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38
37. OST
작곡가가 태주의 말을 듣고 아무 말 없이 굳은 것과 다르게 PD는 폭소를 터트렸다. 배우인 그가 세션 레코딩을 할 여유가 있을 리 없었다. 그저 연주가라고 오해하는 친구를 놀리기 위해 모르는 척 소개했을 뿐이다.
“너!”
“크크큭. 미안, 미안.”
엔지니어까지 낀 네 명은 근처에 저녁을 먹으러 갔다. 빠르게 연주를 녹음한 편이었지만, 이미 해가 지고 거리에 사람이 넘쳐나는 상태였다.
“그래서 그 곡은 누구한테 줄 건데?”
“김나현?”
“풉. 그런 가수가 뭐가 아쉬워서 네 노래를 불러.”
확실히 곡은 아주 훌륭했다. 만약 김나현이 부른다면 아주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라면 부드러우면서 아련한 곡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을 것이다.
“야! 내 노래가 어때서.”
“크큭. 농담이야. 이번 곡 좋아. 진짜.”
김나현 같은 톱 가수가 불러준다면 좋겠지만, 작곡가는 지금까지 아이돌 노래만 발표했던 사람이다. 이름은 제법 알려졌지만, 신곡의 장르는 기존에 발표했던 곡들과 장르가 전혀 달랐다.
“아! 혹시 지현수 씨는 어떠세요? 그 곡엔 지현수 씨 목소리도 잘 어울릴 것 같은데요.”
“TB의 지현수 씨요? 확실히. 잘 어울릴 것 같네요.”
“무리야. 연초에 솔로로 앨범 냈었잖아. 곡이 좋아도 바로 내긴 힘들어.”
그 외에도 잘 어울릴 만한 가수들의 이름이 몇 거론되었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였다. 낙담하는 작곡가를 PD가 놀려댔다. 곁에서 듣던 태주가 슬쩍 주먹에 힘을 넣을 정도로 짓궂은 말들을 늘어놓았다. 이십 년 지기라는 소개가 없었다면 오해했을 법한 모습이었다.
“큭큭. 내일 스튜디오 나와. 좋은 거 보여줄게.”
PD의 말을 들은 태주의 고개가 모로 기울어졌다. 내일은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녹음할 예정이었다. 작곡가야 오늘 안면을 익혔으니 보러와도 상관없지만, 굳이 부를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필름에서 본 실력이 정말이라면 굳이 다른 가수 찾을 필요 없지.’
PD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는 두 사람은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요리조리 그의 얼굴을 살폈다. 하지만 능구렁이 같은 표정만 눈에 들어올 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낼 수 없었다.
“에이, 구렁이 자식. 알았다.”
PD를 오래 겪은 작곡가가 먼저 포기를 선언했다. 곧이어 태주도 포기하고 저녁 식사에 집중했다. 짭짤한 치킨은 언제 먹어도 맛있었다.
요원 S가 알면 기함할 사실이지만.
치킨을 먹던 중 태주는 닭털을 소중하게 보관하던 요원 S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을 터뜨렸다.
“어휴. 살 떨려라. 무슨 남자 웃는 얼굴이.”
PD가 태주의 얼굴을 보며 너스레를 떨었다. 옆에서 조용히 치킨을 먹어치우던 엔지니어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말에 동의했다. 괜히 민망해진 태주가 음료를 추가로 주문했다. 그리고 표정관리를 하면서 얌전히 치킨을 먹었다.
*
어제와 비슷한 시간에 녹음 스튜디오에 도착한 태주는 들어가기 전에 매니저가 보낸 문자를 확인했다.
[6시까지 스튜디오로 가겠습니다. 그 전에 마치시면 연락 주세요.]기껏 휴가를 주었는데 데려다주러 나온다는 견우를 말려봤지만, 소용없었다. 어제도 혼자서 녹음하러 다녀온 것을 알고는 목소리가 좋지 않았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 데리러 온다는 것은 거절하지 못했다.
“운석이 형도 혼자 편의점만 가도 걱정했는데, 내가 못 미더운가. 아니면 이것도 매니저의 직업의식 같은 건가?”
태주는 예전에 카메라를 살 때 느꼈던 바보가 된 기분을 다시 느끼고 싶지 않았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스스로 하고 싶었다. 매니저나 도우미의 도움이 없으면 생활하지 못하는 반편이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너무 유능한 매니저를 탓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자기 일에 충실한 것뿐이니까.
“에고, 이러면 예전하고 달라진 게 없는데.”
스튜디오 안에는 어제 봤던 엔지니어만 있었다. PD와 작곡가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았다. 약속된 시간까지는 아직 30분 정도 남아있었다. 태주는 녹음 전에 미리 목을 풀어둘 생각이었다.
“두 분, 요 앞 찜질방에 계세요. 가까운 데라 금방 오실 거예요.”
“찜질방이요?”
“네, 어제 밤새 작업하시고, 두 시간 전에 가셨어요.”
어제 들었던 곡의 녹음을 다시 한다더니 밤새 작업을 한 것 같았다. 태주는 엔지니어에게 녹음실을 좀 쓰겠다고 얘기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스케일. 예전에 피아노 학원에 다닐 때 짧게 배웠던 것인데, 어느 순간 꾸준히 연습하게 되었다. 덕분에 보컬은 생각보다 기본이 잘 잡혀 있었다.
‘피아노 학원 선생님이 합창단 반주를 해주시는 분이라 배웠던 건데, 배워두니 아주 쓸모 있단 말이지.’
작곡가와 PD가 올 때까지 스케일 연습을 하고, 오늘 녹음할 곡을 한 번씩 불러봤다. 태주가 연습을 다 마쳤을 때, 두 사람이 돌아왔다. 두 손에는 음료수와 간식거리가 가득 든 봉투를 든 채였다.
PD는 들어오자마자 태주가 목을 푸는 걸 확인하고는 바로 자리에 앉았다. 엔지니어가 녹음할 준비를 모두 해 둔 상태여서 그대로 녹음을 해도 될 것 같았다.
“미련부터 시작할게요.”
“네.”
PD의 지시에 맞춰서 노래를 불렀다.
부산에서 헤어진 선미를 훔쳐보는 장면에 삽입될 곡이었다. 멀리서 선미를 지켜보다 웨딩숍까지 따라가게 된다. 그곳에서 드레스 차림의 선미를 보고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느낀다.
“아! 좋네. 진짜 잘 부른다.”
“그러게요. 웬만한 가수들도 이 정도로 편하게 부르지 못하는데. 진짜 쉽게 부르네요.”
PD와 엔지니어가 태주의 노래에 감탄하는 옆에서 작곡가는 경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배우라고 들었는데 노래 부르는 모습은 가수나 다름없었다. 아니 감정표현은 웬만한 가수보다 더 좋았다.
“이게 대체. 장 PD 네가 보여준다는 재밌는 게 이거야?”
“큭. 봤냐. 굳이 김나현처럼 만나기도 힘든 가수 찾지 말고 잘 꼬셔봐라.”
PD는 영화 ost 녹음 작업을 맡기 전에 태주의 영상을 확인했었다. 영화 분위기도 볼 겸, 친구인 음악 감독의 일도 도와주려 같이 영상을 보다 태주의 노래 실력에 감탄했었다.
중저음의 부드러운 목소리로 정직하게 부르는 노래를 들은 후, 독립 영화이면서 왜 굳이 ost를 발매하려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태주가 영화에서 부르는 6곡 중 2곡만 앨범에 싣는다는 얘기에 본인이 더 아쉬울 정도였다.
“배우라더니. 지금 이대로 가수 데뷔해도 될 정도잖아. 외모는 말할 것도 없고, 어제 본 기타연주 실력까지.”
“사기 캐릭터지.”
“밸붕이요.”
엔지니어가 묵직하게 한마디를 보탰다. 태주는 녹음실 밖의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신경 쓰지 않고, 한 곡을 완창했다. 중간에 멈추라는 지시가 없어서 반주에 맞춰서 끝까지 불렀다.
“보컬도 녹음 경험이 있는 것 같아.”
“깨끗하네. 군더더기가 없어. 일부러 개성을 죽인 것 같은데. 좀 더 자연스럽게 부르게 해봐.”
태주는 예전에 가이드녹음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가이드녹음은 가수의 개성을 드러내는 것보다 정확하게 노래를 알려주는 방식의 녹음이 필요했다. PD와 작곡가가 태주의 노래에서 그런 흔적을 찾아냈다.
“태주 씨 좀 더 자연스럽게,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보세요. 영화에서 불렀던 것처럼요.”
“아아. 알겠어요.”
PD가 말하는 바를 바로 알아챘다. 오래전 일인데도 이렇게 가끔 아르바이트하던 흔적이 나오곤 했다. 태주는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지시하자마자 바로 고치는 모습에서 확실히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PD는 오늘 녹음도 생각보다 빠르게 끝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 그의 옆자리에 앉은 작곡가는 입술을 질겅질겅 씹고 있었다. 원래 예정된 녹음이 끝나면 태주를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밤새 작업한 곡을 들려주고, 한 번이라도 좋으니 제대로 된 보컬이 부르는 것이 듣고 싶었다.
“안달하지 말고 좀 얌전히 있어 봐. 녹음 일찍 끝나면 내가 태주 씨한테 물어볼 테니까.”
“진짜지?”
“그래. 그러니까 다리 좀 그만 떨어. 아니면 가서 몇 시간 자고 와.”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옆에 딱 붙어서 끊임없이 다리를 떨어대는 작곡가 때문에 집중하기 힘들었던 PD가 그를 달래서 내보냈다.
중간중간 PD의 지시를 들으며 고쳐 부르길 한참, 5시간 정도 걸려서 ‘미련’의 녹음을 마칠 수 있었다. 아마추어치고는 녹음 속도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영화 촬영 전과 촬영 도중 셀 수 없이 많이 연습하고 불렀던 노래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죠. 내일도 오후에 나오실 거죠?”
“네, 오전에 녹화가 있어서요.”
PD는 작곡가에게 호언장담하긴 해지만, 사실 그도 말을 꺼내기 조심스러웠다. 소속사에서 상당히 관리에 힘쓰는 배우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젊고 잘생기고 재주가 많았다. 영상으로 뛰어난 연기실력도 확인했다. 듣기론 앞으로 최소 반년은 일정이 꽉 차 있는 바쁜 배우라고 했다.
‘곡을 녹음해도 따로 활동은 불가능할 것 같고. 그렇다고 목소리를 썩히기는 아깝고.’
“태주 씨 혹시 어제 들은 노래 한 번 불러보실래요?”
녹음실에서 나와 미지근한 물을 마시던 태주에게 PD가 물었다.
어제 기타를 빌려주고 갔는데, 밤새 작업을 했다더니 벌써 녹음도 끝낸 모양이었다.
“녹음 다 끝냈어요? 어제 고칠 부분이 좀 있다고 하시더니.”
“아침까지 작업을 좀 했죠. 들어보실래요?”
작은 종소리가 들리고 곡이 시작되었다. 조심스럽고 가볍게 기타 연주가 나온 후에 작게 드럼이 바닥에 깔렸다. 곡은 잔잔하게 이어졌다.
“좋네요. 하지만 역시 이런 곡은 이름 있는 가수가 부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아뇨. 이 곡엔 태주 씨 목소리가 더 잘 어울립니다. 기교를 배제하고 정직하게 부르는 편이 좋습니다.”
언제 돌아왔는지, 작곡가가 태주의 말에 반박했다. 태주는 난감했다. 자신이 노래를 부르는 건 상관이 없지만, 노래를 홍보할 방법이 없었다. 음악방송을 할 것도 아니었고, 가수로서 공연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 열흘 정도 뒤에 선율의 촬영에 들어가면 더욱 시간을 내기 쉽지 않았다. 선율의 일정이 끝나면 이어서 드라마 도깨비 무사 촬영이 시작된다. 그리고 드라마 촬영이 끝날 무렵엔 선율의 홍보에 투입될 것 같았다.
지금은 인지도가 높지 않지만, 영화가 개봉할 때는 도깨비 무사의 방영이 끝났을 때다. 공중파 미니시리즈이니 어느 정도 인지도가 생겨있을 것이다. 그러니 한동안은 다른 일을 하기 쉽지 않았다.
“무슨 얘기 중이십니까?”
스튜디오에서 얘기가 오가는 중 낯선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견우였다. 시간이 다 되었는데도 나오지 않아서 들어와 보니, 태주가 곤란한 얼굴을 한 채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견우를 발견한 태주의 얼굴이 밝아졌다. 좋게 거절할 말이 생각나지 않던 차에 자신 대신 나서줄 사람이 생기자 마음이 편해졌다.
그런 생각을 잠시 하다 태주는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분명히 자기 일은 자기가 하자고 몇 시간 전에 다짐했는데. 그새 매니저님한테 떠넘기려 하고 있다니.’
“여기 작곡가님이 작곡하신 곡을 노래해 달라는 부탁을 받아서 그래요.”
“곡이요? 무슨 얘기인지 자세히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간간이 PD의 참견을 받으며 태주가 견우에게 설명했다. 일정상 노래를 불러도 홍보할 방법이 없다는 점도 밝혔다. 견우도 태주의 의견에 동의했다. 좋은 곡이 홍보를 못 해 사장되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홍보할 방법이 있다면 태주에게 좋은 커리어가 되어줄 것이었다.
“노래를 들어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엔지니어 진구가 눈치 좋게 바로 곡을 틀었다. 스튜디오 안으로 잔잔한 멜로디가 흘렀다. 작곡가는 긴장이 가득한 표정으로 견우와 태주의 표정을 살폈다. 태주는 아쉬운 표정이었고, 견우는 조금 굳은 표정이었다.
노래가 끝났지만, 견우의 표정은 풀어지지 않았다. 작곡가는 곧 견우의 입에서 거절의 말이 나오겠구나 싶어서 낙담한 얼굴이 되었다.
“어, 어떻게 들으셨습니까?”
“잠시만요, 전화 한 통화만 하고 오겠습니다.”
작곡가가 감상을 물었지만, 견우가 대답 없이 전화를 핑계로 자리를 벗어났다. PD가 작곡가의 곁으로 다가와 위로하듯 등을 두드려주었다. 견우에게 직접 듣지 않았지만, 그대로 밖으로 나간 것을 보면 결과는 보나 마나 뻔했다. 거절일 게 분명했다.
태주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곡이 좋아서 여유만 된다면 부르고 싶었다. 까맣게 얼굴색이 죽어가는 작곡가에게 어떻게 사과의 말을 건네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서로 말을 못 꺼내고 시간만 보내고 있을 때였다. 견우가 상당히 밝아진 표정으로 스튜디오에 들어왔다. 그리고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상관하지 않고 바로 용건을 꺼냈다.
“혹시 이 곡 가사도 있습니까?”
“네?”
“만약 태주 씨가 노래를 부르게 된다면, 일주일 안에 작업을 끝내주실 수 있습니까?”
“네?”
PD와 작곡가, 태주까지 무슨 상황인지 몰라 견우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세 사람의 눈빛이 점점 따가워지는 것을 느꼈는지 견우가 말을 덧붙였다.
“잘하면 드라마 ost로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