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03
303. 각자의 상황 >
마지막 단체 촬영까지 마치고 태주 일행이 대기실로 돌아왔을 때였다. 미나가 대기실의 깨끗한 벽 앞쪽에 의자를 준비해 두고 그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여기 앉아 봐.”
“뭐 해요, 누나?”
“매니저님!”
“예. 미나 씨는 메이크업을 수정하십시오. 설명은 제가 하겠습니다.”
미나가 바쁘게 손을 놀려 상의에서 태산이 털을 떼어 내고, 머리를 빗겨 주고 하는 동안 들은 설명은 그도 납득할 만한 것이었다.
MC들이 자연스럽게 넘겨주고 태산이가 귀여워도 이런 큰 행사장에 난입하게 둔 것은 욕을 먹을 만한 일이었다. 시상식은 생방송 중계 중이라 그대로 방송에 나가 버려서 무마하기도 힘들었다. 더욱이 이미 관련 기사에 관리가 소홀했다는 비난 댓글도 달리는 중이었다.
“기사가 더 퍼지기 전에 한국예술대상 관계자와 시청자들께 사과하는 내용의 영상을 공식 홈에 올리셔야 합니다. 영상이 올라가는 즉시 회사에서 같은 내용을 기자들에게 보낼 겁니다.”
“오케이. 깔끔하네. 저는 끝났어요, 매니저님.”
“사과 내용은 여기 김 실장님이 보내 주신 메시지를 참고하시면 됩니다.”
“알겠어요.”
태주가 견우의 스마트폰에 뜬 메시지를 전부 읽고 돌려주는 동시에 미나도 그의 몸에서 손을 떼었다. 순식간에 시상식 시작 전과 같은 깔끔한 모습이 된 그는 바로 카메라를 든 견우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안녕하세요, 이태주입니다. 금일 제 관리 소홀로 한국예술대상의 여러 관계자분과 시청자께 폐를 끼친 일을….”
태산이의 난입은 얼핏 웃고 넘길 해프닝으로 보였지만, 시상식 관계자와 방송 관계자들에게는 돌발 사고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시상식을 보러 온 관객들과 방송 시청자들에게도 마찬가지.
당장은 상을 받고 정신이 없어서 떠올리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회사의 조언이 없었어도 그 역시 사과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는 카메라를 향해 최대한 진실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사과의 말을 꺼내 놓았다.
“으음! 좀 부족한 것 같은데….”
“이 정도면 됐어. 좋은 날이잖아. 감사하는 영상도 아니고 사과하는 영상 먼저 올린 것도 그런데, 여기서 더 하는 건 오버야.”
“그렇지만….”
견우가 전송한 영상이 바로 트리즈 홈페이지와 그의 공식 SNS에 올라갔지만, 여전히 부족한 느낌이었다. 최대한 솔직하게 잘못을 얘기하고 사과한 영상이었는데도, 무언가 2% 부족한 것 같아서 마음에 차지 않았다.
“그렇게 미안하면 태산이 사진이라도 한 장 올려. 제일 귀여운 거로.”
“아!”
태주는 미나가 물건을 정리하면서 한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사과 영상을 올린 뒤에도 부족하다 느껴졌던 것은 말썽을 일으킨 당사자가 빠져 있어서였다. 그는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치웠다. 의자가 있던 곳은 대기실에 얼마 없는 깨끗한 벽이었다.
‘말썽쟁이를 세울 수 있을 정도로 깔끔하군.’
“매니저님, 저 좀 잠깐 도와주세요.”
“예.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조금 이따가 사진 좀 찍어 주세요.”
“알겠습니다.”
견우에게 촬영을 부탁한 태주의 눈이 2호의 팔뚝 위에 늘어져 꼬리를 살랑대는 태산이에게로 향했다.
잠시 후 태주의 SNS에 몇 장의 사진이 새로 올라갔다.
눈 위쪽 털이 눌려 울상을 짓고 있는 태산이, 벌서는 것처럼 벽에 등을 붙이고 팔을 들고 있는 태산이, 식빵 자세에서 절하는 것처럼 앞발에 고개를 묻은 태산이 사진이 차례대로 올라갔다.
“아하하. 이 사진 대박이다. 나도 저장해야지.”
“괜찮아요? 너무 장난스럽지 않아요?”
“괜찮아, 괜찮아. 이미 네가 충분히 사과했잖아. 태산이한테 진지하게 사과시키는 게 더 이상해.”
“그럼 다행이고요.”
“다행이고말고. 사진이 귀엽지 않았으면 오늘 태산이 엉덩이에 불이 났을걸?”
“킥.”
잠시 사과 영상과 사진을 찍느라 지체한 태주는 곧 이제영 감독과 지환이를 데리고 대기실을 돌았다. 시간이 좀 늦긴 했지만, 아직 MC들이나 수상자들이 모두 돌아갈 시간은 아니었다. 상황을 유연하게 넘겨준 MC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수상자를 축하할 여유는 있었다.
*
한국예술대상이 끝난 뒤로 태주를 찾는 곳이 많이 늘었다. 영화 홍보를 위해서 방송 출연이나 연예 기자와의 인터뷰를 최대한 늘리던 추세에서 남자 최우수 연기상 수상 소식은 기름을 붓는 격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어디를 가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촉각을 세우고 지켜봤다.
그 때문에 영화 개봉 후, 이미 한차례 진행했던 라운드 인터뷰를 다시 이틀간 하게 되었다.
“피곤하지?”
“괜찮아요.”
“재킷만 갈아입고 들어갈래?”
“아니에요. 준비한 거 다 주세요.”
라운드 인터뷰는 보통 4개의 매체를 한 팀으로 묶어서 1시간을 배정해 준다. 그 사이 의상도 바꾸고 사진도 찍고 하면 실제로 질의응답 시간은 40~45분 남짓이다.
배정된 시간도 짧고 깊이 있는 질문을 하기엔 매체 간의 견제도 상당한 탓에 보통은 같은 질문의 반복이 되고 만다. 앵무새처럼 똑같은 대답을 계속하는 태주도 제목만 다르고 내용은 같은 비슷비슷한 기사를 싣는 매체도 서로 피곤하고 지치는 일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매체 팀과 인터뷰가 시작되면 최대한 다른 의상을 입고 다른 화제를 꺼내려 하지만, 그런 태도도 하루에 5~7팀 정도를 상대하다 보면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보면, 연예인도 쉬운 일이 아니야. 같은 얘기를 대체 몇 번이나 해야 하는 거니.”
“하하하. 그래도 이번엔 다섯 팀씩이라 할 만해요. 기간도 이틀이고.”
‘게다가 인터뷰 끝나고 나면 쉴 시간도 있고.’
광고 촬영과 차기작 관련 미팅이 있긴 했지만, 대부분 단기간에 해낼 수 있는 일정이었다. 게다가 영화 촬영까지는 앞으로 몇 달이나 시간이 남아 있었다. 그는 그사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스케줄을 잡지 않고 태산이와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의 시작은 태산이와 댄스 학원을 방문하는 일부터였다.
“다 됐다. 끝까지 잘하고 와.”
“네.”
옷을 갈아입느라 흐트러진 머리를 빗는 것을 끝으로 미나가 곁에서 떨어지자 태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견우가 안내 중인 인터뷰장엔 마지막 매체 팀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이번 팀을 끝으로 화보나 광고 촬영 후 하는 짧은 인터뷰를 빼고 한동안은 인터뷰 일정이 없었다. 그는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고 휴식에 들어갈 생각이었다.
“기사 확인하십니까?”
“네? 아! 그건 아니고요. 그냥 산이 다닐 학원 사이트 보고 있었어요.”
“학원이요?’’
“네. 키즈 댄스 학원이요.”
태산이는 유치원에서 했던 율동이 재밌었는지 집에서 가끔 그 율동의 동작을 따라 했다. 꽤 마음에 든 것 같아서 미튜브에서 비슷한 영상을 찾아 보여 줬지만, 거기엔 그다지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영상으로 보는 게 아닌, 아이들 사이에 섞여 직접 노래하고 춤추는 게 재밌었던 모양이었다.
“유치원에 보내는 건 좀 그렇고요. 일주일에 몇 번 정도 다닐 학원을 찾아봤거든요. 내일 오후에 산이 데리고 한번 가 볼 생각이에요.”
“어느 학원입니까?”
“집에서 가까운 곳이에요. 만약 다니게 되면 알려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태산이와 같이 가 볼 키즈 댄스 학원을 찾아보던 그는 보던 화면을 닫고 연예 뉴스 사이트를 열었다. 이미 오전, 오후 매체 팀 구분 없이 인터뷰 기사를 올리고 있었다. 기사 타이틀 정도는 봐 두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어차피 내용은 회사에서 모니터할 테니, 그 정도면 충분했다.
-영화 2주 연장 상영 결정
-이태주 박대성 감독 영화 출연 계약 완료
-맥스 커피의 새 얼굴 이태주, 전속 계약 사실 공표
-이태주 x 이산, 역대급 귀요미 동생과 시간을 보내는 방법
다양한 화제를 풀어놓으려고 노력한 보람이 있었는지, 기사 타이틀에도 다른 내용이 조금씩 섞여 있었다. 만족스러운 상황에 그가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으려던 때였다. 박재우의 기사가 연예 뉴스 화면에 등장했다.
-박재우 DK 코믹스 계약 위해 금일 출국
화면을 끄려던 그는 항상 주의를 기울이던 상대의 소식에 기사를 열었지만, 내용은 제목에 나온 게 다였다. 박재우가 차기작이 될지 모를 영화의 계약을 위해 오늘 밤 전용기로 출국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상한 사람이네. 한국에서 망작을 찍더니, 할리우드에서 망작을 또 찍을 생각인가? 그런 게 재밌나?’
자신처럼 혹은 자신 이상으로 영화의 결과를 잘 아는 회귀자 박재우의 선택을 태주는 이해할 수 없었다. 박재우가 어째서 망할 영화들만 골라서 출연하는지 이유를 전혀 짐작할 수 없었지만, 그다지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에겐 박재우보다 다음 날 태산이와 방문할 키즈 댄스 스쿨이 더 중요했다.
*
태주에겐 전혀 중요하지 않은 박재우의 출국이었지만, 누군가에겐 무척 중요한 일이었다. 그 주인공은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는 매니저 마크를 대신해서 출국의 모든 과정을 책임지고 있는 경호팀장이었다.
아침저녁 기분이 수시로 바뀌는 박재우는 근거리에서 수행하기 쉬운 상대가 절대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마크라는 중재자가 있어서 경호에 필요한 협조를 받기 쉬웠었다. 덕분에 큰 트러블 없이 일을 해 왔지만, 이번 경우는 달랐다. 미국에서 기다리는 다른 매니저를 만나기 전까지 그가 혼자서 박재우를 케어해야 했다.
‘후우! 마크는 대체 어딜 간 거야.’
전용기로 이동해서 미국에 있는 다른 매니저에게 그를 인계하는 간단한 일이었지만, 부담은 가볍지 않았다. 그는 박재우를 만날 때마다 부담 때문에 묵직한 돌이 어깨 위에 얹어진 기분이었다. 특히 일정에 차질이 생겨서 양해를 구해야 하는 지금 같은 상황은 더 그랬다.
그러나 전용기의 출발이 지연된다는 사실을 알리러 간 그는 예상과 다른 상황에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괜찮아. 여기서 기다릴 테니, 편하게 일 보라고.”
“…예. 그럼.”
카메라 앞이 아니면 웃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던 박재우가 여자들과 웃으면서 얘기를 나누고 사인을 해 주는 장면은 오랜만에 보는 것이었다. 정확히는 한국 영화 출연 계약을 하러 왔을 때 이후로 처음이었다. 당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 후로 박재우는 여유를 잃었다.
‘뭐가 어찌 됐든. 지금 상황이 나쁜 건 아니야. 이대로 조용히 미국까지 갔으면 좋겠군.’
경호팀장은 자신의 무표정한 얼굴에 감사했다. 평소 무표정해서 손해를 봤던 일은 잊고 눈앞의 상황을 동요 없이 넘길 수 있었던 것에 만족했다. 그는 박재우의 기분이 왜 좋아졌는지는 관심 없었다. 그저 일의 부담이 줄고, 자신이나 자신의 부하들이 화풀이 대상이 될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 기꺼울 뿐이었다.
박재우의 기분은 경호팀장이 짐작한 대로, 누구나 알 정도로 굉장히 좋은 상태였다. 수년간 공을 들인 마크를 쓰긴 했지만, 이태주라는 우환거리를 치울 수 있다면 남는 장사였다.
‘능력이 돌아올지도 모른다.’
마크가 이태주만 제거해 준다면 뺨에 찍힌 낙인도 지워질 것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그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모든 일을 손쉽게 처리할 수 있었다. 어쩌면 시스템으로 얻은 코인을 사용하게 되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각성한 기억 조작능력을 다시 사용하게 될 수도 있었다.
이태주에게 직접 당한 봉인 인장과 다르게 기억 조작 능력은 금제 당한 지 오래였지만, 박재우는 그런 희망감을 느끼고 있었다.
정원사 협회에서 지원해 준 금제 주문서로 한 금제는 태주를 제거해도 그대로일 테지만, 그는 그런 사실은 전혀 짐작하지 못했다. 덕분에 박재우의 기분은 하늘을 나는 구름처럼 붕 뜬 상태였다.
*
태주는 박재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의 출국 일행에서 누가 빠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만약 알았다고 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을지 몰랐다. 그와 2호, 쿠첼루스까지 모두 눈앞의 상황에 정신이 팔려 있어서였다.
‘태주 씨. 보셨습니까?’
‘봤어요. 어떡하죠. 우리 산이가 천재인가 봐요.’
‘단연코 우리 산이는 천재입니다.’
‘역시 그렇죠?’
‘호, 촬영은 잘되고 있습니까?’
‘쿠첼, 안심하세요. 저도 찍고 있어요.’
댄스 스튜디오 벽 근처의 키 큰 성인 남자 셋의 강렬한 눈빛을 받은 강사가 부담 때문에 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태산이가 그들의 예상보다 너무 뛰어나서였다.
수업 초반 태산이가 제 나이보다 두세 살은 많은 누나, 형들 사이에 끼지 못하고 뒤쪽에 섰을 때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곧잘 따라하는 모습을 강사가 발견하고 앞줄로 자리를 옮겨 주었을 때부터였다. 한 번 보여 준 동작을 바로바로 따라 하는 모습에 태주와 쿠첼루스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야이야, 이야호.
-오른팔, 왼팔, 점프.
키즈 댄스 수업에 동요뿐 아니라, 가요나 팝송도 쓰인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등록을 고민했던 태주였지만, 현재 그런 마음은 남아 있지 않았다. 웃음꽃이 펴서 강사의 동작을 열심히 따라 하는 꼬맹이의 얼굴에 이미 학원에 보내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깨끗이 지워져 있었다.
‘학원도 괜찮구나.’
태주의 머릿속에서 느긋하게 호박 섬에서 수영하며 휴가를 보낸다는 계획이 사라지고, 태산이와 같이 방문할 학원 목록이 작성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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