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95
295. 시즌 2 촬영 >
쓰러진 스태프는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다. 그저 대비하지 못하고 턱을 맞은 충격에 균형을 잃고 넘어진 것뿐이었다.
“괜, 괜찮아요. 저기, 그, 얼굴을 좀….”
“얼굴이요? 얼굴 아프세요?”
“아니, 그게 얼굴이 너무 부담….”
“어! 턱이 좀 부으셨네요. 어떡해요, 아프시죠?”
“제발 손 좀….”
정신을 차린 스태프는 자신의 전신을 만질 것처럼 붙어서 살피는 태주에게 연신 괜찮다고 피력했다. 사실 스태프는 턱을 맞은 충격이나 넘어져 행사가 멈춘 것보다 자신의 어깨를 안고 부축하는 태주가 더 신경 쓰였다.
당황과 걱정이 가득한 촉촉한 눈이나 그의 얼굴에 조심스럽게 닿은 손끝이 심하게 부담스러웠다. 특히 시끄러운 주변 소음을 뚫고 귀에 꽂히는 걱정스러운 목소리 때문에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태주 씨, 제가 부축하겠습니다.”
“매니저님….”
괜찮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지만, 태주는 그 스태프를 그냥 둘 수 없었다. 그는 걱정 때문인지, 짙은 좀비 분장 때문인지, 스태프의 목덜미와 귀가 부끄러워서 시뻘게진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당장에라도 태주를 밀어내고 벗어나고 싶지만, 차마 그러지 못하는 좀비 분장 스태프의 마음을 눈치채고 견우가 대신 나서서 그를 부축했다. 스태프는 병원으로 갈 정도로 다치진 않았지만, 현장을 모면하기 위해 병원으로 가자는 견우의 말에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사고가 있어, 진행이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그럼 이어서 포토 타임을 진행하겠습니다.”
스태프가 벗어난 후, 사회자의 사과 말을 시작으로 다시 행사가 시작되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있었지만, 이후 행사에서 태주가 실수하는 일은 없었다.
물론 그것은 겉모습뿐으로 머릿속은 폭탄이 터진 것처럼 복잡했다. 병원으로 간 스태프도 걱정되었고, 좀 전 사고의 기사가 어떻게 나올지도 걱정이었다. 사회자의 지시에 따라 사진을 찍는 중에도 무대 인사를 마치고 대기실로 돌아가는 중에도 그런 생각들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복잡한 심사는 대기실에서 태산이를 본 뒤 정점에 달했다.
“태쭈 이더케 해떠. 우아!”
-퍽!
“호호호. 태주가 그랬어?”
“앙.”
태산이는 미나에게 태주가 했던 동작을 보여 주고 있었다. 팔을 걷어 내는 동작에 이어서 턱을 쳐올리는 동작까지 깔끔하게 보여 준 아이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었다. 흉내가 정확한 게 아무래도 분장한 스태프를 치는 장면을 빼놓지 않고 다 본 듯했다.
‘맹랑한 꼬맹이. 대기실에서 기다리라니까. 혼자서 행사장까지 오다니.’
행사 진행 도중 틀어 주는 영상 중 잔인한 장면들이 꽤 있어서 행사장에 못 오게 했었는데, 정신 차려보니 아이는 2호의 품에 안겨 있었다. 미나와 팀원들이 분장실을 정리하는 사이 몰래 빠져나왔다가 2호한테 발견된 것 같았다.
“우와! 기사 봐. 태주 씨 기사 엄청 올라왔어요.”
“벌써요?”
“얘는. 벌써가 뭐니. 무대 인사 하는 도중에도 기사는 계속 나왔었어. 요즘은 실시간으로 기사가 뜨잖아.”
“아아. 보기 두렵네요.”
“호호호. 장난 아니야. 그새 실검 1위에 올라갔네. 이태주 좀비.”
“이태주 좀비…. 단어만 들으면 제가 좀비가 된 것 같네요.”
태주가 말썽쟁이 꼬맹이의 뺨을 장난스레 꼬집고 있는 사이, 스타일리스트 팀원이 기사를 확인했다. 원래는 기사 사진에 의상과 소품이 어떻게 나왔나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폰 화면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기사가 올라오자 놀라서 얘기를 꺼냈다.
“기사 제목 봐라. 벌써 난리다. 제작 발표회에서 배우를 놀라게 하면 안 되는 이유…. 호호호.”
“그게, 진짜 그러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미나는 몇 년간 태주와 같이 일하고 있었지만, 이번만큼 후회하는 얼굴은 처음 봤다. 나아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그대로 드러내는 일도 처음이었다.
태주는 아이와 같이 다니는 일이 많아서인지 평소 최대한 온화한 기분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기쁘거나 즐거운 일은 드러내지만, 당황하거나 두려워하는 감정에 아이가 동화될까 조심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동요한 모습이 그대로 보였다.
‘어라! 놀랄 일이 아니라, 정상적인 반응이었네. 사람 때려 놓고 평소랑 같으면 그게 더 이상하잖아.’
미나는 태주의 반응을 신기하게 여긴 자신이 어이없었다. 그가 사이코패스도 아닌데, 미안한 감정도 느끼고 죄책감도 느끼는 건 당연했다. 그러나 막상 태주의 그런 모습을 마주하자, 왠지 모르게 무척 낯설었다. 어쩌면 그녀가 가끔 태주를 인 외의 존재처럼 느낄 때가 있어서 인지도 몰랐다.
태주는 연기 학원에 다닌 적도 없고 관련 대학으로 진학하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따로 강사를 초빙해서 개인 교습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러나 그는 동년배 배우와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로 누구보다 뛰어난 연기력으로 업계에서 인정받고 있었다.
‘배운 적도 없는 연기를 이만큼 해내는 걸 보면, 괴물이란 생각밖에 안 들지. 그게 아니면 외계인이거나.’
물론 전부 일할 때만 해당하는 얘기였다. 그녀가 딴생각하는 잠깐 사이 무릎에 앉힌 동생의 사과 머리로 장난치다 한 대 얻어맞은 꼴을 본다면 그녀의 의견에 동의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넌 정말 태생이 배우, 아니, 스타인가 보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뭐만 하면 실검 1위에 연예면 도배하잖니. 이런 일이 아무나 가능한 건 아니지.”
“그래도 솔직히 말하면 이번 사고는 기사화 안 됐으면 했어요.”
“왜? 광고 효과가 이렇게 큰데? 지금 방송가가 얼마나 시끄럽니. 500억짜리 시즌제 드라마에 슈퍼스타가 총출동한 로코도 있는데, 네 기사가 다 눌렀잖아.”
미나의 말은 사실이었다. 들어간 자본에 비해 부실한 스토리와 배경 해석에 논란이 큰 드라마지만, 연일 화제가 되는 중인 것은 맞았다. 그녀가 언급한 다른 드라마도 마찬가지, 몇 년 만에 브라운관 나들이를 한 배우도 있었고, 거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 출신 배우도 출연 중이었다.
태주가 출연한 드라마도 그런 작품에 밀리지 않을 만큼 좋은 배우들이 출연하고 자본을 쏟아부으며 광고하고 있었지만, 플랫폼의 특성상 접근성에서 차이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제작 발표회로 이 정도 광고 효과를 봤으면 아주 성공한 거지.”
“…에휴!”
“좋게 생각해.”
“그래야죠. 그나저나 매니저님은 왜 연락을 안 주실까요?”
-Brrrr.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어서 받아 봐.”
“호당이?”
응급실로 견우가 데려간 스태프는 턱이 살짝 부은 것 빼곤 이상이 없었다. 단지 기괴한 몰골로 응급실로 간 바람에 약간의 소동이 있었고, 그 모습으로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힘들어서 직접 집까지 바래다 주러 갔다는 얘기였다.
“형식 씨가 데리러 온대요. 금방 도착할 거래요.”
“오케이. 갈 준비 하자.”
태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형식에게서 도착했다는 연락이 왔다. 그는 부산스럽게 돌아갈 준비를 하는 스타일리스트 팀을 확인한 뒤, 호랑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아이를 안아 들었다.
*
아이 손을 잡은 태주는 당당히 주차장 한편을 차지한 모터홈 앞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번쩍이는 날렵한 디자인의 모터홈은 관광버스와 진흙투성이 승용차가 가득 세워진 주변과 완전히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밖에서 차를 잠시 구경하는 사이 모터홈의 문이 열리고 2호가 밖으로 나왔다.
“태주 씨. 들어오십시오. 춥습니다.”
“…호야. 이 차는 대체 뭐야?”
“쿠첼루스가 준비한 찹니다.”
“아니, 그건 아는데. 내 말은 이 차는 좀….”
“마음에 안 드십니까?”
“아니. 이런 차가 마음에 들지 않을 리가 있나.”
척 봐도 내부가 넓어 보였다. 아이가 있는 그에겐 무척 유용해 보이는 데 마음에 들지 않을 리 없었다. 그저 다른 사람 보기에 너무 과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보다 경력이 훨씬 긴 배우들도 작은 캠핑카를 사용하는데, 신인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가 그 몇 배가 넘는 고가의 모터홈을 사용해서였다.
그의 걱정이 과하지 않은 것이, 지금도 주차장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한 번씩 걸음을 멈추고 모터홈을 구경하다 가는 중이었다. 몇몇은 사진을 찍기도 했는데, 아마 곧 이 모터홈 이야기도 기사화될 것 같았다.
‘에효. 그냥 쓰자. 쿠첼이 준비해 준 건데, 남 시선 신경 쓸 게 뭐야.’
시즌 2는 전 시즌보다 몇 배는 많은 단역과 보조 출연자가 동원된다. 촬영 기간도 더 길고, 기간 만큼 동원되는 스태프의 숫자도 늘었다. 무엇보다 연출이 김정훈 감독에서 한창석 감독으로 바뀌어서 긴장을 풀 수 없었다.
시즌 1에서는 김정훈 감독의 사정으로 인해서 촬영 전에 대본에 관해 얘기할 시간을 낼 수 없었다. 시즌 2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창석 감독과 약속을 잡고 대본에 관해 얘기할 시간을 가지고 싶었지만, 상대 쪽에서 그를 피하는 기색이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이미 시즌 1을 찍은 이후라 대본의 흐름이 어느 정도 보였다는 점이었다. 그렇게 파악한 대본대로 필요한 것들을 준비했다. 대본 분석만으로 해소되지 않은 궁금증은 김은지 작가와의 통화로 해결했다.
태주는 불편했던 상황이 떠올라 복잡해진 심사를 가라앉히려 기다란 털이 복슬복슬한 아이 모자를 조물거렸다. 귀까지 덮는 털모자는 그가 처음 본 순간 꼭 씌워 보자고 다짐했던 모자였다. 예상대로 태산이에게 무척 잘 어울렸다.
“태쭈, 이제 드더가?”
“응, 들어가자. 쿠첼이 뭘 준비해 줬는지 보자.”
태주는 다시 한번 아이의 모자 위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애정을 담아 칭찬하듯 손을 움직였다. 그가 생각에 잠긴 사이 얌전히 기다려 준 아이가 고마워서였다.
모터홈 안은 태주의 예상보다 더 넓었다. 주방과 거실, 침실로 구성된 공간은 흰색과 밝은 갈색의 가구로 채워져 있었다. 특히 거실은 전기 벽난로와 넓은 소파가 있어서 태산이가 그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보내기 좋아 보였다.
“모터홈에 전기 벽난로라니….”
거실 안은 2호가 둘이 도착할 시간을 예상하고 켜 놓은 난로 덕분에 따뜻했다. 그는 어느새 소파로 올라간 아이가 훌렁훌렁 벗어 버린 겉옷과 모자를 집어 들고 헛웃음을 지었다. 잠깐 사이에 소파 위에 노란색 애벌레가 생겨나 있었다.
“산이 애벌레야?”
“꿈튤, 꿈튤.”
“하하하.”
소파 위에 있던 노란 담요를 칭칭 두른 아이가 누워서 엉덩이만 올렸다 내리고 있었다. 애니메이션에서 본 애벌레를 따라 하는 모양이었는데, 앞으로 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꿈틀거리는 모습이 꽤 귀여웠다. 태주는 그 모습을 바로 카메라에 담기 시작했다.
그는 촬영하면서 아이의 장난을 구경하다 그대로 안아 들고 세면대로 향했다. 아이가 본격적으로 놀기 전에 손을 씻겨야 했다.
그렇게 태주의 촬영장 생활이 시작되었다.
*
시즌 2의 촬영 초반은 김정훈 감독과 한창석 감독이 같이 촬영을 진행했다. 감독이 바뀌면서 생길 위화감이나 괴리감을 줄이려는 방법이었다. 당연한 방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때문에 연기하는 배우들의 부담은 두 배가 되었다.
유명한 영화감독 두 명뿐만 아니라 그들 밑에서 배우며 언젠간 영화감독이 될 조감독도 여러 명이었다. 그들 앞에서 준비한 것을 꺼내 놓는 일은 경력이 좀 되는 배우에게도 힘든 일이었다. 그러니 단역이나 보조 출연자들이 긴장해서 실수하는 일은 당연했다.
“컷! 거기 뒷줄 동작이 너무 튀잖아요. 동작 작게. 지시대로 합시다. 지시대로.”
“네, 네. 네.”
추운 날씨에 진흙 바닥에 무릎 꿇고 앉은 배우들이나 낡은 옷을 입고 모여서 처형 장면을 지켜보는 역할의 보조 출연자들 모두 고생이었다. 태주는 대기 장소에서 그들을 보면서 집중력을 가다듬고 있었다. 배우들의 고생이 헛되지 않게 그리고 극성인 두 감독에게 빨리 벗어나려면 실수해선 안 됐다.
“그랬습니까? 대단하군요.”
“미안한 일이긴 했지만, 자제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감독 일하면서 그런 배우를 몇 번이나 보겠습니까. 한 감독님은 본 적 있습니까?”
“없지요. 그런 배우는 백에 하나, 천에 하나 나오면 그것도 대단한 일 아닙니까.”
“철저한 준비에 순발력에 집중력까지.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외모야 이미 더 보탤 말도 찾기 힘들고요.”
“정말 기대되는군요.”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아니, 분명 기대 이상일 테니 놀랄 각오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호오. 그렇습니까? 그럼 이번 신은 5화의 그 장면처럼 측면에서 보는 구도를 추가해 볼까요?”
“그것도 괜찮을 겁니다. 카메라를 추가하시죠.”
처형장에 난입해서 막는 장면을 찍기 위해 대기하는 태주의 귀에 낯부끄러운 소리가 들어왔다. 그는 대화의 주인공인 두 명의 감독이 있는 장소로 고개를 돌리지 않기 위해 인내심을 발휘했다. 첫 촬영도 아닌데, 두 사람은 그의 촬영 순서가 돌아올 때마다 매번 칭찬을 늘어놓았다.
두 사람 모두 첫인상과 180도 다른 태도로 주변 사람의 정신을 빼놓고 있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 칭찬의 대상인 태주는 처음 그 장면을 목격했을 때는 민망해서 두 사람을 말리려고도 했었지만, 지금처럼 민망한 칭찬에서 곧 토론으로 넘어가는 모습에 포기해야 했다.
“태주야, 너. 감독님들하고 무슨 일 있었냐?”
“…아뇨.”
“조심해라. 화상 입겠다. 두 사람 눈빛이 아주 뜨거워, 보는 눈만 없었으면 보쌈이라도 할 기세이신데. 크큭.”
“남진 형….”
태주는 그에게 언젠가 했던 말과 비슷한 말을 하며 키득거리는 이남진을 샐쭉하니 쳐다봤다. 두 사람은 같이 처형장에 난입하는 장면을 찍기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는데, 그에게도 감독님들의 얘기가 들린 것 같았다.
‘그나마 오늘은 칭찬의 수위가 낮긴 한데, 대체 언제까지 저러실 건지….’
태주는 한창석 감독이 조연출에게 카메라를 추가하라고 지시하는 모습을 보면서 남모를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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