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33
외전. 가족 03
태주는 뱅글뱅글 하늘을 돌다 내려온 도도와 희가 마법 카펫에 자리 잡고 앉는 걸 확인한 뒤, 다시 텃밭을 돌봤다. 오후에 배를 타고 놀려면 오전에 어느 정도 일을 끝내 놔야 했다. 그의 성격상 그래야 마음 편하게 놀 수 있었다.
중간중간 나비 사탕을 씹느라 주르륵 흐른 도도의 침을 닦아 주기도 하고 희와 실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하자 텃밭 일은 금방 끝이 났다.
“뺘아아!”
“하하하. 그게 뭐야?”
“뺘아.”
“샤크? 사크 흉내 낸 거야?”
그렇다고 대답한 도도는 사냥감, 여전히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나비 사탕을 노리듯 네 발로 웅크렸다.
태주는 도도가 사냥 연습을 하면서 왜 검은 표범인 샤크를 흉내 내는 것인지는 의문이었다. 아니, 푸른 사자 정원사의 펫 샤크의 인기가 왜 그리 높은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거대한 맹수가 의젓하게 굴어서 그런가?’
요정들도 그렇더니, 지난 파티에서 샤크를 처음 만난 도도도 무척 마음에 든 듯했다. 태주는 그의 사랑스러운 호랑이를 떠올렸다가 고개를 저었다. 태산이는 맹수긴 했지만, 어리광과 애교를 패시브 스킬로 장착한 아이였다. 귀여움을 받으면 모를까, 샤크처럼 추앙을 받기는 힘들어 보였다.
“뺘아아아.”
“힘, 힘내.”
‘귀여워라.’
나비 사탕을 노리고 엉덩이를 씰룩거리는 도도는 무척 귀여웠다. 통통한 엉덩이와 뭉툭한 꼬리도 머리가 무거운지 부들거리는 앞발도 전부 귀여웠다. 너무 귀여워서 말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말리진 않았을 것이다. 드래곤은 그에 맞는 사냥법이 있을 테지만, 이런 시행착오를 겪는 일은 성장에 꼭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나중으로 미루려던 접붙이기를 오전에 하기로 했다. 부화한 뒤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는 도도 덕분에 정원 일에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
태주는 제 팔을 베고 잠든 아이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전에는 위장한 고양이 모습으로 안겨서 오곤 했는데, 최근에는 어린아이 모습으로 돌아오는 일이 늘어났다. 도도와 놀아 주다 그대로 돌아와서였다.
‘형 노릇을 톡톡히 한단 말이지.’
현실에서 그와 둘이 있을 때와 다르게 도도와 같이 있을 때는 제법 형 노릇을 잘했다. 태산이는 도도를 정원 이곳저곳에 데리고 다니면서 놀이 방법을 알려 주고 사냥 방법이나 숨는 방법도 알려 주고 있었다. 밥을 먹일 때가 되면 그를 도와주려는 듯 도도의 젖병을 잡아 주기도 했다.
“냉장고에 쿠첼루스가 먹을 음식, 정원 관리 의뢰. 또 뭐가 있었지?”
잠시 여행 가기 전에 해 두어야 할 일에 관해 고민해 봤지만, 딱히 준비해야 할 일이 더 떠오르지 않았다. 어머니한테 드릴 선물이나 여행지에서 태산이가 쓸 물건은 이미 충분했다. 따로 사야 할 것은 그들이 없는 동안 쿠첼루스가 먹을 음식 정도였다. 그 외에는 그가 없는 동안 더운 날씨에 전원주택 정원이 망가지지 않도록 관리를 의뢰하는 일이었다.
“산아, 그거는 놓고 가자.”
“아앙. 이꺼 가뎌가자.”
“…알았어. 형이 분해해서 넣을게.”
“앙.”
태주는 태산이가 질질 끌고 온 인디언 텐트 안에서 쿠션과 담요를 꺼냈다. 태산이는 본체가 호랑이라 그런지 아이 모습을 하고서도 텐트나 옷장 같은 숨을 수 있는 공간을 좋아했다. 여행지까지 텐트를 챙겨 가는 건 과한 것 같았지만, 그는 그러려니 했다.
‘캐리어에 안 넣어 주면 목줄에 넣어서 올 녀석이니.’
회귀 전후 모두 그는 짐 싸는 일에는 이골이 날 정도였다. 장기 지방 촬영이나 해외 촬영이 잦은 배우라서였다. 그런 그였지만, 아이 간식과 장난감, 자주 쓰는 아이 용품으로 가방의 반을 채우는 일은 몇 년이 지나도 낯선 느낌이었다.
인라인스케이트에 자전거까지 챙기려는 태산이를 말리면서 짐을 싸 둔 뒤 태주는 마지막으로 선물을 확인했다. 그가 만든 허브 팩과 차, 쿠첼루스의 도움을 받아 만든 액세서리가 든 상자까지 모두 잘 들어 있었다.
“산아. 마트 다녀오자.”
“앙. 아라떠.”
태주의 여행 준비는 마트에서 쿠첼루스가 먹을 음식과 태산이의 간식을 보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
지금까지 태주는 해외 활동은 되도록 자제해 왔다. 태산이와 같이 생활한다는 이유가 있기도 했지만, 국내에서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서 더 저어했었다. 그러나 회귀 후에는 그의 의지와 다르게 해외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특히 뉴플릭스 드라마의 흥행 후로 그런 상황이 두드러졌다.
‘이태주 아니야?’
‘맞는 것 같은데?’
‘여긴 왜 온 거지?’
‘정말 이태주인가?’
태주의 어머니가 일하는 곳이 한국이나 중국, 일본에서도 여행을 자주 오는 지역이긴 했지만, 동북아인이 아닌 현지인으로 보이는 사람 중에도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꽤 있었다.
현지어를 몰라서 무슨 말을 하는 중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내용은 짐작이 갔다. 그를 발견한 사람들이 자주하는 말, 그가 맞는지, 여기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하는 중인 것 같았다.
“형, 이제 어디로 가요?”
“마중할 사람을 보낸다고 하셨는데….”
“저쪽입니다.”
“어디?”
“저쪽에 손 팻말을 든 사람이 있습니다.”
공항에는 어머니가 고용한 현지 가이드가 나와 있었다. 이동하는 내내 가이드의 놀란 시선을 받아야 했던 게 조금 불편했지만, 태주 일행은 그의 안내로 준비된 숙소까지 무사히 이동할 수 있었다. 이동 중 어머니와 관련된 얘기를 들은 건 덤이었다.
“본부장님이 이름을 알려 주셨을 때, 그냥 배우랑 이름이 같은 줄 알았습니다. 실제로 그 배우일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셨어요? 어머니가 얘기 안 하셨나요?”
“아들이랑 같이 오는 일행을 안내해 달라고만 하셨지, 누구라고는 안 하셨습니다. 아마 본부장님을 아는 사람은 누구도 이렇게 장성한 아드님이 계실 줄은 모를 겁니다.”
“아!”
“워낙 개인사를 밝히지 않으셔서 그렇습니다. 그래도 한인회에 도움도 많이 주시고 해서 다들 좋아하십니다.”
그 외에도 가이드로 나온 사람은 어머니와 관련된 얘기를 여러 가지 전해 주었다. 한인회에서 하는 모임에 기업 차원에서 무슨 무슨 행사 지원을 해 줬다. 현지인들을 위해 학교 건물을 지어 주고 학용품과 장학금을 지원해 줬다, 등등. 만나지 못한 몇 년간 어머니가 이곳에서 어떤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말 가이드가 필요 없으십니까?”
“네, 오늘은 가까운 곳에서 식사만 하고 쉴 생각이라서요.”
“그렇지만 제가 받은 게 있어서….”
“여기까지 안내해 주신 것으로 충분해요. 어머니한테는 제가 잘 얘기해 드릴게요.”
“알겠습니다.”
여러 가지 이야기를 전해 준 것은 고마웠지만, 일행에 낯선 사람이 섞이는 것은 그다지 달갑지 않았다. 낯가림하는 성격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은 느긋하게 느린 템포로 움직일 계획이었기 때문에 의욕이 가득한, 조금 흥분한 것처럼도 보이는 가이드와 동행할 마음은 없었다.
“괜찮아.”
“그래도요. 생각해서 불러 주신 가이드를 그냥 돌려보내는 건…,”
“진짜 괜찮아. 우리 어머니는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이 아니거든.”
“….”
“걱정하지 말고 쉬어, 연우야. 조금 이따가 밥 먹으러 나가자.”
“네.”
처음 어머니를 만나는 연우는 꽤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태우가 어머니의 험담을 늘어놓을 성격이 아니란 걸 잘 알면서도 이상한 얘기를 들은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런 연우에 반해 처음 만나는 것은 마찬가지인 태산이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비행하는 내내 숙면을 취해서 에너지가 가득한 꼬맹이는 숙소 정원에 있는 수영장에 반한 듯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뛰어들려고 했다.
“태쭈, 사니 튜영.”
“짐 먼저 풀자. 그리고 조금 이따가 밥 먹을 거야. 밥 먹고 나서 놀자.”
“아앙. 튜영.”
“형이 텐트랑 장난감 꺼내 줄게. 착하지?”
어머니가 준비해 준 숙소는 태주가 사용하기 편한 곳이었다. 방과 욕실도 여러 개였고, 건물 구조가 가운데에 정원과 수영장을 둔 ‘ㅁ’자 구조여서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곳이었다. 느긋하게 휴식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
“…무사하구나.”
“네. 그렇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랬지.”
태산이와 연우를 달래 식사를 하고 여유롭게 오후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퇴근한 어머니가 숙소를 방문했다.
숙소에 들어선 뒤 어머니가 제일 먼저 한 것은 태주의 온몸을 살피는 일이었다. 비록 일도 바쁘고 마음에 여유도 없어서 큰 관심이나 애정을 쏟으면서 키운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 나름의 애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었다. 목숨을 잃은 뻔한 아들을 걱정하는 것은 당연했다.
“한동안 네가 배우 일을 하겠다고 했을 때 말리지 않은 걸 후회했다.”
“그런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건 아니에요. 안심하셔도 돼요.”
“배우, 계속할 생각이니?”
“네, 아직 이뤄야 할 게 있어요.”
“…그래.”
“그보다 일행 소개해 드릴게요.”
태주의 어머니는 일행의 소개도 받지 않은 채 태주의 안위 먼저 살폈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질문도 하면서 태주의 생각을 듣길 바랐다. 평소 이성적인 그녀의 모습과 많이 달랐지만, 상황이 상황이어서 태주는 어머니의 질문에 답을 먼저 했다.
“연우예요. 태우랑 동갑이에요.”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이지요?”
“네, 네네.”
“계속 우리 태우와 같이 지냈다고 들었어요. 고마워요, 태우랑 같이 있어 줘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아니에요. 제가 더 고마운걸요.”
연우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가장 힘들 때 손을 내밀어 준 태주나 그 이후로 줄곧 곁을 지켜 준 태우나 모두 고마운 상대였다. 두 사람이 감사 인사 같은 걸 바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말하지 못했을 뿐, 고마운 점을 말하라면 하룻밤으론 부족할 정도였다.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어요. 태우한테 좋은 친구가 생긴 것 같아서 보고 싶었을 뿐이에요.”
“네.”
“연우가 부담스러워 하는 거 같은데, 말 놓으세요.”
“천천히 놓자.”
태주는 어머니와의 대화가 부담스러운지 몸을 꼬는 연우를 알아차리고 중간에 끼어들었다. 어머니의 존댓말 때문인지, 고마움이 듬뿍 담긴 시선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대로 두었다가는 몸살을 앓게 될 것 같아서 끼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쪽은 호, 얘는 산이에요.”
“…그렇구나.”
“산아 인사. 형 엄마야.”
“태쭈 언마?”
“응.”
태주의 소개가 끝나자 바로 고개를 숙이는 2호와 다르게 태산이는 어머니의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태주와 닮은 얼굴을 한 사람을 처음 보는 태산이의 당연한 반응이었지만, 그는 상대가 누구인지 몰라서 인사를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뎌쿠나.”
“응? 아아. 응. 형 엄마야.”
“언마, 사니 와떠여.”
“어머!”
“….”
대마법의 효과로 인해서 태주의 어머니는 태산이와 2호를 이혼한 남편 쪽의 친척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그녀는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약간의 껄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런 껄끄러움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덥석 안기는 꼬맹이의 넉살에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사라져 버렸다.
“사니 비핸기 타거 와떠여.”
“그랬어?”
“앙. 밥 마니 머거떠여.”
“착하구나, 밥도 잘 먹고.”
“앙. 언마 사니 아이수크딤 주떼여.”
“….”
오랜만에 듣는 태산이의 존댓말에 놀라는 것도 잠시였다. 그는 민망한 얼굴로 뻔뻔한 꼬맹이를 어머니의 품에서 떼어 내야 했다. 최근 아이스크림을 너무 많이 먹어서 오늘은 후식으로 다른 것을 주었더니, 그새를 못 참고 어머니한테 매달렸다. 꼬맹이의 친화력은 좋아도 너무 좋았다.
“휴가 계획은 세웠니?”
“우선 쉬면서 생각해 보려고요.”
“그래. 휴식이 제일 중요하지. 그래도 근처에 유네스코에 등재된 불교 사원도 있고 국립 공원도 있으니 고려해 보렴.”
“그럴게요.”
원래 그다지 대화가 많지 않은 사이였지만, 소개 이후로 대화가 멈추자 어색한 분위기가 흘렀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서인 것 같았다. 게다가 두 사람은 여태까지 멀리 떨어져 살기도 했고, 두 사람 모두 상대의 일상을 캐묻는 타입이 아니라서 더 그런 것 같았다.
“태우는 어떻게 지내니?”
“잘 지내요. 통화할 때마다 제대 날짜 며칠 남았다고 꼬박꼬박 보고도 하는걸요.”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구나.”
“태우는 제 앞가림도 잘하고 재주도 많은 녀석이라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믿어 주고 지지해 주는 것만으로도 뭐든지 해낼 녀석이에요.”
“그래, 그런 애였지.”
태우는 자기밖에 모르는 가족들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나서서 챙기던 아이였다. 제일 어린 주제에 서로를 외면하고 모른 척하는 가족들을 어떻게든 화합하고 좋은 방향으로 이끌려고 했었다. 유명한 배우인 형의 후광을 이용하려 하지도 않고 스스로 정한 일을 우직하게 밀고 나갔다.
어머니에게 얘기한 대로 태우는 그의 걱정이 필요 없었다. 믿어 주고 기다려 주면 지금까지처럼 잘 해낼 게 분명했다.
“조용한 곳으로 고르긴 했는데…. 최근 이곳도 한국인 관광객이 많이 늘어서 불편할지도 모르겠다.”
“아니에요. 여기도 아주 괜찮아요.”
“해안가 휴양지에 지인의 별장이 있어. 미리 얘기만 해 두면 별장을 쓸 수 있으니, 필요하면 얘기하렴.”
“그럴게요.”
태주의 어머니는 충분히 좋은 숙소를 마련해 주고도 부족하다고 느끼는지 더 필요한 것이 없는지 몇 번이나 확인했다. 태주는 전과 다른 어머니의 태도에서 그를 향한 걱정이 느껴졌다.
그는 여행을 오기 전까지 어머니를 냉정하고 이성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화 주제도 조심스레 고르고 하나라도 더 챙겨 줄 게 있나 주의해서 살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쩌면 편견에 빠져 있었는지도….’
회귀 전에 겪은 어머니의 모습을 현재에도 투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회귀 후 많은 것이 바뀌었는데도 당시의 기억 때문에 어머니를 제대로 마주하지 못했다. 일이 바빴다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은 변명이 되지 않았다.
“주말에는 시간 되시죠?”
“주말은 괜찮지.”
“그럼 그 별장에 같이 가요.”
“…그래. 그러자.”
이번 여행은 휴식을 취하는 것 외에 지금까지 외면하고 있던 일들과도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