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28
외전. 팀 02
이른 아침 태주는 어딘지 허전함을 느끼며 잠에서 깨어났다. 그는 손을 뻗어 옆자리 그의 호랑이 녀석이 잠들었던 곳을 더듬었다. 북슬북슬한 털이 닿을 걸 예상했지만, 아무것도 만져지지 않았다.
지난밤 옆구리에 꼭 붙어서 잠들었던 호랑이 녀석이 자리에 없었다. 정원에서 돌아온 뒤 깼다가 다시 잠들었는데 그사이에 나간 모양이었다.
‘하여튼 강철 체력 호랑이야.’
정원 순찰, 도도와의 훈련 등으로 꿈의 정원에서도 쉬지 않고 움직인 녀석이 지치지도 않는지 그새 아침을 시작했다. 어릴 적엔 아침잠이 많아서 그가 주방까지도 안고 다녀야 했었다. 또 혼자서 돌아다니는 걸 싫어해서 꼭 붙어 있었는데, 이제는 혼자서도 잘만 돌아다녔다. 성장했다는 증거였지만, 내심 아쉬웠다.
‘좀 더 잘 것이지.’
태산이의 기본 체력이 좋은 것도 알고 기본 체력보다 회복력이 더 좋아서 활동에 무리가 없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걱정을 놓지 못했다. 어릴 적의 모습이 여전히 뇌리에 남아 있고, 연습생이 된 뒤로 같이 보내는 시간이 줄어서 그런 것 같았다.
“산아. 우유 마셨어?”
“응. 마셨어.”
그가 찾던 호랑이는 거실 앞 테라스에서 스트레칭 중이었다. 그 모습이 마치 춤을 추는 것 같이 보여서 태주는 잠시 멈춰 서 태산이를 지켜보았다. 밝은 아침 햇살을 받으면서 유려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단순히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었는데도,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우아했다.
태주는 너무 잘 자라 준 그의 호랑이에게 뿌듯한 감정을 느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티를 내지 않고 여상한 말투로 물었다. 팔불출로 보이지 않게 조심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배고프면 힘을 못 쓰는 태산이를 2호가 챙겨 줄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냥 말을 걸고 싶었다.
“산아 육포 줄까?”
“아.”
“킥!”
태주는 몸을 풀던 자세 그대로 입만 벌린 태산이에게 다가가 바라는 대로 육포를 넣어 주었다. 곧 아침을 먹을 시간이라 많이 먹일 수는 없었지만, 한두 조각은 괜찮았다. 그렇게 태산이를 챙기다가 태주는 위층에 사는 데뷔 조 멤버에 생각이 미쳤다.
“위층 애들은 잘 챙겨 먹나 몰라.”
“형들 잘 챙겨 먹어.”
“그래?”
“응. 매일 닭 먹는대.”
“닭을 먹어? 매일?”
“응. 매일매일 닭 가슴살 먹는대.”
태주는 좋아하는 닭을 매일 먹는다며 형들을 부러워하는 태산이 때문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형들이 먹는 닭이 태산이가 아는 바삭바삭한 튀김 옷을 입은 짭짜름한 치킨이 아니라, 염분을 줄인 밍밍하고 퍽퍽한 닭 가슴살이라는 걸 알려 줘야 할지 고민됐다.
“산아. 형이 비타민이랑 홍삼 스틱 챙겨 줄게. 멤버 형들 가져다줘.”
“응.”
“스트레칭 끝났으면 들어가자. 쿠첼루스 올 시간이다. 아침 먹어야지.”
“양 갈비!”
“그래. 해나가 싸준 양 갈비야.”
-띠리리릭!
태주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관이 열리고 쿠첼루스가 들어왔다. 그는 번거롭고 불편할 텐데도 불평 한마디 없이 시간 맞춰 옆집으로 건너오는 쿠첼루스가 고마웠다.
앞으로 태산이가 데뷔 조를 거쳐 아이돌 된 뒤에도 그런 불편은 이어질 텐데, 그걸 기꺼이 감수하고 곁에 머물러 주는 것은 쿠첼루스가 가족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양 갈비입니까?”
“킥! 네. 어서 들어오세요.”
아침 메뉴를 확인한 또 다른 육식파 쿠첼루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태주는 사는 환경이 바뀌었지만, 전과 다름없는 아침 모습이 반복되는 일상이 반가웠다.
*
회사 앞 길거리에서 대화는 태산이의 날렵한 움직임에 입을 떡 벌리고 있었다. 태산이의 초콜릿 잼 크레이프 사랑은 두 달 가까이 지났어도 바뀌지 않았다. 아이돌을 보러 온 사람, 태산이를 보러 온 사람 때문에 길이 복잡한데도 요행 좋게 뚫고 지나가서 크레이프를 사 왔다.
“빨라!”
“이히히. 크레이프 가게 사장님한테 도착하는 시간 알려 줬어.”
“예약해 놓고 받아 온 거야?”
“응. 태주가 충전해 줬어. 100개. 다 먹으면 또 해 준대.”
“…대단하다, 진짜.”
대화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크레이프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라, 태산이를 위하는 태주의 세심한 배려 때문이었다. 크레이프 가게는 쿠폰이나 충전 포인트 가맹점이 아닌데도 선결제를 해 둔 것도 그렇고, 지금도 근처에서 둘을 지켜보는 경호원들도 그랬다.
‘하긴. 산이를 위해서 전원주택 생활을 포기하고 이사까지 했는데.’
십 년 넘게 살던 곳에서 태산이의 데뷔 조 생활 지원을 위해서 옮긴 것으로 이미 말이 필요 없는 상황이었다.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는 배우 이태주는 그냥 동생 바라기에 부정할 수 없는 팔불출이었다.
양손에 크레이프를 들고 한 입씩 베어 먹는 태산이를 대신해서 출입문 카드를 찍던 대화의 눈에 로비에 모인 연습생 몇 명이 들어왔다. 월말 평가 전까지 태산이와 친하게 지냈지만, 지금은 봐도 아는 체도 하지 않는 친구들이었다.
‘유치하다, 유치해.’
태산이가 안무를 도와주고 간식을 나눠 줄 때는 좋다고 따라다녀 놓고는 월말 평가 후로 태도를 바꿨다. 제 실력이 태산이보다 부족해서 떨어진 걸 인정하지 못하고, 태산이가 실력 때문이 아니라 태주 형의 배경 때문에 데뷔 조가 된 거라고 소문을 냈다.
특히 보컬 포지션인 애들이 그런 선동에 금방 넘어가 버렸다. 누가 봐도 레슨 시간에 열심히 하고 실력이 확확 느는 태산이였는데, 그걸 보면서도 인정하지 않았다. 그저 태산이가 회사에서 연습하는 시간이 적은 데도 뽑힌 걸 증거랍시고 오해를 키우고 있었다.
“괜찮아. 그냥 가자.”
“진짜 괜찮아?”
“응. 질투는 자기 실력이나 재능에 자신 없는 사람이 하는 거래.”
“누가?”
“태주가 그랬어. 내가 너무 강해서 질투하는 거래. 나는 강한 호랑이야.”
대화는 태산이의 말이 끝나자마자 로비에 있던 연습생들을 돌아봤다. 태산이의 말은 그들이 약하고 실력이 없어서 질투한다는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대화는 태산이한테 치졸한 행동을 했던 그들의 표정이 어떨지 보고 싶었다.
“푸하하하! 산이, 너 진짜 대박이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강한 호랑이라고 말하는 태산이 옆에서 대화가 웃음을 터트렸다. 일그러진 얼굴, 수치스러운 얼굴, 도망가고 싶은 얼굴. 뒤에서 남을 험담하고 따돌린 사람에게 어울리는 한심한 얼굴들이었다.
“박대화.”
“왜?”
“너 진짜 그런 거야?”
대화가 데뷔 조 연습실로 간 태산이와 헤어져 연습생들이 준비실로 사용하는 연습실에 들어갔을 때였다. 로비에서 봤던 연습생 중 한 명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대화에게 말을 걸었다.
“뭐가 그런 거야?”
“이산 백으로 데뷔 조 들어가려고 시녀 짓 하는 거냐고.”
“뭐래? 돌았냐? 질투를 너무 많이 하다 보니 환청이라도 들려? 그래서 그런 헛소리를 막 던지는 거야?”
“헛소리라고! 이태주가 회사에 투자한 거 모르는 사람이 어딨어? 너도 알잖아.”
“아니까 하는 소리야, 등신아.”
태주가 투자한 것은 사실이지만, 누가 데뷔 조가 되고 아이돌로 데뷔하고 말고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온통 태산이가 편하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도 태산이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하는 형태여서 쓸데없이 회사 일에 참견하거나 하지는 않을 터였다.
‘애초에 산이가 그런 거에 관심이 없는데, 태주 형이 관심을 보일 리 없지.’
태산이의 형이 아니더라도 대화는 태주의 팬이었다. 대화는 태주가 차기작 준비로 한창인 와중에도 꽤 많은 일정을 소화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태주는 화보, 광고, 인터뷰 등등. 항상 하는 일 외에도 자선 단체 일까지 돕고 있었다.
해외 유명 감독의 러브 콜을 뿌리치고 한국 감독의 영화를 선택한 태주였다. 온갖 매체가 주목하는 상황에서 관심도 없는 남의 회사 일에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스캔들 한 번 안 난 사람이었다. 트집잡히기 딱 좋은 빌미를 제공할 이유가 없었다.
“이 새끼가!”
“그러게 누가 그러래?”
“박대화!”
“놔! 내가 진작 유치한 짓 하지 말랬지?”
대화는 잡힌 멱살을 거칠게 떼어 냈다. 목이 따가운 게 손톱에 긁힌 것 같았지만, 레슨 시간이 거의 다 되어서 낭비할 시간이 없었다. 그는 아직도 할 얘기가 남았는지 그를 잡는 손들을 다 떨쳐 버리고 빠른 속도로 옷을 갈아입었다.
*
태산이의 보컬 레슨과 댄스 레슨 사이에는 삼십 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태주가 회사에 따로 부탁한 휴식 시간으로 보통은 간식을 먹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시간에 간식을 먹기 힘들었다. 그 시간에 데뷔 조 멤버 다섯 명과 어울릴 만한 연습생과 사진을 찍기 때문이었다. 다른 연습생들과 다르게 저녁 식사 시간 전에 집에 가는 태산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했다.
“빨대로 마셔, 빨대로. 머리 움직이지 말고.”
“네.”
지난번처럼 배를 곯고 가면 태주가 걱정할 것 같아서 태산이는 메이크업을 받는 사이 초콜릿 바와 우유 같은 먹기 편한 간식을 챙겨 먹고 있었다. 그러는 한편 다른 데뷔 조 멤버와 주간 평가에 선보일 노래에 대해 논의하고 있었다.
“그 곡은 래퍼 비중이 너무 높아. 너희 중에 랩 가능한 사람 없잖아.”
“나! 나 할래.”
“…산아. 우유 마저 마셔.”
“그래. 그거 먼저 먹어. 사진 금방 찍을 거 같으니까.”
“응.”
이미 데뷔 조 멤버 사이에선 태산이에게 랩을 시키지 말자는 합의가 오간 상태였다. 시험 삼아 시켜 보았다가 멤버 전원의 찬성으로 보컬만 시키는 것으로 결정됐다.
태산이는 그리 빠르지 않은 비트인데도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가사를 읽는 수준이었는데도 급한 마음에 발음이 뭉개져 어린애가 옹알거리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데 산아. 너 우리가 얘기하는 노래들 알아?”
“몰라.”
“크윽! 나중에 형이 노래 모아서 줄게. 그거 들어 봐.”
“응.”
현재 데뷔 조는 래퍼 한 명에 보컬만 네 명인 상태였다. 보컬들의 음색도 음역도 많이 달라서 여러 스타일의 곡을 불러 보면서 테스트하는 중이었다.
문제는 태산이가 아는 최신 가요가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노래도 댄스만큼 익히는 게 빨라서 진도를 따라오는 게 어렵진 않았지만, 최신 가요에 대한 지식이 많이 부족했다.
“자, 노아부터 개인 컷 찍자. 순서는 알지? 너희 개인 컷 찍은 뒤 연습생 애들이랑 단체 컷, 마지막으로 유닛 컷.”
“알아요.”
“오케이. 시간 없으니까. 노아 빨리 들어가. 산이는 형들 먼저 찍고 나서 찍을 거니까. 그거 얼른 먹고.”
“네.”
노아가 제일 먼저 화이트 스크린 앞에 서고 다른 멤버들이 기다리는 스튜디오 안으로 대화를 비롯한 몇 명의 연습생이 들어왔다. 태산이는 데뷔 조와 사진을 찍는 연습생에 대화가 포함된 게 반가웠다.
이곳은 가능성이 보이는 연습생만 호출해서 데뷔 조와 사진을 찍는 스튜디오였다. 이 스튜디오에 대화가 불려 왔다는 것은 그만큼 데뷔 조에 뽑힐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였다.
“대화야, 이리 와. 나 여깄어.”
“헐. 이사니, 너 또 먹어? 크레이프 먹고 두 시간밖에 안 됐는데?”
“보컬 레슨 열심히 받아서, 배고파졌어.”
“어휴! 돼지.”
“돼지 아니야, 호랑이야.”
“뭐든. 근데 넌 대체 먹은 게 다 어디로 갔냐? 이런 몸의 비결이 뭐야, 응?”
대화는 먹기는 자신의 몇 배로 먹는데도 군살 한 점 보이지 않는 태산이의 신체에 감탄했다. 그는 먹는 것보다 에너지 소모가 큰 것처럼 보이는 가성비 나쁜 태산이의 몸이 무척 부러웠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그런 몸이 되는지 비결을 물었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목이 왜 그래? 누가 그랬어?”
대신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낮고 흉포한 목소리의 질문이 돌아왔다.
“흐흠. 아무것도 아니야.”
“….”
“진짜야. 별일 없었어.”
-킁킁!
대화는 얼마 전에 있었던 폭력 사건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사건의 당사자가 같은 댄스 레슨을 듣고 같은 연습실에서 단체 곡을 연습하고 있었다. 멱살을 잡힌 피해자의 입장이었지만, 문제가 불거지는 건 바라지 않았다.
“최형기, 김주성?”
-킁킁!
“김도윤! 셋이 그랬어?”
하지만 그가 범인의 이름을 대지도 않았는데, 태산이는 손쉽게 범인의 이름을 알아냈다. 그의 몸 가까이 붙어서 몇 번 냄새를 맡더니 한 번에 그의 목덜미를 잡은 사람과 양팔을 붙잡은 사람을 알아냈다.
“헐! 너 무슨 짐승이야?”
“흥! 호랑이랬잖아. 이 정도는 기본이지.”
“기본은 무슨! 냄새로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난 알아.”
태산이의 짐승 같은 후각 능력에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대화는 태산이의 눈이 불길이 오른 것처럼 화르륵 타오르는 것을 보고 말리기 시작했다.
“내가 때려 줄까?”
“노오오! 절대 안 돼! 그냥 내버려 둬. 네 말대로 질투 나서 그런 거니까. 걔네 신경 쓰지 말고 촬영 준비나 하자.”
“흥!”
“그런 것들은 실력으로 눌러 주면 돼.”
“대화 넌 춤만 잘 추잖아.”
태산이의 말에 뿌드득 이를 간 대화가 랩도 잘한다며 반박했다. 나름 괜찮은 실력으로 칭찬도 자주 듣는 편이었는데, 매번 미국에서 만났던 톱클래스 래퍼들과 그의 실력을 비교하며 못한다고 놀리는 태산이가 얄미웠다.
“내가! 이번 월평에서 반드시! 데뷔 조에 든다! 꼭!”
“킥!”
태산이와 대화의 실랑이는 사진 찍을 준비를 해야 해서 실력으로 월평에서 눌러 준다는 얘기로 끝났다. 두 사람은 이번 일을 해프닝 정도로 넘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다. 데뷔 조의 잠정적 리더인 노아가 그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위태로운 팀에 어렵게 생긴 멤버였다. 폭력 사건으로 멤버를 잃어서 앞이 깜깜한 시간을 보내다가 이제야 팀의 모습이 갖춰지는 중이었다. 누군가의 질투로 인해 다시 멤버를 잃고 싶지는 않았다.
‘재민아. 촬영 끝나고 얘기 좀 하자.’
‘…네.’
노아는 어떻게 된 사정인지 태산이와 제일 오래 같이 지낸 재민이에게 묻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