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3
42. 제피르
희는 정원에 새로 들어온 골든 유니콘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황금색으로 반짝반짝하고, 덩치도 작아서 자신과 요정의 집에서 같이 지내도 될 것 같았다.
임시 등록증에서 확인한 펫의 이름은 제피르였다. 제피르는 산들바람이라는 뜻이었다. 하늘을 날 수 있는 기술을 가진 그에게 옛 주인이 고심해서 지어준 이름 같았다.
희와 태주는 그에게 혹시 새 이름이 갖고 싶은지 물었다. 하지만 제피르는 전 주인이 지어준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길 바랐다. 태주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가 원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했다.
“제피르, 이거 줄게.”
희가 제피르에게 아끼는 사탕을 건네줬다. 제피르는 희가 건네준 사탕을 본체만체했다. 큰 나뭇가지 위에 자리를 잡은 그는 네 다리를 접고 고개를 파묻은 채 가만히 있었다.
“태주, 어떻게 해?”
“음. 우선 시간을 주자. 제피르가 이곳에 적응할 때까지 기다리자.”
“응. 희 기다릴게.”
정원사를 잃고 정원이 황폐해져 가는 것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제피르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것 같았다. 작은 몸이 뼈와 거죽만 남았을 정도로 말랐는데도 음식을 먹으려 하지 않았다. 계속 나뭇가지 위에 웅크리고 있었다.
‘태산이나 단단 같이 활기차게 되려면 어떻게 해줘야 할까?’
반려동물은 태산이가 처음인 태주는 이런 부분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현실로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볼 생각이었다. 지금은 그저 꾸준히 관심 가져주고, 불편하지 않게 신경을 써주자는 마음뿐이었다.
정원에 나무의 수가 몇 배로 늘고 장식도 늘었다. 누렇게 마른 잎이 붙어있는 나무도 많았고, 가지만 남은 나무도 많았다. 돌 봐야 할 나무가 갑자기 많이 늘었다.
태주는 모아두었던 비료 재료 전부를 사용해 비료를 만들어 두고, 나무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한두 시간에 끝날 것 같진 않았다.
마법이 걸린 물뿌리개는 가볍지만, 용량이 무척 커서 평소 두세 번만 채워도 정원의 모든 나무에 물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물뿌리개에 물을 벌써 몇 번이나 다시 채웠는지 모른다.
“나무가 너무 말라서 그런가. 물을 정말 많이 줘야 하네.”
태주가 물뿌리개를 들고 이리저리 움직이자 단단이 그를 따라서 같이 움직였다. 지금 태주가 들고 있는 물뿌리개가 단단이 주로 쓰는 것이어서 그런 것 같았다.
“단단. 오늘은 내가 물을 줄게. 단단은 제피르가 어떤지 보고 와줄래?”
“단단.”
태주가 현실에서 시간을 보낼 때, 단단은 물뿌리개로 나무에 물을 주곤 한다. 사실 일꾼으로 고용했지만, 단단에게 일을 시킬 생각은 별로 없던 태주였다. 그런데 단단이 스스로 창고에서 물뿌리개를 꺼내서 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단단은 요구하는 게 전혀 없었다. 따로 잠자리를 마련해주려 했지만, 스스로 큰 정원석 밑에 굴을 파고 잎을 모아서 잠자리도 만들었다. 굴을 만들어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한 태산이와 달랐다.
‘얌전하고 바라는 게 없으니, 신경도 덜 쓰게 되는 것 같아.’
자칫 소홀히 대하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단단이 일꾼이긴 하지만 반쯤 반려동물로 여기고 있던 태주는 앞으로 좀 더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태주가 정원을 크게 둘러 보았다. 정원 공터 한구석에 큰 바위 여러 개가 뭉쳐 바위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다. 푸른 사자 정원사가 준 장식이었다.
태산이는 그 바위 무더기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 위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면서 놀고 있었다.
다른 정원사가 선물한 것은 거대한 종이었다. 이끼와 풀, 꽃으로 뒤덮인 종은 미로의 한구석에 설치했다. 이로써 미로의 도착지는 소형 공연장, 슬라임 동굴, 달빛 연못, 홍차 와인 분수까지 더해 다섯 군데가 되었다.
“그나저나 나무가 정말 많이 늘었다. 아직 무슨 나무가 있는지도 모르겠네.”
희가 포르르 날아서 태주의 곁으로 다가왔다.
“희가 알려줄까?”
“아! 희는 어떤 나무가 있는지 알겠구나.”
“응. 클로브, 시나몬, 제피, 수막···.”
“시나몬 빼곤 다 모르는 나무인데.”
처음 들어보는 나무 이름이 대부분이었다. 카푸치노 같은 커피에 추가하느라 익숙한 시나몬을 빼곤 익숙하지 않았다.
태주의 정원에는 주로 과실수를 심었다. 과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상점에 팔아서 DP를 벌 욕심에 많이 심었다. 다른 정원사도 무슨 목적이 있어서 이 나무들을 심은 것 같았지만, 식물 사전을 찾아보기 전엔 알 수 없었다.
“히히힝.”
태주가 키가 작은 나무에 물을 줄 때였다. 큰 나무의 가지에서 웅크리고 있던 제피르가 다각 거리는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제피르?”
제피르가 히히힝 하면서 말을 걸었지만, 태주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태주가 급하게 희에게 통역을 부탁했다.
“응응.”
“희, 제피르가 뭐래?”
희가 제피르에게 날개 가루를 뿌려 준 후에 태주에게 설명했다. 좀 전에 태주가 물을 준 나무는, 전 주인이 제피르가 정원에 온 것을 기념해서 심어준 나무라는 얘기였다.
“아! 이런.”
나무는 메말라 있었다. 허리 높이 키에 누렇게 마른 작은 잎이 가득 매달린 나무였다.
“황금 종 나무야.”
“아아.”
특이한 나무라 이름을 기억하는 나무였다. 황금색의 작은 종 모양 열매가 맺히는 나무였다. 귀한 품종의 나무 중 하나로 새콤한 맛을 낼 때 요리에 넣는 것이었다.
“음. 이렇게 하자.”
태주는 우물가에 남겨둔 빵나무 옆에 황금 종 나무를 심기로 했다. 우물 가까이 있으면 물을 주기도 편하고 오두막 앞쪽이라 상태를 보기도 좋았다. 태주가 나무를 옮길 자릴 삽으로 파기 시작하자 태산이 도와주려는지 구덩이 안에 들어섰다.
“냐아웅!”
태산이 앞발로 힘차게 땅을 팠다. 땅을 파며 신이 났는지 고로롱 소리도 내고 있었다. 어느새 태주는 뿌려지는 흙을 피해 한쪽으로 밀려나 있었다. 황금 종 나무는 허리 높이의 작은 나무라 아주 깊게 팔 필요는 없었는데, 흥분한 태산이 굴처럼 깊게 파고 있었다.
“태산아, 그만. 그만 파.”
“냐웅!”
“그 정도면 충분해. 이제 좀 비켜 줄래?”
“냥!”
“어휴, 정말. 그래. 그 자리 너 해라.”
태주의 이마에 힘줄이 솟았다. 태산은 비킬 생각이 없는지 다시 땅을 파 내려갔다. 흥분한 태산이를 말리지 못한 태주는 나무를 옮길 다른 자리를 찾아보았다.
오두막에서 바로 보이는 다른 자리를 골라야 했다. 태주는 제피르가 나무를 보러 올 때 제피르를 살펴볼 요량이었다. 오두막 창 근처 적당한 자리에 삽으로 동그란 선을 그은 후, 태산이가 방해하지 못하게 빠른 속도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이렇게 돌로 나무 주위를 둘러놓자.”
주먹만 한 돌들을 가져와 황금 종 나무 밑에 동그랗게 둘러쳤다. 태주가 물을 주고 물러나자 제피르가 나무 곁으로 다가갔다. 제피르는 공중으로 날아올라, 나무 위를 몇 바퀴 돈 후에 다시 큰 나무의 가지로 올라갔다. 황금 종 나무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이었다.
“다행히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네.”
“응, 제피르가 이렇게 했어.”
희가 손으로 눈꼬리를 당겨 가는 눈을 만들었다. 말이 기분 좋을 때 눈을 가늘게 뜨는 것을 표현한 것 같았다. 제피르의 기분이 좀 나아진 것 같아, 태산이 파둔 구덩이를 메우는 태주의 기분도 조금 나아졌다.
*
상점에서 열기구의 레시피와 재료를 샀다. 희는 마법 그물 대포도 사고 싶어 했지만, 태주는 전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아쉬운 듯 희가 상점을 계속 돌아봤지만, 열기구의 재료만 구매하고 바로 상점을 닫아버렸다.
태주는 테이블 위에 상점에서 산 열기구 레시피를 펼쳐놓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열기구는 지구의 것과는 조금 달랐다. 버튼 하나로 수직이착륙이 가능하고, 태블릿 같은 조종패널을 이용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크기는 꽤 커서 성인 대여섯 명이 타도 괜찮을 것 같았다.
“헬리콥터 같네. 이걸 잘 조종할 수 있을까? 희랑 내가 별똥별을 잡는 사이에 다른 사람이 조종을 해주면 좋을 텐데.”
정원에서 열기구를 조종할 수 있는 것은 희와 태주뿐이었다. 단단이나 태산이는 조종패널까지 키가 닿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내가 조종하고 희가 별똥별을 잡게 해야겠다.”
레시피를 찢어 열기구를 제작했다.
열기구 풍선, 외피에 들어갈 도안을 고르라는 설명에 태주는 희와 태산이의 얼굴을 떠올렸다. 귀여운 호랑이 얼굴과 희의 모습이 도안 선택 창안에 떠올랐다. 태주가 속으로 마음에 든다는 생각을 하자, 열기구 외피에 둘의 모습이 새겨졌다.
제작이 완료된 열기구 곤돌라에 타보았다. 곤돌라는 생각보다 넓었다. 태산이와 단단까지 타도 복잡하지 않을 것 같았다. 적재함도 있고 조종패널 앞엔 손잡이도 있었다.
“희, 열기구 타보자.”
정원의 새로운 물품에 호기심을 느끼고 구경 와 있던 태산과 단단도 태웠다. 태주가 마지막으로 제피르를 불렀지만, 제피르는 고개를 돌려 관심이 없다는 의사를 표했다.
“출발이야?”
“하하. 그래 출발하자.”
태주의 입가가 크게 휘었다. 열기구를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정원을 얻은 후로 처음 경험해보는 일이 많이 생기는 것 같았다. 단순히 열기구를 띄워보는 시범비행이었지만, 모험을 앞둔 아이처럼 심장이 두근댔다.
화르륵.
마법의 불꽃이 켜지고 열기구가 부풀어 올랐다.
태주처럼 희도 비행이 기대되는지 날개 가루가 퍼지고 있었다. 조종패널 근처에서 반짝이는 희의 날개 가루 덕에 따로 조명을 켜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열기구가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곤돌라 안의 냄새를 맡던 태산이와 단단이 불안한지 낑낑거리는 소리를 내며 태주의 다리에 몸을 붙였다.
“괜찮아, 괜찮아. 안전해.”
둘을 달래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래도 비행은 무리인 것 같았다. 태주가 한숨을 삼키고 열기구를 착륙시키려 할 때였다.
다각다각.
큰 나무의 가지 위에서 일행을 지켜보던 제피르가 열기구로 날아왔다. 제피르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곤돌라 안에 내려섰다. 그리고 태산과 단단의 곁으로 다가가, 오른쪽 앞발을 강하게 굴렀다. 제피르가 구른 앞발이 닿은 바닥에서 ‘땅’ 소리가 났다.
직후 황금빛의 파동이 퍼져 나와 태산과 단단을 감쌌다.
“보호막이야.”
“보호막?”
“응, 태주. 제피르가 보호해줄 거야.”
태산이와 단단이 무서워하자 나서서 보호막을 걸어준 것이었다. 보호막은 제피르가 가진 기술인 것 같았다.
제피르의 보호막이 몸을 감싸자, 태산이와 단단이 안정을 찾았다. 둘은 몸을 붙이고 있던 태주의 다리에서 떨어져, 다시 곤돌라 안의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고마워, 제피르. 덕분에 무사히 비행할 수 있을 것 같아.”
“···.”
대답은 없었지만, 고개를 돌리지 않고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서 호기심이 느껴졌다. 태주는 제피르의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을 보고, 열기구에 관해 설명해줬다.
“이쪽 조종패널로 열기구를 움직일 수 있어. 여기 버튼 보여? 이걸로 갈 방향을 정하는 거야.”
“···.”
제피르는 어느새 태주의 어깨높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귀를 바짝 세운 채 조종패널을 확인하고, 머리를 끄덕이고 있었다.
‘귀엽다.’
태주가 제피르의 귀여움에 감탄하며 보는 사이, 제피르가 조종패널 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앞발로 전진 버튼을 눌렀다. 슈웅, 소리를 내며 열기구가 앞으로 이동했다. 제피르가 발을 떼었다, 다시 내리면서 열기구의 이동 속도를 확인했다.
“히이힝.”
“하하하. 제피르 조종 엄청 잘하잖아.”
제피르는 곧 능숙하게 열기구를 조종했다. 그런 제피르 옆에 희가 붙어서서 별똥별 쪽으로 가자며 방향을 가리켰다.
희가 가리킨 방향에는 작은 별 무리가 이동 중이었다. 시범비행이라 별똥별을 잡을 도구도 없었건만, 희는 별 무리 쪽으로 가고 싶어 했다.
“히이힝.”
“응. 희는 별똥별을 잡고 싶어.”
갑자기 열기구의 속도가 높아졌다.
제피르와 둘이서 무언갈 속삭이더니, 아무래도 둘의 마음이 맞았나 보다.
슈우우웅.
“잠깐. 너무 빠르잖아. 제피르, 희. 너무 빨라.”
제피르는 열기구의 빠른 속도에 놀란 태주를 힐끔 보더니, 오른쪽 앞발을 굴렀다. 다시 한 번 ‘땅’ 소리가 나고 태주의 몸에 보호막이 씌워졌다.
‘보호막 말고, 속도를 줄이라고.’
태주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은 보이지 않는지, 제피르가 왜 감사인사를 하지 않느냐는 듯 빤히 태주를 쳐다봤다. 태주는 그 도도한 눈빛을 이기지 못하고 얼결에 고맙다는 말을 했다. 감사인사를 듣고 제피르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조종패널로 몸을 돌렸다.
‘폭주 열기구도 아니고, 제발 속도 좀 줄여!’
속으로 외치는 말은 아무 소용없었다. 공중에서 휙휙 바뀌는 하늘을 보는 태주는 어지러울 지경이었는데, 희와 제피르 둘은 별 무리를 쫓느라 정신이 없었다. 아무래도 비행기술을 가진 둘에게 이 정도 비행속도는 문제없는 것 같았다. 둘은 속도를 낮출 마음이 전혀 없어 보였다.
희의 주위에는 언제 소환했는지 모를 그물 총이 떠 있었다. 단순한 시범비행이었는데, 별 무리를 본 희가 흥분해서 소환한 것 같았다.
태산이와 단단은 곤돌라 안에 배를 깔고 누워있었다. 두 녀석은 밖이 보이지 않아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는 것 같았다.
태주는 몸을 낮춰 그런 둘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둘 사이에 파고들어 양팔에 한 마리씩 안고 곤돌라에 등을 기댔다.
둘의 체온이 느껴지자 무서움이 좀 가시는 것 같았다.
“제피르, 왼쪽이야.”
“히히힝.”
“제피르, 좋아. 이제 희가 잡을게.”
태주의 첫 비행은 열기구 조종에 재미 들린 유니콘과 별 무리 쫓기에 정신이 팔린 요정으로 인해 그다지 좋은 기억으로 남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