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19
외전. 슈퍼 패스 01
아침저녁에는 여전히 찬 바람이 부는 봄날, 한동안 인기척을 찾아보기 힘들었던 곳이 오랜만에 시끌벅적한 목소리가 가득 찼다. 아이와 어른의 사이. 청소년이라고 불리지만, 사실 아직은 아이에 가까운 나이의 학생들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었다.
“들었어? 이번에 걔도 입학한대?”
“누구?”
“걔 있잖아. 어? 왔다!”
-꺄아아아!
-진짜 왔어. 어떡해!
화제의 신입생에 관한 얘기는 그 소문의 주인공이 등장하면서 발생한 소음에 묻히고 말았다.
소문의 주인공은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밝은 원색의 블레이저에 짙은 남색 하의를 입었지만, 소년은 마치 혼자만 유명 브랜드의 슈트를 입은 것처럼 분위기가 달랐다. 게다가 그 소년 옆에 선 사람은 그런 소년 이상으로 좌중의 시선을 끌고 있었다.
“진짜네. 진짜로 우리 학교 다닐 건가 보네.”
“그런데 쟤는 미국에서 학교 다니는 거 아니었어?”
“이번에 이태주가 한국에서 드라마 찍잖아. 그거 때문에 한국에서 학교 다니는 거 아니야?”
“야! 태주 형이 네 친구냐? 너네보다 스무 살은 많은 사람 이름을 막 부르는 건 좀 아니지.”
두 사람의 얘기는 중간에 끼어든 익숙한 목소리에 멈추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곁에 붙어서 화제의 인물을 훔쳐보는 친구를 흘겨보았다.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줄곧 같이 붙어 다닌 덕에 이미 내 친구가 네 친구, 네 친구가 내 친구인 상태였지만, 여자들 수다에 끼어드는 게 못마땅했다.
“뭐야? 박대화. 또 너야? 하여간 빠돌이. 지적질은.”
“지적질이 아니라, 그렇잖아. 앞으로 같이 학교 다닐 친구인데, 친구네 형 이름을 막 부르면 되냐?”
“친구는 무슨! 쟤는 우리 기억도 못 할 텐데.”
“당연하지. 유치원 때 몇 번 본 걸 기억하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냐?”
“초등학교 때도 봤잖아. 어린이날 행사에서 몇 번이나 봤는데.”
자신들이 다니던 유치원에 태주와 동생이 왔던 걸 두 사람은 똑똑히 기억한다. 무슨 얘기를 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이후에 유치원 소풍이랑 크리스마스 파티 때도 왔었다. 두 사람이 올 때마다 특별한 음식을 가져와서 잘 기억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두 사람은 이태주가 참석하는 행사에 여러 번 갔었다. 산이라는 아이를 돌보는 그는 매년 어린이 관련 행사에 빼놓지 않고 참석했었다. 그때 자신들을 알아본 그 덕분에 산이와 같이 놀았었는데, 그것도 이미 한참 전의 얘기였다.
“그때랑 지금이랑 같냐. 게다가 이 많은 사람 중에서 우릴 어떻게 알아봐?”
“잠깐. 두 사람 조용히 해 봐.”
“왜?”
“지금 여기로 오는 거 같지 않아?”
“헙! 어, 어떡하지?”
농담인가 싶었던 상황은 사실이었다. 대화와 친구는 당황해서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이 떠드는 걸 멈추게 하려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아니었다. 실제로 태주 일행이 자신들을 향해서 오고 있었다.
“안녕. 혹시 대화랑 수민이니?”
“헉!”
“맞아요, 오빠!”
“맞구나. 다행이다.”
직전까지 이름을 막 부르고 있었지만, 잘생긴 얼굴 가득 미소를 짓는 모습을 마주하자 저절로 오빠 소리가 나왔다. 그런 그녀를 대화와 친구가 어이없어하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전 세계가 미남이라고 인정한 사람이 눈앞에 있었다. 이건 아주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호호호. 오빠가 저희를 기억하실 줄은 몰랐어요.”
“사실 내가 먼저 알아본 건 아니고, 산이가 너희 여기 있다고 알려 줬어.”
“진짜요?”
“응. 산아, 뭐해? 친구랑 인사해야지.”
태주가 친구들과 얘기하는 사이 딴청을 피우던 태산이가 그제야 아는 척을 했다. 멋쩍은 듯 몸을 슬쩍 태주 쪽에 기대면서 짧게 인사만 하는 꼴이 유치원에서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리게 했다.
“안녕.”
“오랜만이야, 산아.”
“응.”
“이제 계속 한국에서 학교 다니는 거야?”
“그건 잘 몰라.”
태산이의 체류지는 태주의 스케줄에 달려 있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미국에서 시즌제 드라마를 촬영할 때는 몇 년 동안 거기서 머물렀었다. 이번에는 오랜만에 한국에서 영화를 촬영하게 되어서 한국 고등학교에 입학하긴 했지만, 언제 다시 돌아갈지 몰랐다.
“고등학교는 한국에서 다니게 될 거야.”
“진짜요? 오빠, 그럼 영화 찍고 나서 오현주 작가님 드라마에도 출연하세요?”
“그건 아직 얘기만 나온 건데, 어떻게….”
“지난주에 별별그램에 오빠 목격담 떴었어요. 거기에 산이가 고등학교를 한국에서 다니게 될 거라고 하시니까, 바로 알겠던데요. 오빠 영화 촬영은 보통 1년 안에 끝나잖아요. 1년 뒤에도 또 스케줄이 있구나, 하고요.”
“수민이 대단하네.”
수민은 처음 유치원에서 만났을 때부터 똑소리 나는 모습을 보여 주더니, 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여전했다. 예전에도 이 둘하고 태산이가 같이 있으면 걱정이 필요 없을 것 같았는데,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야! 김수민.’
‘왜! 박대화.’
‘너 아까 나한테….’
‘닥쳐!’
대화는 자신이 뭐라고 했을 때 빠돌이라며 욕한 수민이 확정되지도 않은 태주의 차기작 소식을 알고 있는 게 황당했다. 자신보다 더 관심을 가진 주제에 자기를 무슨 철없는 어린아이 보듯 한 게 분했다.
그러나 팔을 건드려 시선을 끌었지만, 대화는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하진 못했다. 태주와의 대화를 방해한 그를 돌아보는 수민의 눈빛이 살벌했기 때문이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하면 생사결전도 불사하겠다는 기세가 느껴졌다.
“산이 넌 무슨 과야? 얘랑 나는 음악과고 대화는 무용관데.”
“당연히 무용과지. 너 산이 상 받은 기사 못 봤어?”
“봤는데, 산이 연기도 잘하잖아. 얼마 전엔 영화에도 나왔고.”
“그건 그렇지.”
“킥! 나 무용과야.”
태산이가 입학한 학과는 무용과였다. 해외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는 중에도 꾸준히 춤을 연습했고 꽤 이름 있는 대회에 나가서 상을 타기도 했다. 그것도 중등부 대회가 아닌, 일반부 대회에 나가서 입상해서 한동안 태주의 자랑거리였었다.
수민이 얘기한 영화도 무용 실력이 필요한 배역으로 캐스팅된 것으로, 태산이의 영화 출연은 현지에서도 한국에서도 꽤 화제가 되었었다.
‘으아! 민망해라.’
대화와 수민이 신경전을 벌이는 사이 태주는 민망함을 감추기 위해 표정 관리에 힘을 썼다. 태산이 소식이 빠지지 않고 국내에 퍼지는 원인 제공자가 그였기 때문이었다.
빛나는 재능과 자만하지 않고 노력하는 태산이는 그의 자랑이었다. 가능하면 자제하려고 하고 있었지만, 인터뷰나 방송에서 태산이 얘기가 나오면 자랑을 참지 못했다.
“나 그 영화 진짜 많이 봤어. 거기, 크리스랑 단체로 춤추는 장면 있잖아. 그 부분을 한 백번은 봤을 거야.”
“비 오는 장면?”
“어, 거기.”
“그거 찍을 때 물 진짜 많이 맞았어.”
“그랬을 것 같아. 미끄러지진 않았어? 거기 바닥이 완전히…”
태산이는 춤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언제 멋쩍어했냐는 듯 신이 나서 떠들었다.
그런 둘과 다르게 수민과 친구의 관심은 태주에게 쏠려 있었다. 몇 년 동안이나 해외에서 활동하면서 한국에는 광고를 찍을 때만 오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만날 기회가 언제 또 생길지 몰랐다. 다만 쉽게 말 걸기 어려운 분위기라 몰래 얼굴만 훔쳐보아야 했다.
-곧 신입생 입학식이 시작됩니다. 장내에 계신 귀빈 여러분께선 이 층에 마련된 장소로….
“산아. 형 이 층으로 올라갈게. 중간에 자리 비울 수도 있거든, 끝나면 연락해. 알았지?”
“응. 알았어.”
“연락해.”
“응. 갈게.”
태주는 이 층으로 올라간다고 말했지만, 바로 가지 않고 잠시 자리에 서서 태산이를 지켜봤다. 오랜만에 만났는데도 어색함 없이 친구들과 어울려서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이 무척이나 대견했다.
*
태산이가 입학한 학교는 예술 고등학교였지만, 입학식은 그가 다녔던 인문계 고등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별로 알고 싶지 않은 자랑을 늘어놓느라 쓸데없이 말이 길고, 이미 다 아는 사실을 괜스레 무게를 잡으면서 전했다.
“수고했어, 산아.”
“응.”
“대화는 먼저 갔어? 오랜만에 봐서 같이 점심이나 먹을까 했는데.”
“회사 가야 한댔어.”
“회사?”
“응. 대화 연습생이래.”
지루하고 불편한 시간을 한참이나 보낸 뒤에야 태주는 태산이와 다시 합류할 수 있었다. 그는 입학식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태산이의 친구가 되어 줄 아이들에게 밥을 사 주면서 미리 관계를 다져 둘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그런 계획은 시작도 하기 전에 끝이 났다. 연예인 비중이 높은 예술고답게 같은 과의 대화는 기획사 소속 연습생이었고, 다른 두 명은 과가 달라서 그런지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럼 우리 산이랑 둘이서만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응.”
“가자.”
“응.”
방해꾼 없이 둘이서만 식사하는 게 더 마음에 들었는지, 태산이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태주는 예상대로의 반응에 웃음을 터트렸다.
*
태산이의 학교생활은 꽤 편하게 흘러가는 분위기였다. 소문대로 무용과는 선후배 관계가 경직되어 있었지만, 태산이만은 예외였다. 이미 유명세가 있고 해외 유수의 무용 경연에서 입상한 태산이를 누구도 건드리지 않았다.
“이사니, 초콜릿 또 먹어?”
“응. 줄까?”
“됐어. 나 식단 조절 중임.”
“다이어트?”
“어, 지난 월평에서 한 소리 들었어. 동작이 무겁다고.”
연습실 안에서 간식으로 초콜릿을 먹는 태산이 곁으로 대화가 다가왔다. 그는 매번 연습 중간중간 초코바나 쇼트케이크 같은 간식을 먹는 태산이를 부럽게 보긴 했지만, 권하는 초콜릿을 먹는 일은 없었다.
나아가 오늘부터 다이어트를 한다는 대화를 태산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체지방이라곤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른 상태였는데, 다이어트를 하겠다는 게 이상해 보였다.
“태주는 그런 거 안 하는데.”
“태주 형은 필요 없지. 이미 완벽하잖아. 입학식에서 보고 얼마나 놀랐는데, 무슨 사람 얼굴이 그렇게 작냐. 키는 또 얼마나 크고.”
“태주는 완벽하지.”
“그렇지.”
‘산이 너도 마찬가지고. 그에 비하면 우리 집은….’
온 얼굴에 여드름이 나고 자신한테 짜증만 내는 친형을 떠올려 본 대화가 말을 아꼈다. 태산이와 태주, 그리고 가끔 태산이를 데리러 오는 금발의 경호원 형까지. 어떻게 그렇게 좋은 점만 유전된 것인지, 정말이지 이기적인 유전자였다.
깊은 눈매, 결점 없는 피부, 완벽한 비율의 몸에 고고한 분위기까지, 차원이 다른 미모의 태주. 시원스런 짙은 푸른 눈동자에 동그란 눈매, 오밀조밀한 이목구비로 순해 보이는 태산이. 날카로운 턱선과 190이 넘는 큰 키, 단단한 체격의 경호원 형. 세 사람은 닮은 듯 다른 매력이 있었다.
“초콜릿이 그렇게 좋아?”
“응. 좋아.”
“우리 회사 앞에 진짜 맛있는 크레이프 파는 데 있는데.”
“크레이프?”
“어. 거기에 초콜릿 잼 크레이프 있거든. 그거 완전 맛있어.”
-꿀꺽!
태산이에게서 초콜릿을 삼키는 소리와는 다른 침을 삼키는 소리가 났다.
변신 기술을 사용해서 변한 몸이라 제한 없이 마음껏 간식을 먹고 있었지만, 길거리 간식은 거의 먹어 보지 못했다. 어쩌다 맛본 휴게소 간식을 제외하면 대부분은 태주나 쿠첼루스가 준비해 준 간식이었다.
“맛있겠다.”
“먹으러 갈래? 아! 아니다. 너 데리러 오는 사람 있잖아.”
“잠깐만.”
태산이는 남은 초콜릿을 한입에 털어 넣고 빠른 속도로 보호자인 태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렸을 때는 학원이나 학교가 끝나면 바로 태주가 있는 곳으로 갔지만, 지금은 그 정도까진 아니었다. 여전히 태주와 같이 있는 게 제일 좋았지만, 가끔은 혼자 자유롭게 다니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이동할 때 꼬박꼬박 행선지만 알리면 된다고 태주가 허락했었다.
“대화야, 회사 어디야?”
“왜?”
“태주가 같이 갔다가 와도 된대.”
“진짜? 좀만 기다려. 가방 챙겨 올게.”
“응.”
초콜릿 잼과 새하얀 생크림을 바르고 바나나와 쿠키 분태를 토핑으로 뿌린 크레이프는 대화의 장담대로 맛있었다. 다이어트를 시작했다는 대화가 참지 못하고 하나 주문했을 정도였다.
그렇게 둘이 크레이프 하나를 반쯤 먹었을 때였다. 교복 차림의 아이들 몇 명이 크레이프 가게 앞으로 다가왔다.
“박대화, 맛있냐?”
“맛있지. 학교 끝났어?”
“어. 옆에 누구?”
“산이. 같은 무용과 이산.”
“안녕.”
크레이프 가게 앞에서 마주친 아이들은 모두 대화와 같은 회사의 연습생이었다. 평소에는 오전 수업만 듣는 대화가 오후 수업까지 전부 듣고 온 대화와 마찬가지로 오후 수업을 전부 들었는지 느지막하게 회사에 왔다가 태산이와 마주쳤다.
“산이 너는 어느 회사야?”
“응?”
“연습생 아니야?”
“산이 연습생 아니야. 그냥 학교 친구야. 전에 얘기했잖아. 우리 학교에 춤 엄청 잘 추는 애 있다고.”
“아아. 네가 걔구나. 난 얼굴 보고 우리랑 같은 연습생인 줄 알았어.”
“나도, 나도.”
태산이는 대화와 연습생 친구들이 자신을 연습생으로 오해하고 그 오해를 푸는 사이에 초콜릿 잼 크레이프를 전부 먹어 치웠다. 태주라면 너무 달아서 몇 입 먹고 포기할 맛이었지만, 단 것을 좋아하는 태산이에겐 딱 맞았다.
“나 하나 더 먹을 건데, 먹고 싶은 사람?”
“네가 쏘는 거야?”
“응. 먹고 싶은 사람은 주문해.”
“오, 예! 난 딸기, 넌 뭐 먹을래?”
“난 좀….”
“괜찮아. 편하게 주문해도 돼. 이거 진짜 맛있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얻어먹는 게 부담스러웠는지, 나중에 온 친구 중 몇은 크레이프를 주문하길 꺼렸다. 그러나 그런 친구들도 태산이가 서글서글한 웃음을 보이면서 괜찮다고 말하자 너도나도 먹고 싶은 걸 주문했다.
달콤한 크레이프 하나로 순식간에 어색함을 털어 버린 태산이와 친구들이 신나게 떠들고 있을 때였다. 낮고 굵은 성인의 목소리가 즐거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너희 여기서 뭐 하는 거야!”
“헉!”
“정신이 있어, 없어? 지금이 몇 시야? 당장 레슨 안 들어가!”
“으아아!”
훤칠한 얼굴과 쾌활한 웃음으로 온 거리의 사람들 시선을 잡아끌던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다 같이 한 방향으로 뛰었다.
우르르 달리는 친구들 사이에는 레슨과 전혀 관계없는 태산이도 끼어 있었다. 태산이는 연습생 관리 직원의 호통에 놀란 친구 중 한 명이 팔을 잡고 달리는 바람에 엉겁결에 같이 달리고 있었다.
“헉! 헉! 몇 시야?”
“5시 오 분 전!”
“으아! 달려.”
제 팔을 놓지 않고 달리는 친구 때문에 건물 안까지 따라 들어온 태산이가 옆에 있던 친구에게 말을 걸려던 순간이었다. 시간을 확인한 친구들이 계단을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태산이의 팔은 여전히 친구에게 붙잡힌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