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02
302. 숨겨진 카드 >
태주는 제 무릎에 앉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앞발을 핥는 태산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얀 몸이 뒤로 살짝 밀려날 정도로 감정을 조금 담아서 거칠게.
-하하하. 이태주 씨의 고양이 태산이죠? 저도 팔로우하는 유명한 미튜브 스타입니다. 좀 전은 우리 팀 시합할 때 난입했던 고양이가 생각나는 장면이었습니다.
-혹시 야구 경기인가요? 그때 결과가….
-최고였습니다. 우리 팀이 7점 차로 이겼거든요.
태산이의 등장에 어수선했던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MC들이 잠시 가벼운 얘기를 한 것을 빼면 2부의 진행에 문제는 없어 보였다. 태산이 역시 언제 시상식을 방해했냐는 듯이 태주 무릎 위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누워서 보는 방향이 박재우 쪽인 점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태주는 어쩔 수 없다고 여겼다. 그와 2호뿐 아니라 박재우의 정체를 아는 모두가 경계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태산이가 경계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나저나 호도 참 짓궂네. 태산이가 튀어 나가는 걸 못 잡을 리가 없는데.’
2호의 이동 속도는 정원에서 이미 놀랄 정도로 겪었었다. 그런 2호가 견우의 품에서 뛰쳐나가는 태산이를 막지 못할 리 없었다. 아마 고의로 태산이가 박재우의 수상 소감 발표를 방해하는 걸 막지 않은 것 같았다.
태주가 좀 전의 태산이 난입 사건에 관해 생각하는 사이에도 시상식은 정해진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각 부문의 남자, 여자 조연상과 TV 예능상의 수상자들이 정해졌고, 남은 것은 굵직한 상들뿐이었다.
‘예술상, 감독상, 작품상, 최우수 연기상 마지막으로 대상. 아니지. 대상은 빼야 맞지.’
대상은 작품에 줄 때도 있고, 연기자나 PD에게 줄 때도 있었다. 회귀 전에는 TV 부문에선 연기 경력 65년의 대배우가 대상을, 영화는 그보단 짧지만 역시 30년 경력의 배우가 받았었다. 아마 이변이 없다면, 이번에도 그 두 배우가 받을 터였다.
두 배우 모두 태주가 본받아 마땅할 정도로 열정적이고 훌륭한 사람이었다. 후학 양성에도 열심이었고 기부나 자선 활동도 많이 하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연기 분야에서도 나이를 개의치 않고 새로운 장르에 도전하는 진짜배기 배우였다.
-이어서 신인 감독상 시상이….
두 대상 배우의 자리를 훔쳐보는 사이 신인 감독상 시상이 이뤄지고 있었다. 태주는 점점 다가오는 연출상•감독상 시상에 심장이 조마조마한 것을 느꼈다. 태산이가 사고 칠 때를 제외하고 오랜만에 느끼는 떨림이었다.
그는 이제영 감독님이 충분히 감독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여겼다. 자신이 출연한 작품이라서가 아니라, 정말 감성적이면서도 깔끔한 영화라서였다. 가볍지 않은 주제로 관객에게 마음의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 여운을 남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이 이제영 감독이기에 가능한 기예였다.
-이어서 공로상의 시상을 진행하겠습니다. 시상에는….
‘헙!’
이어지는 시상이 TV 부문 연출상과 영화 부문 감독상이라고 여기고 있던 태주는 놀라서 헛숨을 들이켰다. 직후 그는 진지한 태도로 공로상 시상자의 등장에 박수를 쳤다. 본인과 관련 없는 분야의 시상이라고 너무 건성으로 보던 걸 반성하는 중이었다.
공로상 수상자의 히스토리를 담은 영상이 스크린에 재생될 때였다. 꽤 화려한 꽃다발을 견우가 들고 무대 뒤쪽 통로에서 그에게 손짓했다. 태주는 고마운 표정을 짓고 그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공로상 수상자가 무대에서 상을 받은 뒤 태주는 환하게 웃으며 견우가 준비한 꽃다발을 그에게 건넸다.
‘으아! 완전히 잊고 있었네. 매니저님 덕분에 무사히 넘겼네.’
감독상과 작품상에 집중하느라 공로상 수상자가 회귀 전 인연이 있던 대선배라는 것도 잊고 있었다. 그와 다르게 견우가 미리 알고 꽃다발을 하나 더 준비해 주어서 다행이었다.
나중에 견우에게 밥 한번 사야겠다고 기억해 두던 태주는 좀 전 꽃다발을 받을 때 느꼈던 살벌한 시선을 떠올리고 태산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꽃다발을 건네던 견우의 뒤에서 감독님 꽃다발을 대신 들고 있던 미나는 본 적 없던 무시무시한 기세를 뿜고 있었다.
그는 좀 전 태산이의 등을 쓰다듬었던 손을 이번에는 엉덩이 부위로 옮겼다. 아무래도 한 시간 반 정도 뒤에 이 하얀 털북숭이의 엉덩이가 고난을 겪을 것 같아서였다.
“냐아.”
“음. 형이 나중에 고기 줄게.”
그러니 미나 누나가 한 대 때려도 얌전히 맞아 주라는 뒷말은 속으로 삼켰다.
그리고 좌석 주변을 둘러보며 감독님의 경쟁자가 될 후보작을 가늠하려고 애썼다. 얼굴을 아는 배우와 감독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정확한 영화 제목이 떠오르지 않았다. 시즌 2의 대규모 전투 신을 연일 촬영할 때 후보작 발표가 나와서 대충 넘긴 게 후회됐다.
메이크업할 때라도 미리 봐 뒀으면 좋았을 텐데, DK 코믹스의 캐스팅 기사에 박재우 이름이 나오는 바람에 그걸 보느라 확인을 잊었었다.
“제5x 회 한국예술대상 영화 부문 감독상. 의 이제영 감독님. 축하드립니다.”
-제5x 회 한국예술대상 영화 부문 감독상의 수상자는 이제영 님이십니다. 이제영 님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시상자가 발표하고 장내에 다시 수상자에 대한 안내 멘트가 울렸는데도 이제영 감독은 일어날 생각을 안 했다. 후보작 안내 영상을 보고도 수상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태주는 놀라서 굳어 버린 이제영 감독의 몸을 팔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감독님!”
“네? 네.”
“축하해요, 감독님. 정신 차리세요. 무대 올라가셔야죠.”
“아! 아아. 아하하. 알았어요.”
주변에서 건네는 축하에 일일이 화답하며 무대로 나가는 이제영 감독을 보다 태주도 꽃다발을 받으러 일어났다. 견우에게 다가가는 그는 이제영 감독이 병마에 쓰러지지 않고 정당한 평가를 받게 된 사실이 기뻤다.
*
감독상을 받은 이제영 감독을 깊게 끌어안고 축하를 전하는 태주를 보는 박재우의 가슴 속에 불길이 이는 듯했다.
이태주의 수작질만 아니었다면, 저 상의 주인이 바뀌었을 것이다. 더불어 최우수 연기상이나 대상의 후보에 자신이 올랐을 것이다. 웃기지도 않는 인기상을 받고 겨우 예술상 후보에 영화가 올랐을 리 없었다.
‘그것도 탈락이었지. 돈을 그만큼 들이면 뭘 해. 편집이 그따위로 됐는데. 예술상은 무슨!’
그는 이제영 감독이 받은 꽃다발을 나눠 들어 주며 웃는 이태주를 매서운 눈으로 노려봤다. 그러나 그런 눈길을 오래 유지하진 못했다. 그가 노려볼 때마다 그보다 더 살벌한 시선이 무대 뒤쪽 통로에서 쏘아지듯 날아왔기 때문이었다.
그 시선이 닿을 때마다 박재우는 뺨이 아픈 것 같았다. 실제로 그럴 리 없었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무력하게 제압 당해 봉인 인장을 찍히던 순간이 되풀이되며 굴욕감과 모멸감을 강제하는 것 같았다.
-제5x 회 한국예술대상 영화 부문 여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 영상입니다.
MC의 멘트가 끝난 뒤 다섯 명의 여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자들의 영상이 나왔다. 박재우는 이태주가 후보로 오른 최우수 연기상과 대상의 시상이 다가올수록 모든 인내심을 쥐어짜 표정을 관리했다. 아무리 봐도 이태주가 최우수 연기상을 받을 것 같아서였다.
-스윽!
“조심 좀 하지?”
“…”
그런 생각을 하면서 박재우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다리를 꼬았다. 좌석이 좁아서 다리를 꼬다 옆에 앉은 배우의 옷자락에 스쳐 항의를 들었지만, 미안하다는 말도 그런 기색도 없었다. 그는 더는 이름값도 못하는 톱 배우를 대접해 줄 마음이 없었다.
그들이 제대로 된 톱 배우였다면, 어떻게 최우수 연기상 후보에 단 한 명도 들지 못한단 말인가. 몸값만 높았지 이태주 하나 잡지 못 할 실력의 그들은 선배 대우를 받을 자격이 없었다.
-제5x 회 한국예술대상 영화 부문 남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 영상입니다.
박재우가 동료 배우와 잠시 실랑이하는 사이 순서는 남자 최우수 연기상 후보로 넘어가 있었다. 후보 중 스크린에 제일 먼저 나온 것은 존재만으로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인간, 이태주의 영상이었다. 자료 화면은 이태주가 잃어버린 동생과 만나는 장면이었다.
달빛을 받아 어슴푸레 보이는 아파트는 보기에도 낡고 허름해 보였다.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텁텁한 공기와 물비린내가 날 것 같은 건물 안에서 초췌한 몰골의 태주가 삐쩍 마른 소년을 안고 있었다.
길고 지저분한 머리에 흠뻑 젖은 옷을 입은 그는 무어라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든 표정을 지은 채 조심스럽게 그러나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뜻이 드러나는 몸짓으로 소년을 감쌌다.
“혀엉.”
“…성구야.”
“고마워. 찾아 줘서. 날 포기하지 않아서….”
“네가 포기하지 않았는데, 형이 어떻게 너를 포기해.”
간절함, 안도감, 안쓰러움, 미안함, 답답함 등등. 울먹이는 동생을 안은 이태주의 대사는 길지 않았다. 그러나 그 안에 들어 있는 감정 역시 직전에 본 표정처럼 단 한마디로 정의 내리기 어려웠다.
스크린에 다음 후보의 자료 영상으로 넘어가기 위해 시상식 로고가 나왔을 때였다. 이태주의 짧은 영상이 끝나는 게 아쉬운 듯 시상식장 곳곳에서 안타까운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이태주의 연기에 분이 오른 박재우에겐 그런 소리조차도 신경에 거슬렸다.
‘이제영이라고 했나? 회귀 전에 못 들어 본 이름인데, 어떻게….’
이태주 주변을 조사하며 들었던 이름이었지만, 당시엔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회귀 전에도 이런 영화를 찍었다면, 그가 모를 리 없었다. 만약 이런 영화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따위에 출연하는 대신 저 영화에 출연했을 것이다.
-시상에는 에서 능청스러운 직장 선배 강혁 역을 맡고 계신 배우 한경호 님과 영화 에서 유괴범을 쫓는 형사 나래 역을 맡으셨던 배우 박주아 님이 수고해 주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배우 한경호입니다.”
“배우 박주아입니다.”
박재우는 시상하러 나와서 쓸데없이 자기 작품 홍보를 하는 시상자들을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주저리주저리 길어지는 말이 기분 나빴다.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도 그들의 말이 길어지는 게, 어쩐지 이태주에게 상을 주려고 밑밥을 뿌리는 것 같아서 듣기 싫었다.
그의 불쾌한 예상이 맞았다. 이어진 발표에서 이태주는 쟁쟁한 선배 배우들을 제치고 최우수 연기상을 받았다. 몇 년 전에 아역부터 시작한 배우가 20세에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기록이 있어 최연소는 아니었지만, 스물일곱에 한국예술대상에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것도 대단한 일이었다.
-영화 부문 최우수 연기상의 수상자는 이태주 님, 최성화 님이십니다. 두 분의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안내 멘트가 울리는 사이 이태주가 사람들의 축하를 받으며 무대로 오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빌어먹을 짐승이 동생 역을 맡았던 소년의 품에서 벗어나 제 주인의 뒤를 따라가는 모습이 들어왔다. 그 모습에 다시 한번 관객들 사이에서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감사합니다. 훌륭한 작품도 너무 많고, 눈부신 연기를 보여 주신 선배님들도 많이 계셔서 제가 최우수 연기상을 받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수상 소감을 준비 못 했습니다. 두서없는 소감이라도 양해 부탁드립니다. 먼저 이 상을 받을 수 있게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준….”
박재우는 이태주가 같은 여자 최우수 연기상을 받은 선배 배우와 잠시 얘기를 나누다 먼저 수상 소감을 발표하는 장면을 이를 악물고 지켜봤다.
품에 트로피와 화려한 꽃다발을 안고 마이크 앞에 선 이태주는 무대 위의 그 누구보다 빛나고 있었다. 그의 발치에 앉은 고양이 때문에 보통의 시상식과 다른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스포트라이트 아래 선 이태주는 누구보다 주인공에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으드득!
‘질투도 무용할 정도로 말이지….’
원래라면 저 빛나는 자리에 자신이 섰어야 했다. 저 트로피도 꽃다발도 자신이 받았어야 했다. 최고의 감독이 연출한 영화에 톱 배우들과 어우러져 최상의 연기를 선보이고, 나아가 다른 감독들의 러브 콜을 받는 것은 자신이었어야 했다. 이태주의 것이 아니었다.
*
-콰장창!
-쾅! 쾅쾅!
한국예술대상이 끝난 뒤, 박재우의 집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물건 부서지는 소리가 다시 나기 시작했다. 시상식을 다녀온 박재우가 물건에 화풀이하느라 나는 소리였다.
“아아악! 빌어먹을 이태주!”
시상식 결과는 박재우, 그가 편법까지 써 가면서 이룬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결과 중 이태주의 최우수 연기상 수상은 특히 그를 더 괴롭게 만들었다. 있을 리 없는 뺨의 통증까지 불러일으키고 자신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것 같았다.
‘그래. 질투 따윈 필요 없어. 없애 버리면 될 걸, 뭐 하러 질투 따위에 감정을 소모해?’
박재우는 흐트러진 머리를 쓸어 넘겨 정리하고, 풀다 만 타이를 풀어 버렸다. 난리 치느라 어깨솔기가 터진 재킷은 벗어 던졌다. 그렇게 대충 모양새를 가다듬은 그는 문밖을 향해 소리쳤다.
“마크!”
문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듯, 그의 호명이 끝남과 동시에 문이 벌컥 열렸다. 그의 충직한 매니저는 밤늦은 시간인데도 흐트러짐 없는 차림으로 그가 진정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박재우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애써 평온하게 꾸미려 노력하면서 다가오는 마크를 담담하게 맞이했다. 이태주가 자신의 것을 훔쳐 갔다는 분노에 휩싸인 내심과는 다른 태도였다.
“재우, 괜찮아?”
“마크….”
“재우?”
“….”
자신의 안부를 살피는 마크를 본 박재우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홧김에 부르긴 했지만, 이런 곳에서 마크를 쓰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하지만 그는 곧 그런 생각을 지워 버렸다. 마크가 아깝긴 했지만, 이태주를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태주를 그대로 둘 경우, 언제든 한국예술대상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었다.
[마크. 네 도움이 필요해.]박재우는 이태주의 제거에 수년간 공들인 숨겨진 카드를 쓰기로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