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16
317. 방문자들 >
정원에서 정원 식구들과 즐겁고 알찬 시간을 보낸 태주였지만, 현실은 여전히 입원 중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하는 회진도 여전했고, 의료진의 이해할 수 없다는 시선도 여전했다.
“이잉”
“쉬이. 괜찮아, 더 자.”
“…앙.”
의료진이 왔다 가면서 수면에 방해를 받은 태산이가 칭얼거렸다. 태주는 그런 아이를 토닥여 다시 재웠다. 정원에서 신나게 놀고 잠든 채로 현실로 건너온 아이에겐 잠이 필요했다.
그렇게 아이를 재운 뒤 그는 쿠첼루스에게 시간 나면 병원에 방문해 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나타가 보낸 보상도 전하고 일꾼 고용 계약서를 사용해야 해서였다.
“와! 빠르다.”
태주의 방문 부탁 메시지에 대한 답장이 순식간에 도착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맞춰서 오려고 이미 출발했다는 답장이었다. 그는 쿠첼루스가 이른 시간에 출발했다는 얘기에 또 밤을 새웠나 보다, 가볍게 생각했다.
그의 생각과는 다르게 한국과 카리브해를 오가는 쿠첼루스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매일 반나절밖에 머무르지 못하니, 될 수 있으면 할 일들을 오전 중에 처리하는 편이었다. 태주의 병원에 들르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호오! 이건 또 꽤 쓸만한 물건이군요.”
“그래요?”
“네, 제가 하는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물건입니다. 이나타 씨가 신경을 많이 써 주었군요.”
“마음에 드셨다니 다행이네요. 그리고 이거요. 일꾼 고용 주문선데요. 시스템에 다시 등록해야 한다네요.”
“그렇군요.”
쿠첼루스는 태주가 건네는 일꾼 고용 계약서를 예전과 같이 보지도 않고 시원하게 사인했다. 읽지도 않고 받자마자 사인하는 모습은 전과 같았지만, 그 효과는 같지 않았다.
예전에는 일꾼 고용 계약을 한 후에 낮에는 인간, 밤에는 미라였던 상태가 정상으로 돌아왔는데, 이번에는 아니었다. 여전히 밤에는 미라가 될 것이라는 게 느껴졌다. 아마도 처음 꿈의 세계에 발을 들이는 계약과는 다른 것 같았다.
변화는 없었지만, 쿠첼루스의 표정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즐거운 듯 갈색 피부에 홍조가 돌고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이나타가 보낸 물건 때문이었다. 마법진 연구를 잠시 도왔기 때문인지, 그녀는 딱 쿠첼루스가 바라던 물건을 보상으로 보냈다.
‘내 상태를 직접 고칠 수 있다니. 이건 마법사로서 크나큰 도전이야. 게다가 이번 연구로 생명 마법에 대한 이해가 크게 늘었어.’
신의 은총이나 차원 시스템의 작용이 아닌, 스스로 연구해서 죽음을 밀어내고 생명을 깃들게 하는 일이었다. 만약 마법진을 완성할 수만 있다면, 마법사로서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 연구하는 분야는 생명에 관한 분야였다. 그의 또 다른 특기 중 하나인 저주 분야에서도 분명 좋은 시너지를 낼 터였다. 저주 외에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분야에 접목할 수 있을지 상상만으로도 즐거웠다.
*
이나타의 보상으로 정신적인 만족감을, 해나가 준비해 준 음식으로 육체적인 만족감을 채운 쿠첼루스가 돌아간 다음에 태주의 병실을 방문한 것은 연우였다. 해나가 음식을 챙겨 주는 걸 모르는 연우가 음식을 바리바리 싸 들고 방문했다.
고기를 좋아하는 태산이가 태주와 같이 병실에서 생활하느라 환자식을 먹는 게 아닐까, 걱정한 연우가 솜씨를 발휘했다. 더운 날씨에 상하지 않을까, 쿨러 백 한가득 고기 요리와 아이스크림을 챙겨 와서 병실의 냉장고에 차곡차곡 채워 넣었다.
“날도 더운데 뭘 그리 많이 싸 왔어.”
“별로 안 했어요. 산이 좋아하는 고기 요리 몇 가지예요. 나중에 형 퇴원하면 좋아하는 장어 강정이랑 매운 갈비찜 해 드릴게요.”
“괜찮아. 우리 챙길 생각 말고 너나 잘 좀 챙겨 먹어. 저번보다 더 말랐잖아.”
“아니, 몸무게는 그대로예요. 요새 운동 시작해서 그렇게 보이는 거 같아요.”
“운동 시작했어? 뭐?”
태주의 질문에 연우는 부끄럽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고 수영하고 춤이라고 대답했다. 아이돌을 그만두고 벌써 칠 년이 넘었는데, 다시 춤을 춘다는 게 부끄러운 것 같았다.
“리더 형이 학원 열었다고 연락 와서요. 놀러 갔다가 잠깐 몸이나 풀까 해서 춰 봤는데, 괜찮아서 다니기로 했어요.”
“잘했어. 아이돌 그만뒀다고 좋아하는 것까지 그만둘 이유는 없지.”
“앙. 잘해떠.”
“하하하. 거 봐. 산이도 잘했다고 하잖아.”
태산이가 어른스럽게 연우의 팔뚝을 두드리면서 잘했다고 칭찬했다. 태주의 흉내를 낸 것이었지만, 적절한 순간에 적절한 동작이었다.
“사니도 할 뚜 이떠.”
“응? 뭐를?”
“땐뚜.”
“전에 얘기했잖아. 산이 댄스 스쿨 다닌다고. 자기도 춤출 수 있다고 하는 거야.”
댄스 스쿨 얘기를 하는 태주의 얼굴에 미안함이 스쳤다. 자신 때문에 태산이가 좋아하는 학원에 가지 못한 게 미안해서였다. 지금까지 한 번도 수업을 빼먹지 않았는데, 그가 사고를 당한 뒤로 몇 번이나 가지 못했다. 연습해 뒀던 곡들의 동작을 잊어서 다시 배워야 할지도 몰랐다.
그뿐 아니었다. 태산이는 꿈에선 꿈의 정원을 순찰하고 현실에선 전원주택 정원이나 뒷산, 계곡을 매일같이 쏘다녔다. 그렇게 몸 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일주일 넘게 실내에서 지내느라 답답해하고 있었다. 가끔 하는 외출이래 봤자, 2호와 아이스크림을 사러 병원 매점에 다녀오는 정도였다.
“그럼 나중에 형이랑 같이 댄스 학원 가 볼까?”
“앙.”
“언제 가는데? 오늘도 가?”
“네, 점심 먹고 들르려고요.”
“…음.”
“왜요, 태주 형?”
태산이가 심심해하니 데리고 가 줬으면 싶었지만, 그걸 부탁하기에는 아침부터 수고스럽게 음식을 준비해서 챙겨 온 연우에게 조금 미안했다. 더군다나 그 학원이라는 곳에 정말로 아이를 데려가도 괜찮은 건지 몰라서 입이 안 떨어졌다.
“왜 그래, 산아?”
“아!”
태주가 미안함에 연우한테 부탁하지 못하는 사이 태산이의 고개가 두 사람 사이를 바쁘게 오갔다. 아쉬움과 망설임이 가득 담긴 눈이 태주와 연우 사이를 오갔다. 연우를 따라 댄스 학원에 가 보고는 싶지만, 태주의 곁을 벗어나는 게 망설여진다는 아이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연우야, 오늘 학원에 산이 데리고 가도 괜찮아?”
“괜찮아요.”
“그럼, 산이 데리고 다녀올래? 산이가 병원에만 있었거든. 올 때 차 가져 왔어?”
“아뇨. 여기 주차하기 불편해서 택시 타고 왔어요.”
“짐도 많았는데 힘들었겠다. 그럼 호한테 태워다 달라고 해. 호야 괜찮지?”
소파에 앉아서 태블릿으로 뉴스를 보던 2호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병원 특실 병동은 24시간 가드가 지키는 데다, 미리 방문 신청을 한 신분이 확실한 사람만 병동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은 태주에게 가장 위협이 되던 이레귤러가 검거된 상황이었다. 만약 무슨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쿠첼루스가 쓰는 사람들이 병원 밖에 대기 중이었다. 일이 생기면 그들이 자신에게 즉시 연락할 것이었다. 몇 시간 정도 곁을 비워도 문제 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꼬맹이. 연우 형아 말 잘 들어야 해, 알았지?”
“앙, 아라떠.”
“연우야, 여기 형 카드. 이걸로 산이 먹을 거 하고 학원 친구들이랑 같이 먹을 거 사.”
“아니에요. 제가 살게요.”
“앙, 사니 꺼.”
아이를 딸려 보내는 미안함에 간식비라도 주려는 태주의 손을 연우가 밀어낼 때였다. 태산이가 두 사람의 중간에 끼어들어 카드를 낚아채더니, 제 주머니 안으로 쏙 넣었다.
“크흠! 맛있는 거 사 먹어, 산아. 친구들도 사 주고, 알았지?”
“앙, 아라떠. 사니가 사 주께.”
“….”
“여누 형아 가자.”
“그, 그래.”
“태쭈, 사니 다녀오께.”
태주는 당차게 인사하고 연우를 끌고 나가는 태산이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무언가를 사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도 모르던 아이가 이젠 카드를 챙기는 걸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언제까지나 아기일 줄 알았는데, 이젠 마냥 아기 취급해선 안 될 것 같았다.
“다녀오겠습니다.”
“응. 잘 다녀와, 호야.”
태산이에게 끌려나가느라 잊은 연우의 짐을 꼼꼼하게 챙긴 2호가 병실을 나서자 한순간에 실내가 조용해졌다. 태주는 잠시지만 오랜만에 혼자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며 앞으로 일을 정리할 생각이었던 태주의 계획은 삼십 분도 채 진행되지 못했다. 시즌이 한창인 아이스크림 광고 콘셉트 문서와 다른 문서를 가지고 견우가 방문해서였다.
“그럼, 콘셉트는 이대로 괜찮다고 전하겠습니다.”
“네.”
“촬영 날짜 역시 이대로 괜찮으십니까? 너무 촉박하게 잡은 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사실 전 산이랑 촬영하는 걸 거절하실 줄 알았습니다.”
“아이스크림 광고 찍고 싶다고 방방 뜨던 거 보셨잖아요. 지금도 매일 연습한다는 핑계로 아이스크림을 먹으려 들어요. 차라리 빨리 찍어 버리는 게 나을 것 같아요.”
“하하하. 그럼 촬영 날짜도 그대로 정하겠습니다.”
아이스크림 광고 촬영 관련 사안을 정하고 나서는 몇 가지 태주의 확인이 필요한 문서들이 있었다. 아이스크림 광고야 시즌이 시즌이라 급하게 촬영하게 되었지만, 다른 일들은 최대한 미루거나 취소하고 있었다. 태주가 아무리 몸 상태가 좋다고 얘기해도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저 진짜 괜찮아요. 예정대로 진행해도 돼요.”
“안 됩니다. 수사가 마무리되었어도 여전히 주변이 어수선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일정을 강행하는 것보단 차라리 회복에 힘 쓰는 게 낫습니다.”
“수사가 벌써 마무리되었어요?”
“현행범이었으니까요. 한국에선 보기 드문 총기 사건이라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었고, 범인의 행적도 전부 밝혀져 있었으니까요.”
“범인의 행적이 전부 밝혀져….”
꿈의 정원으로의 이주, 도도의 부화 등. 태주의 신경은 박재우가 아닌 꿈의 정원과 관련된 일에 쏠려 있었다. 그래서 박재우의 존재를 지우는 처벌이 행해진 건 알았지만, 그것을 실감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다 듣게 된 경찰 수사 종결 소식에 놀라는 중이었다.
“미국 국적이긴 하지만 현행범이라 기소도 문제없이 진행될 겁니다.”
“…그렇군요.”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니에요.”
“이상한 점이 있다면 바로 말씀하십시오. 혹시 그 스토커 외에 누가 또 있었습니까?”
경찰이 대외적으론 스토커 마크의 단독 범행으로 발표하지만, 내부적으론 따로 팀을 꾸려 예전 고용주였던 박재우를 수사할 거라고 했던 게 얼마 전이었다. 그런 사실이 모두 바뀌어 있었다.
박재우의 존재를 지운 대마법의 효과로, 수사를 종결하는 경찰도 그 사실을 자신에게 전하는 견우도 그 일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당연한 결과였지만, 태주는 그런 상황이 꽤 씁쓸하게 느껴졌다. 그 때문에 잠시 대답이 느려지자, 견우의 얼굴이 금세 걱정으로 물들었다.
“그런 거 아니에요. 없어요. 그냥, 수사도 기소도 빠르다 싶어서 그랬어요.”
“장소가 장소였던지라 범행 증거가 차고 넘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후우! 제 불찰입니다. 범인이 그렇게 오랫동안 태주 씨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전혀 눈치채지 못하다니.”
“아니에요, 매니저님. 그게 어떻게 매니저님 탓이에요.”
절대로 견우의 탓은 아니었다. 태주는 견우가 자책할까, 급하게 부정했다. 그러는 한편 이미 이렇게 될 걸 알고 있었으면서 괜히 길게 얘기를 끌었다고 후회했다.
*
태주는 견우가 자책하지 못하게 달래느라 한동안 곤란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낸 대가일까, 견우에게서 차기작 대본을 보는 걸 허락받을 수 있었다. 입원 후 지루해하는 걸 알면서도 꿋꿋하게 보지 못하게 하던 대본을 그의 정성이 통했는지, 한부 챙겨 왔다.
“결국엔 이 대표라는 사람만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는 거지.”
차기작의 두 주인공 중 한 명인 젊은 대표는 형사가 그를 의심해서 주변을 맴도는 데도 어떤 제스쳐도 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의 착각을 부추기듯이 오해 살 만한 행동을 하면서 수사에 혼선을 빚게 한다.
영화 마지막에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체포되는 것처럼 관객이 착각하게 하지만, 실제론 범인이 맞았다. 체포하는 형사나 강하게 부인하는 범인, 영화 관객까지 찜찜하게 만드는 감독의 트릭이었다.
‘잔인할 정도로 순수하게 유희를 즐기는 것뿐이지.’
태주가 맡은 배역은 언뜻 보면 형사에게 억울하게 의심을 받는 사람이었지만, 납치당한 피해자가 죽건 말건 자신의 손바닥 위에 범인과 형사를 올려 두고 이리저리 가지고 노는 역할이었다. 상당한 악질로 원래 그의 성격과는 판이한 역할이었다.
-똑똑똑!
“들어오세요.”
병실 문을 노크한 사람에게 입실을 허락하면서 태주는 시간을 확인했다. 저녁 6시. 특히나 방문자가 많은 날이라 시간이 늦었을 줄 알았는데, 면회 시간이 아직 2시간 정도 남아 있었다.
“…몸은 괜찮아 보이는군.”
“네, 당장 촬영해도 괜찮을 정도로요.”
“그건 내가 곤란해.”
“그러시겠죠. 아직 촬영이 안 끝나셨죠?”
“아아. 네 말이 맞아. 아직 촬영 중이야. 반가워, 김광효다.”
태주의 병실을 찾은 것은 차기작의 형사 역할을 맡은 배우 김광효였다. 박대성 감독의 페르소나. 단 한 번도 영화 외의 다른 길을 고민해 보지 않았다는 배우 외길 인생의 연기 귀신. 주연 배역이 아니더라도 배역이 마음에만 들면 오 분 남짓 나오는 단역도 마다치 않는 욕심쟁이.
그의 눈앞에 나타난 배우를 설명하는 많은 수식어가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모든 수식어가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눈앞에는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철야, 오리무중인 수사, 시도 때도 없이 찾아와 수사 결과를 종용하는 상사, 경찰서 앞에 진을 치고 있는 기자와 피해자 가족에 시달린 형사가 있었다.
“제대로 찾아오셨을까?”
“제대로 찾아왔냐고? 내가 사람 찾는 일에 쓴 시간만 합치면 전국을 스물세 바퀴 돌고도 남는 사람이야.”
-톡! 톡! 톡!
“그래서 제대로 찾아오셨을까, 아닐까? 대답을 듣고 싶은데.”
“내가, 제대로 찾아온 거…. 푸하하하! 그만하자.”
병실 안에 웃음소리가 퍼진 뒤였다. 피로에 찌든 형사의 모습은 사라지고 편한 아웃도어 의상을 걸친 중년의 남성이 나타났다. 그는 상쾌한 미소를 입가에 띄운 채 태주가 보던 대본을 옆으로 치웠다.
“에구. 시험한답시고 폼 좀 잡았는데, 어째 내가 시험당한 느낌이야.”
“죄송해요.”
“죄송할 것까지야. 지금 촬영 중인 게 아쉽고만.”
“….”
“흐흐흐.”
태주를 찾은 마지막 방문자는 몇 달 뒤 촬영을 시작할 차기작에서 호흡을 맞출 선배 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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