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29
외전. 팀 03
재민이에게 그간 있었던 일에 대해 들은 노아의 표정에 감추지 못한 짜증이 드러났다. 태산이의 보컬은 굳이 배우인 형의 백으로 들어오고 말고 할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기회와 능력이 된다면 바로 팀으로 들어오게 붙잡아야 마땅한 것이었다.
태산이는 그만큼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지고 있었다. 만약 팀에 메인 보컬인 우진이가 없었다면, 바로 그 자리를 주어도 괜찮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태산이를 질투해서 헛소문을 퍼뜨린 애의 실력이 어떤지 모르겠지만, 그런 막귀를 가지고 있는 애가 좋은 실력일 거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아니, 실력이 아주 좋더라도 그런 성격이라면 같은 팀으로 활동하기 힘들었다.
“걔네들 마음을 이해 못 할 건 아니에요. 솔직히 산이 실력이 너무 괴물 같으니까요. 넘어설 가능성이 안 보이니 끌어내리려는 거죠.”
“그렇다고 그 자리에 자기가 설 순 없는데….”
“당연하죠. 그런 마인드로는 뭘 해도 성공 못 해요. 금방 밑천이 드러날 테니까요. 여기는 제 실력이 아닌 거로 버틸 수 있을 만큼 호락호락한 곳이 아닌 걸요.”
“맞아. 게다가 그런 짓은 결국엔 다 자기한테 돌아오게 되어 있어.”
노아는 새로운 팀 멤버인 재민이 새롭게 보였다. 아직 서로를 잘 알 만큼 오랜 시간을 보낸 게 아니라서 재민이 과묵한 성격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생각보다 과격하고 자존감도 높았고 그 이상으로 엄격한 면을 가지고 있었다.
‘산이 챙길 때 외에는 말도 없고 주야장천 연습만 해서 몰랐는데….’
말이 없는 정도가 아니었다. 재민은 기존 멤버와 거리를 두는 듯한 모습도 보였었다. 모두 지난 폭력 사건으로 데뷔 조에서 빠진 두 명의 영향 탓이었다. 재민이 남은 데뷔 조 멤버도 그들과 비슷한 성향이 아닌가 탐색 중인 걸 모르는 노아의 착각이었다.
“내가 다른 애들한테도 말해 둘게. 회사에 있을 때나 어디 갈 때 산이 혼자 두지 말자.”
“네.”
“산이랑 네가 제일 잘 맞으니까. 신경 좀 써 줘. 그렇다고 네가 전적으로 책임지라는 말은 아니야. 우리도 당연히 신경 쓸 거야.”
“알아요.”
“그래.”
다른 멤버들과 유닛 촬영을 하면서 깔깔대는 태산이를 보는 노아의 표정이 복잡했다. 태산이는 표정이나 행동에서 성격이 그대로 읽히는 아이였다. 사랑받고 자란 아이 특유의 밝고 그늘 없는 성격이었다. 타인을 의심할 줄 모르고 선의가 인간성의 기본이라고 여기는 그런 아이였다.
‘야! 이산. 너, 네 형 백으로 들어왔다며?’
‘낙하산이 어딜 끼려고!’
‘실력도 없는 게 낙하산으로 들어와서 남의 자리 뺏으니까 좋냐?’
‘야, 이산이랑 말하지 마.’
노아의 머릿속에 순진한 태산이를 여러 명의 연습생이 낙하산으로 몰아가며 따돌리는 장면이 그려졌다. 연이어 그런 연습생들 속에서 아무런 반박도 못 하고 울상만 짓고 있는 태산이의 모습도 그려졌다. 나중에라도 알게 되면 무척 부끄러워질 흑역사였지만, 노아는 심각했다.
‘안 되겠다. 이제부터라도 산이를 보호해야….’
오해였다. 태산이는 본질이 맹수였다. 자신이나 자기 영역, 자기 사람한테 해를 끼친 상대에게서 반드시 대가를 받아 내는 성격이었다. 그저 연습생들이 상대할 가치도 없는 약자라서 너그럽게 보복을 철회했을 뿐이었다. 기실 보복을 철회했을 뿐 약간의 장난을 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그러나 당장은 그런 태산이의 계획을 노아에게 알려 줄 사람도, 오해를 바로잡아 줄 사람도 없었다.
“레슨 끝나고 형이 주차장으로 데려다줄 테니까, 혼자 내려가지 마. 레슨실에서 기다리고 있어, 알았지?”
“응. 알았어.”
태산이는 자신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주변을 돌아보며 경계하는 노아의 모습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해할 수 없는 태도였지만, 워낙 애정 어린 과보호에 익숙한 터라 얌전히 알았다 대답했다.
‘우리 막내를 두고 헛소리하기만 해 봐. 가만 안 둔다.’
‘내 팀 멤버는 내가 지켜야지.’
‘어린 애들이 더 잔인하다니까. 어떻게 이렇게 착한 애를 따돌릴 수가 있지?’
‘정말이지 인성이 제일 중요하다니까, 인성이.’
노아가 주차장까지 바래다준 날 이후로 서먹서먹했던 데뷔 조 멤버들 사이가 꽤 가까워졌다. 태산이를 레슨실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기, 휴게실이나 식당에 태산이를 데리고 다니는 순번을 정하는 동안 대화가 늘어 자연스럽게 친해진 것이었다.
태산이는 바뀐 데뷔 조의 행동을 별생각 없이 받아들였지만, 다른 연습생들은 아니었다. PD들이 아끼는 노아와 다른 데뷔 조 형들이 태산이를 감싸고 돌면서 매번 경고하듯이 자신들을 쏘아보자 행동도 말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산아, 가자. 보컬 레슨실 데려다줄게.”
“응.”
연습생들이 얌전해졌지만, 태산이를 중심으로 둘 셋씩 같이 다니는 데뷔 조 멤버들의 행동은 그대로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다 보니 익숙해져 버렸다. 연습생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질투는 데뷔 조가 똘똘 뭉치는 효과를 불러왔다.
*
“우진이 형. 이렇게 움직여 보세요.”
“이렇게?”
“아뇨. 힘을 빼고 가볍게 튕기듯이요. 그렇게 부술 것처럼 힘주지 말고요.”
“으아! 모르겠다. 재민아 거기, 좀 전에 거기 순서 한 번만 더 알려 줘.”
댄스 레슨이 끝났지만, 데뷔 조 다섯 명은 연습실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간 평가에서 선보일 단체 곡의 안무 연습이 남아 있어서였다.
트레이너한테 오케이를 받은 주간 평가 곡은 몇 년 전에 히트한 오인조 남자 아이돌 그룹의 곡이었다. 어려운 군무가 특징인 곡이었지만, 랩 파트가 적어서 래퍼가 한 명인 데뷔 조에게 알맞은 곡이었다.
다만 안무를 익히는 속도가 느린 메인 보컬 우진과 그런 우진에게 일대일 코칭 중인 재민의 고생이 필요했다.
“헉헉!”
“우진 형 죽었어요?”
“살아 있거든!”
우진은 재민의 오케이 사인이 떨어지자마자 연습실 바닥에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그는 셔츠가 땀에 흠뻑 젖을 정도가 된 후에야 안무 동작들을 다 외울 수 있었다.
“킥! 산이 출동!”
“출동!”
현민은 누워서 소리만 빽 지르는 우진에게 태산이를 보냈다. 안무를 외우느라 고생한 우진과 다르게 노래 가사를 외우느라 고생한 태산이는 현민의 호출에 바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우진에게 다가가 힘차게 덮쳐들었다.
“크억!”
“캬하하. 산이 등장!”
“놔라.”
“싫어. 빨리 일어나.”
“으윽.”
우진은 태산이에게 잡히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굴렀지만, 그보다 태산이가 훨씬 빨랐다. 순식간에 우진의 몸은 태산이에게 잡혀 질질 끌려갔다. 우진은 태산이의 품에서 벗어나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요리조리 몸을 틀다 힘이 빠져서 늘어진 우진은 꿈쩍도 하지 않는 태산이를 보고 이를 갈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태산이는 한번 잡은 사냥감을 놓칠 만큼 호락호락한 호랑이가 아니었다.
“데려왔어. 충전해.”
“크윽! ”
“산아 잘 잡고 있어.”
“응!”
“오케이. 다 먹었다.”
현민의 앞까지 끌려간 우진은 버둥거리는 걸 포기하고 얌전히 입을 벌렸다. 그런 우진의 입안으로 현민이 홍삼 스틱을 쭉 짜 넣었다.
“아으. 산이 얘 왜 이렇게 힘이 세냐.”
“이히히.”
우진은 에너지 충전용 홍삼 스틱을 전부 먹고 나서야 태산이의 품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그는 태산이에게 잡혔던 팔을 쓱쓱 문질렀다. 요령 좋게 잡았는지 아프진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소름이 오스스 돋았다.
“자, 자. 장난 그만하고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맞춰 보고 정리하자.”
“응.”
데뷔 조 멤버들이 대열을 맞추고 선 연습실 안에 선배 아이돌 그룹의 노래가 울려 퍼졌다. 경쾌한 댄스 음악에 맞춰 다섯 명은 정해진 동선으로 움직였다. 마지막 연습이라서인지 이번에는 박자를 놓치는 사람도 동작을 틀리는 사람도 없었다.
연습이 끝난 멤버들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생겨났다. 특히 재민이를 붙들고 한동안 안무 동선과 동작의 개인 과외를 받았던 우진의 표정이 가장 밝았다.
“아이고. 삭신이야.”
“수고했어요, 우진 형.”
“하하하. 고마워, 재민아. 산아 집에 갈 준비해. 형이 주차장까지 데려다줄게.”
“응. 알았어.”
우진은 만족스럽게 춤을 춰서 기분이 좋아진 김에 나서서 주차장까지 태산이를 바래다주기로 했다. 마지막 연습 정도라면 주간 평가에서 다른 멤버에게 폐를 끼치진 않을 것 같았다.
가뜩이나 댄스 실력이 부족했던 우진은 뛰어난 실력의 댄서 두 명이 데뷔 조에 추가된 후 알게 모르게 위축되어 있었다. 다행히 성격 좋은 애들이라 금방 어울리게 되었지만, 실력이 부족해서 평가에 지장을 주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태산이와 우진이 주차장으로 내려간 뒤에 남은 멤버들 역시 각자 흩어졌다. 재민은 안무 연습을 위해 연습실에 남았고, 현민은 레슨을 받으러 갔다. 노아는 그의 주 서식 공간인 개인 작업실로 향했다.
‘아깝다. 그냥 적당히 쓰기엔 실력이 너무 아까워.’
작업실 의자에 피곤한 몸을 묻은 노아는 주간 평가 연습 내내 했던 생각을 다시 하고 있었다. 태산이를 서브 보컬 포지션으로만 쓰는, 지닌 능력에 비해 부족하기 그지없는 포지션에 놓은 일을 다시 떠올리고 있었다.
‘포지션 말인데요. 우리 산이는 그룹에서 어떤 포지션을 맡게 되나요?’
‘산이 실력이면 사실 다른 그룹에선 충분히 메인 보컬 포지션을 맡을 만합니다. 다만, 이미 멤버 중에 손우진이라고 메인 보컬을 담당하는 아이가 있어서…. 리드 보컬을 맡기는 게 어떤가 고려 중입니다.’
‘리드 보컬이요?’
‘예. 리드 보컬을 맡기….’
‘우리 산이는 트레이닝을 받은 지 몇 달 되지도 않았잖아요. 리드 보컬 같은 중요한 포지션은 무리에요. 나중에라면 모를까. 지금은 그냥 서브 보컬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어요?’
‘예?’
태산이의 실력이나 앞으로의 트레이닝 방향을 설명하려고 모여 있던 사람들은 당황했지만, 태주는 아주 당연하다는 표정이었다. 그는 팀에서 태산이의 비중이 커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그만큼 바빠지고 피곤해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산이 실력이 너무 아까….’
‘산이를 높이 평가해 주시는 건 고맙지만, 산이는 아직 어려요. 기복이 있을 걸 예상하셔야죠. 오랜 기간 트레이닝을 시키면서 지켜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시잖아요. 리스크는 최소한으로 줄이셔야죠.’
‘그건 그렇지만….’
이후로도 태주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메인 댄서의 자리도 태산이에게 버거울 수 있다면서 철회하라고 은근히 압박했다.
팀 안에서 조금이라도 좋은 포지션을 맡고 조금이라도 더 분량을 챙기려는 사람에 익숙한 회사 사람들은 처음 겪는 일에 잠시 당황했지만, 금세 정신을 차렸다. 태주의 뜻대로 하기엔 태산이의 실력이 너무 아까워서였다.
그러나 회사 사람들은 설득을 시작하고 얼마 뒤에 깨달을 수 있었다. 연습 기간이나 태산이의 나이가 태주가 반대하는 이유가 아니라는 사실을.
‘바빠지면 같이 보낼 시간이 줄어들고 산이가 힘들까 봐 반대하는 거였다니. 동생을 무지하게 아낀다는 소문은 들었지만, 실제로 그 정도일 줄은 예상 못 했지.’
아이돌 그룹에서 가장 바쁜 포지션을 꼽으라면 메인 보컬이 빠질 수 없었다. 다른 가수와 협업을 하거나 OST 작업, 가이드 녹음 등에 제일 자주 불려 나가는 포지션이 메인 보컬이었다. 그리고 그런 메인 보컬만큼 바쁜 게 실력 좋은 리드 보컬이었다.
태주는 태산이가 그렇게 바쁘게 생활하는 걸 바라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는 메인 댄서 포지션을 맡는 것 역시 탐탁지 않아 했다. 대놓고 반대는 하지 않았지만, 레슨에 관해 설명을 듣는 내내 표정이 안 좋았다. 연말 무대나 특별 무대에 각 그룹의 메인 댄서들이 자주 차출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아니. 아무리 보호자가 바란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 그런 재능을 썩히는 건 너무 아까워.”
태산이가 중요 포지션을 맡는 걸 태주가 반대했을 때 회사 사람들은 뜨악한 얼굴을 했지만, 사실 노아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태산이와 함께 지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챌 수 있었다. 태산이와 태주, 두 사람의 관계에서 누가 우위에 있는지.
얼핏 보면 보호자인 태주가 모든 걸 결정하는 것 같았지만, 아니었다. 대부분의 일에서 언제나 결정은 태산이의 몫이었다. 위험한 일이 아니라면, 보호자인 태주가 태산이에게 항상 져 주기 때문이었다. 이미 태산이가 조르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들어주는 걸 몇 번이나 봤었다. 그쪽은 문제가 아니었다.
-달칵! 달칵!
“이 곡도. 이 곡도 마찬가지야. 골치 아프네.”
현재 회사에선 데뷔 앨범에 수록할 곡 수집에 한창이었다. 노아 역시 곡을 몇 개 제출한 상태였다. 그중에는 메인 보컬 파트에 우진이보다 태산이의 목소리가 더 잘 어울리는 곡이 몇 곡 있었다. 노아는 어떤 곡이 앨범에 실릴지는 몰랐지만, 만약 실리게 된다면 될 수 있는 한 가장 완벽한 상태의 곡을 싣고 싶었다.
문제는 메인 보컬인 우진에게 파트를 태산이에게 넘기는 게 어떻냐고 말하는 것이었다. 프로듀싱에 자신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남한테 부탁하기 싫어하는 성격 탓인지 노아는 메인 보컬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럽게 파트를 넘기도록 권할 자신이 없었다.
‘메인 보컬감이 없어서 문제인 그룹이 보면 배부른 소리 한다고 하겠네.’
아이돌을 론칭하려는 기획사 중에는 메인 보컬감을 찾지 못해서 데뷔를 늦추는 일도 왕왕 있었다. 노래를 잘하는 연습생은 많았지만, 댄스 음악에 맞는 노래 스타일을 보유하고 다른 멤버들의 목소리와도 잘 조화되는 보컬은 많지 않아서였다.
그런 경우와 비교하면 노아의 고민은 배부른 투정에 불과할지도 몰랐지만, 그는 이 문제로 꽤 오랫동안 고민 중이었다. 회사의 다른 PD들처럼 당연하다는 듯 우진에게 파트를 넘기라고 말해도 될 테지만, 그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우진은 앞으로 오랜 시간 같이 활동할 팀 멤버였다. 좋은 분위기에서 앨범 준비를 시작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