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06
306. 정원의 유령 >
수년간 봐 왔던 익숙한 입구. 정원 입구에 선 태주는 당황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현실에서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정확하게 기억했다. 그래서 정원에 다시 들르지 못하리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태산이는 없구나…. 다행이다, 두고 와서.’
꽃다발을 건넨 남자가 쇼핑 백에서 총을 꺼낼 때까지도 그는 위험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었다. 아니, 실제론 남자가 든 총이 장난감이라고 생각했었다. 총구에서 리본이나 글귀가 써진 깃발 같은 것이 나오는, 파티에서 가끔 보는 그런 장난감이라고 생각했었다.
한국에서, 그렇게 사람이 많은 장소에서 총기 사건이 벌어질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그것도 자신을 대상으로 사건이 벌어지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산 거지?”
총을 맞았을 때를 똑똑히 기억한다. 몇 걸음 떨어지지 않은 장소에서 정확하게 가슴에 맞았다. 순식간에 온몸을 내달리던 통증과 어두워지던 시야를 기억한다. 그 순간 그는 본인의 죽음을 확신했었다.
“내가 아무리 군대를 날림으로 다녀오긴 했지만, 그 정도 거리에서 총에 맞고 살아날 수 없다는 정도는 알지. 아! 아니구나! 살아난 게 아니네?”
태주는 손을 들어 총을 맞은 자리에 가져다 댔지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는 상황에 자신이 정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대로 가슴을 만졌던 손을 눈앞까지 올려 확인한 뒤, 이내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유령이 됐구나, 나.”
손으로 시야를 가렸는데도 정원 안쪽 풍경이 그대로 보였다. 그의 몸은 마치 홀로그램처럼 실체가 없는 상태였다. 근거리에서 가슴에 총을 맞았다. 이런 상태가 된 것은 당연했다.
생각을 정리하고 상황을 받아들이느라 정원 입구에 한참 서 있던 태주가 걸음을 옮겼다. 정원으로 들어가기 전 유령이니 날아가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비행보단 걷는 게 낫겠다 생각했다.
그렇게 유령 모습으로 정원에 들어서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투명한 몸을 바람이 한차례 스쳐 지나간 뒤 익숙한 신형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해나? 정원 입구엔 무슨 일이지?’
해나가 정원에서 제일 많이 가는 곳은 향신료 나무가 있는 구역이었다. 아니면 그가 없는 사이 물고기 밥을 챙겨 주는 연못 정원이 있는 구역이었다. 그가 정원에 들를 때마다 마중 오는 희와 다르게 정원 입구 쪽은 그녀가 거의 오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태주는 무심하게 해나의 옆을 지나갔다. 지금 그는 유령 상태였다. 아무리 해나가 능력이 뛰어나도 살아 있는 존재인 그녀는 자신을 볼 수 없을 터였다.
“정원사 씨?”
“!”
“그게 무슨 꼴이야? 주문서 잘못 썼어?”
“해내 저 보여요?”
“보이는데? 목소리도 들리고. 혹시 투명 주문서 쓴 거였어?”
아니라고 세차게 고개를 저은 그가 해나의 앞으로 돌아왔다. 그는 솔직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해나와 그렇게 오랜 시간을 같이 해 놓고도 그녀의 능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걸, 강력한 드래곤도 한 손으로 제압하는 그녀의 가늠할 수 없는 능력을 떠올리지 못했다는 걸 인정했다.
“정원에서 낯선 기운이 느껴지기에 와 봤더니, 이게 무슨 상황이야? 주문서 때문도 아니라면서, 대체 왜 그런 모습인데?”
“어, 그게….”
“정원사 씨?”
“우, 우선 오두막으로 갈까요?”
“좋아.”
정원 입구에서 설명하든 오두막 안에서 설명하든 어차피 유령 상태라 장소는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는 굳이 장소를 옮기자며 먼저 걸음을 옮겼다. 해나한테 현실에서 있었던 일을 설명하려니, 아주, 순간 말을 더듬을 정도로 아주 부담스러웠기 때문이었다.
특히 2호를 떼어 놓았다가 사고를 당했다고 설명할 일을 떠올리자, 부담이 백배 정도로 늘어난 것 같았다. 유령이라 그럴 리는 없지만, 왠지 등에서 땀이 흐르는 것도 같았다.
*
“정원사 씨 이제 현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해 봐. 왜 항상 들르던 시간이 아닌 지금 정원에 들렀는지, 왜 그런 모습인지.”
“사실 아주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는 일이긴 한데요….”
“죽었어요. 탕! 총에 맞아서요.”
오두막에 도착하자마자 소파로 직행한 해나는 팔짱을 끼고 앉아 턱으로 긴 소파를 가리켰다. 정원에서 그가 자주 사용하는 긴 소파였다.
태주는 긴 소파에 앉아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유령이라 더는 긴장할 필요도 없는데, 해나의 박력에 밀려 저도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다. 그는 얌전히 다리를 모은 뒤, 잠시 주저하면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가벼운 말투로 죽었다 말했다.
“…자세한 설명을 들어야겠는데.”
“그게 어떻게 된 거냐면요. 팬 사인회 도중에….”
팬 사인회장으로 돌아간 태주는 견우에게 얘기했던 대로 이벤트를 속행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가 돌아간 것은 순전히 팬을 위해서였다. 중단되고도 한참 지났는데도 여전히 그를 기다리는 수많은 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단상에 올라간 그는 팬에게 사과의 말을 할 수 없었다. 그의 마이크는 전원이 들어오지 않았고, 견우에게 그 사실을 알리는 사이 팬 사인회가 속행되어서였다. 브랜드의 평판을 걱정한 직원의 독단이었다.
그렇게 다시 시작된 팬 사인회를 이어 가던 중, 돌아간 줄 알았던 형사가 다시 행사장으로 찾아왔다. 또 다른 폭발물 설치 협박 전화가 경찰서로 들어와서 보안 팀장을 만나기 위해서 돌아온 것이었다.
“수백 어쩌면 천 명이 넘는 사람이 건물 안에 있었어요. 게다가 폭발물 탐지 도구를 가진 처리반은 철수한 지 오래라, 돌아올 시간이 부족했었고요.”
“쯧!”
“그래서 호한테 경찰을 도와 달라고 부탁했어요. 호라면 도구 없이도 범인이 알려 준 구역에서 폭발물을 찾아낼 테니까요. 해체도 가능하고요.”
“그것도 허위 신고였을 수도 있었잖아.”
“아니요. 진짜로 폭발물이 있었어요. 시한폭탄이요.”
첫 번째 폭탄 해체 후 호가 태주에게 돌아가려는 것을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말렸다. 호의 능력은 신속, 정확했다. 어느 모로 보아도 백화점으로 돌아오는 중인 폭발물 처리반보다 나았다. 범인들은 마치 그 사실을 아는 것처럼 호와 경찰들을 건물 안 이곳저곳으로 보냈다.
그렇게 호가 사람들에게 붙들려 폭발물을 제거하는 사이에 죽었다는 말로 태주의 설명이 끝났다.
“그런데 죽은 게 맞아? 사기는 전혀 안 느껴지는데?”
“사기요?”
“죽은 자 특유의 기운을 말하는 거야. 시체든 영혼이든 산 자와 죽은 자는 그 기운이 전혀 다르거든.”
“그래요?”
“기운에 둔감한 정원사씨는 못 느끼겠지만, 내가 느끼기엔 그래.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은 살아 있는 채로 영혼만 빠져나온 상태인 것 같아.”
살아 있는 몸에서 영혼만 빠져나온다. 영화 같은 일이었지만, 태주는 해나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신비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많이 보고 겪은 사람이 그였다. 원리나 방식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정원사 씨는 범인의 정체는 모르겠네?”
“이름은 아는데요.”
“그 이름이 진짜일지 확신할 수 없지. 정확한 사정은 나중에 희 아가씨가 돌아오면 물어보자고. 마법사 씨가 되었든 호가 되었든 한 명은 알겠지.”
“그래요.”
“그럼, 정원사 씨. 쉬고 있어. 나는 일 좀 할게.”
“네.”
해나의 말대로였다. 요정 숲에 놀러 간 희와 제피르가 돌아오면, 책 모양 조각상을 통해서 현실과 연락할 수 있었다. 범인의 정체가 밝혀졌는지, 그의 몸 상태는 어떤지 등, 궁금한 것을 물어볼 수 있었다.
“막상 쉬라고 해도 유령 비슷한 상태라….”
해나가 자리를 비워 조용해진 오두막 안에 태주의 허탈한 목소리가 흘렀다. 좀전의 얘기로 유령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여전히 실체가 없는 투명한 몸이었다. 정원에서 할 일이라곤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태주를 오두막에 남겨 두고 트리하우스로 돌아온 해나는 편지지를 찾았다. 그녀는 편지지 묶음에서 한 장을 뽑아 짧게 몇 문장을 쓴 뒤 바로 수신인을 적고 발송했다.
그녀가 사용하는 편지지는 정원에 정착하기 전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때 사용하던 연락 방법이었다. 미리 등록해 둔 대상이라면 위치 상관하지 않고 그 앞으로 전송되는 마법이 걸린 물품이었다.
‘부디 다나가 출장중이 아니길 바라야지.’
태주에겐 나중에 사고 원인을 알아보자고 했지만, 그녀는 내심 짐작 가는 사람이 있었다. 이레귤러, 정원사 협회에서 확실하게 끝내지 않고 어정쩡하게 처리하다만 작자가 의심의 대상이었다.
그녀가 아는 정원사는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본인의 직업, 배우라는 직업에 해가 갈까 봐 대인 관계에서 다소의 손해를 감수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죽음을 부를 정도로 누군가에게 죄를 지었을 거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만약 그런 상대가 있다면 이레귤러 정도뿐이었다.
‘만약 이레귤러의 소행이라면,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이미 협회의 인물들에게 수차례 이레귤러 처리가 늦다고 얘기했었다. 정원사 곁에 있는 위험 요소를 신속하게 배제하기는커녕 길잡이 섭외를 핑계 대며 차일피일 처리를 미뤘다. 협회의 늦장 대응 때문에 정원사의 생명이 위험해졌다.
정원사의 영혼이 몸에서 빠져나올 정도로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아마도 마법사가 무슨 방법을 사용해서 죽음을 막은 것 같았지만,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언제든 최악의 상황은 벌어질 수 있었다.
해나는 자신이 정착할 마음을 먹게 할 정도로 평화롭고 온화한 분위기로 정원을 가꾼 태주가 그런 일을 당하게 둘 마음이 없었다. 그녀는 정원사 협회의 창고를 탈탈 털어서라도 모든 것을 정상으로 돌려 놓을 생각이었다. 더불어 그녀가 보호하는 정원사를 위험에 처하게 한 협회한테 화풀이도 하고.
“호호호호! 정원사 씨 지금 뭐 하는 거야?”
“그게요, 여기 들어와지는 거 있죠.”
협회를 뒤집어 놓을 때 자신의 백업을 맡길 다나에게 편지를 보낸 해나는 서둘러서 오두막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정원사의 영혼에서 죽은 자의 기운은 전혀 느끼지 못했지만, 그래도 눈앞에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해나는 태주를 찾기 위해서 오두막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도도의 플레이 하우스 안에서 그의 기척이 나서였다.
“영혼 상태라서 그런지 이 안으로 들어올 수 있었어요.”
“그래서 어미 새가 알 품듯이 그러고 있었던 거야?”
“오랜만이잖아요. 매일 창 너머로 보기만 했는데, 이렇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된 건.”
“뭐, 정원사 씨만 좋다면야. 하루 종일 그러고 있어도 괜찮지.”
본인의 몸이 어떤 상태인지, 영혼이 몸으로 무사히 돌아갈 수 있는지 등등을 걱정하고 있을 줄 알았던 정원사는 도도의 플레이 하우스 안에서 알을 품고 있었다.
정원에 들르면 항상 제일 먼저 도도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그렇게 확인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듯했다.
“껍질도 반짝거리고 어쩐지 따뜻한 것 같아요. 아칸 말대로 아주 건강한가 봐요.”
“그러게 걱정할 필요 없다고 했었잖아.”
해나는 정상이 아닌 본인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알을 보며 좋아하는 태주의 모습에 실소했다. 아무리 봐도 위기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태평한 모습에 조금 심술도 났다. 그렇지야 않겠지만, 혼자만 걱정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곧 희 아가씨가 돌아올 시간인데…. 희 아가씨가 많이 놀랄 텐데, 걱정이네. 제피르도 그렇고.”
“으아! 정말 그렇네요. 어떡하죠?”
“고민해 보라고, 정원사 씨. 난 이제 저녁을 준비해야 해서, 그만 들어가 볼게.”
“어, 어떡하지. 큰일이네.”
약간의 심술을 부려 당황하는 모습을 본 해나는 만족스럽게 웃으며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서 놀라고 당황할 게 뻔한 정원 식구들을 위로할 음식을 준비할 계획이었다. 태주가 영혼 상태라 현실로 보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실에 남은 마법사와 태산이를 위한 음식도 준비해 둘 생각이었다.
*
“으아앙! 태주, 태주가.”
“쉬이! 괜찮아, 희. 걱정할 필요 없어. 쿠첼이 있잖아. 쿠첼한테 방법이 있을 거야.”
“정원사 씨 말이 맞아, 희 아가씨. 진정하고 마법사 씨한테 연락해 보자고. 아마 마법사 씨한테는 방법이 있을 거야.”
“그치만….”
“희 아가씨, 마법사 씨한테 연락되지? 우선 정확한 사정을 알아보자고.”
“응, 희가 연락할게.”
태평한 태주에게 심술부리느라 희의 이름을 들먹였던 해나였지만, 실제로 희가 대성통곡을 하자 달래기 바빴다. 그녀는 우느라 휘청거리면서 공중을 날던 희를 위해 손바닥 위에 손수건을 펼쳐서 받쳐 준 뒤, 손끝으로 조심스럽게 머리를 쓸어주었다.
마음 같아서는 성에 찰 때까지 울게 두고 싶었지만, 해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손바닥 위에서 우는 희를 달래는 한편 책 모양 조각상 방향으로 이동을 서둘렀다. 작은 요정 희를 누구보다 아끼는 그녀의 평소 모습과 달랐지만, 상황이 그만큼 위중해서 어쩔 수 없었다.
“응, 응. 알았어. 희가 전해 줄게.”
“그건 태주한테 물어볼게.”
“어, 어어. 그건 희랑만 얘기해야 해. 태주가 알면 안 되는 거야.”
“응. 그럴게.”
태주와 해나는 희가 쿠첼루스와 연락하는 동안 책 모양 조각상의 깨끗한 페이지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혹시나 대화 내용이 출력되는 게 아닌가 해서였지만, 아쉽게도 그렇지는 않았다. 조각상 위쪽에 앉은 희가 허공 어딘가에 시선을 주는 것으로 보아, 그곳에 메시지 창이 떠 있는 것 같았다.
쓸데없이 보안이 좋은 조각상을 탓하면서 기다리길 잠시, 희가 대화를 마치고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쿠첼이 태주 괜찮냐고 물어서 그렇다고 했어. 그리고 어, 태주 융은 I, IC, 우음?”
“ICU? 집중 치료실?”
“응. 수술 마치고 거기에 있대.”
“희 아가씨 혹시 범인에 관한 건 들은 게 있어?”
“으응. 들었는데, 그게….”
쿠첼루스한테서 범인이나 태주의 현재 상태 등에 관해 많은 설명을 들었지만, 정확하게 어떻다고 알려 주기는 힘들었다. 직접 마법을 사용하는 희였지만, 마법진이 어떻고, 제물의 희생으로 반작용이 어떻고 하는 마법사의 장황한 설명을 두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어려웠다. 설명의 반 이상을 알아듣지 못해서였다.
“이, 이레귤러가 시킨 일이래.”
“정말?”
“응. 쿠첼이 반작용이 어떻게 했대. 그래서 알았대.”
“어, 그렇구나.”
태주는 희의 부실한 설명에서 과정을 추론하느라 그의 옆에서 누군가가 몸을 푸는 것을 보지 못했다. 드래곤도 우습게 다루는 지상 최강의 생명체, 세간에서 종종 최종 병기라 회자되는 존재의 눈에서 발하는 살벌한 광채를 미처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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