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4
33. 숲 속 카페
태주는 이미나가 챙겨주는 캐리어를 보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카페에서 일하고 오는데 대체 갈아입을 옷을 몇 벌을 챙기는 것인지. 게다가 옷 외에도 장화와 밀짚모자, 여러 장의 수건 등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는 것들까지 모두 챙겨주었다.
“누나? 저 어디 갯벌 가요?”
“어휴.”
“네?”
숲 속 카페를 촬영하는 곳은 춘천의 한 목장이었다. 입구 왼쪽에 숲이 조성되어있고 그 앞에 카페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숲 속이라기보단 목장 입구 카페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숲은 아니네요.”
“꽈악!”
목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일행을 거위 무리가 막아섰다. 태주 일행이 거위 무리에 막혀 잠시 멈춘 사이 카메라를 든 스태프들이 다가왔다. 태주가 목장에 입장하는 모습부터 촬영할 생각인 것 같았다.
꾸벅 인사한 태주가 거위를 신기하게 보고 있는 태산이를 형식에게 넘겨주려 하자, 출연진이 태산이도 예능에 출연 가능한지 물어왔다. 사전에 얘기된 바가 없었던 일이라 견우가 나섰다. 그 사이 태주는 거위에게 흥미를 느끼고 다가갔다.
“안녕. 나는 태주라고 하고 얘는 태산이야.”
“꽈악!”
“어, 혹시 목장에 들어가도 될까?”
“꽉.”
“고마워.”
거위에게 목장 출입을 허락받는 태주의 모습도 빼놓지 않고 촬영했다.
정원에서 동물들과 얘기하는 버릇이 든 태주는 저도 모르게 거위와 대화하고 있었다.
“와아. 목장이다. 저 목장 처음 와 봐요. 승마장은 자주 가봤는데.”
태주가 거위를 지나쳐 카페로 향하면서 감탄했다. 목장은 가운데에 언덕이 있어 좁아 보일 뿐, 실제로는 꽤 넓은 곳이었다. 원래 한우를 키우는 곳이지만, 양과 염소에 토끼까지 키우면서 체험 목장도 운영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럼 나중에 목장 구경해도 돼요?”
“네, 마음껏 구경하셔도 됩니다.”
기대된다며 해맑게 웃는 태주의 모습을 스태프들이 호의적으로 바라봤다. 사전에 들었던 대로 이 프로에 대해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게 분명한 모습이었다.
‘트리즈가 신인 배우를 받더니, 방침을 좀 바꿨나? 특이하네.’
친한 드라마국 PD에게 듣기로 트리즈에서 애지중지하는 신인인 것 같았는데, 프로에 대한 정보를 전혀 듣지 못하고 온 모습이 흥미로웠다.
사실 우 팀장이나 견우를 비롯한 모두가 태주에게 숲 속 카페에 대해서 알려주려 했었다. 다만 진혁이 그렇게 되면 태주가 출연을 취소할지 모른다며 강짜를 놨다. 자신이 잘 설명하겠다, 설득도 하고 나중에 태주의 영화나 드라마에 카메오로 나서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우 팀장과 견우는 예능 정보를 주지 않는 것과 카메오 출연을 저울질한 후 진혁과 손을 잡았다. A급 톱스타의 카메오 출연은 이후 태주가 어떤 작품에 출연하더라도 유용하게 쓰일 패였기 때문이다.
“저 예전에 카페에서 아르바이트한 적 있어요. 커피 종류별로 다 만들 수 있어요.”
카페에 들어가기 전 태주가 자신만만한 얼굴로 카메라에 대고 얘기를 꺼냈다. 평소 손님이 수십 명도 되지 않는 작은 카페다. 목장에 들르는 관광객 대상으로 장사하는 곳으로, 대부분이 목장 체험을 오는 어린아이와 보호자라 카페에 들리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
열심히 하겠다며 각오를 다지는 태주를 보는 스태프들은 어쩐지 순진한 어린양을 꼬신 늑대가 된 기분이었다. 특히 태주의 품 안의 귀여운 고양이가 갸웃하는 게 보이자 충분히 닳아 사라진 것 같았던 양심이 슬쩍 고개를 드는 것 같았다.
카페 안에는 이미 카메라가 여러 대 설치 되어있었다. 진혁과 함께 출연하는 서정국은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진혁만 앞치마 차림으로 카운터 뒤에서 무언갈 하고 있었다.
“태주야 어서 와. 얘는?”
태산의 출연은 얘기되지 않은 부분이었다. 진혁이 태주의 뒤를 따라 들어오는 PD에게 눈으로 물었다. PD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제야 반기면서 맞아줬다.
“동석이 형이 얘 엄청 똑똑하다고 하더라.”
“진짜 똑똑해요. 어떤 때는 말도 다 알아듣는 것 같아요.”
“알 걸. 예전에 우리 개도 그랬어. 다 알아듣는데 귀찮아서 무시하더라.”
“하하.”
진혁의 뒤를 따라가며 카페를 둘러봤다. 테이블도 몇 개 되지 않는 작은 카페였다. 메뉴도 단출했다. 화려한 라떼아트까지 익힌 태주의 솜씨는 전혀 필요 없어 보였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1,500원. 카페라떼 2,000원. 싸네.’
“카페 수익 전부 기부하는 것 알지?”
“네, 그런데 커피 가격이 너무 싼 거 아니에요?”
“태주야 너 정말 이 프로 안 보고 왔어?”
진혁은 자신이 알려주지 말라고 하긴 했지만, 몰라도 너무 모르는 태주의 상태에 당황했다. 매니저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신이 출연할 프로이니 찾아봤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목소리를 낮춰서 태주에게 물었다. 이미 마이크를 찬 상태라 전부 녹음되는 중이었지만, 태주도 진혁을 따라 목소리를 낮춰서 대답했다.
“저 새벽까지 부산 거리에서 촬영했어요. 여기 오는 도중에 잠들어서 못 봤는데요. 혹시 문제가 될까요? 이따가 나가서 보고 올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진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진혁과의 대화를 들은 스태프 역시 같은 표정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을 보지 못한 태주는 카운터 뒤로 돌아가 원두 위치나 물품의 재고 등을 확인했다.
“카페는 언제부터 열어요?”
“11시부터.”
“그럼 우선 커피 한잔 씩 할까요?”
태주가 앞치마를 두르며 사람들을 돌아보자 다들 엄지와 검지를 동그랗게 말아 좋다는 사인을 보냈다. 밝게 웃은 태주가 주문을 받고 사람 수대로 빠르게 커피를 만들었다.
“커피 내리는 건 자신 있다더니, 진짜 맛있네.”
“사실은 차 마시는 게 취미예요.”
카페를 열기 30분 전에 서정국이 도착했다. 가수와 연기자를 병행하는 서정국은 최근 드라마 촬영으로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다. 회귀 전 태주와도 같이 일했던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 올해 나이 31로 태주보다 11살이 많았다. 최근에는 가수보다 배우로 활동하는 일이 더 많았다.
“안녕하세요.”
“아, 안녕하세요.”
서정국은 화려한 외모와 다르게 내성적인 사람이라 남에게 먼저 다가서지 못하는 편이었다. 화면에서 보는 모습과 평소의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태주가 먼저 인사하자, 조금 물러서면서 마주 인사를 해왔다. 자신이 물러선 것을 알아챘는지 표정이 굳었다. 태주는 원래 그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았다.
“정국아 왔어? 여긴 우리 후배, 태주.”
“얘는 태산이에요”
태주가 다리에 엉기는 태산이를 들어 올리며 인사시키자, 정국의 표정이 밝아졌다. 태주에게는 어색하게 굴더니 태산이를 보는 얼굴엔 한점 경계도 없었다.
‘대단하다, 태산이. 태산이는 그냥 프리패스구나.’
*
카페에 손님이 오지 않았다. 진혁이 솜씨를 발휘해 점심을 만들어 먹고 태산이와 사냥 놀이도 했다. 시간이 남아 카페 앞 청소까지 했는데 손님이 한 명도 오지 않았다.
“손님이 없네요.”
“그러게.”
“목장 쪽으로 사람들 많이 가던데요. 왜 안 올까요?”
태주가 걱정된다는 듯이 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은 많이 남았지만, 아무래도 오늘은 장사가 안되는 날인 것 같았다.
“내일은 손님이 좀 와야 할 텐데요. 위치가 나쁘진 않은데 왜 안 오지?”
“흠. 내일은 좀 오겠지.”
1박 2일 촬영이다. 오늘 수익을 채우지 못하면 내일은 목장 일을 해야 한다. 진혁은 내일도 카페에서 일하는 줄 아는 가련한 어린양 태주를 불쌍하게 쳐다봤다.
“안 되겠어요.”
“응?”
태주가 잠시 카페에서 나갔다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기타가 들려있었다. 버스킹 촬영을 시작한 후로, 차에 항상 두고 다니는 ‘태양의 조각이 깃든 기타’를 떠올린 태주는 바로 기타를 가지고 왔다. 버스킹 촬영을 하다 와서일까, 손님을 끌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바로 버스킹이 생각났다.
카페 앞 벤치로 음료수를 한잔 챙겨서 나간 태주는 메뉴를 잘 보이게 세워놓고 기타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태주 옆에 태산이가 자리를 잡고 누웠다.
♪♬~~♪
익숙하게 기타를 치면서 노래하는 모습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태산이 크면서 노래를 따라 부르지 않아 조금 아쉬웠다. 만약 태산이 노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이 많이 몰렸을 것이다.
카페를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이 잠시 멈춰 서서 노래를 들었다. 눈에 잘 들어오게 옮겨둔 메뉴의 가격을 보더니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도 종종 나왔다.
진혁은 그런 태주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허술한 줄만 알았는데 제법 영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태주가 열심히 홍보했지만, 여전히 수익 미션을 달성하는 건 쉽진 않아 보였다.
사람들이 모두 목장 안으로 사라지자 태주가 카페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비품실을 확인하러 들어갔다.
“있다.”
“뭐가?”
“아이스박스요. 저희 카페 안에서 말고 밖에서 장사해요. 여긴 테이크아웃 코너가 없으니까, 테이블 펴고 해요.”
“어? 그래도 되려나?”
진혁이 PD가 있는 방향을 쳐다보면서 의견을 물었다. PD는 진혁에게 고개를 끄덕여 허락했다. 좀 전 카페 앞에서 태주가 노래하던 장면은 꽤 괜찮았었다. 손님도 없는 카페에서 비슷한 장면을 찍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PD님 다음에는 좀 손님이 많은 카페 좀 알아봐요. 매번 어디서 이렇게 외진 카페를 찾아오는 거예요.”
테이블을 카페 앞으로 옮기면서 진혁이 투정을 부리자, 말 수 없는 정국도 진혁의 말에 맞장구치듯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가 매번 바뀌어요?”
“응. 가끔 바뀌어. 이번처럼 목장에 붙은 곳도 있고. 저번엔 과수원 안에 있는 곳이었어.”
“과수원 카페. 좋다.”
“뭐?”
태주가 과수원에 차린 카페를 부러워하자, 진혁이 찡그린 표정으로 직접 가보면 그런 소리 못할 거라고 얘기했다. 진혁이 그 카페에서 비료 포대 수십 자루를 나르고, 몇 시간이나 삽질을 한 걸 모르는 태주는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정원에서 매일 과일을 따고 상자에 포장하는 일이 익숙한 태주는 과수원을 쉽게 생각하고 있었다. 실제로도 꿈의 정원의 과일 재배는 쉬운 일이었다.
비료구덩이를 과일나무 근처에 만들어서 빠르고 편하게 관리하고. 과일을 포장한 박스는 희가 마법으로 창고로 옮겨 준다. 과일의 판매는 상점에 등록만 해두면 된다. 판매되면 알아서 창고에서 물품이 빠져나간다.
“정국이 형님도 노래하실래요? 기타 빌려드릴게요.”
“아! 고마워요.”
태주는 정국에게 기타를 넘기고 카페 앞 장사 준비를 했다.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미리미리 테이크아웃 컵에 커피를 뽑아 두었다. 맛은 조금 떨어지지만, 손님이 주문하면 바로 얼음을 채워서 건넬 수 있게 준비했다.
“과자나 과일을 같이 팔 수 있으면 좋을 텐데 말이죠.”
커피와 같이 팔 디저트류가 없는 걸 아쉬워하자 PD가 뒤편의 나무들을 가리켰다. 청 사과가 맺힌 나무였다. 사과를 직접 따다 팔아도 된다고 알려줬다. 원래는 벌칙에 들어있는 일이었지만, 좋은 그림이 나올 것 같아서 알려 준 것이다.
“와. 이 PD님 지금 게스트라고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 무슨 차별을 한다고 그러세요.”
“우리가 사과 따다 판다고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하실 분이.”
진혁이 PD와 설전을 벌이는 사이 태주는 카페에서 바구니를 챙겨 왔다. 아이스박스를 찾다 봐두었던 물건이다. 태주는 진혁에게 테이블을 넘겨주고 태산이와 청 사과를 따러 갔다. 그렇지 않아도 태산이 지루해하는 것 같았는데 잘되었다며 좋아했다.
생각보다 카페 일에 적극적이고 몸 쓰는 일을 좋아하는 태주의 모습은 촬영할 거리가 풍성했다. 밝은 표정에 마주치는 손님들과 소통도 잘하고, 특이하게 동물들과도 인사를 주고받는 등 에너지 넘치는 장면이 많이 보였다.
“오, 이 사과 귀엽다. 태산아 이거 냄새 맡아 봐. 청 사과야.”
정원 사과의 반 정도 되는 작고 풋내 나는 사과가 신기했다. 흠이 난 부분도 있고, 갈색으로 색이 변한 부분도 있었다. 정원의 사과는 붉은 사과는 붉게, 노란 사과는 노랗게 예쁘게 물들어 있어서 이렇게 거친 모습의 과일을 보는 것은 오래간만이었다.
노래를 흥얼거리면서 청 사과를 한 바구니 땄다. 큰 키를 활용해 높은 가지의 청 사과도 쉽게 땄다. 태산이는 태주의 곁을 맴돌다 지루해졌는지 어딘가로 가버렸다. 태주가 눈에 보이지 않는 곳으로는 가지 않으니, 근처 어딘가에서 덮칠 준비를 하고 있을 터였다.
“태산아. 형 사과 다 땄어. 가자.”
태주가 돌아가자며 태산이를 불렀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불러봐도 태산이의 소리가 들리지 않아, 태주가 급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쿠에에엑.”
사과나무 너머로 보이는 건물에서 동물의 비명이 들려왔다. 태주는 이곳이 원래 한우를 키우는 목장이라는 얘기를 떠올리고 급하게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