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2
31. 화보촬영
야외 촬영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예전에 찍어보지 못한 로드무비라 신이 났던 것이 언제인지, 지금은 어서 스튜디오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장 더운 시간이 아닌데도 공기가 후끈했다. 날이 이렇게 빨리 더워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제 겨우 칠월 중순을 넘어섰는데 더워도 너무 더웠다.
“태산아, 형 더운데 네가 걸으면 안 될까?”
“냐앙.”
‘아니 길이 뜨거운 게 형 탓은 아니잖아.’
촬영 중간 시간을 내서 태산이를 산책시키던 중 길이 뜨거워지자 자신을 안으라며 태산이 칭얼거렸다. 아침에는 잘 걷더니, 정오가 가까워 길이 뜨거워지자 걷기 싫은지, 내려가지 않고 계속 안겨서 다녔다.
“그래. 태산이 젤리는 소중하니까. 형이 이해할게.”
“큭큭.”
태주의 뒤를 따르던 형식이 그 모습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밀짚모자에 알이 큰 선글라스를 쓴 형식은 이미 한여름 모드였다. 옷도 반 팔에 반바지 차림이었다. 혹시라도 햇볕에 탈까, 긴바지에 긴소매를 입고 있는 태주와는 다르게 시원한 모습이었다.
‘나한테는 이게 있으니까. 후후후.’
태주가 왼쪽 손목에 찬 검은색 팔찌를 흐뭇하게 쳐다봤다. 펫 용 쿨링 밴드. 태산이 목에 걸려있는 것과 같은 물건이다.
저녁부터 시작하는 화보촬영을 위해서 오후 촬영을 일찍 마치고 태주 일행은 촬영장을 떠났다. 시원한 밴 안에 오르니 이제야 숨이 트였다.
‘스튜디오 촬영만 계속하면, 야외 촬영이 하고 싶어지고, 야외 촬영이 길어지면 스튜디오가 그리워지고. 중간이 없네, 중간이.’
선율은 스튜디오 촬영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태주의 역할은 그린 스크린 앞에서 찍는 부분이 많았다. 환상을 불러낼 정도로 괴물 같은 실력의 바이올리니스트 역할이라,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장면에 CG를 많이 넣을 예정이었다.
‘이상하게 일이 많은 느낌이야. 처음엔 분명히 여유 있게 활동할 생각이었는데. 벌써 내년 봄까지 일이 꽉 찼잖아.’
회귀한 직후에는 천천히 쉬었다가 연기를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는데, 얼떨결에 소속사에 들어가 데뷔를 했다. 데뷔 이후에는 처음 보는 시나리오에 홀려 휴식은 뒷전으로 두고 영화 스케쥴을 연이어 잡았다.
슬슬 인지도가 쌓이는 중이라, 아마 일은 더 늘어날 것이다. 부산 촬영 후로 잡힌 화보 일도 몇 건 있었다. 광고는 단가가 낮아서 거절했지만, 화보 일은 대부분 승낙했다고 들었다. 아마 선율을 촬영하는 중간중간 화보도 찍어야 할 것 같았다.
‘확실히 큰 회사가 좋아. 신인이 이 정도로 일이 계속 들어오는 곳이 얼마나 될까? 굵직굵직한 일로만 선별해서 말이지.’
이 브랜드의 화보를 촬영하게 된 것도 소속사의 덕이 컸다. 태주의 외모가 남들보다 월등히 뛰어나지만, 그것만으로 신인이 이런 고가 브랜드의 모델이 되기는 쉽지 않다. 수년간 전속으로 활동한 진혁과 그 진혁을 서포트 한 트리즈의 역량을 보고 선택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판단일 것이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니?”
“이번 화보요. 진혁 선배님 덕분에 좋은 일이 들어온 것 같아서요.”
“그런 면도 있죠. 하지만 중요한 건 태주 씨가 거기서 원하던 이미지와 가장 잘 어울렸다는 겁니다. 특히 서브브랜드의 메인으로 발탁된 건 온전히 태주 씨의 역량입니다.”
“매니저 오빠 말이 맞아. 그런 곳에서 단순히 추천으로 사람을 선택하겠니. 얼마나 따지는 게 많은데.”
진혁의 도움도 도움이지만 네가 능력이 있으니 선택된 거라며 정정해주는 일행이었다. 자기 배우가 남의 도움만 받는 사람은 아니라며 단정하듯 말해 주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태주는 그냥 가볍게 꺼낸 진혁의 얘기였는데, 모두 한마음이 되어서 혹시라도 태주가 기가 죽지 않을까, 자신감을 북돋워 주려 애썼다.
“하하하. 다들 고마워요. 그냥 좋은 일이 들어와서 진혁 선배한테 감사하다고 생각한 것뿐이에요.”
태주의 목소리에서 웃음기를 느낀 이들도 같이 웃음을 흘렸다. 차 안에 훈훈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
태주 일행이 스튜디오에 들어섰다. 스튜디오는 이미 수많은 사람이 저마다 맡은 일을 하고 있었다. 진혁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았다. 태주 일행은 스태프의 안내를 받아 분장실에 자리를 잡았다. 태산이는 형식이 안고 있었다.
힐링 인터뷰는 동물들이 많은 곳이라 전선이나 조명이 최소한으로 되어있었는데, 이곳은 달랐다. 바닥은 잠시라도 시선을 떼면 걷기 힘들 정도로 난잡했다.
“형식아. 태산이 태주 씨 집에 데려다주고, 너 먼저 들어가 봐라.”
“아닙니다. 촬영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어차피 내일은 쉴 거야. 태주 씨 괜찮죠?”
견우가 일정을 조절했다며 모레 새벽에 출발하자고, 형식을 먼저 보냈다. 태산이가 같이 있기엔 좋지 않은 환경이라 걱정하던 태주도 이런 견우의 의견을 반겼다. 떨어지지 않으려고 냥냥 대는 태산이를 달래서 보낸 후에야 메이크업을 시작했다.
태주가 큰 체크 원단으로 만든 슈트를 입고 촬영을 시작한 직후, 진혁 일행이 도착했다. 진혁은 촬영 중인 태주에게 손을 흔들어 보인 후에 메이크업을 받으러 갔다.
태주는 익숙하게 포즈를 취했다. 슈트 화보는 예전에도 많이 찍었었다. 해외 브랜드의 전속 모델로 몇 년간 꾸준히 활동도 했었다.
찰칵찰칵.
“좋아요. 좀 움직여 볼까요.”
사진작가의 지시에 따라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어떻게 하면 옷의 맵시를 살리면서 아름답게 보일까는 모델이 항상 고민하는 부분이다. 태주는 전문 모델은 아니었지만, 능숙하게 포즈를 잡았다. 의류부터 시계, 화장품, 향수 등 다양한 광고를 찍으면서 저절로 익히게 된 부분이었다.
찰칵찰칵.
“좋아요. 네, 고개 조금만 숙여주세요.”
첫 번째 의상의 단독 컷이 빠르게 끝났다. 태주가 빠져나온 자리로 진혁이 들어갔다. 진혁이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은 채 다가와 하이파이브를 요구했다. 태주는 생긴 것과 전혀 다른 그의 행동에 웃으면서 가볍게 손을 마주쳐주었다.
정말 생긴 것과 다른 형님이었다. 말투도 그렇고 하는 행동도 그렇고. 칼날같이 날카롭고 차갑게 생겨서는 하는 행동은 아이 같았다. 진혁이 사진을 찍는 사이 태주도 빠르게 옷을 갈아입었다.
“두 사람 고개만 돌려서 마주 봐주세요.”
“풋!”
“아아. 형님 웃으시면 어떡해요.”
어디가 웃긴 건지, 태주의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진혁이 자꾸 웃음을 터뜨렸다. 진중한 표정을 짓다가도 고개를 돌리고 웃어버렸다. 진혁이 왜 웃는지 몰랐지만, 바로 옆에서 계속 웃자 자신도 모르게 따라 웃고 마는 태주였다.
콘셉트와는 달랐지만, 두 사람이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도 모두 촬영되고 있었다. 잘 생긴 남자 배우 두 명이 마주 보고 웃는 사진은 비록 광고에 쓰지는 못하겠지만, 보기 좋은 장면임에는 분명했다.
진혁의 웃음이 잦아들고 촬영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태주나 진혁이나 이미 이런 촬영은 익숙할 대로 익숙했다. 사진작가의 지시가 없어도 두 사람이 가장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게 서로를 받쳐주면서 자세를 취했다.
촬영이 모두 끝난 후에, 브랜드 측의 인물들이 모여서 사진을 선별하기 시작했다. 화면에 수십 장의 사진을 띄워놓고 고르던 사람들의 이마에 주름이 가기 시작했다.
“어유. 여기 있는 사진 전부 다 싣고 싶네. 무슨 A컷이 이렇게 많아. 차라리 B컷을 골라내는 게 더 빠르겠어.”
“그러게요. 진혁 씨 실력은 확실히 알고 있었지만, 태주 씨도 흠잡을 데가 없어요. 자세는 물론이고 눈빛까지. 버릴 사진이 하나도 없네요.”
“다음 촬영도 걱정할 것 없겠네.”
“에이. 걱정할 게 왜 없어요. 이런 사진이 또 나올지 모르니, 선별할 걸 걱정해야죠.”
촬영된 사진들이 마음에 드는지 화면 앞에 모인 사람들 얼굴에서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늦은 시간에 시작해 새벽까지 이어진 일정이었지만 결과물이 훌륭해서인지 다들 피로를 잊은 것 같았다.
오전에 지방에서 영화 촬영을 하고 온 태주는 조금 피곤했지만, 좋은 분위기를 망치기 싫어서 얌전히 사람들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태주야 야식 먹을래?”
“네. 안 그래도 배고팠어요.”
“가자.”
진혁의 안내를 받아 간 곳은 새벽까지 장사하는 조개구이집이었다. 여기 가리비구이가 맛있다며 태주 일행 모두에게 음식을 사주었다.
“형님 그런데 아까 왜 그렇게 웃으셨어요. 저도 같이 웃음 터져서 혼났잖아요.”
“큭큭. 아니 너 동석이 형이랑 예능 나왔잖아. 전에 집에 왔을 때 보고, 난 너 엄청 새침한 줄 알았거든. 근데 예능에서 어떻게 그렇게 둔하게 나오냐. 너 그게 원래 네 모습 맞지?”
“아이. 그게 언제 적 예능인데 이제야 그걸 봐요. 그리고 그건 제가 당황해서 그런 거지, 원래 안 그래요.”
“그래, 그래.”
진혁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태주를 보자, 태주가 슬쩍 눈을 피했다. 태주 자신이 봤을 때도 허당 같았는데, 남에겐 어떻게 보였을지 뻔했다. 그때 예능이 나간 후 친구 은혁에게 받았던 놀리는 메시지들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빙구라고 했지. 흔한 동네 바보라고도 하고.’
뿌드득!
“조개껍데기 씹었어?”
“아뇨.”
태주는 나중에 은혁을 만나서 복수하기로 하고 조개구이에 집중했다. 오랜 시간 촬영해서 배가 많이 고팠기 때문이다. 진혁이 장담했던 대로 가리비구이는 아주 맛있었다. 단지 흐뭇하게 태주가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진혁의 시선이 조금 찜찜했다.
“태주야.”
“네?”
“형이 2주 뒤에 예능에 나가거든.”
“네.”
“너 우 팀장한테 형들이랑 나가는 건 좋다고 했다며?”
아무래도 진혁이 태주를 예능에 데려갈 생각인 것 같았다. 태주는 가리비구이가 목에 걸리는 것 같았지만, 이미 자신이 허락한 부분이라 그렇다고 대답했다.
“무슨 예능인데요?”
“숲 속 카페.”
“처음 듣는데요. 혹시 차 파는 거예요? 저 차 잘 우려요. 커피도 잘 내리는데.”
주변에서 음식이 사레 들렸는지, 기침하는 소리가 들렸다. 견우가 고개를 저으며 거절하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진혁이 태주가 보지 못하게 시야를 가렸다. 진혁의 매니저도 슬쩍 나서서 견우가 태주에게 말을 붙이지 못하게 했다.
진혁이 말한 카페는 목장 한구석에 마련된 카페였다. 목장에 들르는 관광객 대상으로 장사하는 카페로, 판매 수익을 기부한다는 좋은 콘셉트였다. 문제는 최저 수익이 정해져 있어서, 만약 금액이 부족하면 다른 일을 해서 부족분을 채워야 했다.
지금까지 출연진은 한 번도 수익 미션을 달성하지 못했다. 미션의 액수가 크지 않았지만, 카페에서 파는 음식과 음료의 가격이 매우 쌌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페에 들르는 손님의 숫자가 많지 않았다.
제작진이 일부러 노린 것인지, 출연한 진혁과 서정국은 매번 벌칙 미션을 해야 했다. 이전 편에선 벌칙으로 갯벌에서 조개를 캐고, 과수원에서 나무에 비료를 줘야 했다. 이번엔 목장이라 소 우리 청소나 동물 목욕시키는 일 같은 걸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응. 차도 팔고, 커피도 팔아. 음식도 좀 팔고. 같이 나가자.”
“2주 뒤에 찍는 거면 괜찮아요. 그때 딱 스튜디오 촬영 들어가기 전이라, 이틀 쉬거든요.”
“응. 알아.”
“네?”
태주는 진혁의 태도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자신이 해둔 말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출연을 약속했다. 승낙하자마자 더 먹으라며 비싼 조개들을 주문해주는 진혁의 모습이 이상했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맛있게 조개를 먹었다.
옆 테이블의 이미나가 한심하게 봤지만, 진혁이 따라준 맥주에 홀려 태주는 알아채지 못했다. 얼마 만에 맛보는 맥주인지. 태주의 눈이 맥주잔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와아! 맥주.”
“내일 촬영 없지? 한 잔 마셔.”
진혁이 자신의 스케쥴을 꿰고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할 법도 했지만, 아침부터 이어진 촬영의 고단함을 맥주로 씻어내느라 바쁜 태주는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
진혁이 따라준 맥주를 여러 잔 마신 태주는 볼을 발그레하게 물들이고 잠이 들어있었다. 견우와 미나가 그런 태주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촬영장에서 보여준 냉정하고 매섭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진혁의 수작에 그대로 당해버렸다. 맥주 몇 잔에 실실 웃으면서 좋다고, 숲 속 카페는 자신만 믿으시라고 당당하게 선언을 했다.
“매니저님 태주 술은 못 마시게 하는 게 좋겠어요.”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맥주 몇 잔에 넘어가시다니.”
“그리고 그 일당들 다 조심해야겠어요. 전에 선율 건도 그렇고. 예능도 그렇고. 아저씨들이 아주 음흉해요.”
“큼큼. 태주 씨를 귀여워하셔서 그런 것도 있습니다.”
견우가 애써 변명을 해줬지만, 그도 내심 그 네 명을 경계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진혁 외에도 다들 짓궂은 제안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태주가 생각보다 경계심이 없다는 점도 단단히 기억해 두었다.
백미러에 비치는 태주는 기분 좋게 잠들어 있었다. 아직은 앳된 모습이 조금 남아있었다. 평소에는 다 큰 어른처럼 굴더니, 맥주 몇 잔에 기분이 좋아져, 호언장담하던 모습이 귀여웠다. 작게 웃음을 흘린 견우는 어느새 잠든 미나와 태주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