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20
외전. 슈퍼 패스 02
댄스, 보컬, 연기, 외국어, 작곡, 작사, 프로듀싱 등등. 기획사 연습생이 배우는 레슨의 가짓수는 적지 않았다. 그 여러 가지 레슨 중 팔을 붙잡힌 태산이가 끌려간 곳은 곧 댄스 레슨이 시작될 연습실이었다.
“으아아! 신발, 신발.”
“교복은 그냥 둬. 신발만 갈아 신고 몸 풀어, 몸.”
“야! 조용히 좀 해. 연습실 너네만 쓰냐, 어?”
“아! 몰라! 바빠. 말 시키지 마.”
교복을 갈아입는 친구, 급하게 연습용 운동화를 찾아 신는 친구들 사이에서 태산이는 조용히 목줄에서 꺼낸 연습용 운동화로 갈아 신었다. 달콤한 크레이프를 먹다 이상한 곳에 오고 느닷없이 상황이 바뀌긴 했지만, 생각보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아마 연습생 친구들이 준비하는 것이 얼반 댄스이기 때문이리라. 전공인 현대 무용과는 많이 다르지만,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많은 장르였다. 가끔 취미로 유명한 k-pop 그룹의 댄스를 커버하기도 했었고.
-달칵!
“안녕하세요!”
“안녕. 다 왔지? 누구 안 온 사람 있어?”
“없어요.”
“그래. 그럼 어제 배운…. 잠깐! 거기, 너. 새로 왔어?”
“네.”
새로 온 것이 아니고 처음 온 것이었지만, 태산이는 태연하게 그렇다고 대답했다.
“연습생 새로 들어왔다는 연락은 못 받았…. 휘유! 중간에 들일만 하네. 이름이 뭐야?”
“산이요. 이산. 외자예요.”
관리팀에서 연습생이 추가되었다는 연락을 받지 못한 강사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아무리 데뷔 조보다 관리가 엄격하지 않은 수업이라지만, 최소한 수업을 듣는 학생이 늘거나 주는 것은 미리 말해 줘야 하지 않은가. 물론 이런 사실을 어른이 시키는 대로 연습실로 왔을 아이에게 따질 마음은 없었지만, 짜증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짜증은 신입생의 얼굴을 본 뒤에 말끔히 사라지고 말았다.
‘빛이 나네, 빛이 나. 이래서 평가고 뭐고 없이 일단 내 수업에 들여보냈고만.’
쭉쭉 뻗은 팔다리, 작은 얼굴과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그리고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한 피부에 짙은 푸른 눈, 구불구불 사랑스러운 곱슬머리까지. 이런 학생이라면 절차고 뭐고 무시하고 붙잡아 두는 게 인지상정이었다.
“헉!”
“으아!”
“너희 뭐야? 반응이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착각이었지만 태산이의 레슨 참여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 강사와 다르게 눈앞에서 벌어진 상황이 당황스러운 사람들이 있었다. 태산이를 회사 앞 크레이프 가게로 데려온 대화와 자신이 태산이 팔을 잡고 연습실로 끌고 온 것을 그제야 깨달은 친구가 그 주인공이었다.
“쯧! 좋아. 새로운 친구도 왔으니까 오늘은 수업하기 전에 실력 먼저 확인할까? 산이라고 했지? 이리 나와 봐.”
“네.”
좋아하는 음악이나 춤의 장르를 묻던 강사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몸을 보아 운동을 하거나 춤을 배웠을 거라고 짐작하긴 했지만, 그게 현대 무용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노래 실력이야 자신의 전공 분야가 아니니 평가할 수 없겠지만, 춤은 달랐다. 저 얼굴과 몸에 만약 춤을 어느 정도로 출 줄 안다면 이대로 데뷔 조로 올려도 될 정도였다.
‘미, 미쳤네. 어디서 이런 애를 데려온 거야?’
한때 청혼 곡으로도 인기를 끌었던 세계적인 팝스타의 노래를 틀어 준 강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평가가 틀렸다는 걸 인정했다. 산이라는 아이는 춤을 어느 정도 추면 데뷔 조로 올릴 게 아니라, 지금 당장 데뷔 조로 올려야 할 아이였다.
자신의 전공이 현대 무용이 아니라서 정확하게 평가하긴 힘들지만, 보이는 것만으로도 이미 대단한 무용수였다. 표현력, 호흡, 밸런스 모두 나무랄 데 없었다. 거기에 아이는 역동적인 움직임이나 동작과 동작 사이의 흐름을 본능적으로 조절하고 있었다. 나이를 감안하면 감각을 타고난 것 같았다.
‘재민이는….’
한동안 태산이의 춤을 감상하던 강사는 현대 무용을 전공한 또 다른 연습생을 돌아봤다. 나중에 있을 연습생 개별 평가를 위해, 장기가 같아 포지션이 일정 부분 겹치는 상대가 연습생으로 들어온 것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볼 생각이었다.
혹시 불편하게 느끼지 않을까 했던 생각은 눈을 크게 키우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구경하는 모습에 지워 버렸다. 재민이는 새로 온 아이를 경쟁자로 여기기는커녕 저와 같은 전공이라는 사실에 두 팔 벌려 환영하고 있었다.
-짝! 짝!
“잘 봤어. 이제부터 배울 건 지금까지 배운 거랑 많이 다르지만, 아마 너라면 적응하기 어렵지 않을 거야.”
“네.”
“자, 산이 넌 자리로 돌아가. 그럼, 다들 준비됐지?”
“네!”
댄스 수업은 태산이가 익히 알던 수업과 비슷했다. 동작이나 동선에 대한 설명을 듣고 연습하고, 팀별 월말 평가 안무 숙련도를 확인했다.
두 시간 동안 진행되는 레슨 중 태산이는 의외의 사람에게 도움을 받았다. 학교 친구인 대화나 그를 기획사 연습실까지 끌고 온 친구들이 아니고, 꽁지 머리를 묶은 재민이라고 불리는 형이었다.
“여기서 이렇게 어깨 먼저 넣고 움직여야지, 연결 동작이 매끄러워. 다시 해 봐.”
“응.”
“진짜 금방 배운다. 혹시 예전에 다른 춤도 췄었어?”
“응. 어렸을 때 여러 가지 배웠었어.”
“그렇구나. 어쩐지 너무 빨리 배운다 했어. 그럼 좀 전에 했던 거 맞춰 보자.”
“응, 재민이 형.”
대화를 비롯한 친구들이 그런 둘을 돌아보다 강사에게 여러 번 지적 당하고 따가운 눈총을 받은 것과 다르게 두 사람 사이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태산이는 평소 잘 쓰지도 않는 형이라는 호칭까지 사용할 정도로 재민이와 같이 춤을 추는 게 재밌었다. 연습생인지 뭔지가 될 생각은 없었지만, 만약 재민이와 같은 팀으로 춤을 출 수 있다면 한번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헐! 저걸 한 번 보고 바로 따라 하네.’
‘야! 박대화. 쟤 현대 무용 전공이라고 하지 않았어?’
‘맞아. 현대 무용 전공이야.’
‘재능인가….’
‘산이 연습생에 관심 있대? 혹시 우리 회사 들어오는 거 아니지?’
‘돌았냐? 산이가 뭐가 아쉬워서 여길 들어와?’
무용 대회에서 상도 받고 조연이지만 할리우드 영화에도 출연했었다. 연습생인 자신들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커리어를 갖고 있었다. 게다가 형이 월드 스타 이태주였다. 태산인 본인의 능력뿐 아니라 재력, 배경, 인맥,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모두 갖추고 있었다.
만약 아이돌에 관심 있다는 얘기가 퍼지면 계약금을 싸 들고 찾아올 기획사가 줄을 설 것이다. 그 안에 4대 기획사라 불리는 기획사도 모두 포함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그러니 중소 기획사인 이곳에 올 이유가 전혀 없었다.
*
댄스 레슨이 끝나고 연습실에 있던 연습생이 삼삼오오 모여 식당으로 내려갔다. 태산이 역시 자연스럽게 그런 연습생 무리에 끼어들었다. 식당으로 가는 동안 태산이는 재민의 옆에 붙어 있었다. 그만 돌아가야 했지만, 같이 춤췄던 게 재밌어서 버티는 중이었다.
“정말로 다른 회사에서 연습생 생활 안 했었어?”
“응.”
“기본 스텝이랑 그런 걸 다 알길래 다른 회사에서 온 줄 알았어.”
“캬하하! 그런 거 아닌데.”
“그래. 그런데 너 춤 진짜 잘 추더라. 테스트도 없이 바로 레슨에 들어온 게 당연해.”
“재민이 형도 잘 춰.”
서로를 칭찬하는 두 사람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내려가는 대화와 친구들의 표정은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무런 위화감 없이 연습생들이랑 어울리는 태산이를 말리고 싶었지만, 나설 수 없었다. 실수였지만, 외부인을 회사 안으로 들인 것이 밝혀지면 혼날 게 분명해서였다.
‘박대화. 다음 레슨도 네 친구랑 같이 들을 거야?’
‘아니. 저녁 먹고 보내야지. 크레이프도 사 주고 우리 실수로 여기까지 왔잖아. 어떻게 그냥 가라고 해.’
‘그건 그렇지. 근데 쟤 진짜 대단하다.’
‘그러게. 적응력이 참.’
적응력뿐 아니었다. 오늘 처음 본 재민과 마치 한 일 년은 알고 지낸 것처럼 웃으며 떠드는 걸 보아 친화력도 대단했다. 시쳇말로 태산이는 인싸력이 높아 보였다. 아마 어느 장소에 가도 어색함 없이 금세 그곳의 사람들과 어울릴 것이다.
“산아, 매운 거 잘 먹어?”
“아니. 잘 못 먹어.”
“아! 오늘 저녁에 닭볶음탕인데, 어떡하지.”
“닭이 왜? 닭 맛있는데.”
“우리 회사 닭볶음탕 되게 맵거든.”
“그럼 나가서 먹자. 내가 사 줄게.”
저녁을 사 주겠다고 나서는 태산이를 재민이 말렸다. 대화랑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면 세 살이나 어렸다. 나이 어린 동생, 그것도 오늘 처음 회사에 온 아이한테 얻어먹는 건 양심에 찔렸다.
“나 카드 있어.”
“형도 카드 있어.”
“응?”
“아하하! 산아, 뭐 좋아해?”
“고기!”
저녁으로 고기를 사는 거라면 어렵지 않았다. 회사 인근에 저가의 고기 뷔페가 있어서였다. 줄줄이 뒤를 따라오는 친구들까지 전부 사 주는 건 무리였지만, 태산이와 대화 두 명 정도라면 괜찮았다.
일행은 회사 식당에서 저녁을 먹을 사람과 고기 뷔페로 갈 사람, 이렇게 두 무리로 나뉘었다. 태산이는 고기 뷔페 쪽이라 자연스럽게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난 처음에 얼반 댄스 배울 때 진짜 힘들었어. 현대 무용하고 궤가 다르다고 해야 할까? 표현 방식이나 몸을 쓰는 방식이 전혀 달라서 고생했는데, 산이 넌 괜찮아 보이더라.”
“나보고 만능 체육인이래.”
“누가?”
“얘네 형이 그랬대요. 이사니가 못 하는 운동이 거의 없거든요. 축구랑 농구도 잘하고 격투기도 배웠대요. 승마도 할 줄 알고.”
“우와! 진짜 체육인이라고 불러도 되겠다.”
태산이 일행이 서로의 신변잡기에 관해 떠들면서 음식점으로 가던 도중이었다. 재민이 음식점이 멀지 않은 곳에서 돌연 걸음을 멈췄다. 직후 재민은 양손으로 동생들의 팔을 잡고 커다란 스탠드 간판 뒤로 숨었다.
“왜 그래요, 형?”
“앞에 창민이 형이 있었어.”
“창민이 형을 보고 왜 숨어요?”
“그게…. 여자랑 같이 있던데?”
“네? 여자랑 같이요?”
창민은 연초에 진행된 평가에서 데뷔 조로 뽑힌 연습생이었다. 잘생긴 얼굴로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연습생으로 데뷔 전인데도 팬이 있을 정도였다.
“헐! 둘이 팔짱 꼈다.”
“사귀는 거 같지?”
“그래 보여요. 근데, 저러면 안 되지 않아요?”
“안 되지. 회사 근처에서 그러면 더 안 되고.”
회사의 여자 연습생하고 연락하는 것조차도 조심해야 하는 데뷔 조였다. 이렇게 회사와 가깝고 사람이 많은 곳에서 저런 행동은 자제하는 게 옳았다. 자신들한테 들킨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들키기라도 한다면, 최악의 경우에는 데뷔 조에서 빠지게 될 수도 있었다.
‘괜찮아. 문제없어.’
대화와 재민이 데뷔 조 멤버를 보면서 걱정하는 사이, 태산이는 다가오려는 경호원들에게 괜찮다는 신호를 보냈다.
경호 대상인 태산이가 예상 밖의 동선으로 움직이고 연락까지 닿지 않자, 원거리 경호를 하던 경호원들은 전부 긴장 중이었다. 그러던 중 다시 나타난 태산이가 길 한구석으로 숨자, 돌발 상황이 발생한 줄 알고 놀라서 몸을 드러냈다.
*
“산이 너 진짜 대단하다.”
“내 말이 그 말이에요. 어떻게 끝까지 상추 한 장을 안 먹냐.”
“캬하하. 그건 내가 육식주의라 그래.”
“육식주의? 편식쟁이가 아니라?”
“아니야. 나는 순수 육식주의야.”
고기 뷔페 문을 나서는 둘은 태산이의 식성에 질린 모습이었다. 태산이는 저녁을 먹는 내내 자기 말대로 육식주의인지 구운 버섯이나 양파 같은 채소나 쌈채, 쌈장, 밥 등은 손도 대지 않았다. 오로지 고기 한 가지만 전투적으로 먹어 치웠는데, 그 모습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골고루 먹어야지.”
“맞아. 그러다 큰일 난다.”
“괜찮아, 괜찮아.”
변신 기술을 사용해서 항상 최적의 몸 상태를 유지하는 태산이의 상태를 모르는 두 사람은 영양 불균형을 걱정했다. 그중 초콜릿 중독이라고 불러도 모자라지 않는 태산이의 초콜릿 사랑을 아는 대화의 걱정은 더 컸다.
그렇게 세 사람이 태산이의 식습관에 관해 떠들면서 회사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건물 앞에서 무게를 잡으면서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박대화! 당장 이리 와. 거기 너희도.”
“…네.”
“네가 그 애구나, 댄스 레슨에 들어갔다던.”
“네, 산이라고 해요.”
건물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연습생 관리를 맡은 팀장과 저녁 댄스 레슨을 진행했던 강사였다. 강사는 새로운 연습생에 관한 평가를 전하고 얘기도 없이 수강생을 보낸 것을 따지러 갔다가 붙잡혀서 여기까지 끌려왔다.
-탁탁탁탁!
“괜찮으십니까?”
“응.”
뚫어질 듯 태산이 얼굴을 살피던 팀장이라는 사람이 손을 뻗었을 때였다. 태산이의 모습을 지켜보던 경호원들이 움직였다. 한 명이 팀장의 손이 닿지 않도록 태산이와의 사이를 막아서고 다른 인원들은 일행의 주변을 둘러싸 주위의 시선에서 가렸다.
“경, 경호원?”
“으악! 깜짝이야.”
어디선가 본 듯한 얼굴이어서 자세히 뜯어볼 생각으로 손을 뻗었던 팀장은 매섭게 자신을 쳐다보는 경호원의 눈길에 놀라서 손을 거뒀다.
그는 태산이가 대화의 학교 친구로 실수로 건물까지 들어왔다는 것만 알았지, 이렇게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는 중인 줄은 모르고 있었다. 만약 일상적으로 경호를 받는 상대인 줄 알았다면, 주의만 주고 보내지 연습생으로 꼬실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끼이익!
-저벅! 저벅!
“실례할게요.”
그런 팀장의 생각은 경호원 사이를 가르고 나타난 인물을 보고 난 뒤 확실해졌다.
단정하게 머리를 넘기고 눈매를 강조한 메이크업에 화려한 재킷을 걸친, 밤의 귀족 같은 분위기로 시선을 강탈하는 이태주. 그리고 반가운 얼굴로 그 이태주에게 다가가 안기는 산이라는 소년.
괜히 트집 잡아서 연습생으로 들어오라고 했었다면 아마 그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을지도 몰랐다.
“산이 재밌게 놀았어?”
“응. 태주, 화보는? 다 찍었어?”
“어. 산이 데리러 오려고 힘내서 다 찍었어.”
“캬하하. 잘했어.”
소년의 등 뒤로 둘렀던 팔을 올려 머리를 쓰다듬는 이태주는 세상 다정한 형처럼 보였다. 소년에게 건네는 말들도 다정하고 애정이 넘쳤다.
그러나 태산이의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던 팀장에게 보내는 눈길은 무척 차가웠다.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벨 수 있었다면 베였을 정도로 날카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