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04
304. 팬 사인회 >
태주는 이른 아침부터 마당에 나가는 중이었다. 그는 제 손을 잡아끌며 서두르라 보채는 아이를 못 당하겠는지 슬쩍 끌려가 주었다.
“하나, 둘, 셋, 넷. 우리 산이 잘하네.”
“꺄하하.”
그는 전날 학원에서 배운 댄스를 바로 해 보려는 아이를 붙들고 스트레칭을 시켰다. 자신이 스트레칭을 할 때마다 자전거를 타거나 정원을 뛰어다니던 아이가 옆에서 얌전히 같이하는 게 재밌었다.
“지난번에는 뭐 배웠어?”
“인디엉.”
“한 꼬마, 두 꼬마 하는 인디언 보이?”
“아앙. 인디어엉
그가 어릴 적 들었던 동요 말고 인디언이라는 노래가 따로 있는 모양이었다. 태주는 스트리밍 사이트에서 아이가 바라는 노래를 찾아 틀어 주었다.
“이야, 이야, 이야, 이야, 호!”
“하하하.”
노래가 시작되자, 태산이는 학원에서 배운 춤을 추었다. 입에 손을 댔다 뗐다 하면서 ‘이야, 호!’를 외치고 두 팔을 들고 허리를 숙였다 일어나면서 빙글빙글 정원을 돌았다.
작은 인디언 꼬마의 신나는 춤사위를 구경하는 태주에게서 기분 좋은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태쭈, 또.”
“노래 다시 켜 줘?”
“앙.”
“알았어.”
키즈 댄스 학원은 일주일에 세 번, 하루 걸러서 다니는 통에 가기 전에 한 번씩 복습할 필요가 있었다. 꿈의 정원에 들르는 태산이는 다른 학생보다 긴 시간을 보내고 학원에 가기도 했고, 정원에선 동물 모습으로 지내서였다.
태주는 노래를 다시 틀어 준 뒤 시간을 확인했다. 오늘은 오전에 회사에 들러야 했다. 광고 연장 계약서에 사인하고 그의 의견이 필요한 몇 가지 사항, 예를 들면 전속 활동 중인 브랜드 관련 행사 참석 같은 일을 결정해야 했다.
‘회사에 다녀와도 학원에 데려갈 시간은 충분하네.’
키즈 댄스 학원에 가는 날 아침마다 벌어지는 연습은 그를 즐겁게 했지만, 슬슬 그만두게 해야 했다. 뜨거워지는 햇볕 때문에 그도 아이도 이마에 땀이 맺히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 저녁엔 아이 방의 넘치는 장난감을 옮겨둔 지하 연습실을 치워야 할 것 같았다.
전원주택 지하엔 꽤 넓은 연습실이 있었다. 그가 연기 연습을 하기 위해 설계할 때 추가한 곳이었는데, 지금은 태산이 방에 이어 두 번째 장난감 창고가 되어 있었다. 나중에 장난감을 정리해서 기부해야겠다고 가끔 말했었는데, 그날이 오늘인 것 같았다.
“이 배우님, 요새 사진 찍히는 게 취미세요?”
“크흠!”
태주는 우 팀장 책상 위 모니터에 나온 화면을 애써 보지 않으려 노력했다. 화면에 최근 그의 외출 사진이 찍힌 기사 창이 여러 개 떠 있었다.
그 기사에는 편한 옷을 입은 그가 태산이 학원 앞 카페에서 음료수를 마시는 사진이나 태산이와 같이 군것질하며 거리를 구경하는 사진이 나와 있었다. 전부 태산이를 학원에 들여보내고 기다리다 찍혔거나, 학원에서 나온 태산이를 마중하다 찍힌 사진이었다.
“일이 없어서 심심하세요? 미니라도 하나 잡아 드려요?”
“…아니요.”
우 팀장은 미안한 표정을 짓는 그녀의 배우를 보고 눈치 주는 일을 그만하기로 했다. 사실 지금도 조금 선을 넘는 대화였다. 게다가 아티스트의 사생활에 관해 먼저 말을 꺼내는 것은 그녀의 원칙에도 맞지 않았다. 만약 대화 상대가 태주가 아니었다면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가 이런 껄끄러운 얘기를 꺼낸 것은 그와 보낸 시간이 이 정도의 말은 건네도 된다는 믿음을 주고 있었고, 원래 하고 싶었던 얘기에 무게를 더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이때 호 씨랑 같이 다니신 것 맞죠?”
“네. 같이 있었어요.”
“사진 찍히시는 건 사실 괜찮아요. 제가 걱정하는 게 뭔지 아시죠?”
“알아요.”
“기자들한테 이 배우님이 다니시는 곳이 노출되지 않게 기사를 써 달라고 부탁하긴 했지만, 모두 협조적인 것은 아니라서요. 꼭 호 씨랑 같이 다니세요.”
고개를 끄덕이는 태주에게 우 팀장은 최근 그의 인기가 국내외로 매우 높아져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알렸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까지 사생활 노출이 거의 없던 그의 일상이 무방비로 공개되고 있었다. 기자들이 벌떼처럼 달려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 얘기는 이제 넘어가고 이쪽 문서 확인하세요. 제일 위는 연장 계약서예요. 그 아래는 행사 내용에 관한 파일하고 새로 들어온 섭외에 관한 것들이에요.”
“흠.”
“연장 계약서는 계약금이랑 기간 빼곤 바뀐 부분은 없지만, 그래도 한번 읽어 보시고 사인하세요.”
“네.”
우 팀장은 태주가 연장 계약서를 확인하는 사이 태주에게 들어온 대본이나 기획서가 든 상자를 정리했다. 차기작 계약 기사가 나간 후로도 그에게 들어오는 섭외 제안은 멈추지 않았다.
섭외 제안이 오는 양은 조금 줄었지만, 대신 보다 양질의 제안이 들어왔다. 짧은 기간에 촬영이 끝나는 기획이나 최대한 그의 스케줄에 맞추겠다는 제안이었다. 물론 가장 조건이 좋은 제안을 이미 골라서 태주에게 넘긴 뒤라, 이 상자 안에 든 것들은 그저 이런 제안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는 정도였다.
“팬 사인회가 서울, 부산 두 차례네요?”
“업체에선 몇 차례 더 하길 바랐지만, 그 두 곳을 제외한 다른 곳은 건물 안이 아니라 외부 행사장에서 해야 해서요. 한창 더울 때라 나중에 가을 시즌 한정 상품 론칭 쇼에 참석하기로 할 계획인데, 팬 사인회 더 하시고 싶으세요?”
“아니요!”
“호호호!”
더위에 약한 그를 위해 일부러 우 팀장이 이벤트 내용을 바꿔 준 걸 되돌릴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태주는 팬 사인회 건은 우 팀장 의견에 따르기로 하고 나머지 문서를 봤다.
팬 사인회 외에도 그가 모델로 활동 중인 의류 브랜드에서 기획한 이벤트용 텀블러 같은 상품에 들어갈 사진 촬영 날짜도 정해야 했고, 몇몇 행사의 개막식 참석 여부도 정해야 했다.
“이 배우님 팬 미팅하신 뒤로 몇 년 지났는지 아세요?”
“어? 한 4년 됐나요?”
“맞아요. 팬 미팅 얘기는 매년 나오긴 하지만, 올해는 특히 요구가 많아서요. 내년 초에 국내랑 아시아 지역 몇 군데에서 하는 건 어떠세요?”
“그때라면 영화도 끝났을 때고, 괜찮네요. 그런데 지난번처럼 큰 공연장 말고 좀 작은 곳으로 해 주세요.”
“최대한 그렇게 되도록 해 볼게요.”
너무 큰 공연장은 부담스럽다는 태주의 말에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한 우 팀장이었지만, 사실 작은 공연장을 잡기 힘들다는 것은 그녀도 태주도 아는 사실이었다. 아시아 지역에서 그의 인기가 너무 높아서였다.
태주는 해외에 수출된 작품 숫자나 거의 하지 않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적은 활동에 비교해 인기가 비정상적으로 높았다. 그런 상황이라 팬 미팅 장소는 전보다 커지면 커졌지, 작아지진 않을 것이다.
“그럼 진행 사항은 견우 씨를 통해서 얘기할게요.”
“네.”
자선 바자회에 낼 소장품을 주말까지 골라서 견우에게 전하라는 우 팀장의 당부를 끝으로 태주의 볼일은 끝났다.
볼일을 마친 그가 우 팀장이 건넨 상자 안의 제안서를 살펴보며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자, 대표실로 갔던 태산이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나왔다. 반바지의 주머니가 불룩한 게, 또 대표님한테 초콜릿이나 젤리를 선물 받은 모양이었다.
-보스락, 보스락!
“태쭈, 가자.”
“그래.”
태주가 포장지 스치는 소리를 내며 다가온 태산이의 손을 잡고 인사한다며 사무실 안을 돌고 나간 얼마 후였다. 대표실에서 흥분한 얼굴의 최 대표가 나와 우 팀장에게 다가왔다.
“우 팀장, 우 팀장.”
“왜 그러세요?”
“우리 산이 말이야.”
“네.”
“한 십 년 전속 계약할까?”
“네?”
우 팀장은 고소당하고도 남을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최 대표를 어이없는 표정으로 봤다. 예전에 로션 광고를 찍을 때도 그러더니, 또 어디에 꽂혀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건지. 뒤통수를 한 대 때려서 정신 차리게 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최 대표는 대표실에서 본 영상들에 이미 정신이 나가 있었다. 태산이가 학원에서 춤추는 영상에 전원주택에서 찍은 영상까지 어느 하나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은 게 없었다. 태블릿의 주인이 2호가 아니었다면, 그 자리에서 뺐어 챙겼을지도 몰랐다.
“우리 산이는 표정부터 손끝까지 그냥 태생이 연예인이야. 가만히만 있어도 그림이더라니까.”
“폴짝폴짝 뛰면서 방긋거리는데, 얼마나 귀엽던지.”
“…이 배우님이랑 항상 같이 있으니, 굳이 따로 계약할 필요는 없을 거예요.”
“아니, 당장 계약해야 한다니까. 이런 인재를 놓친다니 말도 안 돼.”
‘이게 인과응보인가? 괜히 이 배우님한테 듣기 싫은 소리 해서 벌 받는 건가?’
태주와 재계약하고 아직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앞으로 최소 4년은 회사에 소속되어 있을 테니, 최 대표가 죽고 못 사는 태산이도 최소 4년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다. 우 팀장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아무래도 미래의 대스타에게 과몰입 중인 최 대표는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태주 일행이 떠난 사무실에서 우 팀장은 그렇게 헛소리를 늘어놓으며 방해하는 최 대표에게 한동안 괴롭힘을 당했다.
*
서울 영등포 소재의 모 백화점은 오전부터 한 손에 선물로 보이는 물건을 든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의 시선은 백화점에 진열된 물품이 아닌 곳곳에 붙어 있거나 세워져 있는 누군가의 포스터와 등신대로 향하고 있었다.
“어떡해! 너무 잘 나왔잖아. 이 등신대 가져가면 안 되겠지?”
“미쳤어? 당연히 안되지. 그거 그냥 두고, 이리 와서 사진 찍어. 사진 SNS에 올리고 인증하면 추첨해서 화보집 보내 준대. 찍을 거지?”
“당연하지. 이번 화보 표지부터 장난 아니야. 꼭 받고야 만다.”
“그래, 그래. 힘내라.”
‘얼굴 빼곤 볼 것도 없던데, 뭐 그리 지극정성인지.’
극성팬인 친구와 다르게 포토존 앞에서 손짓하는 여성의 표정은 심드렁했다. 그녀는 친구가 매일 입에 달고 사는 ‘우리 태주 오빠’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었다. 가끔 채널을 돌리다가 나오면 보는 정도였다. 팬 사인회에 당첨됐다는 문자를 받은 순간부터 선물을 준비한다고 난리를 친 친구와는 전혀 달랐다.
“오빠 잘 나오게 찍어야 해.”
“그래, 그래.”
곳곳에 있는 등신대와는 다른 이태주의 등신대와 그가 광고하는 브랜드의 로고가 잔뜩 프린트된 포토존의 벽 앞에 친구가 섰다. 조금만 힘을 줘도 부서질 것 같은 허술한 이태주의 등신대였지만, 그런 거라도 옆에 선 게 좋은지 포토존에 선 친구는 싱글벙글하고 있었다.
자신의 번호까지 팬 사인회 추첨에 응모한 친구 때문에 예정에도 없던 팬 사인회에 참석한 그녀는 그런 친구의 카메라를 능숙하게 조작했다. 그리고 기껏 해 봐야 1분 남짓한 시간 동안 얼굴을 보겠다고 며칠 전부터 선물 사고, 옷을 산 친구를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최대한 예쁘게 나오게 찍어 주었다.
“정말이지. 트리즈가 일 좀 했으면 좋겠어. 맨날 오빠 보려고 여기저기 응모하느라 너무 힘들어. 돈도 많이 들고.”
“이태주 영화랑 드라마 계속 나오던데?”
“그건 고맙지. 고맙지만, 부족해. 요새 미튜브에 연예인들이 오죽 많이 나와? 너도나도 다 나오는데, 우리 오빠도 나오면 좋잖아. 나는 큰 거 안 바래. 그냥 오빠가 나와서 밥만 먹든가, 잠만 자도 충분하다니까.”
“…그건 그냥 얼굴만 봐도 좋다는 거 아니야?”
“오호호호! 정답!”
오후 5시에 시작하는 팬 사인회를 오전부터 와서 기다리던 두 사람은 행사장 근처 카페에서 시간을 때우는 중이었다. 그녀들의 근처에는 비슷한 모습으로 팬 사인회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있었다.
“저기 봐 봐. 저기 아저씨도 이태주 팬인가 봐.”
“어디? 저기?”
“어, 저기 외국인 아저씨.”
“이번에 남팬 많이 늘었다더니, 사실인가 보네.”
커피와 케이크를 앞에 두고 스마트폰을 보는 외국인 남성도 그녀들처럼 팬 사인회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옆자리에 둔 쇼핑백 위로 작은 꽃다발이 삐죽 올라와 있었다. 덥수룩하게 수염이 난 외국인 외에도 카페 안 몇몇 테이블에 남팬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시간이 가길 기다리고 있었다.
“한 분씩 들어오세요.”
“입장권 뒷면에 이름을 적어서 사인받으실 때 보여 주세요.”
“나눠 드린 응모권은 이쪽에 넣으세요.”
“천천히, 천천히 들어오세요. 앞사람 밀지 마시고요.”
두 사람은 신분증에 팬 사인회 당첨 문자, 좌석표까지 확인한 뒤에야 행사장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직접 만든 화관을 담은 쇼핑백에 케이크, 무거운 카메라까지 든 그들은 입장할 때 받은 선물 응모권까지 추첨함에 착실히 넣은 뒤에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힘들게 자리에 앉았지만, 두 사람은 솔직히 편하다고는 절대 말하지 못했다. 특히 곧 이태주를 본다며 흥분한 누구와 달리 어쩌다 뽑혀서 따라온 입장에선 더 그랬다. 나아가 수백 명의 사람이 백화점 각 층 난간에 붙어서 행사장을 내려다보고 있어서, 시선에 꿰뚫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꺄아아아!
-안녕하세요.
불편함을 참으면서 얼마간 기다리고 있자, 비명을 닮은 환호성이 온 백화점 안을 울렸다. 두 사람은 목 빠지게 기다린 이태주가 나왔나 하는 생각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지만, 아쉽게도 등장한 것은 행사 진행을 맡은 사회자였다.
사회자가 한참이나 시끄럽게 브랜드 설명과 팬 사인회 참석 방법 등에 관한 얘기를 한뒤에야, 그녀들은 온종일 기다리고 기다린 이태주를 볼 수 있었다.
-꺄아아아!
“안녕하세요, 이태주입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분이 오실 줄은 몰랐어요. 들어오다가 깜짝 놀랐지 뭐예요.”
-우아아아악! 사랑해, 태주야!
“하하하. 저도 사랑해요.”
이태주는 팬 사인회 행사장 안의 팬들과 잠시 눈을 맞춘 뒤, 위층 난간에 매달린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한 번 더 건물 안에 귀를 먹먹하게 만드는 큰 소리가 퍼진 뒤에 팬이 순서대로 한 명씩 단상으로 올라갔다.
팬 사인회가 시작되고 20분 정도 지났을 때였다. 37번, 41번. 중간 번호의 좌석을 뽑은 두 사람이 자신들의 차례를 기다리던 중, 다급한 표정을 한 슈트 차림의 사람들이 무대 옆쪽에서 나타나 무대를 둘러쌌다. 사인을 받던 팬이 경호원들의 안내로 단상에서 내려오고, 안전 장비를 착용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추가로 행사장 안으로 들어왔다.
팬 사인회가 열리던 백화점 안에 어색한 침묵과 긴장이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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