, 희 것도 하나 골라. 그리고 단단 것도 하나 사자.”
“정말? 그럼 희는 이게 좋아.”
“그, 그게 마음에 들어?”
“응.”
희는 마법 그물 총을 골랐다. 반짝이는 희의 눈빛에 하는 수없이 태주는 그물 총을 선물로 사줬다. 마법 로프도 그렇고, 희는 생각보다 터프한 게 분명했다.
단단은 필요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태주는 단단에게도 커다란 조개 모양 풀을 선물했다. 물을 채워도 되고 나뭇잎이나 흙을 채워서 사용해도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된 것 오랜만에 상자도 한 번 열어 볼까?”
“붉은 상자?”
“응. 딱 세 개만 열어 보자.”
랜덤 박스는 정말 오랜만에 연다. 보상으로 얻은 금색, 은색 상자를 제하면 예전 초코체리 나무를 얻었을 때 연 이후 처음이었다.
오랜만이라 그런지 가슴이 두근거렸다. 뽑기 운이 나쁜 줄만 알고 처음에는 조금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전혀 아니었다. 그때 얻은 씨앗으로 DP도 많이 벌었고, 무엇보다 희를 만날 수 있었다. 자신은 뽑기 운이 아주 좋은 게 분명했다.
“에잇. 다시 뽑자. 이번엔 다섯 개.”
“태주?”
여덟 개의 상자를 열었지만, 태주의 마음에 드는 것은 고급 슈트 하나뿐이었다. 두 개를 더 열어서 열 개를 채우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희의 눈초리가 사나워지는 것 같아서 얌전히 상점을 닫았다.
‘두 개만 더 뽑으면 좋은 게 나올 것 같은데. 이따가 몰래 뽑아볼까.’
상자에 대한 미련은 사라지지 않았다.
*
오늘 태주와 태산이는 더위에 지지 않을 아이템을 착용했다. 태주는 팔목에 태산이는 목에 하나씩 쿨링 밴드를 차고 있었다. 이상하다는 희의 눈빛을 받았지만, 혹시나 해서 사 왔다. 펫용품으로 등록된 물품이라 효과가 없을 것 같긴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이었다.
새벽에 물건들을 모두 들고 현실로 올 때 냈던 수수료를 생각하면, 효과를 보지 못할 경우,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상당히 큰 손실이었다. 물품을 현실로 가져오는 수수료는 물품의 상점 판매가와 같았다. 거기에 직접 들고 오면서 낸 추가 비용까지. 지금 태주의 DP는 바닥이었다.
현재 보유하고 있는 DP는 1만 DP가 채 되지 않았다. 여차하면 남겨두었던 값비싼 약초를 팔아야 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구하기 힘든 약초라 전용 보관함에 고이 모셔둔 것들이었다. 팔지 않고 남겨둘 수 있게, DP를 벌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비쌌어. 효과가 있으면 좋겠는데.’
“오늘도 짐이 많으시군요.”
“역시 좀 많죠? 그래도 날이 더워지니 잘 먹어야죠. 과일은 수분 보충에도 좋고요.”
과일을 몇 박스 챙겼다. 차가운 음료수나 아이스크림도 좋지만, 그보다 차게 식힌 과일이 나았다. 특히 요즘 같은 더위에 길에서 촬영할 때는 입맛을 돋워주는 상큼한 과일이 좋았다.
“어제보다 더 더울 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이렇게 더우니, 촬영할 때 큰일이겠습니다.”
“후후후.”
더위를 걱정하는 말을 들었지만, 태주는 편안하게 웃었다. 손목에 찬 밴드의 효과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후후후. 그렇지. 나도 생물이 맞지. 펫은 아니지만.’
태산이는 숨숨집에 들어가서 놀고 있었다. 의자 위에 고정해주자 바로 들어가서 뒹굴고 있었다. 차 안에 설치한 케이지는 분해해도 될 것 같았다.
촬영장에 도착해서 현장이 세팅되는 걸 기다렸다. 배우가 대기할 자리가 마련되자, 태주는 들고 있던 텐트를 설치했다. 베이지색과 갈색이 섞인 접이식 옷장같이 생긴 텐트가 순식간에 설치되었다. 태주는 하네스를 찬 태산이를 텐트 안에 넣어주었다.
“이게 뭐야? 고양이 텐트?”
“네. 요샌 이런 게 있더라고요. 이제 태산이는 여기서 놀면서 기다리면 될 것 같아요.”
“진작 샀으면 좋았을걸.”
“그러게요.”
“편해 보인다. 호호, 얘 좀 봐. 오르락내리락하는 게 재밌나 보네.”
태산이는 텐트 안에서 뒹굴고 있었다. 오픈된 정면으로 태주가 보이기 때문인지 불안해하지 않고 잘 놀았다.
‘이제야 마음 놓고 촬영을 하겠네. 집중하지 못했던 건 아니지만, 불안하긴 했어.’
“태산아 형이 열심히 벌어서 더 좋은 것도 사줄게.”
너무 비싸서 사지 못한 물건이 정말 많았다. 펫 전용 마법 날개, 공중에 떠 있는 요람 등 환상적인 물건이 많았다. 하지만 현실이든 정원이든 펫용품은 생각보다 비쌌다.
*
“컷. 후우. 다시 가자.”
“죄, 죄송합니다.”
촬영장에 냉기가 흐르는 것 같았다. 오늘 처음 촬영을 하러 온 단역 배우가 벌써 열세 번이나 같은 장면에서 NG를 내고 있었다. 연영과 출신이라는데, 짧은 대사 하나를 치지 못해서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컷. 다시.”
“감독님. 잠깐 쉬었다가 하시죠.”
보다 못한 태주가 나섰다. 태주 역시 벌써 십여 차례 같은 장면을 반복하느라 지친 상태였다. 뙤약볕 아래서 같은 장면을 한 시간도 넘게 찍고 있었다. 이 대로 삼십 분만 더 찍으면 일사병에 걸릴 것 같았다.
“받으세요. 샌드위치하고 과일입니다.”
“음료는 이쪽에서 고르세요.”
견우와 형식이 스태프에게 간식을 나눠주고 있었다. 능숙하게 사람들 사이를 헤집고 다니면서 빠뜨리지 않고 모두 나눠주었다. 좀 전에 NG를 내던 단역에게도 간식을 나눠주는 것을 본 태주가 정한선의 곁으로 다가갔다.
“오늘 정말 너무 덥네요. 감독님, 촬영 끝나고 요 앞 개울에서 치킨 먹을까요?”
“큼. 맥주도.”
“네, 매니저님한테 말해 둘게요.”
계속된 NG에 모두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상대역을 하던 태주도 마찬가지였지만, 이럴 때일수록 더 감정을 잘 다스려야 했다. 정한선도 알고 있었지만, 무더위에 체력이 부치기 시작하자 어쩔 수 없었다.
간식을 먹으면서 쉬었던 게 효과가 있었던지, 그 이후에는 NG를 몇 번 내지 않고 촬영을 끝냈다. 태주는 겨우 끝난 신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손목에 찬 쿨링 밴드가 아니었다면 먼저 나서서 화를 냈을지도 모를 정도로 더웠다. 중요한 신도 아닌 곳에서 몇 시간이나 걸린 것인지.
*
촬영을 마친 스태프들과 어울려서 치킨을 먹고 있었다. 치킨 냄새에 홀린 태산이 옆에서 달라고 애교를 부리고 있었지만, 냉정하게 거절했다. 처음부터 버릇을 잘 들여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주지 않고 있지만, 솔직히 꽤 힘들었다. 발로 톡톡 치거나, 무릎 위에 눕는 녀석을 밀어낼 때는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냐아웅.”
“넌 저녁 먹었잖아. 안돼.”
태산이를 달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낮에 NG를 낸 단역은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아무리 첫 촬영이라지만 전혀 연기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한선이니 그 정도에서 끝났지, 만약 상업영화나 드라마 현장이었다면 그 자리에서 대사를 다른 사람에게 뺏겼어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었다.
“아니 뭐 저런 사람들이 다 있어요.”
“왜 그러세요?”
잠시 보이지 않던 형식이 화를 내면서 돌아왔다. 분을 참지 못하는 모습에 태주가 이유를 물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주변에 스태프가 있어서 그런 것 같았다. 태주는 태산이 산책도 시킬 겸 그를 따로 데리고 나왔다.
“무슨 일이세요?”
“후우. 좀 전에 치킨 가져다주러 단역 숙소에 다녀왔는데, 거긴 이미 술판이 벌어졌더라고요. 술 마시면서 하는 얘기가 가관이었어요.”
“뭐라고 했는데요?”
“감독님하고 배우님하고 같은 소속사라 낙하산으로 꽂았다는 얘기부터, 감독님이 일부러 트집 잡고 NG를 계속 냈다는 얘기에, 촬영 스태프 욕도 하고요. 여자 스태프 상대로 입에 담기 힘든 소리까지 하더라고요.”
연기 준비도 해오지 않은 주제에 사람들 험담이나 하고 있다는 얘기에 태주의 기분이 상했다. 자신은 조금이라도 촬영이 빨리 끝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었는데, 민폐를 끼친 사람들이 남을 욕하다니.
“쯧. 내일 같이 나오는 신 남아있죠?”
“네. 오전에 힐링 인터뷰 촬영 다녀와서, 바로 촬영해야 합니다.”
“에잇. 내일 촬영도 오늘처럼 하면 한소리 해야겠어요.”
본격적으로 스케쥴이 늘어나고 있었다. 회귀 전만큼 바쁜 것은 아니었지만, 한동안은 서울과 지방을 왕복하면서 촬영을 해야 할 정도였다. 날도 덥고 일도 많은데, 귀찮은 일이 생길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