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24
외전. 도도 강림 01
정원의 오두막 앞은 오늘도 어김없이 찾아온 방문자 덕분에 시끌시끌했다.
“뺘아아!”
“오오옷! 잘한다. 들어 올려, 도도야.”
“뺘앗!”
-펑펑펑! 펑! 펑!
“축하, 축하. 도도는 천하장사야.”
처음 도도를 보러 온 뒤 거의 매일 정원을 방문하는 모린은 올 때마다 재밌는 마법을 선보였다. 오늘 역시 도도에게 장난감같이 생긴 아령을 들게 한 뒤, 드는 걸 성공하자 도도의 머리 위로 마법 불꽃을 쏘면서 축하해 주었다.
“이거 무거워?”
“중력 마법 걸린 거라 들어 올릴 때만 무거워.”
“그래? 얼마나 무거운데?”
“지금은 10kg이야.”
“에이. 그럼 그냥 도도 들고 운동하는 게 낫겠다.”
“내 동생이 운동 기구냐!”
누가 누구 동생이냐며, 자신의 항의는 들은 체도 하지 않고 테이블 위에 앉은 도도를 번쩍 들어서 팔 운동을 시작한 태산이를 모린이 째려봤다.
누구 동생이냐는 말 때문에 째려보는 것 같았지만, 사실은 묵직한 도도도 번쩍번쩍 들었다 놨다 하는 게 부러워서였다. 자신은 여전히 어린아이 모습인 데 반해 태산이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커 비교하기 싫어도 저절로 비교되어서 부아도 났다.
“지금 인간 나이로 몇 살이야?”
“왜?”
“몇 살이냐니까!”
“성질은. 열다섯 살이야.”
“흥! 조금만 기다려. 내가 변신 마법 배워서 내려다봐 줄 테니까.”
“뭐래, 땅꼬마가.”
모린은 턱을 치켜들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태산이를 보면서 주먹을 꼭 쥐었다. 아빠를 괴롭히는 한이 있더라도 변신 마법을 배운 뒤, 성장이 멈춘 아이 모습이 아니라 인간 어른 모습으로 변해서 내려다보겠다고 다짐했다.
“태주는 아직도 연습 중이지?”
“응.”
“흥! 모린이 왔는데도 연습만 하고, 태주 나빴어. 확 방해할까?”
“그러기만 해 봐.”
“뺘아아!”
모린은 실제로 태주를 방해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지만, 좀 전까지 제 마법을 보면서 좋아하던 도도까지 경고성을 내자 슬쩍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렇더라도 태주의 일을 방해할 생각은 없었다. 방해하다 태주의 미움을 받으면 득보다 실이 더 컸다.
“그런데 이번에는 왜 이렇게 연습을 오래 해? 원래는 하루씩만 했잖아.”
“이번에 맡은 역할이 어려워서 그렇대. 사실 태주는 안 하려고 했는데, 미국에서 처음 영화 찍을 때 그 감독한테 도움을 받아서 해야 한대.”
“바보 같은 감독이네, 은혜를 갚게 두다니. 나 같으면 그걸 빌미로 태주 옆에 딱 붙어 있을 텐데.”
“뺘아아!”
“당연히 태주가 좋으니까 그렇지. 너도 매일 같이 있고 싶잖아?”
모린의 말에 도도의 고개가 아래로 숙여지자 태산이가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현실까지 태주를 따라가서 같이 지내는 것은 도도의 오랜 바람이었다. 다만 그렇게 되기 위해선 정원의 레벨을 5로 올려서 정식 펫으로 등록해야 했다.
그러나 그것은 앞으로도 한동안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태주가 여유로워지면 제일 먼저 정원을 개간할 거라고 했어. 금방 현실에서도 같이 지낼 수 있을 거야.”
“뺘아아.”
“괜찮아. 태주는 약속은 꼭 지켜.”
“맞아. 태주는 한번 한 약속은 꼭 지켜.”
그래도 정원의 레벨을 올리는 일은 쉽지 않아 보였다. 예전 도도가 태어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정말 많은 사람을 초대해서 정원의 개간에 도움을 받았었다. 다 같이 기다란 수로도 파고 건물도 새로 짓고 했지만, 정원의 크기가 너무 커서 반도 채 개간하지 못했었다.
그 이후로 태주가 열심히 개간하고 있었지만, 속도가 빠르진 않았다. 여러 가지 마법 도구를 사용하면서 개간하고 있지만, 마법이나 정령술로 정원을 개간하는 다른 정원사에 비하면 거북이가 기어가는 속도와 비슷했다.
도도가 바라는 대로 현실에서도 같이 지내는 것은 이른 시일 안에 이루기 힘들어 보였다.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역할이야? 지난번처럼 인외 종족이야?”
“아니. 십 대 청소년.”
“그래? 그런데 그게 왜 어렵지?”
“나도 잘 몰라. 태주가 요즘 십 대는 이해하기 힘들다고 했어.”
태주는 현실 나이는 서른다섯이었지만, 회귀 전 나이까지 합하면 오십이 넘었다. 게다가 그는 매일 다른 사람보다 정원에서 이틀의 시간을 더 보내고 있어서 실제론 그보다 더 나이가 많다고 생각해야 했다. 그래선지 이번에 맡은 미국 십 대 고등학생 역할을 어려워했다.
“그래서 요새 태주가 매일 학교로 데리러 와.”
“그건 원래 그랬잖아.”
“아니, 평소보다 일찍 온다는 말이야. 수업 끝나기 훨씬 전부터 와서 학생들 모습을 지켜본다고. 덕분에 여자애들이 난리야.”
“안 돼!”
요즘 십 대들은 어떻게 행동하는지 관찰하기 위해 오는 그를 보고 학생들이 잘생겼다고 난리였다. 여자애들은 태주가 자기보다 적게는 열다섯 많게는 스무 살이나 연상인데도 기회만 있으면 달려들 기세였다.
“그 정도로 뭘 그래? 이번에 태주가 찍는 영화는 로맨슨데.”
“로맨스?”
“응. 거기 여자 주인공이랑 뽀뽀도 한대.”
“뭐? 절대 안 돼. 태주는 나랑 결혼할 거란 말이야.”
태주의 영화 내용을 들은 모린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손으로 태산이를 가리켰다. 마치 왜 그런 영화를 찍게 두었냐고 태산이에게 따지는 듯한 모양이었다.
직후 태산이는 안고 있던 도도를 한쪽 옆구리에 끼웠다. 그런 뒤 자유로워진 팔을 크게 휘둘렀다.
-빡!
“악! 왜 때려!”
“깼어? 꿈은 잘 때 꿔야지.”
“이게!”
모린의 그런 불합리한 시선을 받고 얌전히 참을 태산이는 아니었다. 태주가 하고 싶어 하는 역할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행동인가. 거기에 태주와 모린의 결혼? 그거야말로 나서서 막아야 할 일이었다.
두 팔을 걷어붙이고 달려드는 모린을 태산이는 가볍게 피했다. 옆구리에 도도를 끼고 있었지만, 움직임은 깃털처럼 가벼웠다. 마법을 쓰는 게 아니라면 모린은 태산이의 상대가 아니었다. 그래도 모린은 도도를 안은 태산이를 향해 마법을 쓰진 않았다.
“헛소리하지 마.”
“헛소리 아니야. 내가 엄마 같은 어른이 돼서 태주 지켜 줄 거란 말이야.”
“태주는 내가 지켜 줄 거니까. 너까지 지켜 줄 필요 없어.”
“뺘아아!”
“좋아! 도도는 끼워 줄게. 우리 같이 태주 지키자.”
“뺘아.”
태산이는 옆구리에 끼인 채로 주먹 쥔 팔을 드는 도도를 다시 제대로 안아 들었다. 아직도 뿔이 말랑말랑한 도도가 어떻게 지켜 주겠다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태주는 아마 그런 말만으로도 기뻐할 게 분명했다.
“이, 씨! 내가 나중에 엄마처럼 강해지면 가만 안 둘 거야.”
“훗! 그게 언젠데?”
“이, 이!”
“욕하면 태주한테 이른다.”
“으아아아!”
드래곤과 차보 윙의 혼혈인 모린은 1차 성장의 조건을 한 가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강한 두 종족 사이에 처음 태어난 혼혈이라 어른들의 조언도 그다지 유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언제 아이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아무도 몰랐다.
*
모린이 좋아하는 태주를 볼 수 있었던 것은 저녁 식사 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태주가 저녁을 먹기 전에 도도와 마법 카펫을 타고 노을을 구경할 생각으로 연습을 그만두고 나오지 않았다면, 아마 돌아가기 전까지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만난 시간이 짧아서였을까, 모린은 집에 돌아온 뒤에도 태산이와의 대화가 잊히지 않았다.
“안 돼!”
“으악! 깜짝이야.”
“아빠!”
“왜, 왜?”
“나 변신 마법 가르쳐 줘.”
모린의 잠자리를 봐 주던 아칸서스는 또다시 시작된 변신 마법 타령에 이마를 짚었다.
천부적인 마법 재능을 지니고 마나 보유량도 지나칠 정도로 많은 모린이었지만, 취약한 부분이 있었다. 변신 마법이나 강화 마법 같은 신체에 적용하거나 유지하는 마법이었다.
변신 마법은 모린이 직접 배워서 시전도 해 봤고, 거듭된 실패에 그가 직접 마법을 걸어 주기도 했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변신 마법이 실패하는 원인도 알아내서 진작 포기한 줄 알았는데, 또다시 변신 마법을 알려 달라는 요구를 듣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다.
“안 된다는 거 알잖아.”
“왜! 태산이도 변신하는데.”
“걔는 시스템의 특혜를 받는 정원사의 펫이잖아. 기술석으로 쉽게 익히는 거랑 직접 마법을 배워서 쓰는 거랑은 다르지.”
“그럼 나도 펫 해 줘.”
아칸서스는 꽉 쥔 주먹이 모린의 꿀밤을 때리지 않도록 많지 않은 인내심을 박박 긁어모아야 했다. 대체 부모 자식 사이에 뭐가 아쉬워서 자식을 펫으로 삼는다는 말인가. 얼마나 비정상이어야지 제 자식을 펫으로 삼을 수 있을지 그의 상식으로는 가늠도 되지 않았다.
“넌 대체 누굴 닮아서 이렇게 철이 없냐.”
“아빠. 내가 누굴 닮았겠어.”
“….”
“….”
차마 다나를 닮았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아칸서스는 갑자기 자신의 아버지가 위대하게 느껴졌다. 다나가 매일 하는 말대로 모린이 자신을 쏙 빼닮았다면, 자신의 아버지도 이런 과정을 전부 겪었다는 말이었다. 자신을 키우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왜 또 변신 마법을 배우겠다는 건데?”
“태주가 다른 여자애랑 뽀뽀한대.”
“그게 왜?”
“태주는 나랑 결혼할 거란 말이야.”
“정원사가 뭐가 아쉬워서 너 같은 땅꼬마랑 결혼해?”
“크아아!”
모린이 베고 있던 베개가 얼굴로 날아오자, 아칸서스는 자신이 너무 솔직했다는 걸 깨달았다. 적당히 희망을 주는 말을 했어도 됐는데, 실수로 양심의 말을 필터 없이 꺼내고 말았다.
아닌 말로 정원사가 뭐가 아쉬워서 한참은 어린 모린이랑 결혼한단 말인가. 정원사는 인간이긴 했지만, 성격도 좋았고 생긴 것도 무척 잘생겼다. 엘프 사이에서도 독특한 분위기와 미모로 눈에 띌 정도이니, 아마 인간들 사이에선 비교 대상을 찾기 힘든 수준일 것이다.
“으아아앙!”
“왜, 왜 울어?”
“태주 뽀뽀하는 거 싫어!”
“아니, 왜 그런 거로 울어. 정원사가 애 딸린 유부남도 아니고 연애할 수도 있는 거지.”
“…애 딸린 유부남은 연애하면 안 돼?”
당연히 안 된다. 부인하고 연애하는 거라면 괜찮지만, 애가 있고 결혼한 상태라면 가정에 충실해야 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렇다고 모린에게 설명하는 아칸서스는 어쩐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정원사에게 미안한 감정도 느껴졌다. 말썽쟁이의 작은 머릿속에 무슨 깜찍한 계획이 세워지는 중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무래도 그 대상이 정원사인 것 같아서였다.
“아빠. 내일 할아버지 보러 가자.”
“할, 아버지?”
“응. 모린이 부탁할 게 있어.”
“그, 그래.”
“아빠. 얼른 자. 내일 할 거 많아.”
“….”
아무래도 미안해할 대상을 한 명 더 추가해야 할 것 같았다. 아칸서스는 손주인 모린이 귀여워 꼼짝 못 하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미리 사과의 말을 전했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위로의 말을 건넸다. 모린이 억지를 부려서 제 할아버지를 곤란하게 만든 후의 대가는 그가 치러야 할 테니 말이다.
*
다음 날 오후 정원은 매우 익숙한 손님과 누구도 짐작하지 못한 손님을 맞이해야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아칸서스와 반대로 싱글벙글한 모린. 그리고 모린과 비슷한 흰색 머리카락에 짙은 녹색 눈의 젊은 사내였다.
“안녕하십니까.”
“아, 안녕하세요.”
“우리 아이들이 그간 신세를 많이….”
“?”
‘우리 아이들?’
아칸서스보다도 어려 보이는 사람이 우리 아이들이라고 했지만, 태주는 그러려니 했다. 이미 꿈의 세계 주민의 나이를 외모로 판단하는 게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꿈의 세계에선 상대의 정체를 지레짐작하지 말고 스스로 소개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제일이었다. 상대의 정체보단 중간에 하다가 끊긴 인사말이 더 신경 쓰였다.
“….”
“태주, 모린이 할아버지야. 할아버지 소개해야지.”
“아차! 실례했습니다. 인형인가 싶은 생물이 보여서 그만….”
“네?”
“뺘아?”
“커윽! 귀, 귀여워.”
누가 모린의 가족이 아니랄까 봐. 모린의 할아버지 역시 꽤 리액션이 컸다. 도도가 고개를 갸우뚱한 것만으로 귀엽다며 심장을 부여잡고 쓰러지는 시늉을 했다.
“적당히 해요, 아버지. 정원사가 놀라잖아요.”
“불효자는 조용히 해라.”
“누가 불효자예요, 누가?”
“네놈이 불효자지 누가 불효자야. 이렇게 귀여운 애가 있다는 걸 지금까지 까맣게 속이고 있던 네놈이 불효자야.”
아칸서스는 억울했다. 그에게도 미리 알리지 못하는 사정이 있는데, 들어 보지도 않고 불효자라고 매도하는 것은 지나친 처사였다.
정원사는 현실의 삶이 끝나면 꿈의 세계로 이주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주 후에도 인간으로 남을 가능성이 가장 크지만, 또 몰랐다. 진화석을 쓰거나 특별한 아이템을 얻어 다른 종족으로 바뀔지. 꿈의 세계에는 수명을 늘릴 방법이 여럿이니 언제 도도를 둘째로 데려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나중에 다 말하려고 했다니까요.”
“나중에 언제? 나 죽고 나서?”
“오버하긴. 죽긴 누가 죽어요. 지금도 건강하다 못해 팔팔한데.”
“말버릇하고는. 네가 아직 덜 맞았지?”
“…애들이 봐요.”
모린의 할아버지는 애들이 본다는 아칸서스의 말에 큼큼 기침 소리를 내더니,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자세를 가다듬었다. 직전 아칸서스에게 흉포한 얼굴로 주먹을 들어 보였던 것은 마치 다른 사람이었던 것처럼 한껏 풀어진 얼굴로 자애로운 표정을 지었다.
“아가. 할아버지라고 불러보련?”
“뺘아아아?”
“옳지. 세상에나! 목소리도 생긴 것만큼 귀엽구나. 눈으로 못 봤으면, 할아버진 어디서 꾀꼬리가 우는지 헷갈릴 뻔했어요.”
“뺘아?”
“허허허! 놀랐어요? 괜찮아요, 괜찮아. 아가가 귀여워서 그런 거예요.”
태주는 제 품에 안긴 도도에게 얼굴을 들이미는 모린의 할아버지 때문에 꽤 난감했다. 힘들지도 않은지 인사하듯이 허리를 굽히고 도도와 시선을 맞추는 게 무척 부담스러워서 몸이 뒤로 빠질 것 같았지만, 호감 가득한 목소리와 눈빛 때문에 최대한 참고 있었다.
“그만하고 자리에 앉아요. 부담스러워 하잖아요.”
“허허허. 실례했습니다.”
“괜찮아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차는 뭐로 드릴까요?”
“그, 차보다는 아기를 제가 좀 안아 봐도 되겠습니까?”
“네. 여기요. 도도예요.”
태주는 평소처럼 모린에게 도도를 맡기지 않고 모린의 할아버지에게 안겨 주었다. 아칸서스를 키운 사람답게 아이를 안는 자세가 상당히 안정적이었다. 그는 도도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모린의 할아버지를 올려다보는 걸 확인한 뒤 오두막 안에 준비해 둔 디저트와 차를 가지러 일어났다.
“아가. 정원사님을 따라서 현실로 가고 싶다고요?”
태주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도도를 위한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