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299
299. 유치원 체험 >
같은 날 개봉한 한국 영화 두 편.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다른 영화도 있었지만, 맞대결이라고 부를 만한 것은 이제영 감독의 와 나성안 감독의 , 두 편뿐이었다.
초반 두 영화의 기세는 나성안 감독이 확연하게 앞섰었다. 애국심 마케팅이라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온갖 매체에서 감춰진 역사의 진실을 파헤치고, 바른 역사를 전하려 했다는 인터뷰를 했기 때문이었다. 출연진의 무게감에서도 차이가 커서인지, 나성안 감독 영화는 개봉 당일 예매가 50만을 넘을 정도였다.
“이거 보자. 나 박재우 영화 다 봤어. 본 거 다 재밌더라.”
“그거 별로래. 영화 이상하다고 하던데?”
“그래? 괜찮아 보이는데. 그럼 뭐 봐? 볼 게 없잖아.”
“이태주 나오는 거 봐. 재밌대.”
“이거?”
“어.”
별로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태주의 영화 정보를 살펴보던 친구가 고개를 저었다. 영화 정보로 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액션이나 코미디 장르가 전혀 아니었다. 시대극에 드라마로 12세 연령가를 받은 작품이었다. 그런 것을 남자 둘이서 무슨 재미로 본단 말인가.
“그냥 PC방 갈까?”
“이게 진짜! 네가 PC방 지겹다고 영화 보자고 했잖아.”
“볼 게 없으니까 그러지. 무슨 영화관에 한국 영화만 잔뜩 있어? 나 자막 없으면 영화 못 보는 거 모르냐?”
“이태주 나오는 거 보자니까. 그거 재밌다고 했다니까!”
“이태주 별론데. 야, 이태주 좀 짜증 나지 않냐?”
동의를 구하며 친구의 얼굴을 봤던 남자는 못 볼 것을 본 듯 다시 영화 정보가 떠 있는 스크린으로 고개를 돌렸다. 친구의 얼굴에 ‘난 너 때문에 짜증 난다.’라고 쓰여 있어서였다.
다급하게 스크린을 건드려 다른 영화 정보를 띄운 남자는 속으로 절대 쫄아서 그런 것은 아니라고 변명했다. 쓸데없는 말 한마디만 더 하면 자신의 목을 졸릴 것처럼 친구 놈 눈빛이 제법 살벌했지만, 절대 쫀 것은 아니었다.
“아니, 난 그냥. 생긴 것도 잘생긴 주제에 성격도 좋다고 그러니까…. 거기에 돈도 잘 번….”
“그래서 뭐 볼 건데?”
“….”
대답 없이 스크린을 휙휙 넘겨 상영 중인 영화 정보를 보는 남자의 모습에 고개를 저은 친구는 근처 소파에 궁둥이를 붙였다. 결정 장애를 가진 것처럼 선택이 느린 인간이 어쩐 일로 영화를 보자고 하더니, 결국엔 이 상황이었다.
그렇게 친구가 스크린만 주야장천 넘겨 대는 남자를 보고 있을 때였다. 요란한 웃음소리가 퍼지더니 네댓 명의 여자들이 발권 기계 앞에서 예매한 표를 뽑기 시작했다. 웃음소리 사이로 이태주의 이름이 들리는 것으로 보아, 예매한 것은 이태주의 영화 같았다.
‘이거 우리 언니가 봤는데, 진짜 재밌대.’
‘나도 영화평 봤는데, 괜찮다더라. 슬픈 장면이 아닌데 이상하게 슬퍼서 눈물 난다고.’
‘진짜? 나 슬픈 영화 못 보는데.’
‘괜찮아. 이태주 얼굴 보다 보면 한 시간 반은 금방이라더라.’
‘호호호. 진짜? 하긴, 이태주 얼굴이라면 하루 종일도 볼 수 있긴 하지.’
여전히 볼 영화를 고르지 못하고 있는 남자의 모습을 흘깃 본 그는 고개는 돌리고 귀만 열어 놓은 채로 여자들의 대화를 훔쳐 들었다. 빨간색 캔버스 백을 멘 단발머리 여자에게 자꾸 눈이 갔지만, 괜스레 오해받을까 무서워 필사적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야! 저기 빨간 가방 봤냐? 딱 네 취향이지?”
“그만해라!”
그러나 그의 그런 노력은 눈치 없는 남자 덕분에 모두 수포가 되고 말았다. 남자는 한 손으로 친구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다른 손으로 빨간색 캔버스 백을 멘 여자를 가리키며 큰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그 목소리에 당황한 친구는 남자의 쓸모없는 손목을 으스러뜨릴 것처럼 꽉 쥐었다.
“볼 영화나 빨리 말해!”
“아야야! 알았어, 놔!“
“빨리.”
“그냥 이태주 영화 보자.”
“!”
사람을 한참이나 기다리게 해 놓고 결국 고른 것은 이태주의 영화였다. 남자가 이태주의 영화를 고른 이유는 아마도 여자들이 그 영화를 보려 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여자들의 흘겨보는 눈길이 보이지도 않는지, 뻔뻔하게 원피스를 입은 여자의 위아래를 계속 살펴보는 걸 보면 확실했다.
-퍽!
“악!”
“작작하라고, 좀!”
등을 한 대 얻어맞은 남자의 투덜거림은 상영관 안으로 들어가서도 멈추지 않았다. 티켓을 살 때도 좌석을 찾아갈 때도, 그 좌석이 여자들의 앞자리라 전혀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투덜거렸다.
그러나 영화가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투덜거리던 남자도 그런 그를 못마땅하게 보던 친구도 여자들에 관한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게 되었다. 아니, 그들은 그보다 다급한 상황에 빠져 있었다. 먹먹한 상황에 눈물, 콧물이 흐르기 시작했는데, 둘 중 누구에게도 티슈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우 씨. 야, 휴지 없냐?”
“크흥. 없어.”
그런 둘의 곤란함을 해소해 준 것은 옆자리에 앉은 나이 지긋한 여성이었다. 두 사람은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자마자 얻은 티슈로 급하게 코를 풀고 눈물을 닦으며 몰골을 수습했다. 두 사람은 끝날 때까지 그렇게 훌쩍거리면서 영화를 보느라 다른 무엇을 할 여력이 없었다.
영화가 끝난 뒤, 두 사람은 손도 대지 않은 팝콘을 들고 상영관에서 나왔다. 그렇게 정신없는 와중에도 티슈를 통째로 건네준 분한테 감사 인사를 다시 하는 것은 잊지 않았다.
“후우! 무슨 영화가 이러냐.”
“나 한국 영화 자막 없어서 싫어했는데, 앞으로 이태주 영화는 괜찮을 거 같아.”
“…그래.”
마지막 장면의 여운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한 친구는 남자의 의견에 대충 맞장구를 쳐 줬다. 친구는 혼자고개를 끄덕이며 뒤를 따라오는 남자를 두고 홀로 나오자마자 영화 정보를 검색했다.
그가 들었던 것보다 영화의 인기가 대단한 듯, 개봉한 지 삼 주째인데도 여전히 TV/영화 부분 기사 대부분을 이태주의 영화가 차지하고 있었다. 기사 중엔 동생 역을 맡은 소년이 신인으로 이제야 중3이 되는 어린 배우라는 기사와 이태주의 감춰져 왔던 기부 내용도 있었다.
“이 영화 보면 자동으로 기부되는데? 이태주가 러닝 개런티 기부한대, 거기에 제작사에서도 수익 일부를 기부한대.”
“진짜?”
“어. 위안부 피해자 역사관에 영화 출연료 일부도 기부했네. 이태주 데뷔 때부터 수익 일부를 계속 기부해 왔대. 재작년 홍수 났을 때도 1억 기부했고.”
“헐. 이태주 재수 없다고 한 거 취소.”
남자가 이태주에 관해 뭐라고 말하건 말건 관심이 없던 친구는 계속해서 연예면 기사의 화면을 내리면서 새로운 뉴스를 확인했다.
그러자 처음에 남자가 보려던 박재우 영화 관련 기사가 제일 위로 올라왔다. 기사를 클릭해 보자,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었다. 그 외 영화 관련 기사 역시 고증 오류에 출연자 간의 불화 문제까지 논란이 대부분이었다.
“안 보길 잘했네.”
“뭐가?”
“박재우 영화. 문제 있다고 기사에 나왔다.”
“그래? 그런데 너 어디 가냐?”
“티켓 예매하러.”
이미 영화를 봤지만, 그는 주말에 부모님을 모시고 한 번 더 볼 생각으로 티켓을 예매하러 가는 중이었다. 개봉을 조금 늦춰서 어버이날 즈음에 했으면 더 좋았겠다는 생각이 잠시 들었지만, 금세 잊고 걸음을 서둘렀다. 그가 바라는, 주말에 점심 먹고 바로 볼 수 있는 시간대는 경쟁이 치열했다. 서둘러야 했다.
*
오전부터 인터뷰와 방송국에서 사전 미팅 일정을 소화한 태주 일행은 서둘러서 목적지로 이동하고 있었다. 오늘은 태산이와 약속했던 유치원 방문 일정이 있는 날이었다.
“무슨 영화 홍보하러 유치원에 가니? 난 이런 건 처음 본다, 얘.”
“커흠.”
“이런 게 효과가 있긴 한 거야? 기자도 안 온다며?”
“그, 맘 카페 같은 곳에서 홍보가 되지 않을까요?”
“안 그럴 거 같은데.”
유치원 방문 홍보에 태주 본인이나 견우, 마케팅을 담당한 회사까지도 홍보 효과는 거의 기대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 유치원 방문은 실효성 없는 홍보 기획이었는데, 태주가 바라서 추가된 것이었다.
“실제론 지난번처럼 신민석 교수님의 특별 강연에 참석하는 게 홍보 효과가 더 크긴 하죠.”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런 건 기사도 나고, 학생들도 SNS에 많이 올리고 하잖아. 그런데 유치원은 좀….”
“그게요. 산이가 맨날 어른들하고만 지내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친구들이랑 놀게 해 주려고요.”
“산이 유치원 보내게? 너 산이 유치원 보낼 수 있어? 매일 둘이 죽고 못 살면서 떼어 놓을 수 있어?”
“아뇨. 보낼 생각은 없는데…. 그게 애가 바라면 보내야 할까요?”
가족과의 유대도 중요하지만, 또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면서 사회성을 기르는 일도 중요했다. 그러나 태주의 전원주택은 또래는커녕 이웃이랄 것도 없었다. 전원주택 인근의 땅을 쿠첼루스가 전부 사들여 수목원에 버금갈 정도로 꾸며 놨기 때문이었다.
“다니고 싶다면 보내야지.”
“…어휴.”
“그런데 산이는?”
“호랑 같이 도시락 챙겨서 유치원으로 바로 올 거예요.”
“연우한테 부탁했다고 했지?”
그렇다고 대답하는 태주의 얼굴에 먹구름이 꼈다. 사회성을 길러 주기 위해선 태산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게 맞지만, 어쩐지 속이 탔다. 변신을 유지하지 못하거나 정체를 밝히는 실수를 한 적도 없으니, 보내도 문제 될 점이 없는데도 그랬다.
‘호호호. 걱정할 것도 많다. 한겨울에도 부득불 따라오던 아이인데, 잘도 떨어지겠다.’
미나는 자기 생각을 태주에게 말해 주지 않았다. 그저 스타일리스트 팀원들과 따로 떨어져 혼자만 오게 되어서, 태주의 팔불출 같은 모습을 다른 팀원이 보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겼다.
“태쭈! 사니 여기떠.”
“산아. 잘 다녀왔어?”
“앙. 잘 다녀와떠.”
“태주 형, 안녕하세요.”
“연우야. 오늘 도와줘서 고마워.”
“아니에요. 수고비도 많이 받았는데요. 오히려 제가 고맙죠.”
유치원 행사는 한 시간 반, 길어지면 두 시간 정도를 예상했다. 행사는 태주가 준비한 도시락을 아이들과 나눠 먹고 오 분 정도 짧게 역사 얘기를 들려주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그 뒤에는 잠시 놀이 시간을 가지고 아이들 낮잠 시간 전에 퇴장하면 됐다.
그는 오늘 아이들 도시락에 신경을 많이 썼다. 따로 업체를 찾진 않았지만, 미리 연우에게 정원에서 사 온 식재료와 과일을 보내서 조리를 부탁했다. 그 외에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아기자기한 디저트를 해나에게 부탁해서 챙겨 오기도 했다.
“이 박스 옮기면 돼?”
“제가 하겠습니다.”
“괜찮아요, 태주 형. 호 형이랑 저랑 옮기면 돼요.”
“태주 씨, 산이랑 안으로 먼저 들어가십시오. 이렇게 셋이면 충분합니다.”
태주는 연우와 2호를 도와주러 나선 견우의 말에 얌전히 아이 손을 잡고 유치원 방향으로 걸어갔다. 미적거리는 그가 답답한지 꼬맹이가 두 손으로 그를 당기고 있었다. 꼬맹이는 흰색, 하늘색, 노란색 등으로 알록달록 페인트칠 된 건물과 그에 못지않게 귀여운 색으로 칠이 된 놀이기구가 가득한 유치원이 무척 궁금한 모양이었다.
*
“나 고양이 주세요.”
“선생님 나는 곰돌이 주세요.”
연우가 준비한 도시락은 네 가지 동물 모양의 주먹밥이 들어 있었다. 김과 치즈 등으로 모양을 낸 고양이, 강아지, 토끼, 곰돌이 주먹밥. 그 외엔 베이컨 야채말이, 치즈 볼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음식이 가득했다. 디저트 도시락 역시 별이나 하트로 자른 과일에 미니 컵케이크와 푸딩 등이 가득했다.
‘역시 맛있는 걸 먹으면 너그러워진다니까.’
처음엔 그를 따라온 태산이와 조금 거리를 두던 아이들이 지금은 옆에 딱 붙어서 챙겨 주고 있었다. 푸른 눈이 자신들과 달라서 차별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유치원 아이 중에 그런 아이는 없었다.
태주는 태산이가 안 먹는 주먹밥과 문어 소시지를 바꿔 준 남자아이와 입가에 묻은 크림을 휴지로 닦아 주는 여자아이를 눈여겨 봐 두었다. 놀이 시간에도 두 아이와 같이 놀 수 있게 하면 좋을 것 같아서였다.
물론 그 전에 보호자들을 위해 예정에 없던 팬 서비스를 해야 했다. 유치원에는 보기 드물게 보호자들이 참관인으로 와 있었다. 아마 태주의 방문 소식을 듣고 들른 것 같았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가족이랑 헤어져야 했어요.”
“안 돼요. 엄마랑 아빠랑 동생이랑 같이 살아야 해요.”
“맞아요. 가족은 가능하면 같이 행복하게 살아야 해요. 그렇게 나쁜 짓을 많이 했지만, 미안하다고 사과하지 않았어요. 우리 친구들은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해요? ‘미안해.’나 ‘잘못했어.’라고 얘기하죠?”
“네에!”
“우리 친구들 너무 착하다. 맞아요. 잘못했을 때는 꼭 사과해야 해요.”
“네에.”
아이들이 도시락을 먹는 사이, 보호자들과 사진을 찍은 뒤에 이어진 태주의 역사 얘기는 매우 짧고 간단하게 끝났다. 7세 이하의 어린 아이들이 대상이라 나쁜 짓을 하고 사과하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잘못했을 때는 꼭 사과하자, 정도의 얘기만을 했다. 역사 얘기라지만, 아이들 대상으론 그 정도 얘기면 충분했다.
행사의 목적인 이야기 시간이 끝난 후, 고대하던 놀이 시간이 되었다.
태주는 태산이가 아이들과 어울려서 도시락을 먹는 모습을 봤지만, 여전히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그래서 유치원 내의 놀이터로 나가는 아이들 무리에 끼어들려 했지만, 선생님의 단호한 고갯짓에 얌전히 보호자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산이야, 우리 시소까지 비행기 타고 가자.”
“앙? 비행기?”
“응. 이렇게. 이렇게 팔 하고 날아가는 거야.”
“이더케?”
“응. 가자.”
신발을 갈아 신은 아이들은 일부는 공이나 로봇 같은 장난감을 챙기고 일부는 마음에 드는 놀이기구를 타기 위해 이동했다. 태산이는 같은 테이블에서 도시락을 먹은 친구들과 비행기를 타고 시소를 타러 갔다.
‘세상에! 자동카메라 촬영 시작, 시작.’
-찰칵찰칵!
-촤라라락.
“어머! 너무 귀엽잖아.”
그는 태산이가 비행기를 타자마자 자동카메라 촬영을 켠 뒤, 스마트 폰을 들고 사진을 찍었다. 양팔을 벌리고 친구들을 따라서 좌우로 몸을 움직이며 날아가는 태산이가 귀여워서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그런 그의 옆에서 미나와 견우 역시 카메라를 연사로 놓고 태산이를 찍었다.
“아아! 고민된다.”
“호호호. 정말 그러겠다.”
태주는 아이들과 너무 잘 어울려 노는 태산이 때문에 이대로 원장실로 가서 입학 상담을 받아야 하나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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