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0
29. 단역 배우들
스튜디오 안으로 태산이와 동물들이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오늘 인터뷰는 강아지를 좋아하는 배우였다. 태산이가 제 몸보다 더 큰 강아지들을 이끌고 인터뷰 대상을 덮치는 모습이 보였다. 요새는 너무 많이 알려져서 다들 덮치는 걸 기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스타의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인지, 최근 시청자 게시판에 자기가 응원하는 스타를 초대해달라는 글이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물론 태주와 태산이에 관한 글도 많이 올라오고 있었다.
“태산이 비교 사진 또 올라왔다. 태산이가 백호랑 닮긴 닮았나 보네.”
“조금 닮았죠? 태산이가 훨씬 귀엽지만.”
미나가 게시판에 올라온 태산이와 백호의 비교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 사진을 보고 태주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백호인데 차마 백호라고 밝히지 못하니, 이런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털이 짧은 호랑이와 다르게 태산이는 털이 약간 복슬복슬한 편이었다. 어릴 적 먹인 풍성한 털 영양제 때문인지도 몰랐다. 털갈이하는 요즘은 조금 괴롭지만, 그 덕에 다른 호랑이랑 겉모습에 살짝 차이가 있었다.
사실 사람들이 그저 호랑이를 닮았다고 느끼는 데에는 태산이 가지고 있는 기술 덕이 컸다. 물론 아직 1차 성장을 못 해서 자라지 못한 이유가 가장 큰 것 같았지만.
‘알에서 나온 것부터가 평범하지 않으니. 그렇다고 활동적인 녀석을 집안에서만 키울 수도 없고.’
비교 사진을 통해서 태산이가 생후 2개월짜리 새끼 호랑이보다 조금 작다는 걸 알 수 있었다. 1차 성장 조건이 채워질 때까지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덩치가 너무 작은 것 같았다.
‘저런 모습을 보면 덩치는 또 상관없어 보이기도 하고.’
태산이 제 몸보다 큰 강아지와 엉겨서 장난을 치고 있었다. 앞발의 힘이 꽤 세서 가볍게 툭 쳤는데, 강아지가 바닥을 한 바퀴 굴렀다. 태산이는 자기가 건드리고 놀라서 바로 다가가 냥냥 거리고 있었다. 어린 겉모습과 다르게 힘이 세서 흥분하면 물건을 곧잘 부쉈다.
“태주 씨 가시죠. 미팅에 안 늦으려면 지금 출발해야 합니다.”
“네, 알겠어요. 태산아, 이리 와.”
평소와 다르게 일찍 스튜디오를 나서야 했다. 일주일에 한 번 있는 촬영이라 가능하면 마음껏 놀게 해주고 싶었는데 오늘은 시간이 없었다. 화보촬영 사전미팅을 하러 가야 했다. 최대한 지방을 오가지 않게 일정을 조절했더니, 시간이 촉박했다.
“진혁 선배님도 오시나요?”
“아니요. 오늘은 태주 씨만입니다.”
진혁과 같이 촬영하는 화보 일정이 먼저라 혹시 오늘 미팅에도 오는지 견우에게 물었다.
“태주야 상의 이걸로 갈아입어.”
“누나 어차피 가면 옷 다 갈아입어요.”
오늘 미팅은 이전에 쟀던 치수로 만든 옷을 입어보고 전체적인 스타일링 방향을 정하는 것이었다. 옷을 갈아입고 가도 바로 다시 갈아입어야 했다.
“그렇다고 털투성이로 들어갈래? 당장 갈아입어.”
“넵.”
예전에 같이 일했던 쥬쥬 누나도 그렇고 이해하기 힘든 스타일리스트들의 세계였다. 화보 촬영장에 가면 콘셉트에 맞게 스타일링을 받을 걸 뻔히 알면서도 메이크업부터 의상까지 단장을 마치고 나서야 들어가게 했다.
‘프로의 직업의식 같은 건가?’
이미나의 눈총을 받으면서 옷을 갈아입었다. 좀 전까지 촬영하다 와서 메이크업은 가볍게 수정하는 수준으로 받았다. 화장품 냄새가 나자 태산이 코를 잠시 씰룩대다 금세 흥미를 잃었는지 숨숨집 안으로 숨어버렸다.
처음 태주가 메이크업을 받을 때는 화장품 냄새 하나하나에 킁킁 대기 바빴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는지 시큰둥했다. 움직이는 차 안에서도 요령 좋게 태주를 단장시킨 미나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너는 참 손맛이 있어. 본 판이 좋아서 그런가, 조금만 손대도 분위기가 확 살아나.”
“큭. 손맛이요? 와. 머리 올리니까 시원하고 좋네요. 버스킹 촬영하는 동안 눈 가리고 다녀서 답답했는데.”
“선율도 부스스한 머리로 하자고 하던데.”
“또요? 아아. 긴 머리 답답해서 싫은데.”
음악 하는 사람은 왜 다 긴 머리에요? 이거 다 편견이에요. 태주가 주절주절 긴 머리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자, 미나의 표정이 짜게 식었다. 처음 버스킹 스타일 회의 때 짧은 머리로 하자는 걸 반대한 게 누구였는지 잊은 것 같았다.
찰싹!
“아야. 왜 때려요, 누나.”
“응. 얄미워서.”
“헐. 엄청 당당하잖아요.”
“한 대 더 맞을래?”
진짜로 한 대 더 때릴 것 같아서 얌전히 아니라고 말했다. 앞 좌석에 앉은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들렸지만 모른 척했다.
*
가봉 된 슈트를 입고 나오자 여러 사람이 태주를 둘러쌌다. 헤어스타일부터 구두, 넥타이핀까지 전체적인 모습을 확인하고 손 봐준 후에 물러났다. 태주는 간이용 하얀 스크린을 뒤에 두고 익숙하게 자리를 잡았다. 태주의 시선이 정면을 향하자 카메라를 든 사람이 빠르게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음. 저번에 쟀을 때보다 좀 말랐나요? 품이 남는데요.”
“요새 촬영이 많아서 살이 좀 빠졌어요. 촬영 전까지 회복할게요.”
“우선 핀으로 잡고 사진 다시 찍을게요.”
손목에 바늘꽂이를 끼운 사람이 다가와 익숙한 손놀림으로 옷의 품을 조정해줬다. 태주는 좀 전처럼 하얀 스크린을 뒤에 두고 사진을 찍을 수 있게 자세를 잡았다.
“좋네요. 지금 영화 촬영 중이시라 머리는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하셨죠?”
“네.”
“타이 풀고 머리 좀 흐트러뜨려 주세요.”
수석 디자이너의 지시에 따라 태주의 모습이 여러 번 바뀌었다. 태주의 취향은 진혁이 입을 짙은 남색 슈트에 가까웠지만, 현재 나이와는 맞지 않았다. 디자이너는 태주에게 큰 체크무늬 슈트나 밝은 베이지 계열의 슈트를 입히길 원했다.
“태주 씨 체중 조절 좀 해주세요. 지금보다 이전 치수에 맞추는 게 더 보기 좋을 것 같아요. 옷 치수 그대로 갈 테니, 신경 써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날이 갑자기 더워져 식사를 제대로 못 했더니 확실히 체중이 줄었다. 다른 의상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이런 슈트 촬영은 체형 변화에 주의해야 했다. 이전에 잰 치수로 회복하려면 신경을 좀 써야 할 것 같았다.
*
회의가 끝나자 바로 버스킹 촬영장으로 차를 몰았다. 점심을 먹고 출발할 여유가 나지 않아, 샌드위치를 먹기로 했다.
“이상하네. 꼬박꼬박 잘 챙겨 먹는데 왜 마르니.”
태주는 음식을 꽤 잘 챙겨 먹는 편이었다. 최근 더위 때문에 며칠 제대로 챙기지 못했지만, 평소에는 간식까지 꼭 챙겼다.
‘활동량 때문인가?’
매일같이 정원에서 작물을 재배하고 과일을 딴다. 또 공연장에서 몇 시간씩 악기 연주와 연기 연습을 한다. 중간중간 태산이와 뛰어놀거나 정원 손질도 한다. 생각해보니 먹는 음식의 양보다 활동량이 월등히 많았다. 게다가 정원에서 먹는 건 과일이 대부분이었다. 가끔 둥근 빵나무의 빵도 먹지만 평소에는 차와 과일을 먹는 게 전부였다.
“요새 촬영이 늘어서 그런 것 같아요. 촬영 끝나고 저녁에 장어 구워 먹을까요?”
“시간 안에 끝나면 다행이게.”
“어휴.”
조용히 운전하던 형식이 한숨을 쉬었다. 태주도 어제 들은 얘기가 있어서 살짝 표정이 굳었다.
“어제 그 사람들은 대체 어느 학교에서 배웠데? 내가 대학교에 안 가봐서 잘 모르는 건가. 연영과 출신이라더니 어쩜 대사 한 줄을 못해.”
“이론 위주로 가르치는 학교가 더러 있더라고요. 어쩌면 그런 곳 출신인지도 모르죠.”
예전에 정말 그런 곳에서 배우고 온 사람이 있었다. 연출기법이나 영화사 전반에 대한 지식은 가득했는데, 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 있었다. 같이 촬영하는 내내 얼마나 답답했던지, 참다, 참다 못 참고 감독에게 따로 촬영하게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었다. 난감해하면서도 스케쥴을 조정해 줘서 다행이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엉망이진 않겠죠.”
“어제 그렇게 민폐를 끼쳤으니, 오늘은 준비 단단히 했겠지.”
“어휴.”
형식이 다시 한숨을 쉬었다. 태주도 형식과 같은 마음이었다. 반성은커녕 술 먹고 감독님을 욕한 사람들이 제대로 연기 준비를 했을 것 같지 않았다.
‘단역을 할 정도면 정말 연기가 하고 싶은 걸 텐데.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
태주 일행이 차에서 내려 촬영장에 조용히 다가갔다. 지금은 준희와 단역이 촬영하고 있었다. 문제의 단역은 아니었다. 태주가 태산이 자리를 봐주고 촬영을 기다리는 중 쭈뼛거리면서 한 사람이 가까이 왔다.
독립 영화기는 하지만 주연배우인 태주에게 단역들은 잘 다가오지 않는데 무슨 일로 온 것인지 궁금했다. 태산이가 낯선 사람을 보고 호기심이 동했는지 텐트 입구에 바짝 붙어서 눈을 빛내고 있었다.
“무슨 일이시죠?”
“저 혹시 대본 좀 맞춰주실 수 있으세요?”
“음. 네, 앉으세요.”
거절할까 생각했지만, 몇 장 되지 않는 대본이 구깃구깃해진 것을 보고 허락했다. 처음은 감정을 넣지 않고 서로 대사를 맞춰 보는 정도로, 그리고 횟수가 넘어가자 동작도 간간이 섞어 가면서 대사를 맞춰 보았다.
“이 정도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어제 촬영하신 분들하고는 친하세요?”
태주의 질문을 들은 그의 표정이 찌푸려졌다. 금세 다시 표정을 고쳤지만, 확실히 보았다.
“한 명은 학교 선배세요. 다른 사람은 그 선배 친구고요.”
학교 이름을 묻자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곁에서 얘기를 같이 듣던 일행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요즘 뉴스에서 거론되는 학교였다. 전임교수가 부도덕한 일로 해임되는 사건이 발생한 학교였다.
대답한 그가 죄지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지만, 그 학교 출신이라는 소리에 인상이 찌푸려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하필이면.”
“학생이 무슨 잘못이 있나요. 교수가 문제였는데.”
“그야 그렇지.”
“연기 준비를 해오지 않은 건 개인 잘못이에요.”
태주의 선을 긋는 말에 그 이상 학교 관련해서는 말을 하지 않았지만, 일말의 찜찜함을 덜지는 못했다. 태주도 슬쩍 경계하는 마음이 생겨서 형식에게 부탁하는 눈길을 보냈다. 형식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태주는 이어서 대본을 보며 연습을 했다.
*
“컷. 후우. 거기 너희 이리 와봐라.”
단역들의 불성실한 촬영 태도에 현장이 얼어붙었다. 한숨을 내쉰 정한선이 단역들을 불러냈다. 그들은 무슨 불만이 있는지 주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거친 걸음으로 감독에게 다가갔다.
‘배우들이 저런 태도를 보일 수도 있나?’
태주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출진과 좋은 관계를 형성해두어야 다음에 다시 같이 일할 수 있다. 이 좁은 업계에서 소문이 도는 일은 무시할 수 없었다. 저런 태도가 알려지면 그들을 아무도 찾지 않을 게 분명했다.
정한선이 그들에게 하나하나 맡은 역할에 관해 설명해주고 있었다. 가늘게 뜬 눈으로 태주가 그 모습을 살폈다. 태주에게 대사를 맞춰달라 부탁했던 사람은 신경 써서 설명을 듣고 있었지만, 다른 두 사람은 그냥 멀거니 서 있었다.
다시 촬영이 시작되었지만, 단역 배우의 실수가 이어졌다.
태주의 화가 폭발한 순간이었다.
“이봐요. 대체 지금 뭐하자는 건가요?”
“뭐? 이봐요?”
“다들 당신들 때문에 고생하는 거 안 보여요?”
“이게 지금 뭐라고.”
태주가 짜증을 감추지 않고 화를 내자, 그들이 멱살을 잡을 것처럼 가까이 다가왔다. 정한선이 급하게 견우에게 손짓했다. 견우가 바로 달려나가 태주와 단역들의 사이에 자리 잡고 섰다. 형식이 태주를 뒤로 물리면서 보호했다.
“태주, 이리 와봐라.”
정한선의 부름에 태주가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도저히 나아지지 않는 상대의 연기에 화를 내긴 했지만, 태주가 촬영장에서 감독의 권위를 무시한 것도 사실이었다. 태주는 정한선의 곁으로 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순간 너무 화가 나서.”
문제를 일으킨 태주를 탐탁지 않게 보던 정한선이 기죽은 듯한 태주의 목소리에 픽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 뭐가 그리 화가 났느냐고 물었다. NG가 수차례 나고 촬영이 지연되는 일이 발생하는 건 어느 촬영장이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지켜본 태주는 그런 일로 화를 낼 성격은 아니었다.
“제가 이런 말 할 자격이 있는 건 아니지만, 힘들게 얻은 기회일 텐데. 너무 성의가 없잖아요. 그리고 스태프들도 너무 고생하고요.”
“그래도 좀 전의 태도는 좋지 않아. 혼자 촬영하는 거 아니잖아.”
“죄송해요. 너무 집중하기 힘들어서 그만.”
정한선이 태주를 골똘히 쳐다보더니 재밌는 제안을 했다.
“너 대본 다 외우고 있지? 단역 대사 네가 해볼래?”
“어? 그래도 될까요?”
조심스럽게 되물었지만, 태주의 눈은 활활 타는 것처럼 번뜩이고 있었다. 정한선은 마음대로 해보라며 태주를 부추겼다. 태주는 잠깐 고민하다 알겠다고 대답하고 지정된 위치에 가서 섰다.
분위기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다시 촬영을 시작했다.
“네? 꿈같은 소리라뇨? 아니에요. 뭐, 바보 같아 보일 수 있지만, 이렇게 좋은 날은 한 번쯤 미쳐보는 것도 좋잖아요. 여기까지 왔는데요. 무사히 부산까지 갈 수 있어요. 도와주는 사람도 있고. 돈 떨어지면 노래해서 벌죠, 뭐.”
태주가 세 단역의 대사를 모두 재조합하면서 독백을 해나갔다. 몽롱한 표정의 꿈 꾸는 소년의 얼굴이 내일에 대한 기대에 빛나다, 걱정에 물드는 표정으로 한순간에 바뀌었다. 상기된 얼굴에 여러 감정이 파도처럼 몰아쳤다. 그리고 태주의 입에서 다시 막힘 없이 단역의 대사가 이어졌다.
정한선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태주의 표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태주는 다른 배우들을 벽처럼 사용하며 혼자 대사를 이어갔다.
‘재밌는 녀석이야. 수더분한 줄 알았더니 성질을 죽이고 있던 거였고만. 판을 깔아주니 옳다구나 달려들고.’
촬영은 빠르게 끝났다. 태주는 말뿐이 아닌 연기로 다른 배우들의 존재를 화면에서 지워버렸다.
그들은 할 말이 남은 것 같았지만, 가차 없이 현장에서 내보내 졌다. 뒷말이 나오지 않게 조감독님이 그 자리에서 출연료를 정산해 줬다. 그들이 촬영장을 떠나기 전까지 견우와 형식이 태주의 곁에 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화를 내는 두 명의 뒤를 울음을 삼키는 남자가 따랐다. 태주와 대사를 맞춰봤던 사람이다.
수십 년 경력의 정한선이었다. 그와 같이 일한 사람이 얼마나 많을지 안다면 감히 저런 태도를 보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 정한선의 성격상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말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워낙 유쾌한 성격에 화를 잘 내지 않는 사람이니.
하지만 흘깃 본 조감독님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있었다. 마당발로 통하는 조감독님이니 앞으로 저 사람들의 상황이 편할 것 같진 않았다.
“죄송해요, 감독님.”
“죄송해야지. 그래도 연기는 나쁘지 않았다. 하여튼 아주 물건이야, 물건. ”
“으윽. 아포요.”
정한선이 재차 사과하는 태주의 양 볼을 꼬집었다. 태주도 제 잘못을 알아서 얌전히 볼을 내주고 있었다. 아무리 정한선이 부추겼어도 애초에 자신이 화를 내서 벌어진 일이었기 때문이다.
양 볼이 빨갛게 물든 태주가 스태프들에게도 사과했다. 이유가 어떻든 촬영장의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고 감독님의 권위를 무시한 꼴이었다. 결과가 나쁘지 않았지만, 과정이 좋았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그래도 감독님의 용서가 있어서일까, 스태프들은 허리를 숙이며 사과하는 태주를 쉽게 용서해 주었다.
태주가 스태프들에게 사과하는 사이, 정한선은 견우를 불러서 태주에 대해 주의시켰다.
“좀 전에 봤지? 저 녀석 한 성깔 한다.”
“큼.”
“뭐야? 알고 있는 눈친데. 물렁물렁한 것보다 낫지만, 생각보다 더 냉정해. 촬영 전에 대사 봐주던 애도 단칼에 내치는 것 보니. 앞으로 견우 네가 신경 좀 써.”
“예, 그러겠습니다.”
견우가 보기에도 태주의 태도는 꽤 냉정했다. 그는 촬영장을 떠나는 세 명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대사를 맞춰봤던 단역을 한 번이라도 살필법했는데 전혀 그럴 눈치가 아니었다. 이전 웹드라마를 찍을 때도 한 번 느꼈지만, 연기에 관한 태주의 태도는 상당히 강경했다.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주의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