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11
311. 연행 >
이야기를 마치고 태주의 병실로 다시 들어선 쿠첼루스는 다시 한번 카메라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제 형의 품에서 살짝 입을 벌리고 잠든 아이와 그런 아이의 머리에 입술을 묻은 채로 눈을 감고 있는 태주의 모습은 그냥 놓치기엔 너무 아까웠다.
-찰칵! 찰칵!
“으음. 호랑 얘기 끝나셨어요?”
“예. 이 사진 연우한테 보내도 됩니까?”
“네. 아! 매니저님한테도 보내 주세요. 산이 와 있는 거 보시면 안심하실 거예요.”
“알겠습니다.”
쿠첼루스는 태주의 부탁대로 연우와 견우에게 사진을 보냈다. 물론 요 며칠 그에게 폭발적으로 메시지를 보낸 덕질 동지에게도 한 장 인심을 썼다.
“회사에선 뭐라고 했습니까?”
“브랜드 측이나 백화점하고는 피해 보상을 받고 합의하는 정도로 끝날 것 같다고 했어요. 사실 그쪽은 그 정도로 끝내는 게 가장 무난하긴 하죠.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할 상대니까요.”
“수사 상황에 관한 얘기는 없었습니까?”
“제가 아직 환자라서 그런지 말을 아끼시더라고요. 그래도 간단하게는 들었어요. 스토커 사건으로 처리될 것 같더라고요.”
“스토커요? 테러나 청부 살인이 아니라, 겨우 스토커요?”
태주의 설명을 들은 쿠첼루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대체 어떻게 하면 한국에서 폭발물을 설치하고 총기를 사용한 사건이 그렇게 축소될 수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지금도 연일 뉴스에서 난리고 병원 밖엔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는데, 겨우 스토커 사건으로 마무리 짓겠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대외적으로 발표는 그렇게 하고 수사는 계속할 것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범인이 계속 단독 범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쯧! 범인에게 모종의 사정이 있는 모양입니다.”
“그런 것 같아요.”
경찰에선 이번 사건을 태주의 스토커가 벌인 일이라고 축소해서 발표했다. 혼란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였다. 물론 총기와 폭발물 입수 과정, 테러에 협조한 조직 등에 관한 수사를 멈출 계획은 없었다.
예전 고용주였던 박재우에게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지만, 범인이 그쪽과의 연관성을 극구 부인하는 중이라 수사가 힘든 점도 있었다. 그렇다고 그의 주장만으로 수사를 포기할 정도로 경찰이 무능하진 않았다.
“태우랑 연우는 저녁에 온다고 했었죠?”
“네. 낮엔 아무래도 보는 눈이 많아서요. 태우는 군인 신분인데 괜히 기사에라도 나왔다가 안 좋은 소리 들을까 봐서요.”
“통화는요?”
“아까 했어요. 먹고 싶은 것 없냐고 몇 번이나 묻는 바람에 대답하느라 혼났어요. 자기 먹고 싶은 거나 챙겨 먹을 것이지, 군대에서 제대로 못 먹었을 텐데….”
“하하하. 걱정돼서 뭐라도 해 주고 싶으니 그런 거지요.”
동생들의 연락 외에도 오전 중에 전화를 여러 번 받았다. 오늘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긴다는 걸 아는 지인들에게서였다. 물론 그중에는 반가운 연락도 그리 반갑지 않은 연락도 있었다. 지난 칠 년여간 단 한 번도 연락이 없던 아버지에게서 소속사로 온 연락이 그것이었다.
자주는 아니더라도 생일이나 명절에는 꼬박꼬박 연락하는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와는 오랫동안 연락도 왕래도 없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던 견우는 아버지에게 태주의 번호를 넘기지 않았다. 아침에 그 일을 말하며 연락처를 전해 줄지 물었었다.
‘안색이 안 좋은데…. 또 잠을 안 주무셨나?’
견우의 질문을 떠올리던 태주의 눈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쿠첼루스의 눈 밑이 들어왔다. 척 봐도 피곤해 보이는 모습에 쿠첼루스의 건강이 걱정스러웠지만, 누가 누구를 걱정하냐는 말을 들을 것 같아서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정말 연락할 마음이 있었다면, 회사가 아니라 태우한테 먼저 연락했어야지. 어머니처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랬어야 해.’
태우가 군대에 있을 거라고 판단해서 연우에게 먼저 연락한 어머니와 다르게 아버지는 회사로 연락했다. 번호가 수시로 바뀌는 그와 다르게 처음 개통한 이후로 줄곧 같은 번호를 쓰는, 여전히 사용 중인 태우의 번호가 아닌, 회사 사이트에 공개된 대표 번호로.
태주는 아버지에게 연락처를 건네냐는 견우의 질문에 고개를 저었었다. 냉정하다고 욕해도 상관없었다. 그는 회귀 전과 후를 합쳐 이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을 남처럼 지낸 아버지보다 지금 그의 곁에 있는 사람이 더 소중했다.
면회 제한이 있는 중환자실로 찾아와 밤을 새우고 얼굴도 못 보고 돌아간 동생들이나, 며칠간 밤낮으로 병실 밖을 지킨 2호, 태산이를 돌봐 주고 여러 가지 일을 대신 처리해 준 쿠첼루스 그리고 지금도 정원에서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희, 해나 같은 이들이 그의 가족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호야?”
“호가 협회 사람들의 안내를 맡기로 했습니다.”
“조심해, 호야. 혹시 집에 들렀다 갈 거면 내 방탄 우산 챙겨 가. 이럴 줄 알았으면 방어용 물품을 미리 챙겨 둘 걸 그랬다.”
“괜찮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태주 씨. 필요한 물건은 제가 충분히 챙겨 주었습니다.”
2호의 외출이 박재우 체포를 위한 일이라는 걸 안 태주의 표정에 짙은 걱정이 깃들었다. 직전까지 그의 기분을 가라앉히던 아버지에 관한 생각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그의 머릿속엔 온통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며칠째 무리하는 2호의 걱정뿐이었다. 2호가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한 달 정도는 충전 없이 움직일 수 있는 전투 인형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그랬다.
“저도 오후엔 일이 있어서 돌아가 봐야 하는데, 연우가 오기 전까지 시간이 비어서 걱정이군요. 견우 씨에게 와 달라고 부탁할까요?”
“괜찮아요. 몇 시간이나 된다고요. 밖에 의료진이 24시간 대기 중이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도 혼자 계시는 것보다 누구라도 곁에 있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여기 한 명 있잖아요.”
“…그렇, 군요.”
태주의 옆구리에 붙어서 쿨쿨 자는 꼬맹이도 누군가는 맞지만, 믿음직하냐고 묻는다면 그렇다 답하기 힘들었다. 쿠첼루스는 깊이 잠들었는지 대화 소리에도 깨지 않는 아이에게서 시선을 돌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꼬맹이가 태주를 챙기긴커녕 되레 태주가 나서서 꼬맹이를 챙겨야 할 테지만, 그는 괜히 아니라고 했다가 꼬맹이의 자잘한 장난에 시달리고 싶지 않았다.
*
태주와 쿠첼루스가 대화하는 사이 2호의 뒤를 몰래 따라나섰던 제피르는 곧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비행 속도가 빠른 제피르였지만, 순식간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2호를 따라갈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공을 날던 제피르가 아래쪽으로 어느 정도 내려왔을 때였다. 멀찍이 앞서갔던 2호가 길을 되돌아왔다. 빠른 속도로 돌아온 그는 이미 제피르가 따라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손바닥을 펴서 내밀었다.
“히이힝!”
“괜찮습니다. 빠르게 달릴 테니, 옷 속으로 들어오시겠습니까?”
“히잉.”
“옷 자체에 방어 기능이 있어서 풍압을 어느 정도 막아 줄 테지만, 방어막을 치는 게 좋을 겁니다.”
-땅!
“잘했습니다. 그럼, 이리로.”
2호는 빠른 속도로 움직일 걸 예상하고 운동복으로 옷을 바꾼 상태였다. 운동복 상의 지퍼를 열어 작은 유니콘을 품은 뒤, 그는 한 손으로 제피르의 몸을 잡아 주며 다시 달렸다.
벼르고 있던 이레귤러를 치우는 일이었다. 당장 위험은 없었지만, 한시라도 빨리 치우고 싶었다. 2호는 당한 것을 조금이라도 더 갚아 주길 바라는 쿠첼루스와 다르게 태주를 해친 이레귤러를 태주와 같은 공간에 두고 싶지 않았다.
-슈아앙!
한 줄기 바람이 된 2호의 신형이 도시의 높은 건물과 복잡한 도로를 가르고 지나갔다.
박재우의 저택이 보이는 인근의 건물에 도착한 2호와 협회의 두 명은 쿠첼루스의 준비성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마치 모든 상황을 계산한 것처럼 세 사람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해 주었다. 전세기, 차량, 안내인, 베이스캠프 등. 모든 것들이 적절한 순간에 그들에게 주어졌다.
“저곳이군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음.”
이나타는 2호의 물음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마법에 제약이 없는 상태였다면, 저 정도 규모의 저택을 제압하고 수색하는 건 아주 간단한 일이었다. 가벼운 수면 마법 한 방이면 충분할 정도로 어렵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렇게 하기 힘들었다.
“2호. 저희를 도와주시겠습니까?”
“네, 말만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요원 S와 전투 인형 2호가 앞선다면, 마법 사용에 제한이 있긴 해도 일이 어려울 것 같진 않았다.
저택으로 진입하는 일도 경비를 제압하는 일도 모두 이나타의 예상대로 어렵지 않았다. 아니, 예상 이상으로 쉬웠다.
저택은 잔디나 수영장 같은 시설의 관리는 매우 잘 되어 있었지만, 그곳을 지키는 사람들의 관리는 엉망이었다. 마치 책임자가 없는 것처럼 느슨하게 지키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조용히 제압하고 목표에게 다가가는 것은 전투에 숙련된 그들에겐 무척 손쉬운 일이었다.
“이런 상태라니!”
“이나타, 이제 어떻게 합니까?”
“잠시만요. 잠시만 생각할 시간을 주십시오.”
저택 진입보다 오히려 목표가 문제였다. 방안에 자욱한 연기와 여기저기 흩어진 하얀 가루들,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늘어진 목표, 박재우. 그들은 저택의 경비를 가볍게 제압하고 화려한 저택의 복도를 통과할 때까지도 목표인 이레귤러 박재우의 상태가 이럴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범인을 연행하기 전에 어떤 범죄를 저질렀는지 고지해야 하는데, 박재우는 그게 불가능한 상태였다. 언제부터 이런 약을 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는 의사소통은커녕 의식조차 없었다.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게 먼저일 것 같습니다만…. 이나타 가능하겠습니까?”
“단순하게 잠들 거나 기절한 상태라면 가능하겠지만, 이 상태라면 어렵습니다. 대체 어떤 약에 취했는지 모르겠지만, 각성 마법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습니다.”
“후우!”
박재우가 누워 있는 방은 작은 소품 하나까지도 고가의 물품이었다. 벽에 걸린 그림도 그들이 밟고 선 카펫도 마찬가지였다. 문외한이 보더라도 그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이곳에서 유일하게 어울리지 않는 게 있다면, 지저분한 몰골로 가슴팍을 움켜쥐고 소파에 널브러진 박재우뿐이었다.
‘조사했을 때 약을 한다는 얘기는 없었는데, 쿠첼루스의 마법진 때문인가?’
정신을 못 차리고 흐느적거리는 박재우를 앞에 두고 협회의 두 사람은 당황하고 있었지만, 2호는 이곳에서 대략 어떤 상황이 벌어졌는지 추측할 수 있었다.
쿠첼루스의 마법진은 현실의 어떤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었다. 통증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수술을 해도 정신적 고통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지독한 마법진에 당한 박재우가 가슴의 통증을 참다못해 손대면 안 될 물건에 손을 댄 것 같았다.
“지독한 저주입니다. 이건 혹시 쿠첼루스 씨의 마법입니까? 정원사님을 해친 상대에게 그 피해를 몇 배로 되돌려 준다던?”
“아마 그럴 겁니다.”
“이 상태에서 정신을 차리게 하려면 각성 마법뿐 아니라 여러 가지 마법을 동시에 사용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해독, 해주에 정신 보호 마법까지 필요합니다. 지금 제 상태로는 무리군요.”
“그럼 약효가 사라져 자연스럽게 깰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그건 시간이 너무 오래….”
-콰르르릉!
-쾅!
이런 상황을 예상한 것은 아니었을 테지만, 2호에겐 몇 가지 마법 주문서가 있었다. 해독, 해주의 마법 주문서가 그것이었다. 2호의 안전을 위해서 쿠첼루스가 챙겨 준 물건이었지만, 그것에 관해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다.
-파지지직!
-파직! 파직!
방 안에 있던 세 명의 고개가 한곳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한국에서부터 2호를 따라온 황금색의 작은 유니콘이 있었다. 조용히, 있는 듯 없는 듯 따라온 골든 유니콘은 금방 번개를 쏟아 낸 것을 증명하듯이 스파크가 파직 거리는 뿔을 길게 앞으로 내민 채였다.
-짝! 짝! 짝!
“훌륭합니다, 제피르. 그게 이번에 랜덤 기술석에서 얻은 기술입니까?”
“히이잉!”
“멋집니다.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같은데….”
-콰르르릉!
“끄아아아!”
놀라운 전개에 입만 벌리고 있는 협회의 두 사람과 다르게 2호는 재빠르게 어떤 상황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했다. 태주한테 의뢰의 보상으로 얻은 랜덤 기술석을 제피르에게 주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짝, 짝. 다시 한번 박수를 친 2호는 옆에서 느껴지는 따가운 시선은 모른 척하고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내리 두 번의 벼락을 맞은 박재우가 정신이 드는지 바들거리기 시작해서였다. 만약 정신이 들어서 바들거린 게 아니더라도 그렇게 만들 방법은 여러 가지 있었다. 이나타의 것처럼 온건한 방식은 아니지만.
“크으윽! 이, 게 무슨….”
“…정신이 드십니까?”
“뭐, 뭐야? 당신들 누구야?”
“그건 궁금해하실 필요 없습니다. 박재우, 당신을 차원법 위반의….”
예전 봉인 인장을 찍힐 때 봤던 2호를 기억해 낸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앞에 펼쳐질 미래가 평탄하지 않을 것이라고 눈치챈 것인지. 박재우는 2호의 팔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전투 인형인 2호에게서 벗어나기에는 너무 미약했다.
이나타는 무릎 꿇은 박재우를 향해 한참 동안 그의 죄목이 담긴 문서를 읽어 주었다. 그 뒤 아공간에서 범인을 구속할 물건을 꺼냈다. 백색의 큐브. 가장 흉악한 범죄자에게 사용하는 물건으로 범죄자의 정신과 감각을 박탈하는 기능이 있었다.
“들어가십시오.”
“놔! 놓으란 말이다. 너희 뭐야! 누구냐고!”
“시끄럽습니다.”
“너희 전부 가만 안 둬. 내가 누군 줄 알아! 아아악! 놔! 놔아!”
박재우는 하얀 공간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를 제압하고 있는 2호가 생각보다 힘을 주어 끄는 게 아니라서 어느 정도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그는 그것이 그의 공포심을 부추기려는 2호의 심술이라는 것은 몰랐다.
-퍽!
“악!”
“….”
“….”
“히이잉!”
그러나 2호의 그런 심술은 오래가지 못했다. 느릿느릿 흰색 큐브로 다가가는 박재우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누군가의 발차기가 뒤통수에 작렬했기 때문이었다.
-짝! 짝! 짝!
“훌륭한 발차깁니다, 제피르.”
기절한 이레귤러를 하얀 공간 안으로 던져 버린 2호가 다시 한번 손뼉을 치며 제퍼르를 칭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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