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91
291. 소풍 >
태주는 정원 입구를 통과할 때도 아이 모습인 태산이의 머리를 쓸어 주었다. 잠 많은 꼬맹이가 다큐멘터리를 본다고 선잠을 자더니 정원에 도착해서도 자고 있었다.
“태주!”
“희.”
“이히히.”
‘크으. 귀여워라.’
작은 요정 아가씨는 존재 자체만으로 그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특별한 일 없이 그의 이름만 불렀는데도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고 행복한 기분이 되었다. 한동안 날이 밝으면 요정 숲으로 가 버리던 희가 오랜만에 아침에 마중을 나와 줘서 더 그런 듯했다.
“태주, 희가 부탁이 있어.”
“부탁이 뭘까?”
“요정 숲 북쪽에….”
“응. 북쪽에.”
“재밌는 나무가 생겼대.”
요정 숲 북쪽은 여러 차원 이주민이 정착한 지역으로 자주 특이한 일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땅이 캐러멜 늪으로 바뀌거나 눈 대신 설탕이 내리는 일이 생기는 곳으로, 희의 부탁은 얼마 전 그곳에 생긴 신기한 나무들을 구경하러 가자는 간단한 것이었다.
“태주, 희랑 요정 숲에 가 줄 수 있어?”
“요정 숲 북쪽에 가도 괜찮아?”
“응. 북쪽 마을 근처에 있댔어.”
“좋아. 그럼 해나한테 도시락을 만들어 달라고 하자. 점심은 요정 숲에서 먹을까?”
“응! 이히히. 소풍이다.”
“킥. 소풍이다!”
요정 숲 북쪽은 제한 구역이었다. 들어가려면 남쪽과 마찬가지로 주민들의 방문 허락이나 초대가 필요했다. 희가 같이 가길 바라는 장소는 북쪽이긴 했지만, 다행히 이주민 마을에 들어갈 필요는 없었다.
공중에 퍼지는 반짝이는 가루에 태주가 웃음을 터뜨렸다. 솔직한 그의 요정 아가씨는 오랜만의 소풍이 무척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하암.”
“산이 깼어?”
“깨떠.”
“내려 줄까? 아니면 형이 오두막까지 안고 갈까?
“아앙. 내려져.”
잠에서 깨자마자 내려 달라고 하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태주는 아이 바람대로 바로 바닥에 내려 주었다.
태산이는 그가 내려 주자마자 순식간에 하얀 고양이의 모습으로 바뀌어 정원 안으로 뛰어갔다. 태주는 그런 태산이를 향해 요정 숲 소풍 소식을 큰소리로 알려 주었다.
“점심에 요정 숲으로 소풍 갈 거야. 그 전에 돌아와, 알았지?”
“냐앙.”
“배고파도 오고!”
“냐아앙.”
그렇지 않아도 정원에만 오면 바쁘게 돌아다니던 태산이는 확장한 뒤에는 배가 고플 때를 빼고는 오두막에 돌아오지 않았다. 가끔 호랑이 굴이나 바위 무더기 근처에서 보이긴 했지만, 보통은 새로 확장한 구역을 돌아다녔다.
‘나중에 확장 구역에도 태산이가 쉴 만한 곳을 만들어 줘야겠네.’
정원 전체가 태산이의 놀이터고 쉼터긴 했지만, 좀 더 좋은 것을 해 주고 싶은 게 그의 마음이었다. 그는 호박 섬에 만들어 둔 고양이 쉼터처럼 태산이가 쉴 만한 정자가 좋을지, 정글짐 같은 놀이 기구가 좋을지 고민하면서 오두막으로 향했다.
정원 입구에서 오두막으로 가는 길은 꽤 많이 바뀌어 있었다. 정원 확장 초기 급하게 놓은 돌길 주위로 허브가 심긴 사각형 화단이 산책로 형태로 생겨 있었고, 그 뒤로는 색색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힌 과실수가 심겨 있었다.
“오늘은 장미 구역 쪽을 꾸며 볼까.”
태주는 허브 화단 사이에 둔 벤치를 보다 꾸미다 만 장미 정원 구역을 떠올렸다. 장미 정원은 현실의 겨울이 시작될 즈음에 만들다가 허브 화단을 꾸미는 데 빠져서 그냥 두었었다. 소풍 가기 전에 만들다 만 원형 구조물을 마저 만들 계획이었다.
정원의 개간은 확장 전과 다르게 꽤 느긋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일을 해야 한다는 제한 없이, 내키는 대로 적당히 일하고 있었다.
콘셉트별로 확장된 공간을 몇 구역으로 나누고 그날그날 마음에 드는 곳을 가꿨다. 하루는 허브 화단을 만들고, 하루는 기능성 씨앗 미로를 만들었다.
정원 확장 초기엔 바뀐 환경에 꽤 당황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은 꽤 잘 적응하고 있었다.
우편함과 게시판도 확인하고 도도의 플레이 하우스도 들여다본 그가 오두막에 도착하자, 여느 때처럼 해나가 간단한 음식과 차를 내주었다. 태주는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뒤, 희와 한 점심 소풍 약속을 해나에게 알렸다.
“호호호. 도시락을 넉넉히 준비해야겠는걸. 요정들이 몰려올 테니.”
“적당히 준비해 주셔도 괜찮아요. 쿠키랑 젤리 쌓인 걸 가져갈 거라서요.”
“별똥별에서 나온 거? 한동안 열심히 잡은 보람이 있는걸.”
“그렇죠?”
“그럼 이제 찬장을 돌려줄 수도 있겠네?”
“크흠. 남은 거 전부 챙겨 갈게요.”
태주와 희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던 때 그만뒀던 별똥별 수집을 재개했었다. 연말에 바빠지기 전에 다원 보육원 아이들한테 선물할 생각에 별똥별을 잡았었다.
문제라면 오랜만에 열기구에 탄 희도 그도 흥분해서 필요 이상의 별똥별을 잡아 버린 것이었다. 보육원과 지인들에게 별똥별 간식을 선물하고도 남을 정도라서, 신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두막의 찬장을 차지하고 있었다.
“아이, 바쁘다, 바빠.”
“호호호.”
멋쩍게 웃은 그는 화제를 피하듯 제 몫의 음식을 빠르게 먹어 치웠다. 점심에 요정 숲에 가기 전에 텃밭을 가꾸고 장미 정원을 꾸미려면 시간이 촉박했다.
*
태주는 해나가 챙겨 준 바구니들을 아공간에 넣고 일행을 확인했다. 그의 어깨에 매달린 태산이, 희랑 같이 공중에 떠 있는 제피르, 소환한 물의 정령과 한쪽에서 얌전히 기다리는 단단까지. 요정 숲 소풍 인원이 모두 곁에 있었다.
“해나, 정말로 같이 안 가실래요?”
“난 느긋하게 쉴 테니 다녀와, 정원사 씨.”
“같이 가시지….”
“다음에 향신료 구하러 같이 가면 되지.”
“그럼 그땐 꼭 같이 가요. 다녀올게요.”
“응. 다들 잘 다녀와.”
해나의 배웅을 받으며 정원 식구들이 이동문으로 들어갔다. 태주는 사라지는 이동문 너머를 돌아보는 단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평소 해나를 무척 잘 따르는 단단이라, 요정 숲에 같이 오지 않은 게 어지간히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정원사다.”
“정원사가 왔다.”
“희! 희 정원사야?”
“응. 희 정원사, 태주야.”
“우와! 희 대단해. 정원사도 있고.”
요정 숲에 태주 일행이 나타나자, 사방에서 요정이 몰려왔다. 그중 한 요정은 태주의 정체를 몰랐던 듯, 신기해하면서 주위를 맴돌았다.
태주는 그의 얼굴을 살짝 건드렸다가 빠르게 멀어지는 작은 요정을 보고 눈을 크게 떴다. 짙은 밤색 머리카락, 보라색 원피스. 희가 설명했던, 한동안 희를 요정 숲에 출근하게 한 새로 태어난 요정처럼 보여서였다.
“혹시 그린?”
“맞아, 태주. 그린이야.”
“정원사, 그린이를 알아?”
“안녕, 그린. 물론이지. 희한테 여러 번 들었는걸.”
“헛.”
태주가 저를 알아준 게 기분 좋은지 그린이 가까이 다가왔다. 다만 다가오긴 했지만, 부끄러운지 옆으로 돌아가 숨어 버렸다. 그는 옆머리 머리카락이 누군가의 손에 잡히는 걸 느꼈지만, 모른 척하고 공터를 벗어났다.
머리카락에 매달려 있던 그린은 그가 걸을 때마다 흔들리는 게 재밌는지 쉴새 없이 반짝이는 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빛으로 사라지는 가루라 재채기가 날 것 같진 않았지만, 신나서 펄럭이는 날개에서 이는 바람에 뺨이 간지러웠다.
“하하하. 간지러워라. 우리 점심 먹을 건데, 괜찮은 자리가 있을까?”
“있어. 폴라가 알아.”
“오! 폴라 오랜만이야. 안내 부탁해도 될까?”
“응. 폴라가 안내해 줄게.”
“고마워.”
태주는 자신의 머리카락에 매달린 어린 요정의 발아래로 손가락을 조심스럽게 대어 주었다. 그의 머리에 매달린 그린이 다치지 않게 떼어내려는 생각이었다. 저를 자기 정원사라며 희가 으스대는 것도 귀엽고, 그린이처럼 저를 만졌다가 날개 가루를 뿌리며 도망치는 요정도 재밌었지만, 누군가에게 빨리 점심을 먹여야 해서였다.
“냐아아!”
“착하지, 태산아. 조금만 기다려. 금방 줄게.”
오전 내내 돌아다니느라 배를 곯은 하얀 녀석이 그의 셔츠를 질겅거리고 있었다. 지금은 침에 어깨 부위가 축축해진 정도지만, 조금만 이대로 두었다간 셔츠에 구멍이 날 것 같았다.
“여기 딱 좋다.”
“정원사, 마음에 들어?”
“마음에 들어. 고마워, 폴라. 폴라도 같이 점심 먹을래?”
“응!”
힘차게 대답하는 폴라의 날개 주위가 반짝거렸다. 태주는 크게 대답해 놓고 부끄러운지 몸을 비트는 작은 요정이 귀여워 입매가 스르르 술렸다.
폴라가 점심을 먹기 좋은 곳이라고 안내한 장소는 커다란 나무의 가지가 차양처럼 내려온 곳이었다. 나뭇가지 아래 바닥 역시 누가 정리한 것처럼 깔끔해서 따로 손볼 필요 없이 돗자리를 깔 수 있었다. 점심 먹기 딱 좋은 장소였다.
‘아이고, 따가워라.’
요정들의 귀여운 행동에 헤실거리던 그는 어깨에서 느끼지는 따끔함에 바로 정신을 차려야 했다. 어깨에 매달린 호랑이 녀석이 셔츠를 잘근잘근 씹다가 실수로 그의 어깨를 깨문 모양이었다.
태주는 축축하게 젖은 셔츠를 외면하고 급하게 돗자리를 펴고 음식 바구니를 늘어놓았다. 태산이가 아직 자제력을 잃을 정도는 아니지만, 조금 더 지나면 밥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칠 것 같았다.
“자, 먹자. 너희도 이리 와. 음식 많이 가져왔거든. 같이 먹자.”
“와앙! 정원사 너무 좋아.”
“킥! 많이 먹어.”
해나가 챙겨 준 음식은 이곳에 모인 수십 명의 요정이 같이 먹어도 남을 정도로 푸짐했다. 거기에 그가 챙긴 달콤한 간식들까지 더해져 돗자리 위가 순식간에 음식으로 가득해졌다.
태주는 접시에 가득한 고기를 허겁지겁 해치우는 태산이 모습에 몰래 한숨을 쉬었다. 그는 태산이가 정원을 자기 영역이라고 여겨서 점검하는 것엔 찬성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식사도 거르면서 하는 것은 여전히 반대였다.
“그쪽 체리 파이 좀 주시겠습니까?”
“여기요.”
“감사합니다. 레이디 해나의 음식은 여전히 훌륭하군요. 특히 이 파이는 최곱니다.”
“그렇죠? 해나의 파이는, 헉!”
태주는 자연스럽게 옆자리 사람에게 파이를 덜어 주고 대꾸하다가 돌처럼 굳어 버렸다. 이 자리에는 정원 식구와 요정만 있었다. 자신에게 넓은 접시를 내밀며 파이를 달라고 부탁할 사람이 없었다.
오스스 돋는 소름을 느끼며 확인한 상대는 그나 정원 식구 모두에게 익숙한 상대였다.
“…단장님?”
“네, 정원사님. 왜 그러십니까?”
“대체 언제?”
“후후후. 이 숲에서 제 코를 피할 음식은 없습니다. 레이디 해나의 음식이라면 더더욱 놓칠 리 없지요.”
“…대단하시네요.”
태주는 어느새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음식을 먹고 있는 뻔뻔한 엘프 단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놀라긴 했지만, 어쩐지 이런 전개가 없으면 요정 숲을 방문한 느낌이 안 들 것 같기도 했다.
엘프 단장은 언제나처럼 능글맞은 얼굴로 음식을 흡입했다. 한 손에 든 파이 조각을 한 입, 두 입, 세 입에 꿀꺽하고, 다른 손의 포크로 고기 세 점을 콕콕 찍어서 한입에 털어 넣었다. 시원한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신 뒤엔 갈비를 잡고 뜯었다.
“먹보!”
“엘프 단장은 먹보야!”
“흐흠. 맛있군요.”
“….”
태주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반 가까이 사라진 음식에 요정들이 그를 놀리는 이유가 이해됐다. 요정들은 엘프 단장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었다. 작은 요정 여럿이 파이 한 조각을 먹는 사이, 엘프 단장은 혼자서 한 판을 다 먹을 정도였다.
푸짐한 음식을 차려 놓고 느긋하게 시작한 점심은 누가 누가 빨리 먹나 대결이 되어 버렸다. 먹는 속도가 일반적인 태주도 거기에 휩쓸려서 평소보다 더 빨리, 더 많이 음식을 식사를 해치웠다.
“주전자 군.”
-쪼르륵!
-짝짝짝!
“허허허. 잘했어요. 주전자 군, 센스쟁이!”
태주는 부른 배 때문에 뒤로 몸을 기울인 채로 엘프 단장이 주전자 군을 칭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옆에서 보기 조금 민망한 그림이었지만, 주전자 군이 여전히 엘프 단장의 사랑을 받는 모습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렇게 구경하길 잠시, 새로 태어난 어린 요정도 여러 번 만나서 익숙한 요정들도 배부르게 먹을 정도로 풍성했던 음식도 모두 비워졌다. 그는 큰 동작에 요정이 놀라지 않게, 조심스러운 손길로 비워진 접시를 음식 바구니에 담았다.
“태주, 출발이야?”
“응. 점심도 먹었으니, 이제 슬슬 거기로 가 보자.”
“정원사님, 어디로 가십니까?”
“북쪽이요. 신기한 나무가 자랐다고 들어서요. 보러 가려고요.”
“아아. 좋은 선택입니다. 그곳에 재밌게 생긴 나무들이 많지요. 지름길을 알려 드릴까요?”
지름길. 갑자기 처음 요정 숲에 향신료를 찾으러 왔을 때가 떠올랐다. 당시 눈앞의 이 게으름뱅이 엘프 단장의 장난에 그의 일을 대신 해야 했었다.
태주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번에도 지도에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 건 아닌지 싶어서였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그뿐이 아니었는지, 배불리 먹고 볼록해진 배에 비스듬히 누워있던 태산이가 크르릉 거리며 다가왔다. 제피르 역시 딛고 있던 나무에서 그의 어깨로 내려왔다.
“이런! 그렇게 경계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번에는 진짜 지름길입니다.”
“이번 달 요정 숲 관리는 누가 담당하나요?”
“엘프야, 정원사.”
“고마워, 그린. 단장님?”
“….”
그린의 제보를 들은 태주의 시선이 차갑게 식었다. 태주는 엘프 단장의 뒤로 돌아가 뛰어들 듯 자세를 취하는 태산이를 말릴 것인지, 그대로 둘 것인지 잠시 고민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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