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38
외전. 트로피외전. 트로피 03
“으악!”
“꺄하하.”
태주는 순간적으로 늘어난 무게에 회상에서 깨어났다. 그는 귓가에 맴도는 아이 웃음소리와 높은 체온에 정신을 차리기 무섭게 손에 들린 트로피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대로 목을 감싸고 매달린 아이의 팔을 잘 붙잡았다.
“아이고, 무거워라. 허리를 펼 수가 없네. 누가 이렇게 무겁지?”
“도도!”
“킥! 우리 도도 밥 잘 먹어서 컸나 보다.”
“응, 도도 컸어.”
도도는 태주의 컸다는 말이 기쁜지 발을 동당거렸다. 태주는 그런 아이가 떨어지지 않게 팔을 단단히 잡고 몸을 일으켰다. 예전 일을 생각하면서 장식장을 정리하는 사이 어느새 점심을 먹을 시간이었다. 밥시간을 칼같이 지키는 두 아이에게 약속대로 고기를 먹여야 했다.
“산아. 점심 먹으러 가자.”
“응. 내려갈게.”
“흡!”
‘으아! 심장이야. 이놈 자식이 또!’
이 층에 있는 태산이를 부른 직후 태주는 놀라서 몸을 굳혔다. 그의 말썽쟁이 호랑이가 이 층 난간을 뛰어넘어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내렸기 때문이었다. 태주는 놀란 그는 보이지도 않는지, 어서 가자는 듯 고개를 까닥이는 태산이 때문에 속을 끓였다.
이미 몇 번이나 이 층에서 뛰어내리지 말라고 했지만, 전혀 들을 마음이 없어 보였다. 태주는 도도를 업고 있어서 차마 큰 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언제가 날을 잡아 진지하게 조심하라고 얘기할 맘을 먹었다. 본체가 호랑이라지만, 인간 변신 중일 때는 신체 능력이 본체보다 못하니 이럴 때마다 걱정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아니면 다시 이사하는 걸 고민해 봐야지.’
이곳으로 이사할 당시에는 데뷔 조 숙소와 그가 살 곳을 같이 구하느라 조건을 제대로 따지지 않고 급하게 정한 감이 있었다. 그나마 복층 구조라 태산이가 고양이로 생활하기 좋을 것 같아서 골랐는데, 아무래도 그게 패착이었나 보다. 몇 번이나 이 층에서 그대로 뛰어내리는 모습을 심장을 붙잡고 보게 되었다.
만약 이사하려면 블랙 스쿼드 멤버들이 살 곳도 같이 알아봐야 해서 조금 번거로웠지만, 그렇더라도 그의 심장 건강을 위해서라면 감수할 만했다.
“태주 빨리 가자. 나 배고파.”
“도도도.”
“…그래. 외투 챙기고.”
“제가 챙겼습니다. 지갑도요.”
“고마워, 호야.”
당장에라도 한 시간 정도 붙들고 잔소리를 퍼붓고 싶은 걸 참고 나갈 준비를 하려던 태주 쪽으로 태산이와 도도의 외투에 그의 것까지 챙긴 2호가 걸어왔다.
태주는 자신을 도와 도도의 외투를 입히는 2호가 무척 고마웠다. 이렇게 세심하게 도와주는 그가 없었다면, 이런 원만한 생활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태주, 봤어?”
“응?”
“사람들이 아까 블랙 스쿼드라고 하는 거.”
“아아. 봤어.”
“이히히.”
주차장에서 음식점으로 이동하는 잠깐 사이에 태산이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왔다. 2호의 안내로 움직이는 태주를 알아본 게 더 빨랐지만, 그중 몇 명이 태산이를 알아보고 그룹명인 블랙 스쿼드를 외쳤었다. 태산이는 제 이름보다 그룹명을 불러 준 게 더 마음에 든 것 같았다.
“빨리 무대 하고 싶다.”
“다시 활동하려면 좀 더 있어야 하지?”
“응. 이제 녹음 들어가고 안무도 아직이야.”
“산이 컴백할 때쯤이면 형 촬영 끝났을 시기네. 무대 보러 갈까?”
“응! 꼭 와.”
태주는 팔에 매달려서 꼭 와야 한다고 재차 강조하는 태산이에게 알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슬슬 풀어지려는 입꼬리를 들키지 않게 잘 걷는 도도를 챙기는 척했다.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위험한 행동을 하는 녀석이 못마땅했는데, 또 이렇게 어리광을 부리니 마음이 풀리려 해서였다.
블랙 스쿼드는 데뷔 전에 멤버 교체와 충원이 있었다. 그 때문에 일정이 빡빡해 다른 아이돌이 서너 곡이 수록된 미니 앨범으로 데뷔하는 것과 다르게 디지털 음원인 데뷔 곡과 후속곡 두 곡으로 데뷔했다. 그렇게 한 달 남짓을 활동한 뒤 지금은 데뷔곡 포함 8곡이 수록된 EP 앨범 발매를 준비하고 있었다.
“이번 노아 형 노래 진짜 좋아.”
“노아 노래도 앨범에 실려?”
“응. PD님이 컴백 타이틀로 해도 괜찮을 것 같댔어.”
“대단하네.”
식사가 준비되는 동안 태산이는 녹음 중인 곡과 의상 콘셉트에 관해 신나게 떠들었다. 데뷔 초라 힘들지 않을까 했던 그의 걱정과 다르게 태산이는 빠듯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도 밤늦게까지 앨범을 준비하는 것도 모두 재밌는 모양이었다.
‘아이돌이 되리라고는 예상 못 했었는데. 뭐, 태산이가 재밌어하니 됐나.’
그는 태산이가 어려서부터 춤추는 걸 특히 좋아한 데다 무용 대회에도 나가고 해서 영락없이 무용수가 되리라 예상했었다. 혹은 댄서들이 나오는 영화에도 출연한 적이 있으니 그처럼 배우가 되지 않을까 했었다.
어느 날 초콜릿 크레이프를 사 먹으러 대화를 따라갔다가 덜컥 연습생이 되고 데뷔까지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었다.
“이거랑 이거 다 익었어. 도도 먹어.”
“응!”
‘그나저나 이 녀석들 야채는 손도 안 대네.’
익은 고기를 사이좋게 나눠 먹는 게 기특하긴 했지만, 구운 버섯이나 상추 같은 채소를 전혀 먹지 않는 것은 한숨이 나올 정도였다. 본체가 아무리 육식 동물이라고 해도 지금은 완벽한 인간의 몸이라 비타민이나 무기질 등의 섭취를 빼놓아선 안 되는데, 둘 다 그럴 마음이 없어 보였다. 보호자로서 속이 타는 모습이었다.
“태주 다음에는 언제 쉬어?”
“사흘 뒤에 휴일인데, 왜? 어디 가고 싶어?”
“으응. 원래 집에 다녀오고 싶은데, 사흘 뒤엔 시간이 없어서.”
“꼭 직접 가야 하는 게 아니라면 도도랑 형이 다녀올게.”
“알았어. 그러면 내 방에서….”
아이돌이 되기 전의 태산이라면 하던 일을 팽개치더라도 태주와 도도를 따라서 전원주택으로 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돌로 데뷔한 뒤의 태산이는 회사 일과 본인의 욕심 사이에서 한 가지를 골라야 할 때 전과 다르게 성숙한 태도를 보였다. 지금처럼 욕심을 누르고 회사 일을 우선했다.
태주는 그런 아이의 성장이 조금 아쉽긴 했지만, 무척 기꺼웠다. 반려동물도 어린아이도 키워 본 적 없는 그가 태산이를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감정에 솔직한 아이로 키워 냈다. 기껍지 않을 리 없었다. 물론 이번처럼 같이 있을 시간이 주는 것은 탐탁하지 않았지만.
*
고기로 배를 채운 태주 일행은 가까운 공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 시선이 신경 쓰였지만, 태산이, 도도와 같이 여유롭게 공원을 산책하는 걸 포기할 순 없었다.
‘전에는 이렇게 자주 시간을 보냈는데, 요즘에는 시간 내기가 쉽지 않네.’
할리우드에서 영화를 찍을 때였다. 당시 같이 작업한 감독이 효율을 중시하는 스타일의 감독이라서 그런지 촬영에 들어가면 빠듯하게 몰아치듯 찍었지만, 평소에는 야간 촬영도 적었고, 촬영 일정도 빡빡하지 않았었다. 덕분에 촬영이 끝난 후나 휴일에 느긋하게 태산이와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게다가 톱클래스 배우만큼은 아니었지만, 상당히 괜찮은 트레일러를 배정받아서 태산이를 촬영장에 데리고 다니기 편했었다. 태산이는 학교가 끝나면 그의 트레일러에서 숙제도 하고 놀면서 기다리다 같이 퇴근하는 그런 생활을 했었다.
“핫초코!”
“핫초코? 산아 카페 가고 싶어?”
“아니. 내가 사 올 게. 태주, 도도랑 기다려.”
“그래.”
초겨울 찬바람을 맞으며 걷다 보니 따뜻한 음료가 마시고 싶어진 모양이었다. 아니면 그냥 달콤한 음료가 마시고 싶었던가. 길 건너 카페를 발견한 태산이가 기운차게 달려갔다.
태주는 도도의 손을 꼭 잡은 채 2호를 돌아봤다. 그를 항상 든든히 지켜 주는 2호에게 사람들이 많은 곳으로 가는 태산이를 따라가 달라고 부탁하려는 것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응.”
2호가 태산이가 간 카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는 순간이었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태주 일행의 뒤를 따라오던 경호 팀이 간격을 좁혔다. 2호가 태주의 곁에서 벗어날 때 하는 행동 수칙이었다.
“한국 생활은 많이 적응되셨어요?”
“네.”
“불편한 점은 없으세요?”
“전혀 없습니다. 솔직히 이만큼 좋은 업무 환경도 찾기 쉽지 않습니다.”
“하하하. 그럼 다행이고요.”
태주는 활동적인 코트를 입은 외국인 경호 팀에게 가볍게 눈인사를 하며 말을 걸었다. 연초까지 따뜻한 캘리포니아에서 지내던 경호 팀이었다. 매서운 한국의 겨울 추위를 버틸 수 있을지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문제는 없는 것 같았다.
“도도, 아가야. 촬영장 같이 다니는 거 안 힘들어?”
“응. 재밌어.”
“재밌어?”
“응. 태주 멋져. 보는 거 재밌어.”
“고마워.”
도도 역시 태산이처럼 자신과 같이 다니는 걸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날이 점점 추워지고 있었다. 뉴스에서 올겨울은 역대급 한파가 몰려올 거라고 연일 보도하고 있었다. 따뜻하게 입히고 보온용 아이템도 착용시킬 생각이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러나 태주는 하려던 얘기를 꺼내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대신 저와 같이 있길 바라는 아이를 품에 안고 다정한 손길로 얼렀다. 나중에, 촬영장에 대한 호기심이 줄어들면 그때에나 어린이집에 다니는 것이 어떤지 물어보기로 했다.
‘산이가 늦네? 무슨 일…. 아하하! 귀여워라.’
카페 창 너머에 태산이가 팬들에 둘러싸인 게 보였다. 가볍게 하이파이브를 하고 사인을 해 주는 게 음료를 기다리는 도중 알아본 사람들한테 팬 서비스 중인 것 같았다.
태주는 데뷔 초반 한 줌의 팬도 아주 소중하고 고마운 시기의 감동을 만끽하는 태산이를 보고 웃고 말았다. 무척 반가운 듯 팬을 보는 태산이의 머리와 엉덩이에 보일 리 없는 귀와 꼬리가 보이는 느낌이 들어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이산이라는 이름이 블랙 스쿼드의 이름보다 유명한 상황이었는데, 앞으로는 바뀔 것 같았다. 어쩌면 이태주 동생 이산이 아니라 블랙 스쿼드 멤버 이산 형 이태주로 불리는 날이 올지도 몰랐다.
*
며칠 뒤 태주는 도도를 데리고 전원주택을 찾았다. 태산이의 부탁도 들어주고 전원주택 생활을 해 보지 못한 도도와 같이 시간도 보낼 겸 해서였다.
“우와!”
“아가, 천천히 산책하면서 갈까?”
“응!”
“호야. 우리 여기서 내릴게.”
“예.”
전원주택 인근은 쿠첼루스가 대부분 사들여서 휴양림처럼 꾸며 놓았다. 사막에서 볼 수 없는 자작나무, 전나무, 박달나무 등. 추운 지방의 나무로 숲을 조성해 두었다. 아마 이곳이 사유지가 아니었다면, 수많은 관광객으로 몸살을 앓았을지도 몰랐다.
“단풍이 다 졌네. 아깝다. 그래도 아직 겨울이 있으니까. 나중에 눈 오면 또 오자.”
“눈?”
“응. 우리 도도는 눈 쌓인 걸 본 적이 없던가?”
“응. 본 적 없어.”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는 태산이 때문에 체험 돔은 오랫동안 냉대 기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도도가 부화한 후 도도의 속성에 맞게 열대 기후로 바꾸어 두었었다. 그러니 도도가 눈을 한 번도 못 본 것은 당연했다.
“다음에 눈 오면 여기서 지내자.”
“산이는?”
“한동안 여기서 일하러 다니라고 하지 뭐.”
‘출퇴근이 힘들면 호한테 옮겨 달라고 해도 되겠지. 고양이 모습으로 옮기는 거라면 순식간일 테니.’
호박 섬과 쿠첼루스의 집을 연결해 둔 이동문 같은 게 하나 더 있으면 고민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지만, 꿈의 정원에서도 아주 귀한 물품이라 그때 이후론 그도 얻지 못했다. 쿠첼루스는 지금도 이동문을 재현하려고 연구하는 듯했지만, 성공 가능성은 그다지 크지 않았다.
“우리 도도는 썰매를 좋아할지, 스케이트를 좋아할지 궁금하네.”
“썰매?”
“응. 얼음이나 눈 위에서 슈우웅 타는 거야. 재밌어. 나중에 같이 타 보자.”
“응!”
태주는 이번에는 촬영 일정이 없었다. 차기작으로 오랜 인연인 의 오 작가 드라마에 출연하기로 했지만, 그 작품은 내년 봄에나 촬영을 시작했다. 그때까지 그는 태산이 서포트와 도도의 현실 생활 적응에 시간을 쓸 계획이었다.
‘당분간 해외 활동은 자제해야지.’
할리우드에서 그와 작품을 같이 했던 감독들한테서 지금도 연락이 오고 있었다. 세계적인 인지도와 안정적인 연기력 그리고 독보적인 미모와 피지컬은 할리우드에서도 많은 사람이 그를 찾게 했다. 특히 뱀파이어 왕 역할을 맡았던 영화 의 감독과 소설 원작자가 그를 자주 찾았다.
‘TJ 이거 이번 작품 스크립튼데 볼래?’
‘…그거 비공개 아니에요?’
‘에이. TJ는 예외지. 작가님도 TJ라면 괜찮다고 했어.’
‘괜찮아요. 원칙을 지켜야죠.’
‘괜찮다니까. 봐 봐. 여기 나오는 오르도라는 캐릭터가….’
‘아니, 안 볼래요.’
작가의 신작 소설이 영화화를 준비할 때마다 태주가 해 줬으면 싶은 역할이 있다며 그를 찾았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소설마다 그가 해 줬으면 싶은 역할이 있었다기보단 그를 모티브로 삼은 캐릭터를 하나씩 넣었던 것이었다.
그 정도로 적극적인 작가만큼은 아니었지만, 꽤 많은 사람이 그를 출연시키길 바랐다. 그래서 그런지 태주는 다른 문화권의 배우들이 겪는 차별을 겪지 않았었다. 사실 뛰어난 실력의 경호 팀의 경호를 받는 중이라서 몇몇 허락된 사람 외에는 그에게 다가올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Trrrrr.
“후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태주는 화면에 뜬 이름에 길게 숨을 내쉬었다. 공중에 퍼지는 하얀 입김이 답답한 그의 속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감독님이라니! 채드라고 부르라고.
“네, 채드. 오랜만이에요.”
-흐흐흐. TJ 메일 좀 확인해 봐.
“…뭐 보내셨어요?”
-뭐겠어? 스크립트지.
“후우. 알겠어요.”
-좋아! 좋은 소식 기다릴게. 나중에 봐, TJ.
언젠가 있었던 일과 비슷한 상황이 다시 벌어졌다. 할리우드의 촉망받는 감독이 해외 영화제에서 만나 잠시 인사를 나눴을 뿐인 동양의 배우에게 에이전시도 통하지 않고 다이렉트로 대본을 보내는 상황이.
35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