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92
292. 북쪽 마을 >
쏟아지는 눈길이 따가워서였을까, 엘프 단장이 급하게 변명을 늘어놓았다.
“정말로 열매를 솎아 달라거나 지지대를 세워 달라고 부탁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변명이 꽤 구체적이시네요?”
“크흐흠! 정말 아닙니다. 지름길을 알려 드리면서 근처의 가 볼 만한 장소를 알려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정말입니다.”
짧은 대화 중 정말이라는 단어만 세 번 나왔다. 태주는 진실이라며 얼굴을 들이미는 뻔뻔한 엘프 단장에 포기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믿음은 가지 않았지만, 이미 속셈을 들었는데 장난을 치지는 않을 것 같아서였다.
“북쪽 차원 이주민 마을과 그 근처엔 특이한 물건이나 장소가 많습니다. 그 치들은 태생이 무언가를 만드는 걸 좋아해서 말입니다.”
“예를 들면요?”
“정원사님이 가려는 나무들도 그 괴짜들이 몰래 장난친 겁니다.”
“연금술사처럼요?”
“연금술사, 대장장이, 마녀, 마법사 등등. 많습니다.”
태주는 질린 표정으로 설명하는 엘프 단장에 약간의 동정심이 들었다. 그도 장난기 많은 마법사 지인이 있어서 잘 알고 있었다. 능력 좋은 괴짜의 장난 스케일은 평범한 사람이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그 나무가 자란 구역을 좀 지나면 새로 생긴 던전이 있습니다.”
“던전이요?”
“네. 아마 북쪽 마을 주민 누군가가 만들었을 겁니다. 그 던전에서 꽤 귀한 물건이 보상으로 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 보상 중엔 펫 전용 랜덤 기술석도 있다더군요.
“어?”
“전투형 펫한테 무척 중요한 것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 던전의 위치를 알려 드릴까요?”
태주는 고개가 세차게 끄덕이다 돌연 멈추었다. 펫 전용 랜덤 기술석은 태산이가 피라미드를 공략하고 얻은 것 외엔 보지 못했었다. 온갖 물건이 다 올라오는 상점에서도 보지 못했었다. 그런 귀한 물건이 북쪽 마을 주민이 만든 던전의 보상으로 나온다니, 믿을 수 없었다.
“하하하. 믿기 힘드시겠지만, 사실입니다. 상점에 올라오는 희한한 물건 절반은 그 괴짜들과 장인 일족들이 만들어 내는 겁니다.”
“진짜요?”
“물론 반신들이 남긴 흔적에서 나오는 것들도 많지만, 반 이상은 그들이 만드는 것입니다. 그 정도로 재주가 좋은 자들이죠. 그러니 한 번 가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우와!”
“알려 드릴까요?”
태주의 고개가 다시 거세게 끄덕여졌다. 펫 전용 랜덤 기술석이라니! 만약 거기서 그가 항상 바라 왔던 변신 기술이 나온다면, 태산이의 펜던트를 빼 줄 수도 있었다. 아공간 때문에 목줄을 안 벗으려고 할 수도 있지만, 벗길 수 있게 된다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고마워요, 단장님. 나중에 정원에 들르세요. 좋은 차를 준비해 둘게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잘 다녀오십시오.”
“네. 가자, 얘들아.”
“출발!”
“히히힝!”
엘프 단장은 그가 적어준 지도를 챙긴 뒤 일행과 희희낙락 장난치며 떠나는 정원사를 묘한 눈으로 배웅했다.
정원사는 처음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남을 의심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정원사들은 비슷한 성향이 많긴 했지만, 다른 정원사에 비해 나이가 어린 편이라서 그런지 더 순진해 보였다. 그래서 가끔 놀리고 싶은 마음이 들긴 했지만, 이번엔 정말 그럴 의도는 없었다.
‘뭐, 내가 안 그래도 그 괴짜들이 만든 던전이니 여러 장난을 쳐놨을 테지.’
남쪽 수인 마을이나 북쪽 차원 이주민 마을이나 모두 입장하려면 허락이 필요하지만, 그 이유는 사뭇 달랐다. 남쪽은 수인을 보호하려는 조치였지만, 북쪽은 방문자를 보호하려는 조치였다. 과격한 장난을 많이 치는 북쪽 마을 주민에게서 선량한 방문자를 보호하려는 목적이었다.
“요정들이 대거 따라갔으니 괜찮겠지.”
요정만큼이나 장난기가 많은 북쪽 마을 주민이라도 요정을 다치게 하지는 않을 터였다. 요정 여왕의 호의로 정착한 이들이 여왕의 백성을 해칠 리 없었다. 북쪽 마을 주민이 만약 그런 심성을 지닌 이들이었다면 여왕이 받아 줬을 리 없었다.
엘프 단장은 이 정도 정보면 레이디 해나의 요리에 대한 충분한 보답이 됐으리라 자찬하며 나무에 몸을 기댔다. 배도 부르고 햇볕도 좋았다. 항상 맡는 숲 냄새도 그를 편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엘프 단장은 맛있는 음식만큼 달콤한 낮잠에 빠졌다.
*
“이름 맞히기 게임. 보라색 길쭉길쭉 가가가?”
“가지!”
“킥. 노란색 팔랑팔랑 나나나?”
“나비!”
“하하하. 잘했어.”
태주는 일행과 같이 요정에 둘러싸여 북쪽으로 향했다. 재밌는 나무가 많이 있다는 장소까지 거리가 꽤 되었지만, 던전에 대한 기대와 사방팔방을 날며 즐거워하는 요정들 덕에 지루하진 않았다. 거기에 걸으면서 할 수 있는 간단한 게임이 더해지자 목적지도 금방이었다.
가지에 부담이 갈 정도로 맺힌 열매가 신경을 거스른 점을 빼면 상당히 유쾌한 숲길 산책이었다.
“우와!”
“태주, 여기. 물이야.”
“진짜 물이네. 신기하다.”
“이히히. 희 물 마실래.”
일행이 도착한 곳에는 특이한 형태의 나무가 많이 자라 있었다. 뿌리 근처부터 꽈배기처럼 배배 꼬인 나무에 두 그루의 나무가 하트 모양으로 붙어서 자란 나무, 나무 중간에 샘처럼 물이 고인 나무 등. 희의 설명대로 재밌는 나무들이 가득했다.
태주는 스프링처럼 가지가 둥글게 말린 나무 밑에서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특이하고 귀여운 모습에 정원의 덩굴나무도 그렇게 키워 볼 생각으로 유심히 보는 중이었다.
“냐아앙.”
“왜? 안아 줘?”
“냐아.”
그런 태주의 곁으로 태산이가 다가왔다. 그는 제 다리에 앞발을 짚고 서서 어리광을 부리는 작은 몸을 안아 들었다. 구경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지만, 워낙 활동적인 녀석이라서 그런지 한곳에 머무는 게 지루한 것 같았다.
“태산이 던전에 가 보고 싶어?”
“냐앙.”
“형도 가고는 싶은데, 오늘은 힘들 것 같아. 어떤 던전인지, 무슨 준비가 필요한지 하나도 모르니까. 오늘은 어떤 던전인지 확인만 하고, 들어가는 건 내일 하자.”
“냐앙.”
“착하다. 우리 태산이.”
그는 지루해하는 태산이를 달랠 겸 잠시 후 갈 던전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그가 던전 얘기를 시작하고 얼마 후 태산이 꼬리가 몸을 탁탁 건드리기 시작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호기심 많은 호랑이가 흥미를 보이는 중이었다.
-쓰윽! 쓰윽!
던전을 공략할 생각에 흥분해서 움찔거리는 하얀 등을 잠시 쓸어 주자, 얌전해지는 게 느껴졌다. 전투, 사냥, 보상에 흥분하는 호랑이 마음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던전을 공략하러 갈 마음이 없었다.
귀에 인이 박일 정도로 안전에 주의하라는 충고를 들어 오기도 했지만, 몇 가지 걸리는 점도 있었다. 요정 숲에 그와 같이 온 순둥이 단단도 걸렸고, 몸을 보호할 만한 물건이 없는 것도 걸렸다. 기술석 보상이 욕심나긴 했지만, 자신과 일행의 안전을 대가로 탐할 정도는 아니었다.
“정원사, 정원사. 노래.”
“정원사 노래 불러 줘.”
“노래?”
“응. 노래. 노래하자, 정원사.”
던전 공략에 관해 고민하는 그의 주위를 수십 명의 요정이 순식간에 둘러쌌다. 그리고 너도나도 노래를 불러 달라 부탁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기다리자, 희가 곁으로 다가와 상황을 설명했다.
“미안, 태주. 희가 태주 노래 잘한다고 자랑했어.”
“하하하. 그랬어?”
“응. 태주는 연주도 잘하고 노래도 잘한다고 했어.”
“고마워. 흠. 어떤 노래가 좋으려나….”
“호당이 노래!”
아이 말이 끝난 직후 태주의 얼굴에서 순간적으로 핏기가 사라졌었다.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던 태산이가 아이로 변했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늘어난 무게에 하마터면 아이를 떨굴 뻔했던 그는 아이를 잘 고쳐 안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사실 운동 신경이 좋고 튼튼한 꼬맹이가 바닥에 한 번 떨어지는 정도로 크게 다칠 리는 없었지만, 그의 마음은 또 달랐다.
“꼬맹이, 너!”
“태쭈, 호당이 노래.”
“정원사 호랑이 노래 부를 거야?”
“호랑이 노래가 뭐야? 호연 님 노래야?”
“아앙! 사니 거야!”
놀란 마음을 겨우 가라앉힌 그가 아이에게 앞으로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려 했지만, 그 일도 쉽지 않았다. 큰소리로 외친 호랑이 노래를 부르자는 얘기에 몰려든 요정들이 재촉하며 정신없이 날아다녀서였다.
-디리링.
“나눈 욘맹하 호당이. 어흥. 어흥. 동무데 왕.”
“동물의 왕.”
“머찐 무니 무떠운 발톱 어흥. 어흥. 호당이.”
“호랑이.”
태주는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기타를 꺼내서 호랑이 노래를 연주했다. 오랜만에 하는 호랑이 노래 연주였지만, 한때 질릴 정도로 듣고 연주했던 것이라서인지, 자연스럽게 연주할 수 있었다. 나아가 그는 아이 노래의 후렴을 따라 부르며 흥을 돋우어 주었다.
호랑이 노래 다음으로 태주는 희가 좋아하는 동요를 연주했다. 정원에서 희가 자주 듣던 동요는 그의 연주와 노래를 처음 접하는 요정도, 여러 번 봐서 익히 알고 있던 요정도 모두 좋아했다. 다년간 동요를 연주해 온 보람이 있었다.
-부스럭!
‘인간? 요정 숲에 인간이라니, 정원사인가?’
태주와 요정들이 어울려 노래 부르는 장소의 높은 곳, 키 큰 나무의 꼭대기에 알록달록한 날개옷을 입은 사람이 내려앉았다. 북쪽 마을 주민인 그는 실험을 위해서 마을을 나왔다가 낯선 노랫소리가 들려와 이동을 멈추었다.
연금술로 변형시킨 나무를 옮겨 둔 공터에 인간과 요정, 동물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실험이 급했지만, 그는 즐겁게 노는 모습에 저도 모르게 자리를 잡고 앉아서 구경했다.
그렇게 구경에 빠진 그는 실험도 잊은 채 노래를 끝내고 장소를 이동하는 일행의 뒤를 따라갔다.
*
엘프 단장이 알려 준 던전은 공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느린 아이 걸음으로 십오 분 거리라서, 아공간 안에 남겨 두었던 주스와 사탕을 나눠 먹으며 천천히 왔는데도 금방 도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도착한 던전 앞에서 태주 일행은 입을 떡 벌리고 굳어 버렸다. 풍요롭고 온화한 요정 숲과 전혀 어울리지 않은 삭막한 던전 입구의 상태에 질려서였다.
“여긴 대체 어쩌다가….”
“태주, 무서워.”
던전 주변은 푸르른 녹색의 나무, 형형색색의 화초와 부드러운 갈색 흙 같은 요정 숲을 대표하는 색이 전혀 없었다. 마치 무언가가 주변의 영양분을 빨아들인 것처럼 누렇게 뜬 식물과 모래처럼 푸석한 땅만 남아 있었다.
“단단, 단단.”
“응? 진짜?”
“희, 단단이 뭐래?”
“여기에 물을 줘도 되냐고 했어.”
“그래? 그럼 단단 우선 조금만 줘 볼래?”
물을 한 번 주는 정도로는 소용이 없어 보였지만, 그는 굳이 말리지 않았다. 시도하는 일 모두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무리였다. 또 실패하면 실패하는 대로 배우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평소 태주는 위험한 행동 빼곤 아이들이 하는 일을 말리지 않았다.
“단단, 단단.”
-♪♬♬♩
-쏴아아!
태주의 허락을 받은 단단이 물의 정령에게 부탁해서 물을 주기 시작했다. 버석버석 마른 식물 위로 빗물처럼 가는 물줄기가 쏟아졌다. 단단과 정령은 시험적으로 조금만 물을 줘 보라는 태주의 말과 다르게 던전 입구 근처를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그러나 둘의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물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흥건하게 물을 주었는데도 식물은 그대로였다. 뿌리까지 말라 버렸는지 생생해지는 감이 전혀 없었다.
‘단장님은 여기 상태를 모르셨나? 이건 보통 방법이 아니라, 그때 봤던 마법으로 살려 내야 할 것 같은데…. 정원으로 돌아가기 전에 알려 드려야겠다.’
한두 번 물을 주는 거로는 회복시키기 힘들겠다고 판단한 태주가 물웅덩이를 피해 단단이 멈춘 곳으로 향했다. 흔들흔들 몸을 흔들며 물을 정령을 열심히 응원했지만, 효과를 보지 못해 실망한 단단을 달래 줄 생각에서였다.
“이제 던전에 들어가 볼까?”
“앙! 가자!”
“하하하. 산이 아까 형이 얘기한 거 기억하지? 오늘은 보기만 하고 나오는 거야. 공략은 제대로 준비하고 하자.”
“아라떠.”
던전에 들어가자는 얘기에 의욕 충만한 아이는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래도 미리 얘기해 둔 보람이 있는지 고집부리지 않고, 탐색만 하고 오자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피르. 보호막 부탁해.”
“히히힝.”
-땅!
땅! 땅! 땅! 제피르가 일행에게 보호막을 씌워 주는 소리가 여러 번 났다. 입구에서 조심스럽게 던전 환경과 출몰 몬스터만 확인하고 돌아올 생각이었지만, 싸움을 못 하는 일행도 있으니 조심하는 중이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친 일행이 던전에 들어가려던 순간이었다.
“잠깐!”
“으앗! 깜짝이야. 뭐예요?”
“너희 지금 던전에 들어가려는 거야?”
“그런데요.”
허공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얼룩덜룩한 옷을 입은 사람이 던전으로 향하는 일행의 앞을 막아섰다. 나타난 사람은 자신의 정체도 밝히지 않은 채 다짜고짜 일행의 목적지를 물었다.
“요정, 동물, 일반인으로?”
“입구에서 확인만 하고 올 거예요.”
“흠. 던전은 위험한 곳이야. 여기, 여기는 괜찮겠지만, 그쪽은 무리야.”
“….”
낯선 사람에게 그쪽이라고 지목된 대상, 태주는 주변에 가득한 요정들을 생각해 인상을 구기지 않기 위해 애썼다. 어린아이로 바뀐 태산이, 싸움을 싫어하는 단단도 괜찮다면서, 성인인 자신만 콕 집어 안 된다고 말하는 상대가 괘씸했다.
“제가 보호자거든요!”
“뭐? 아! 하긴. 리더가 굳이 강할 필요는 없지.”
“아니, 왜 자꾸….”
“히히히.”
“까르르.”
자신을 약하다 말하는 상대에게 따지려는 태주의 귀에 사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려 왔다. 둘의 대화를 듣던 요정들이 그의 억울한 표정을 보고 웃고 있었지만, 말릴 수는 없었다.
“정원사, 약하구나.”
“아니, 내가 약한 게 아니라.”
“정원사가 약해서 큰일이네.”
“큰일이네. 약한 정원사.”
“어휴.”
놀림거리를 발견한 요정들이 짓궂게 그를 놀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옆구리에 위로하듯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탁탁!
“갠차나, 태쭈. 사니가 지켜 주께.”
“…고, 고마워.”
‘안 지켜 줘도 괜찮아!’
태산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주변을 날던 요정들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약하다는 말에 이어 지켜 준다는 말이 사방팔방에서 들려 왔다. 지켜 주겠노라는 아이의 말이 고마웠지만, 딱히 기쁘지는 않은 태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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