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01
301. 시상식장의 희비 >
태주는 거울 앞에서 스마트폰으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확인했다. 일찍부터 준비하게 오라고 하더니, 메이크업이나 헤어에 공을 얼마나 들일 생각인지 도무지 끝나지 않아서였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 컬을 넣을 생각인가?’
태주의 머리는 상투 가발을 써야 하는 사극 촬영 중이라서 길이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 머리를 미나와 스타일리스트 팀원이 붙어서 한 올, 한 올 손보고 있었다. 오랜만의 시상식, 회귀 후엔 처음인 시상식이다 보니 기합이 과하게 들어간 것 같았다.
“누나 지금도 충분해요. 더 안 만지셔도 돼요.”
“쓰읍! 방해하지 말고 얌전히 기사나 보고 있어. 지금도 좋지만, 만지면 만질수록 더 좋아지는 중이니까.”
“…네.”
이곳이 태주 혼자만 이용하는 미나의 개인 숍이라서 다행이었다. 만약 다른 연예인들도 같이 이용하는 숍이었다면, 이렇게 오랜 시간 공을 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시간을 확인한 후로도 그는 오랫동안 거울 앞을 벗어나지 못했다. 처음 수상 후보로 오른 그를 멋지게 꾸며주고자 의욕적으로 달려드는 미나와 스타일리스트 팀원을 말릴 수 없어서였다.
“휘유! 괜찮네. 이제 사진 찍자.”
“이쪽으로 오세요, 태주 씨.”
“네.”
미나의 숍엔 흰색으로 깔끔하게 칠해진 벽이 있었다. 그 벽엔 아무것도 걸려 있지 않았다. 화장대 근처도 미나의 사무실 안에도 수백 벌의 의상과 구두, 액세서리가 차곡차곡 들어차 있는 상태였지만, 벽과 그 근처만은 깨끗했다. 지금처럼 태주의 착장 사진을 찍을 때나 다른 사진을 찍을 때를 위해서 비워 두었다.
“역시. 처음 상 받으러 가는 건데, 이 정도는 해 줘야지.”
“괜찮아요?”
“괜찮아. 넌 이제 가서 상만 받아 와. 그리고 이 기세를 몰아서, 연말에도 한 번 더 받아 보자.”
“하하하. 그래요, 누나. 수고하셨어요, 다른 분들도요.”
후보에 올랐을 뿐 받을지, 못 받을지는 정해지지 않았는데, 미나나 그녀의 팀원이나 모두 그가 받을 거라고 여기고 있었다.
그러나 태주는 내심 개인적으로 상을 받는 것보다 감독상이나 각본상 혹은 작품 자체한테 주는 작품상을 받고 싶었다. 물론 본인의 연기를 인정받아 상을 받으면 좋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만족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 제작을 맡은 드림쉽, 동생 역할을 맡은 지환, 카메오로 출연한 어진권 등은 모두 태주와 인연이 있는 회사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인지 태주는 자신의 연기가 아닌 작품 자체가 인정받아도 아쉽지 않을 것 같았다.
“슬슬 출발할까요?”
“그러시죠.”
시상식장에는 이제영 감독님, 지환이와 같이 입장하기로 되어 있었다. 시간 맞춰 가려면 지금 출발해야 했다.
“태산.”
“냐아아앙!”
출발하자는 소리에 2호는 소파에서 뒹굴던 태산이를 안아 올려 이동 가방 안에 넣어 주었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저었다. 집을 나올 때의 일이 떠올라서였다.
‘산아. 오늘은 형이 밤늦게까지 일해야 하거든.’
‘앙.’
‘시상식이 어린이는 잘 시간에 시작해서 말이지. 산이는 아직 어린이잖아. 형 올 때까지 집에서 자고 있자.’
‘아앙. 사니 가티 가.’
‘미안. 어린이는 잘 시간이라서 데려갈 수 없어.’
대부분의 시상식이 그렇듯 한국예술대상 역시 늦은 저녁부터 시작했다. 그는 시작 시간도 늦고 참석자와 취재진으로 번잡스럽고 시끄러운 곳에 어린아이를 데려갈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태산이가 귀엽게 아앙 거리며 같이 가겠다고 매달려도 데려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런 강경한 태도의 그보다 태산이가 한 수 위였다. 태산이는 어린아이라서 데려가지 않는다는 소리를 듣자, 곧바로 동물 모습으로 변했다. 그리고 태연하게 태주의 몸을 타고 오른 뒤 어깨에 자리 잡고 머리를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태산아, 가방 괜찮아? 안 불편해?”
-바바바박!
“냐아앙.”
가방 바닥에 깔아 준 쿠션을 벅벅 긁어 대며 길게 내는 울음소리에 날카로운 소리는 전혀 없었다. 오히려 쿠션을 파는 게 재밌는지 흥분한 소리가 섞여 있었다. 오랜만에 들어간 이동 가방이었지만, 보기보다 편한 듯 보였다.
*
태산이까지 출발할 준비를 마치자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 되었다. 입장 전 감독님들과 만나 포토월에 서려면 바로 출발해야 했다.
시상식이 벌어지는 건물 앞은 취재진과 참석자들을 보러 온 팬들로 북적북적했다. 특히 레드 카펫의 시작점, 시상식에 참석하는 유명인들이 차에서 내리는 장소는 수많은 사람으로 경호를 맡은 사람들이 질서 유지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런 복잡한 장소에 시상식에 초대된 연예인들의 밴이 시간을 두고 한 대씩 들어왔다. 참석자들 입장이 시작되고 좀 지난 뒤에 태주의 밴 역시 그 장소에 도착했다.
-꺄아아아!
-이태주!
-태주야, 사랑해!
-꺄아아아악!
태주를 보러 온 팬들의 환성은 밴의 문을 열기 위해 2호가 보조석에서 내렸을 때부터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점 커지던 환성은 밴 안에서 지환, 이제영 감독의 뒤로 태주가 내리자, 주변 일대를 가득 메울 정도로 커졌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커다란 함성에 어리둥절한 지환이와 어색해하는 이제영 감독의 사이에 선 태주가 양팔을 벌렸다. 한쪽 팔은 지환이의 어깨를 감싸고 남은 한쪽 팔은 이제영 감독의 허리에 둘렀다. 그렇게 잠시 사이좋은 모습으로 사진 찍을 시간을 준 뒤 두 사람의 손을 잡고 포토월로 이끌었다.
“형, 저 사진 어떡해요. 너무 놀라서 이상하게 찍혔을 거 같아요. 시상식에 사람이 이렇게 많이 모였을 줄 정말 몰랐어요.”
“하하하. 괜찮아. 사진 찍을 때 잘 웃고 손도 잘 흔들었어.”
“그랬어요? 솔직히 뭘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어요.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괜찮아. 카메라 방향도 잘 맞춰 줬고, 표정도 좋았어.”
“다, 다행이다.”
사실 좀 뻣뻣하게 굳어 있었지만, 태주는 지환이에게 사실을 말해 주지 않았다. 신인에 아직 어린 배우가 처음 참석한 큰 행사에 긴장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히려 태주처럼 긴장 없이 노련하게 사람들을 이끌고 분위기를 쥐락펴락하는 게 더 놀라운 일이었다.
그가 한참 다독거리고 본인도 다행이라고 말했지만, 지환이의 긴장은 대기실에 도착할 때까지 풀리지 않았다. 이제영 감독도 곁에서 등을 두드려 주며 달랬는데도 같은 상태였다. 그런 지환이의 긴장이 풀린 것은 대기실에서 자기 매니저가 건네는 물을 마시고 잘했다는 칭찬을 들은 뒤였다.
‘괜찮은 사람 같네.’
날카로운 눈매와 다르게 물을 챙겨 준 후에도 곁에 붙어서 꼼꼼하게 상태를 살피는 매니저는 꽤 다정해 보였다. 지환이 연예 기획사와 계약한 것은 한 달 남짓이었지만, 익숙하게 손을 내주고 지압을 받는 모습을 보니 이미 매니저와 어느 정도 유대를 쌓은 것 같았다.
“매니저님 꽃다발은요?”
“시상 순서가 돌아오면 제가 전해 드리겠습니다.”
“네. 태산이도 잘 부탁드려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지환이와 매니저에게서 시선을 돌린 태주가 견우를 찾았다. 미나의 옷매무새를 다듬어 주고 나면 바로 시상식이 열리는 홀로 들어가야 했다. 일단 홀로 들어가고 난 다음에는 화장실을 가기 위한 일이 아니면, 자리를 비우기 힘들었다. 그러니 그전에 필요한 건 전부 확인해야 했다.
태주는 이제영 감독님이 수상하면 건넬 꽃다발, 호기심 많은 태산이의 단속을 견우에게 부탁해 두었다. 태산이를 2호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었다. 그와 박재우가 같은 장소에 있어서 만약의 일을 대비해야 했다.
“감독님, 지환아. 들어가자.”
“네.”
“가요, 태주 씨.”
시상식이 시작될 시간이었다.
*
한국예술대상의 시상식장은 연말에 여는 시상식들보다는 확실히 초라했다. 그렇더라도 국내에서 유일하게 TV 부문과 영화 부문을 같이 하는 시상식이었다. 국내 삼대 영화 시상식으로 꼽히기도 하고 수십 년의 역사를 가지기도 했다.
“여기네요. 앉으세요, 감독님.”
“고마워요.”
팀의 좌석은 단상에서 두 번째 줄에 있었다. 다행히 팀과는 통로를 가운데에 두고 좌석이 나뉘어 있었다.
좌석에 앉기 전 태주는 홀 안에 먼저 도착해 자리를 잡고 있던 다른 제작진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촬영 감독님이나 음악 감독님들 모두 꽤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시끄럽고 정신없었지만, 좋은 자리에서 다시 만나서 기뻤다. 제작진과 인사를 나눈 뒤엔 다른 영화팀들과도 한참 인사를 나눴다.
‘태산이는 얌전히 안겨 있네. 둘 다 힘들 텐데, 고집쟁이 같으니라고.’
인사를 마친 뒤, 돌아본 무대 뒤쪽 통로에서 견우가 태산이를 살짝 들어 보였다. 태산이는 세상 얌전한 고양이처럼 견우의 품에 안겨 있었다. 안고 있는 견우도 안긴 태산이도 꽤 편해 보였다.
그러나 그는 그 모습에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1부 끝난 뒤에 휴식 시간이 있긴 하지만, 시상식이 전부 끝나려면 세 시간은 걸릴 텐데 계속 얌전히 안겨 있을지 걱정이었다. 안은 견우도 안긴 태산이도 한 자세를 계속하면 힘들 게 분명했다.
-꺄아아아!
-와아아!
‘등장이군.’
태산이의 상태를 보고 2호의 위치를 살핀 직후 홀 안에 관객들의 함성이 울려 퍼졌다. 나성안 감독을 선두로 박재우와 다른 톱 배우들이 무대 앞쪽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태주와 다른 사람들은 그 팀이 들어서자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박재우와 개인적으로 어떤 사이이든 지금은 업계 동료이자, 선후배 사이인 사람들과 인사를 나눠야 했다.
장내의 사람들이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예술대상이 시작되었다. 두 명의 사회자의 오그라드는 인사말과 칭찬을 곁들인 오프닝 멘트를 한 뒤에 후원사 소개가 지나고 본격적인 시상이 시작되었다.
1부는 TV 부문, 영화 부문 신인 연기자 시상, 극본•각본의 시상 등이 진행되었다. 태주나 좌석에 앉아서 무대를 보는 사람들은 수상 후보들이 소개될 때나 수상자가 나올 때 모두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1부의 주요 시상이 모두 끝났다.
‘작년하고 좀 다른데? 작년엔 인기상을 1부 끝에 주지 않았었나?’
1부가 끝난 뒤 사람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견우의 품을 벗어나려고 바둥거리는 태산이를 향해 가면서 든 생각이었다. 물론 그런 생각은 품으로 뛰어든 태산이와 검은 슈트에 묻는 하얀 털에 뜨악한 표정을 지은 미나 때문에 금세 지워졌다.
“태산이 내려오자.”
“냥!”
“거절은 거절이다. 누나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거기다 네 털을 묻히니.”
“냐앙!”
태산이는 잠시 반항을 했지만, 몇 시간 만에 되찾은 태주의 품에서 순식간에 벗어나 견우의 품에 안겨야 했다. 미나의 자비 없는 손길이 털을 더 묻히는 걸 용서하지 않아서였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털도 떼어 내는 등의 정비를 마친 그가 다시 시상식장의 좌석에 앉자 MC들이 2부의 시작을 알렸다. 태주는 짧은 시간 안에 드레스를 갈아입고 새로운 액세서리로 치장한 MC들의 환복 속도에 감탄하면서 손뼉을 쳤다.
“2부 첫 순서는 S-Live 인기상입니다. S-Live 인기상은 2주간의 투표로 수상이 결정되며….”
시상식이 있기 2주 전에 팬 투표로 수상자가 결정되는 인기상은 TV와 영화를 나누지 않고 통합해서 남녀 각각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상이다. 40명의 남녀 후보 중 최고 득표자 두 명이 수상하는데, 태주 역시 남자 후보 명단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인기상 수상의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 만약 예전처럼 TV와 영화로 나누어 투표를 진행했다면 수상 가능성이 있었지만, 몇 년 전 통합한 후로는 거대 팬덤을 거느린 아이돌 출신 배우들에게 밀리는 게 사실이었다.
“제5x 회 한국예술대상 S-Live 인기상. 축하드립니다. 의 이수혜 님, 의 박재우 님. 축하드립니다.”
-S-Live 인기상의 수상자는 이수혜 님, 박재우 님이십니다. 두 분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수상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하며 느긋하게 무대를 보던 태주의 눈이 커다랗게 떠졌다. 남자 수상자의 이름이 너무 의외의 이름이어서였다.
여자 수상자는 예상대로 아이돌을 겸업하는 배우였다. 본업인 아이돌 활동도 잘하고 연기 쪽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로 평하기엔 연초 방영했던 그녀의 드라마 성적이 너무 좋았다. 그러니 그녀가 인기상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박재우가 인기상? 워우! 이것 때문에 2부로 인기상을 미룬 건가?’
태주는 한국예술대상 시상식의 2부가 점점 더 흥미진진해지는 걸 느꼈다. 만약 가 남아 있는 주요 부문인 감독상이나 최우수 연기상, 대상 등에 후보로도 이름을 올리지 못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볼만할 것 같았다.
‘잠깐! 시상식 마무리에 전체 수상자가 무대에 모여서 단체 촬영하잖아. 만약 인기상에 그치면, 그때까지 박재우와 제작팀이 기다려야 하는 거야? 한 시간 반을?’
올해 개봉한 영화 중에서 보다 더 많은 자본을 들이고 더 유명한 배우를 기용한 영화는 없었다. 더불어 더 많은 스크린을 차지했던 영화도 없었다. 그런 영화가 시상식에서 거둔 성적이 배우 개인의 인기상 한 개뿐이라는 건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태주는 남의 불행에 웃는 성격은 아니었다. 그러나 좀 전에 떠오른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아서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그렇게 그가 표정을 조심하고 있는 사이, 인기상의 여자 수상자인 이수혜의 수상 소감이 끝나고 박재우의 차례가 돌아왔다.
“감사합니다. 이 상은 팬….”
-꺄아아아!
-태산아!
-와하하하!
연기 관련 상이 아닌 인기상을 받아서 떨떠름한 표정을 힘겹게 관리하던 박재우의 인상이 한순간 일그러졌다. 그가 입을 뗀 순간 등장한 작은 방해꾼에 의해서 수상 소감 발표가 강제로 멎었기 때문이었다. 나아가 자신을 비추던 스크린에 자리에서 일어나 사방을 향해 사과하는 이태주가 나와서였다.
‘빌어먹을 짐승 새끼!’
갑자기 시상식장 안을 가로질러 나타난 하얀 고양이 새끼를 안은 이태주가 자신에게 죄송하다 말하며 고개를 숙였다. 박재우는 꼴도 보기 싫은 짐승과 그 주인이 하는 사과를 대범하게 받아 줘야 하는 상황이 아주, 아주 마음에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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