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13
314. 부화 >
이나타는 태주의 선택을 반겼다. 정원사가 선정되는 기준은 협회 임원인 그녀도 잘 몰랐다. 그러나 정원사로 뽑힌 이들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후 어느 정도 그 기준을 파악할 수 있었다.
정원사 대부분은 정원 관리뿐 아니라 현실의 일에도 열심이었다. 본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고 그와 동시에 좋은 영향력을 주변에 끼치는 이들이었다. 그들은 결코 무언가를 타인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정원사가 꿈의 세계의 주민이 되는 것은 처음인가.’
수명이 짧은 인간 정원사가 드문 것도 있겠지만, 정원사들은 기본적으로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이주를 선택한 정원사가 없었다.
사실 마지막 순간 정원을 방문하는 정원사도 거의 없었다. 현실에서 조용히 잠드는 걸 선택하는 정원사가 대부분이라 협회에서 정원사의 부재를 알아차리는 게 늦는 일도 많았다.
“그럼 이제 대마법 주문서를 사용하겠습니다.”
“네. 아!”
“무슨 일이십니까?”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이나타 씨 하시려던 일 하세요.”
“예.”
태주는 이나타의 손에 들린 대마법 주문서를 보고 쿠첼루스가 떠올렸다. 언제나 그가 가져오는 주문서를 흥미로워하던 쿠첼루스였다. 예전에도 비슷한 주문서를 몇 번 보긴 했지만, 이번에는 그때와 비교하기 힘든 대마법 주문서였다. 그걸 호기심 많은 마법사가 보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파앗!
“우앙! 태쭈!”
“산아, 이리 와. 제피르도.”
“히이힝!”
이나타가 주문서를 찢자 복잡한 마법 문자의 띠가 얽히고설킨 구체가 병실 가득 생겨났다. 평화롭고 안정적인 분위기였던 병실 안이 한순간에 웅장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바뀌었다.
그런 생경한 광경에 놀랐는지 제피르와 콩콩거리며 소파 위에서 뛰며 놀던 태산이가 그를 찾았다. 태주는 급히 곁으로 다가온 아이와 작은 유니콘을 품에 안고 마법 문자가 사라지길 기다렸다.
“다 됐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이나타의 선언을 듣는 태주의 얼굴에 미묘한 표정이 떠올랐다. 몇 년간 손톱 밑의 가시처럼 그를 찌르던 존재가 사라진 것이 속 시원하기도 했지만, 경각심도 들게 해서였다. 욕심에 먹혀 남을 해치는 걸 당연하게 여긴 박재우의 말로를 보자,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재우에게는 못 미치겠지만, 그 역시 정원의 상점을 통한다면 언제든 강력한 물품이나 힘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런 것들을 남용하거나 오용하면 그 역시도 비슷한 결말을 맞게 될지 몰랐다.
“태쭈, 끈나떠?”
“응? 응. 끝났어.”
“그덤, 사니 제피드랑 아이수크딤 머거?”
“…낮에도 먹었는데 아이스크림을 또 먹겠다고?”
“과앙거 연뜹! 사니 연뜹 하께.”
꼬맹이는 낮에 들렀던 견우에게서 아이스크림 광고 얘기를 듣자, 그가 말릴 새도 없이 광고를 찍겠다고 나섰었다. 그리고 지금 댄스 스쿨에서 배운 연습이라는 단어를 아이스크림을 먹는 데에 쓰고 있었다. 광고 연습이 아이스크림을 먹을 완벽한 핑계라고 생각하는지, 뿌듯한 얼굴이었다.
“광고 촬영은 보름도 더 남았는데, 무슨 연습을 벌써 해.”
“아앙. 연뜹.”
“꼬맹이, 아이스크림은 하루에 한 번만 먹어야지.”
“태쭈 아이수크딤 주떼요.”
“귀, 귀엽게 굴어도 안 돼. 배탈 난단 말이야.”
태주는 꼬맹이와 실랑이하느라 박재우의 최후를 보면서 느꼈던 경각심을 잊어버렸다. 그는 냉장고 앞을 막아선 채 귀여운 아이의 귀여운 투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닥치지 않은 미래의 일보다 작금의 상황이 더 중요했다.
이나타는 이레귤러 처벌이 진행되는 동안 어두워졌던 정원사의 표정이 펫이 곁에 다가가자 금세 평소처럼 돌아온 것을 확인했다. 정원사의 상태는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아끼는 펫이 곁에 있는 한 그는 문제없었다.
‘그보단 쿠첼루스 씨가 대마법의 영향을 받지 않았어야 하는데.’
정원 일꾼 신분을 유지하고 있었다면 대마법의 영향을 걱정할 필요 없었지만, 그렇지 않아서 걱정이었다. 몇 가지 대처 방안을 마련해 주고 오긴 했지만, 워낙 강력한 효력을 가진 주문서라 제대로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곧 걱정을 털어 버렸다. 마법의 제약이 큰 지구에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법진을 개선하고 마법 물품의 성능을 크게 끌어낸 사람이었다. 자신이 건네준 물품으로 기억이 바뀌는 것을 잘 막아 냈을 것이다.
“그럼 이만 저희는 협회로 돌아가겠습니다.”
“이나타 씨랑 요원님 수고 많으셨어요.”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하하하. 그럼 정원에서 만나요.”
“예. 곧 정원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지구에 있는 동안 꿈의 세계는 시간이 많이 흐른 상태였다. 이나타와 요원 S는 인사를 마치자마자 귀환 주문서를 사용했다. 주민 추천 서류 작성, 집행 결과 보고와 보상 책정, 쿠첼루스의 일꾼 고용 계약서 전달 등, 돌아가서 할 일이 많았다.
*
아이스크림을 먹겠다고 떼쓰는 태산이를 겨우 달랜 태주는 오랜만에 평화로운 저녁을 맞이했다. 그는 쿠첼루스와 2호가 수년간 박재우를 견제한 걸 알고 있었다. 자신보고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으면서 두 사람은 꾸준히 박재우의 동향을 감시했었다.
큰일이 있긴 했지만, 이제 두 사람이 박재우 때문에 시간을 버리는 일 없이 본인의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된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더불어 더는 박재우에 의해 기억이 바뀌는 피해자가 생기지 않게 된 상황도 그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제피드 요기, 요기 찌거.”
“히이잉.”
-탁! 탁!
“요기눈 보다새기야.”
물론 이런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잠들려면 잉크 범벅인 두 녀석을 씻기는 게 먼저였지만, 그런 것은 그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태쭈 이꺼.”
“오늘 날짜로 맞춰 줘?”
“앙.”
날짜 스탬프의 숫자를 맞춰서 건네자 꼬맹이가 스케치북의 한구석에 짙은 녹색 잉크를 묻혀 꾹 눌렀다. 날짜 스탬프를 찍음으로써 태산이와 제피르가 함께 만든 스템프 작품이 완성되었다.
최근엔 태산이는 크레용이나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별, 달, 동그라미 같은 도형이나 토끼, 강아지 같은 동물 모양의 스템프를 찍어서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다. 거기에 오늘은 제피르의 말굽 발 도장이 추가되었다.
“자, 이제 씻자.”
“아앙. 이따가 하께.”
“착하지. 오랜만에 제피르랑 셋이 잘 거니까. 깨끗하게 씻자. 제피르 발도 씻고.”
“히이잉.”
“앙. 아라떠.”
제피르와 같이 자는 게 기대되는지, 태산이의 이따가 타령이 금방 끝났다. 덕분에 태주는 얼마 걸리지 않아서 양팔에 씻고 베이비 로션까지 착실하게 바른 태산이와 뽀송뽀송하게 털을 말린 제피르, 귀여운 두 아이를 안고 잠들 수 있었다.
“셋이 같이 정원으로 돌아오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그렇지?”
“히이잉.”
“냐앙.”
“가자.”
익숙한 정원의 입구를 지나는 태주의 표정은 전에 없이 밝았다. 정원에 들를 때면 항상 즐거운 표정을 짓는 그였지만, 오늘은 다른 때보다 더 밝아서 흥분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었다.
“제피르!”
“히이잉!”
“희, 다녀왔어.”
“응. 어서 와. 이히히.”
정원 입구로 그를 마중 나온 희는 일행에 제피르가 포함된 것을 보더니, 흥분해서 사방을 날고 있었다. 며칠 동안 못 본 황금색의 작은 친구가 무척 반가운 모양이었다.
태주와 태산이는 머리 위에서 빙빙 돌면서 재회를 기뻐하는 둘을 두고 정원 안쪽으로 들어갔다. 태주는 해나가 기다리고 있을 오두막 방향으로, 태산이는 정원을 둘러보러 수풀 사이로 향했다.
“해나, 저 왔어요.”
“오늘따라 목소리가 힘차네.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어?”
“있었어요.”
“호호호. 그럼 냉차 한 잔 마시면서 천천히 들어볼까?”
“좋아요.”
태주는 현실에서 있었던 일들, 협회에서 나온 두 사람이 이레귤러를 연행한 일과 태산이가 제피르와 그림을 그리면서 논 일 등을 해나에게 얘기했다. 사실 이나타가 그에게 제안했던 꿈의 세계 이주 얘기를 할 생각이었는데, 어쩐지 그 부분은 말하기가 멋쩍었다.
“제피르랑 산이가 같이 그린 그림이라니, 보고 싶은걸.”
“그럴 것 같아서 사진 담아 왔어요.”
지금까지 태산이가 그린 그림들은 모두 모아 두었다. 전원주택 태산이 방에 있는 책장에 첫 번째 스케치북부터 가장 최근에 사용한 스케치북까지 전부 모아 놨다. 물론 사진으로 찍어 태블릿에 담아 두기도 했다.
“호오. 이젠 제법 잘 그리는걸.”
“노래도 잘 부르고 춤도 잘 춰요. 재능도 있고 재밌어하기도 하니, 저는 태산이가 예체능 쪽으로 진로를 정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호호호. 진정해, 정원사 씨. 그런 건 모두 나중의 일이라고. 어릴 적 흥미가 얼마나 갈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게다가 태산이의 본체는 백호잖아. 인간 생활에 흥미를 잃으면 언제 변신을 그만둘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아!”
“뭐, 지금까지 하는 거로 봐선 절대로 인간 변신을 포기할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해나는 자신의 말에 따라 휙휙 바뀌는 태주의 표정을 재밌어하고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누구나 알 정도로 제 주인에게 집착하는 백호가 인간 변신을 포기할 것 같진 않았다. 그걸 매일 붙어 지내면서도 모르는지, 정원사 씨는 그녀의 말 한마디에 지옥과 천당을 오가는 표정을 지었다.
“어휴! 전 텃밭에나 가 봐야겠어요.”
“호호호호.”
남은 차를 한 번에 들이켠 태주는 텃밭을 핑계 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두막에서 나온 그는 미리 게시판에서 확인한 작물의 씨앗을 한가득 사서 텃밭으로 향했다. 해나에게 핑계로 텃밭을 말하긴 했지만, 전부 핑계는 아니었다. 슬슬 지난번에 심어 둔 작물을 수확할 시간이었다.
‘단단?’
태주는 물의 정령과 같이 텃밭 근처의 야생화에 물을 주는 단단을 발견하고 발소리를 죽였다. 현실에서 사고를 당한 후로 단단을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이었다. 희나 제피르처럼 놀랐을 거로 생각하고 달래 주려 했지만, 매번 단단이 도망쳤었다.
‘그래 놓고 내가 못 오는 동안에 계속 물과 비료를 챙겨 줬지.’
희에게 부탁해서 물어본 결과, 단단은 그의 곁에서 돕지 못한 자신을 탓하고 있었다. 언제나 곁을 지키는 태산이나 차원을 넘어서 그를 찾아온 제피르처럼 하지 못한 걸 미안해했다.
‘쉿!’
태주는 자신의 접근을 미리 알아차리고 단단한테 알려 주려는 물의 정령을 향해 조용히 해 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다행히 물의 정령은 그의 신호를 알아듣고 단단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
“놀라지 마, 나야.”
“단단.”
“계속 정원을 돌봐 줬다고 들었어. 고마워, 단단. 덕분에 정원 걱정 없이 쉴 수 있었어.”
“…단단.”
단단의 동그란 머리 위에 손을 얹은 태주는 가볍게 쓰다듬었다. 침입자와 주인으로 만난 첫 만남은 당황스러웠지만, 이후 단단의 순한 성격과 성실한 태도에 믿음을 주게 되었다.
“정말 도움이 많이 됐어.”
“이제 완전히 회복됐으니까, 걱정하지 마. 협회에서 이번 일의 보상을 받으면 정원을 대대적으로 고칠 생각이야. 정원 크기에 맞게 폭포랑 개천의 규모를 키울 계획이거든. 단단, 네 둥지도 좀 더 크게 고쳐 줄게. 그리고 수로를 정원 곳곳으로 연결할 거거든.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둬. 수로에 작은 둥지를 지어서 연결하자.”
“단단, 단단.”
“마음에 든다고? 알았어.”
“단단. 단단.”
태주는 앞발을 퍼덕거리며 그에게 뭐라 뭐라 말하는 단단의 뜻을 알 것 같았지만, 모른 척했다. 그는 전부터 욕심 없는 단단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둥지를 지어 준 정도로는 부족했다.
그가 단단에게 말한 일들은 오래전부터, 정원 확장 후 입구부터 오두막까지 이어진 길을 정비한 뒤부터 생각해 온 일이었다. 정원 전체 개발 계획을 다시 세우고 정원 식구들의 생활 환경을 바꾸는 계획.
‘해나가 사는 트리 하우스도 바꾸고, 제피르한테도 적당한 휴식처를 만들어 줘야지.’
2차 성장을 대비해서 태산이의 굴도 확장할 계획이었다. 물론 아직 2차 성장의 조건은 아직 하나도 찾아내지 못했지만, 미리미리 준비해 두고 싶었다.
그렇게 태주가 머릿속으로 정원을 어떻게 개발할지 그려보고 있을 때였다. 단단의 머리 위에서 이곳저곳을 가리키며 물을 뿌리던 물의 정령이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화재 경보기의 소리처럼 들리는 요란한 정령의 경고성에 태주와 단단의 몸이 긴장으로 굳었다.
“태주!”
“희?”
“태주, 빨리! 어서 오두막으로.”
“어, 어. 알았어.”
-아우우우우!
다급히 날아와 그를 찾는 희와 오두막으로 달려가려는 순간이었다. 지금까지 몇 번 들은 적 없었던 태산이의 하울링이 정원 하늘에 울렸다.
-아우우우우!
“도도!”
지금까지 태산이가 하울링을 했을 때는 도도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였다. 이레귤러가 연 이상한 공간 안으로 도도가 빨려 들어갈 뻔했던 때와 바위틈에 숨었던 도도가 나와서 황무지를 굴러다닐 때였다. 예외는 위스키가 든 초콜릿을 먹고 술주정을 부렸을 때 한 번뿐이었다.
“헉! 헉! 해나, 태산아.”
“정원사 씨 왔어?”
“이게 무슨….”
“크르르릉!”
한달음에 도착해 숨을 몰아쉬던 태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산산이 부서진 도도의 플레이 하우스였다. 얼마 전 유령 상태로 안에 들어가서, 그간의 궁금증을 풀 수 있었던, 그 플레이 하우스가 마치 폭탄을 맞은 것처럼 부서져 있었다.
“도도야!”
“잠깐, 정원사 씨. 지금 다가가는 건 좋지 않은 생각이야.”
“해나?”
“플레이 하우스가 부서져서 놀란 건 알겠는데, 우선 진정해. 도도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아까 씨앗을 살 때까지만 해도 아무 이상 없던 플레이 하우스가 다 부서졌는데, 문제가 없다고? 태주는 해나의 말이 믿기지 않았지만, 그녀의 말대로 도도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섣부르게 움직였다가 괜히 문제를 키워 도도한테 이상이 생길까 두려워서였다.
“해나 말이 맞아. 도도한테 문제가 있는 건 아니야.”
“아칸? 대체 언제?”
“이 봐, 정원사. 여기에 보호 마법을 걸어 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야? 플레이 하우스에 이상이 생긴 순간 바로 알 수 있다고.”
“이상?”
“정신 차려, 정원사.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이상이 있는 건 아니니까. 정신 차리고 이거나 받아.”
흥분과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태주에게 정신 차리라 말한 아칸서스가 아공간을 열었다. 보이지 않는 공간을 한참 동안 휘젓다 뺀 그의 손에는 묵직한 책 한 권이 들려 있었다. 그는 흘깃 책의 제목을 확인한 뒤 그대로 태주에게 내밀었다.
“최강의 육아? 해츨링 육아 바이블?”
아칸서스가 건넨 책의 제목과 부제를 읽은 태주의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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