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98
298. 영화. 개봉 >
“태주야, 무슨 일….”
‘휘유! 무슨 눈빛이…. 까딱하면 사람 하나 베겠네.’
“남진 형.”
“어, 어. 태주야.”
이남진은 지나치게 날카로운 태주의 기세에 말을 걸다 입을 다물었다. 수백의 좀비와 벌이는 전투 신을 앞둔 태주는 자신이 놀려도 여유롭게 웃어넘기던 사람이 아니었다. 전투를 앞두고 서슬 푸른 예기를 두른 한 명의 무사 같았다.
그런 이남진에게 태주가 낮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는 단 한 순간의 방심도 용납하지 않을 것처럼 사방에 예리한 눈길을 보내며 비장한 목소리로 말을 이어 갔다.
“전, 좀비가 정말, 너무너무 싫어요.”
“뭐?”
“꼭 한 방에 끝내요. 절대로 NG 내면 안 돼요. 좀비 수백 명이랑 온종일 같이 촬영하라니. 말도 안 돼요.”
“어. 알았어.”
“긴장 풀지 마시고요. 꼭 한 방이에요. 아셨죠?”
“알았어, 알았어. 한 방에 끝낼게.”
떨떠름함이 가득한 이남진의 대답이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한 듯 태주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사실 촬영을 한 방에 끝내자는 태주의 요구는 턱도 없는 헛소리였다. 군중 신을 찍는 일이었다. 아마 하루, 이틀은 같은 장면을 구도를 바꿔 가면서 찍어야 할 터였다.
그래도 이남진은 평소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비장한 각오로 촬영을 준비하는 태주를 비웃지 않았다. 사실 그도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보기만 해도 소름이 돋게 좀비들을 분장시켜 둔 미술팀의 분장 실력에 감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태주야, 기세 좀 풀어라. 너 때문에 촬영장이 얼어붙겠다.’
촬영장에 평소보다 짙은 긴장이 감돌고 있었다. 그 모든 긴장감은 주연 배우인 태주 한 사람에게서 비롯되었다.
태주는 본인 촬영이 없어도 자주 촬영 현장을 지켜보며 필요한 것을 챙겨 주거나 도움을 주었었다. 연기가 부족한 단역 배우를 도와줄 때도 있었고, 피로가 쌓인 스태프들을 위한 간식이나 영양제를 나눠 주기도 했었다.
그런 친절하고 너그러운 태주에게 익숙해진 스태프들과 배우들은 비장한 분위기로 촬영을 준비하는 모습에 모두 긴장한 채 그를 지켜 보고 있었다. 무척 날이 선 그의 분위기에 작은 실수라도 한다면, 손에 쥔 칼에 베일 것 같아서 조심하는 중이었다.
‘저게 다 좀비가 싫다고 괜히 무게 잡는 거라는 걸 알면 어이없겠다.’
이남진은 딱딱하게 굳어서 이쪽만 보고 있는 좀비 분장을 한 단역과 보조 출연자들을 위해 촬영 순서가 돌아오기 전까지 태주의 앞을 가리고 서 있었다.
한 방에 좀비와의 대규모 전투 신을 끝내길 바랐지만, 그의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다각도에서 촬영해야 하는 전투 신이기도 했고, 출연 배우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였다. 아무리 주연인 그라도 그 많은 배우를 자기 마음대로 이끌 수는 없었다. 덕분에 그는 희망과 다르게 꼬박 이틀을 좀비들과 씨름해야 했다.
*
이래저래 피곤한 촬영을 마치고 지친 얼굴로 태주가 분장실로 돌아왔을 때, 그는 그와 마찬가지로 피곤한 얼굴로 스마트폰을 들고 있는 견우를 볼 수 있었다.
최근 며칠간 견우는 태주의 곁을 지키면서도 수시로 누군가와 통화했었다. 매니저인 견우는 원래부터도 통화량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시도 때도 없이 찾아대는 PD, 작가들과 자주 통화했고, 스케줄이나 다른 일정 관리를 위해 회사와 제작사에도 자주 연락을 했다.
그래서 태주는 견우가 자주 분장실로 돌아가 통화하는 모습을 의례적인 업무상의 통화로 여겼었다. 하지만 피곤해 보이는 얼굴을 보니, 이번 통화는 평상시에 하던 인맥 관리나 업계 관계자와의 통화가 아닌 것 같았다.
“무슨 일이에요?”
“매니저님?”
“시사회 날짜가 잡혔습니다.”
“네.”
“그런데 저희 언론 시사회 다음 날에 박재우 주연의 영화 의 시사회도 잡혔습니다. 개봉은 저희 시사회 사흘 뒤, 같은 날짜고요.”
견우의 설명을 들은 태주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이제영 감독의 영화도 크랭크 업 후 팔 개월이라는 촉박한 일정으로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자신들보다 한 달이나 늦게 촬영을 시작한 영화가 같은 날짜에 개봉한다는 얘기는 대체 무슨 뜻인가 싶어서였다.
“그게 가능해요? 우리 영화도 무리해서 일정을 당긴 건데. 그쪽은 우리 영화 보다 스케일이 크잖아요.”
“배경인 섬의 1/6 실사 세트에서 대부분을 촬영했다고 합니다.”
“아아. 한국 영화 최대 규모 세트라고 기사에서 본 것 같아요. 그래도 쉽지 않았을 텐데요. 후반 작업에 육 개월도 채 안 걸린 것 같은 데요?”
“피닉스 스튜디오 자체가 VFX 회사로 시작한 곳이라, 그런 부분은 이쪽보다 조건이 나았습니다. 게다가 아시다시피 그곳이 GJ E&M의 자회사가 되지 않았습니까. 제작비나 다른 부분의 추가 투입 역시 어렵지 않았을 겁니다.”
“GJ E&M….”
그만한 스케일의 영화 편집 기간을 최대한 당기려면 아마 공개된 제작비보다 더 많은 제작비를 썼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자체 방송국과 멀티플렉스 상영관 체인 등을 가지고 있는 GJ E&M의 자회사라서 크게 부담되진 않았을 것이다.
“이쪽도 제작사나 배급사는 밀리지 않는데, 멀티플렉스가 걸리네요.”
“그렇습니다. 아마 스크린을 최소 반은 가져갈 겁니다.”
“그래서….”
“예. 제작사에선 태주 씨가 홍보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기존 1주 무대 인사와 시네마 토크 1회에서 가능하면 1주 정도 더 무대 인사를 돌아 주길 바랐습니다.”
이제영 감독의 영화 홍보에는 예능이나 인터뷰 외에 영화 상영 후 관객들과 영화에 관해 대화하는 간담회와 비슷한 시네마 토크와 1주의 무대 인사 순회 일정이 있었다. 그 기간을 늘려 달라는 요청이었지만, 현재 지방을 오가며 드라마를 촬영 중인 태주에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견우가 쉼 없이 통화를 이어간 이유가 이 일정 때문인 것 같았다. 미리 스케줄을 조정해 둔 첫 주 외에 둘째 주의 일정을 조정하려고 여러 곳과 통화하느라 바빴나 보다.
“연장해야 한다면 해야죠. 그쪽이 왜 그리 서둘러서 개봉하는지 모르겠지만, 왠지 오기가 생기네요.”
“힘드실 겁니다.”
“괜찮아요. 이 영화는 그럴 가치가 있어요.”
‘게다가 그 오류 덩어리 영화가 훼손하는 시대극의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돌려놓으려면 몇 주 정도의 고생은 감수할 수 있지.’
독립운동을 주제로 한 일제 강점기 배경 영화 대부분은 손해를 보지 않았었다. 어떡해서든 제작비 이상은 건지는 상황이었다. 회귀 전 비슷한 상황에서 수백억의 자본이 들어간 블록버스터 가 손익 분기점도 못 넘긴 뒤, 한동안 그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이와 비슷한 경우는 예전에도 몇 번 있었다. 유명한 배우를 다수 출연시켰던 무협 영화가 망한 뒤로 한동안 비슷한 장르의 영화가 제작되지 않았었다. 수백억을 들인 SF 영화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최악의 영화로 뽑힐 정도로 망한 뒤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오랫동안 SF 영화가 제작되지 않았었다.
‘회귀 전에도 그랬으니, 이번에도 시대극이 그리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이 보장되기는커녕 피해야 하는 배경과 주제가 생기는 안타까운 일을 그는 바라지 않았다. 더불어 박재우의 영화 개봉이 빨라진 게 어쩐지 자신 탓인 것 같은 예감이 들어 태주는 더 적극적으로 홍보에 나서기로 했다.
*
대기실에서 메이크업을 수정하고 의상을 갈아입으며 오후의 VIP 시사회를 준비하는 태주의 얼굴은 꽤 밝았다. 싱글벙글하는 정도는 아니었지만, 홀가분한 미소가 줄곧 입가에 걸려 있었다.
“크흐흡.”
“왜? 어디 이상해?”
“아니요. 괜찮아요.”
“그럼 왜 웃는데?”
“오전에 기자들이요. 얼굴이….”
태주가 제대로 문장을 끝마치지 않고 말을 흐렸지만, 미나와 다른 사람들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그리고 일행 모두 그와 비슷한 웃음을 흘렸다. 오전에 진행된 언론 시사회에 초대된 기자들, 연예부의 영화 분야 담당 기자들의 반응이 떠올라서였다.
“기자뿐이니. 평론가라고 무게 잡고 앉아 있던 사람들도 다 같았잖아. 눈이 빨개져서 물만 벌컥벌컥 들이켜더라.”
“하하하.”
“하여간 이제영 감독님도 대단해. 괜히 해외 영화제 수상자가 아니라니까. 영화를 재미보다 의무감에 보는 사람들까지 다 눈물범벅이 되게 하다니.”
“맞아요. 대단하신 분이죠.”
기자, 평론가 할 것 없이 상영관을 나설 때는 모두 눈시울이 붉어진 채였다. 영화를 영화가 아닌 일로 보는 사람들, 감상보다 분석이 먼저인 사람들이 눈물 젖은 얼굴로 상영관을 나서는 모습은 태주에게, 나아가 태주뿐 아니라 이제영 감독의 영화와 관련된 모두에게 즐거운 충격이었다.
태주는 둘째 주 홍보를 위해서 꽤 무리한 스케줄을 소화했었다. 다행히 사정을 아는 동료 배우들이 배려해 줘서 몇몇 촬영 순서를 당기고, 개인 촬영 부분은 뒤로 미루는 방식으로 시간을 뺄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도록 다른 회사들과 노련하게 교섭한 견우의 공도 빼놓을 순 없었다.
“많이들 와 주셨으면 좋겠네요.”
“많이들 오실 겁니다.”
이번 VIP 시사회를 준비하면서 태주는 그가 아는 배우, 가수 등을 다수 초대했다. 같이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했던 동료 배우를 비롯해 여러 행사에서 만나 친분이 그다지 두텁지 않은 이들까지도 초대했다. 거기에 트리즈의 4인방과 김윤선, 정한선한테도 지인을 데려와 달라고 미리 부탁해 두었다.
출연진 중에 무게감 있는 게스트를 초대할 배우가 그뿐이라서 더 신경 쓴 감이 있었지만, 태주는 그 일을 번거롭게 여기지 않았다. 나중에 와줬던 게스트들의 부탁을 들어줘야 할 테지만, 이번 영화는 그럴 가치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조세라 씨. 잠시 인터뷰 부탁드려요.”
“아유! 기자님 사진은 찍지 마세요.”
“예, 예. 물론이죠. 사진은 입장하시던 때 사진으로 나갈 겁니다. 영화 어떠셨어요?”
“내가 태주, 아니, 이태주 씨 때문에 못 살겠어요. 이렇게 슬프다고 미리 얘기를 해 줘야지. 눈화장이 이게 뭐예요.”
“아니에요.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아름다우세요.”
너스레를 떨며 조세라가 기자와 영화의 감상에 대해 인터뷰했다. 그녀 외에 태주가 초대한 많은 배우가 후기 인터뷰를 했는데, 걱정과 다르게 충분히 많은 사람이 VIP 시사회에 참석해 주었다. 초대받은 태주의 지인들은 모두 기다리던 기자들과의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런 배우에는 꾸준히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박지헌과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스타라이즈의 김은형, 얼토당토않은 시비를 걸다 태산이의 팬이 된 이세하, 지난 연말 행사장에서 다시 만났던 한주원도 있었다.
다수의 연예인과 평론가, 기자들에게 좋은 평을 받은 태주의 영화 리뷰 기사와 인터뷰 기사가 올라간 다음 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시사회와 시네마 토크 행사 역시 재밌다는 평을 받으며 성황리에 치러졌다.
*
이제영 감독 영화의 배급을 맡은 배급사는 나성안 감독의 의 배급을 맡은 GJ E&M의 파워에 밀리지 않는 곳이었다. GJ E&M 계열 멀티플렉스의 스크린을 많이 받아 내지는 못했지만, 비율로 따지면 전체 스크린의 20%라는 무시 못 할 비율의 스크린을 잡아 왔다.
사람들은 그런 고무적인 결과에 드림쉽의 배경이 영향을 주었으리라, 판단했다. 신생 제작사이긴 했지만, GJ E&M 이상의 규모인 대기업 출신 자제가 대표인 곳이라서 편의를 봐주었다는 의견이 많았다.
‘아이고. 입 튀어나온 것 봐라.’
제작사의 힘인지, 배급사의 능력인지. 아니면 그 두 가지가 시너지를 일으켜서 얻어 낸 결과인지 모를 좋은 결과를 얻어 내고, 세 차례의 공개 시사회도 무사히 마쳤지만, 태주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흥!”
빠듯한 촬영 일정을 소화하고 2주간 전국의 주요 상영관을 돌며 무대 인사를 하는 일도 그를 이렇게 곤란하게 하지 못했었다. 모두 오랜만에 집에 왔는데도 돌아앉아서 아는 척도 하지 않는 태산이가 원인이었다.
“산아, 형 나왔는데.”
“흥! 사니 업떠.”
‘없다고 할 거면 어디 숨기라도 해야지, 꼬맹아.’
아이는 욕실 문 앞에서 그를 등지고 앉아서 없다고 우기고 있었다. 샤워 가운을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눕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그는 지은 죄가 있어서 얌전히 아이가 비켜 주기를 기다렸다.
그런 그의 마음과 다르게 영화 홍보 일정 내내 집에서 기다려야 했던 아이는 욕실 문 앞에서 비켜 줄 마음이 전혀 없었다. 오랫동안 차를 타고 이동할 때도, 태주가 일할 때도 얌전히 기다린 자신을 두고 간 일에 뿔이 났기 때문이었다.
-스윽! 스윽!
태주는 비킬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아이의 뒤에 쪼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그 자세에서 손만 내밀어 아이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손길은 다정하고 조심스러웠다. 처음엔 한 손으로도 거의 가려지던 아이의 등이 이젠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 가려질 정도로 넓어졌지만, 여전히 그에겐 작고 약해 보였다.
“산이 두고 가서 형이 미안해.”
“대신 형이 선물 준비했는데….”
“…텬물?”
“응. 다음 주에 형이랑 재밌는 곳에 놀러 가자.”
‘앙, 아라떠.’하는 대답은 없었지만, 움찔거리는 작은 등에 태주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걸렸다. 만약 본체였다면, 하얀 귀가 쫑긋거렸을 것이다. 태주는 전에 봤던 수인의 귀가 있던 부위에 손을 올려 아이 머리를 살살 쓰다듬었다.
“산아, 형 지금 옷 못 입어서 추운데….”
“앙? 태쭈, 추어?”
“응. 너무 추워. 산이가 꼬옥 해 줬으면 좋겠어.”
“꼬옥?”
춥다는 말이 끝나자마자 목을 감싸고 안기는 아이 덕분에 태주의 심장이 녹아내렸다. 삐져서 말도 안 하려고 하더니, 자신을 위해 준다고 제 서운함은 뒤로하고 품에 안기는 아이가 사랑스러웠다. 그는 그렇게 잠시 아이를 안고 있다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슴이 따끈해진 것과 별개로 실제론 몸이 식고 있어서였다.
“산이, 유치원 알아?”
“유치언?”
“응, 산이 또래 아이들이 모여서 같이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는 곳이야.”
“아아.”
“형이랑 다음 주에 친구 만나러 유치원 가 보자.”
“앙.”
태주는 침대에 누워 아이에게 다음 주 일정에 관해 설명했다.
하시마 관련 다큐멘터리 공개 외에도 마케팅의 일환으로 위안부 피해자 역사관 등의 장소에 들러 기부하는 일정이 잡혀 있었다.
그런 행사 중 유치원에서 짧게 역사에 관해 얘기하는 행사가 있었다. 그는 그곳에 태산이를 데려갈 계획이었다. 항상 어른들 사이에서 시간을 보내는 아이에게 또래들과 노는 경험을 시켜 줄 생각이었다.
“형이랑 같이 가자.”
“앙. 아라떠.”
동물 친구나 수인 친구가 아닌 또래의 인간 친구들과 태산이가 어떻게 놀지 기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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