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0
39. 예능 자신감
며칠간 스튜디오에서 ost 녹음을 한 태주는 한동안은 음악 관련 작품은 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얼굴을 알리는 일이 중요하긴 했지만, 지나쳤다.
우 팀장님과 김 실장님은 나중에 기삿거리로 쓰기 좋다며 반겼지만, 태주는 연기보다 노래 실력이나 연주 실력이 더 주목받는 상황이 조금 아쉬웠다. 배부른 소리라는 건 잘 알고 있지만, 배우 이태주의 이름이 좀 더 커졌으면 하고 바랐다.
“우 팀장님이 박지연 작가님과 만나실 겁니다. 감독님도 저희와 몇 번 작품을 같이 하신 분이라서 ost 건은 원만하게 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진짜 빠르네요. 잘하면 다음 주 방영분에 들어갈 수도 있겠네요?”
“곡이 좋으니까요. 어쩌면 그렇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유능해. 게다가 이 인맥은 대체.’
트리즈에는 태주까지 12명의 배우가 소속되어 있다. 남자 배우는 정한선과 김윤선, 진혁 일당 네 명과 태주까지 일곱 명이고 여자 배우가 다섯 명이었다.
여자 배우 중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는 김혜주와 송혜진이었다. 둘 다 사십 대 중반이었다. 나머지 셋 중 둘은 휴식기였고, 남은 한 명은 60대 초반의 김희숙으로 영화, 드라마 구분 없이 주·조연으로 출연하는 중이었다.
“저희 트리즈 배우님들이 경력이 좀 있으신 분들이라, 같이 작품을 하신 분들이 많습니다.”
“깜짝 놀랐어요. 솔직히 이렇게 일이 술술 풀리 수 있나, 의심스러울 정도였거든요.”
태주가 일이 술술 풀렸다는 표현을 했지만, 그건 결과만을 보고 하는 얘기였다. 지금까지 트리즈의 수많은 직원이 쌓아놓은 신뢰와 정성스러운 인맥관리가 있었기 때문에 원하는 결과를 얻어낸 것이었다.
배우가 그런 부분까지 알 필요는 없었다. 그런 속사정은 서포트하는 사람들의 몫이었다. 견우는 아직도 신기해하는 태주를 진정시키고 일정을 확인하게 했다.
태주는 인지도에 비교해 스케쥴이 많은 편이었다. 소속사의 다른 배우들이 은근슬쩍 태주를 추천하는 일이 꽤 있었다. 진혁 일당뿐 아니라 정한선과 김윤선도 그랬다. 인터뷰 중에 한 마디씩 칭찬하는 말을 얹거나, 업계 관계자를 만날 때 신인이 들어왔다는 얘기를 흘렸다.
“지금 들어오는 일이 꽤 많습니다.”
“예능 출연이 효과가 있나 보네요.”
“확실히 이번 ‘숲 속 카페’는 반응이 괜찮았습니다.”
태주의 출연은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었다. 진혁이 인터뷰에서 어리바리한 태주를 일꾼으로 쓰려고 데려왔는데, 너무 잘해줘서 당황했다는 얘기를 꺼냈다. 덕분에 예전에 촬영한 ‘소소한 동네 여행’에서 얻은 어리바리 이미지를 조금 벗을 수 있었다.
이번 주, 계곡에서 물놀이하는 모습이 방영된다면 꽤 시선을 끌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예고편이 CF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게 편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본 편에서 어떻게 나올지는 모르지만, 이 PD의 성격상 무리하게 편집하지는 않았을 거 같았다.
“저는 예능 되게 어렵게 생각했는데요. 생각보다 할 만한 것 같아요.”
“그렇습니까?”
“네. 전 예능은 사람들이 말할 때마다 박수 쳐주고, 맞장구 쳐주고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숲 속 카페도 그렇고 상상하던 거랑 다르게 편했어요.”
“···그러셨군요. 음, 혹시 숲 속 카페 아직 못 보셨습니까?”
“네, 그러고 보니 모니터링을 잊었네요.”
“이번 주 방영분은 꼭 보십시오.”
지난 편에서 태주의 분량이 꽤 많았다. 예상보다도 훨씬 적극적으로 카페 일에 나서서 좋은 장면이 많이 나왔다. 문제는 사차원이랄지 아이 같다 해야 할지 특이한 모습이 많이 나왔다는 것이다.
진지하게 거위에게 자기소개하고 농장에 입장 허락을 받는다던가, 태산이 때문에 놀란 돼지에게 정중하게 사과하는 등의 모습이 나왔다.
당시에는 특이하네, 하는 감상 정도로 넘어갔었다. 하지만 편집된 방송을 보니 천진난만을 넘어 슬쩍 백치미가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도깨비 무사의 오수현 작가님이 연락 주셨습니다.”
“윽.”
“하하. 이번엔 지난번처럼 밤새 붙들리실 일은 없을 겁니다. 그냥 예능에 나온 모습이 도깨비 왕에 잘 어울리신다는 얘기였습니다.”
“바리스타 모습이요? 아니면 장사하는 모습? 이번에 제가 조금 똑 부러지게 나왔죠?”
“그, 렇죠?”
“저 혹시 예능에 재능 있는 게 아닐까요?”
태주는 한껏 고무되어서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지금은 오수현 작가가 ‘번듯하게 생겨서 엉뚱한 짓을 하고 해맑게 웃는 게, 딱 도깨비 왕이에요.’ 라고 한 말을 전하진 못할 것 같았다.
“연기 선생님 건은 또 거절하셨죠?”
“예, 현역으로 무대에 오르시는 분이라 그러신 것 같습니다. 다른 선생님을 알아봐 드릴까요?”
“아니요. 선율은 괜찮아요. 도깨비 무사 대본이 나오면 그때 구해주세요.”
박재성 선생님에게 연기지도를 거듭 제안했지만, 거절한다는 얘기만 들었다. 한 푼이 아쉬운 가난한 연극인이 괜찮은 강사 자리를 마다하는 것을 보면, 기억대로 올해를 끝으로 은퇴하실 생각이신 것 같았다. 미련이 남지 않게 무대에 최선을 다하려는 선생님의 마음이 이해됐다. 조금 아쉬웠지만, 이 건은 포기하기로 했다.
*
대로에서 꺽어들어선 좁은 골목 끝에 자리한 건물은 후미진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산뜻한 외관이었다. 흰색과 검은색으로 깔끔하게 만들어진 간판에는 Ahn’s Cafe라고 적혀있었다.
박지연 작가가 글을 쓸 때 자주 들르는 카페였다. 카페주인과 친한 사이로 카운터 가까운 자리를 지정석 삼아 작업하고 있었다.
오늘은 그녀의 지정석에 다른 손님이 함께하고 있었다. 이곳이 그녀의 작업공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인물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다.
“오랜만이에요, 박 작가님.”
“그러게요. 진짜 오랜만이에요, 우 팀장님. ‘여왕의 만찬’이후로 일 년만인가요?”
“벌써 그렇게 되었어요? 그때 도명희 배우가 사고 내는 바람에 저희 배우님이 급하게 들어가느라 인사드렸었죠?”
“호호호. 우 팀장님, 나 바빠요. 부탁할 거 있으면 그냥 해요. 굳이 옛날얘기 꺼내면서 간 볼 필요 없어요.”
최근에는 만난 적이 없었지만, 수년간 관계를 맺어왔던 인물이다. 우 팀장이 슬쩍 그녀가 신세 졌던 일을 꺼내자, 시원하게 말하라며 부추겼다.
우 팀장도 잠시 예의를 차렸지만, 그녀의 허락이 있자 바로 용건을 꺼냈다. 현재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의 메인 작가였다. 정신없이 바쁠 시기에 이렇게 시간을 내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배려였다.
“ost 예요. 저희 김혜주 배우님 배역과 너무 어울리는 곡이라서요.”
“트리즈에서 ost를 부탁하는 일은 또 처음이네요. 들어볼게요.”
트리즈는 배우 전문 기획사였다. 소속 연예인 모두 연기자로 뮤지컬에 출연하는 배우조차 한 명 없었다. 영화나 드라마 아니면 연극에 출연하는 이들만 가득한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ost 삽입을 부탁하는 일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박지연은 우 팀장이 건네주는 usb를 바로 노트북에 연결했다. usb 안에는 노래 한 곡과 배우 한 명의 프로필이 들어있었다.
“좋네요. 이거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장면에 들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곡이 따뜻한 분위기네요.”
“마음에 드신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이 곡 김 감독님한테 보내도 되죠? 나는 마음에 드는데, 김 감독님 의견도 들어봐야 해서요.”
“물론이죠.”
우 팀장이 승낙하자 그 자리에서 바로 김 감독에게 전화를 건 박지연이 다짜고짜 노래 한 곡 들어보라고 하고 끊었다. 앞뒤 모두 잘라먹는 예의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없는 통화였지만, 김 감독님과 박 작가의 관계를 아는 우 팀장은 걱정하지 않았다.
“부군께서는 여전히 현장에서 일하시는 걸 바라세요?”
“오호호. 부군은 무슨, 그냥 김 감독이라고 해요. 이미 위로 올라갈 때는 지났어요. 자기가 현장이 좋다는 데 어떻게 말려요.”
“김 감독님 같은 분이 방송국 안에 계시면 저희 같은 기획사는 참 좋을 텐데요.”
그 양반은 정에 약해서 그런 자리는 못 버텨요, 라며 박지연이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부르르 떨리는 전화를 받아 씬넘버를 말하고 다시 끊어버렸다.
“다음 주 방영분에 들어갈 거에요.”
“감사합니다, 박 작가님.”
“프로필은 이번에 들였다는 신인이에요?”
“네, ost를 부른 사람이기도 해요.”
눈을 동그랗게 뜬 박 작가가 다시 한 번 태주의 프로필을 확인했다. 얼굴도 잘생기고 팔다리도 길쭉하니 얼핏 보면 모델처럼 보일 정도였는데, 노래까지 잘했다.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승마에 펜싱?”
“이태주 배우님이 재주가 좀 많으세요.”
“아아. 확실히 기억해 둘게요.”
이후 둘은 잠시 잡담을 나누다 헤어졌다. 우 팀장은 ost 계약을 위해 움직였고, 박 작가는 다시 원고에 매달렸다.
*
태주는 숲 속 카페의 지난 방영분을 결제해서 보고 있었다. 은혁의 말에 동의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동네 여행에서는 좀 빙구 같아 보였었다. 왜 그리 넋을 빼놓고 있었는지, 그날로 돌아갈 수 있다면, 뒤통수를 세게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어, 혹시 목장에 들어가도 될까?’
화면에 거위와 인사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큰 몸을 뒤뚱거리며 걷는 거위의 모습은 다시 봐도 귀여웠다. 긴 목을 곧추세우고 경계하며 목장을 지키는 모습이 대견하기도 했다.
물론 그건 태주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나중에 목장 주인아저씨에게 듣기로는 보는 사람마다 짖고 경계해서 골머리 썩히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한우만 키울 때는 목장을 잘 지켜서 좋았지만, 체험 농장으로 바뀐 뒤에도 사람을 경계해서 문제라고. 매번 요령 좋게 우리를 탈출해 목장 방문자를 괴롭힌다고 알려줬다.
“목장 다시 가고 싶다. 나중에 애들이랑 같이 놀러 갈까?”
“큭큭. 진혁이 형님은 밥을 무슨 쉐프처럼 하시네.”
“정국이 형은 피곤한 얼굴도 잘생겼네.”
태주는 꽤 재밌게 프로그램을 봤다. 배우로서가 아니라 시청자의 입장으로 보니 예능도 나쁘지 않았다.
이 장면을 이 배우는 어떤 식으로 표현했나, 카메라가 이 각도에서 촬영할 때는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나, 같은 분석을 하지 않고 편하게 봤다.
다음 화는 아직 방영하지 않았지만, 모니터링은 이 정도로 충분할 것 같았다. 카페 일도 잘했고, 화면에도 많이 나왔다. 예전처럼 맹한 대답을 하지도 않았다.
남들이 엉뚱하다 여기는 부분을 전혀 그렇게 느끼지 못한 태주는 자신에게 예능감이 생긴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정글의 규칙 같은 프로에 나가도 잘할 수 있을 것 같아.”
예능 두 번 출연하고 과하게 자신감이 생긴 태주였다. sns는 할 줄 모르고, 커뮤니티는 원래 관심이 없어, 본인이 어떻게 비추어졌는지 전혀 모르기에 할 수 있는 말이었다.
태주의 이미지는 동네 백수에서 해맑은 사차원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 때문에 회사 홍보팀에서 바쁘게 이미지를 바꾸기 위한 물밑 작업을 하는 중이었다. 힐링 인터뷰에서 보여주는 부드러운 이미지나, 거리에서 노래하는 예술가적인 면모를 띄우려 인력을 총동원하고 있었다.
여러 사이트에 태주의 사진을 풀며 대화를 그런 쪽으로 유도하고, 진혁의 기사에 태주의 이름도 같이 내보내는 등의 일을 하고 있었다.
*
태주는 태산의 방송출연이 많아져 걱정이었다. 다른 동물 출연자의 경우 스트레스를 강하게 받는데, 혹시 태산이도 그렇지 않을까 주의해서 살피고 있었다.
물론 태산이는 시스템에 등록된 펫이라 희가 수시로 상태를 열람하고 알려주고 있지만,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틈날 때마다 직접 책 조각상을 통해 상태창도 확인하고, 펫 영양제도 자주 먹이지만 어린 새끼인 만큼 걱정을 멈출 수 없었다.
‘올해야 데뷔연도니 일감이 국내에 몰려있지만, 조금만 지나도 해외 촬영이 잡힐 텐데. 정원에 못 데려가는 날도 늘어날 테고, 걱정이네.’
태주는 한숨을 쉬면서 태산이를 들어 올렸다. 태산이 그가 신은 슬리퍼 코를 자꾸 물어 당겨서, 그러지 못하게 꽉 끌어안았다.
“너 이갈이는 언제까지 하는 거야? 응? 형 방의 가구가 멀쩡한 게 하나도 없잖아.”
“으양웅.”
자신에 대해 고민하는 것도 모르고 장난치자는 줄 아는 녀석이 얄미웠다. 사실 이 모든 게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걸 태주 본인도 잘 알고 있었다. 태산이 자신에게서 절대 떨어지지 않을 테니까.
한때 태주는 태산이의 현실 행을 자제시켜야지 않을까 고민한 적이 있었다. 병원에 다니는 문제도 그렇고, 혹시라도 종이 밝혀지는 일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했었다.
모두 쓸데없는 일이었다.
시스템에 등록된 펫이라는 건 태주의 생각 이상으로 특별했다. 마치 태주의 걱정을 모두 알고 있는 것처럼, 문제 될 점들이 이미 처리된 상태였다.
‘펫은 정원에서 생활하거나 정원사와 함께 외출할 수 있습니다. 펫과 함께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십시오.’
답은 모두 태주가 너무 간단하다고 불평했던 펫 시스템 설명 문구에 있었다. 처음부터 시스템은 정원사와 함께 외출할 수 있도록 펫에게 능력을 부여한 상태였다.
그것도 모르고 태주는 태산이가 커갈수록 병원이나 정체에 관해 전전긍긍했었다. 답답한 마음에 희에게 고민 상담하다 사실을 알게 되었다. 희가 친절하게 해주는 설명을 듣다 느낀 창피함은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가장 창피했던 점은, 오랫동안 했던 그 모든 고민이 태산이 상태창을 한 번이라도 열어봤으면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위장, 주변 환경에 가장 동화되기 쉬운 생물로 꾸밉니다. 이걸 모르고 그렇게 고민했었다니. 그때, 펫으로 지정했을 때 바로 열어봤으면···. 어휴. ”
다시 생각해도 속이 쓰리고 낯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다. 펫으로 지정했을 때 말고도, 기회는 많았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상태창을 열어 보지 않았다. 희에게 정원 관리를 맡겨두고 얼마나 무관심했는지. 아마 희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원을 이렇게 잘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오늘은 희랑 시간을 보내야겠다. 태산이도 같이 놀자.”
품에 안은 태산이 내려달라 발버둥을 쳤지만 괜한 심술이 돋아 더 꽉 끌어안는 태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