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45
44. 상자 열기
정원에 새로 추가된 나무들이 제 색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꾸준히 비료와 물을 주며 관리하자, 메말랐던 나무들에 푸릇푸릇한 싹이 나기 시작했다.
“진짜 많다. 하지만 나중에 위치를 좀 다시 정해야 할 것 같아.”
나무를 옮겨오는데 급해서 한곳에 모아두었더니, 나무들이 마구잡이로 섞여 있었다. 새로 생긴 나무들은 주로 요리에 쓰는 열매가 맺히는 것이었다. 요리를 못 하는 태주에겐 쓸모없었지만, 상점에 팔면 DP 모으기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아직은 맺힌 열매가 없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 나무들이 회복되면 굳이 갯지렁이 향료 같은걸 만들어 팔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끔찍한 향료야.’
태주는 향료를 떠올렸다, 진저리친 후 상점을 둘러보았다. 혹시 상점에 괜찮은 치료약이 올라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시시때때로 상점을 확인하고 있었다.
“오늘도 꽝이구나.”
이제영 감독은 사람들의 걱정을 뒤로하고, 다음날 창백한 안색을 한 채 촬영장에 돌아왔다. 그날 그렇게 쓰러졌던 그는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지만, 계속 신경이 쓰였다.
오두막에 들어가 제약학책과 약초학책을 펼쳤다. 평소에는 태블릿으로 책을 보지만, 신경 써서 내용을 확인할 때는 종이 책이 조금 나았다.
“어디 보자. 치료 약이···. 여깄네.”
상급 제약에서 치료 약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태주는 곧 책을 덮어버렸다. 병에 대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선 아무것도 만들 수 없었다.
“혹시 상자에서 만능 치료 약 같은 게 나오지 않을까?”
태주는 희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다. 다행히 가까운 곳엔 없는 것 같았다. 최근 희와 제피르는 매일 어딘가로 날아갔다가 왔다.
희의 설명으론 샤라랑 하고 반짝반짝한 곳이라는데 다녀올 때마다 꽃가루가 묻어있고, 달콤한 냄새가 나는 것으로 봐선 괜찮은 곳 같았다.
“제피르가 이동 능력까지 갖췄을 줄은 몰랐지. 희를 태우고 이동도 할 수 있었다니.”
그런 제피르였지만, 정원사를 잃어 하루하루 황폐해지는 정원을 떠나지 않고 지키고 있었다. 비행 능력도 있고 이동 능력도 있으니 어딘가로 갈 수도 있었을 텐데, 협회에서 구조할 사람들이 올 때까지 그곳을 지키고 있었다.
태주는 곧 딴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제피르의 능력이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희와 제피르 둘이 또 어딘가로 놀러 간 사실이 중요했다.
“뽑자. 아무래도 10개는 뽑아야 할 것 같지?”
태주가 주변을 다시 한 번 살펴본 후, 상자를 구매했다.
얼굴이 살짝 붉어지고 심장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에잇. 이놈의 사과나무!”
매번 붉은 상자를 열 때마다 첫 번째는 사과나무 묘목이 나왔다. 평소 사과를 잘 먹긴 하지만, 이때만큼은 별로였다.
[요리 스텝 2]태주의 손이 부르르 떨렸다. 이로써 요리책 시리즈 3권을 모두 모았다. 화를 가라앉힌 후 다시 상자를 열었다.
[용맹한 라헨 인형] [줄무늬 앞치마] [무지개 리본 다발]무지개라는 단어에 흥분했던 태주는 색색의 리본 묶음인 것을 알고 실망했다. 이번엔 다섯 개를 한 번에 열었다.
[현금 1억], [컵 받침(녹색)], [4박 5일 포상휴가권], [털 잠옷], [피라미드 건설권]바라던 치료 약은 얻지 못했다. 하지만 개중에 태주의 눈을 잡아끄는 물건이 있었다. 4박 5일 포상휴가권이 그것이었다. 예전에 군대 면제권이 있지 않을까, 하고 상자를 열었던 기억이 났다.
“군대에 있을 때 사용하면 된다는 거지? 묘하네.”
현실의 아이템이 나올 때마다 당황스러운 기분을 감추기 쉽지 않았다. 아마 태주가 사는 현실의 상황에 맞춰서 주는 물건 같았다.
태주는 DP 보유량을 확인한 후, 빠르게 다시 10개의 상자를 샀다. 이번엔 오두막 안의 침실로 상자를 챙겨서 들어갔다. 좀 전에 상자를 여느라 시간을 많이 보낸 게 신경 쓰였다. 도중에 희가 오더라도 들키지 않게 안에서 열기로 했다.
“자아. 다시 열어 보자.”
[사과나무 묘목]“에잇!”
[회오리 동굴 건설권], [기상 변환권(눈)], [4박 5일 포상휴가권], [딸기 씨앗 자루], [벽시계], [티포트], [육포], [우산(방탄)], [사랑스러운 비앙카 인형]내용물을 확인하지 않고 한순간에 상자를 모두 열었다. 태주가 바라는 치료 약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영화에서 봤던 우산이나, 정원 날씨를 30일간 바꿀 수 있는 티켓이 나왔다.
태주는 잠시 고민하다, 다시 열 개의 상자를 사와 서 열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꽝이었다.
“내가 운이 없나? 치료 약은커녕 어떻게 회복 약 한 병도 안 나오지?”
방 안 가득 쌓인 물품 중 금 숟가락을 집어 든 태주가 설명을 읽고, 상자를 한 번 더 열까 고민하던 순간이었다.
“태주?”
“하하하. 희 왔어?”
희가 정원에 돌아왔다. 제피르는 다시 나뭇가지 위로 올라간 것 같았다. 태주는 희가 오두막에 들어오기 전에, 빠른 걸음으로 오두막을 나섰다. 급한 마음에 금 숟가락을 그대로 든 채 마중을 나갔다.
[금 숟가락(희귀)황금으로 만들어진 고급스러운 숟가락.
입에 물고 있으면 행운을 높여 준다.]
희의 눈길이 태주의 손에 쥔 금 숟가락에 머물렀다. 태주는 얼결에 금 숟가락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그리곤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잘 놀다 왔는지 물었다. 태주는 속으로 16년, 이제 17년째인 연기력이 빛을 발하길 빌었다.
“태주, 희는 요정 숲에 다녀왔어.”
“요정 숲?”
“응응. 재밌었어.”
희는 오늘도 꽃가루를 온몸에 묻히고 왔다. 날개의 반짝임도 더 강해진 것 같았다. 희와 제피르는 오늘도 꽤 재밌는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태주, 이것.”
“응?”
“선물이야.”
부끄러운지 작은 상자를 하나 건네주고 희가 요정의 집으로 날아가 버렸다. 손바닥만 한 노란 상자에 분홍색 리본으로 장식한 선물이었다.
“우와! 희 고마워!”
큰 소리로 인사한 후 바로 상자를 열어 보았다. 상자 안에는 머리끈이 들어있었다. 비록 내용물이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아니었지만, 선물한 희의 마음이 고마웠다.
태주는 반짝이는 은색 구슬이 달린 머리끈을 팔찌처럼 손목에 차봤다. 검은색 밴드에 은색 구슬이 달린 머리끈은 손목에 차도 어색하지 않았다. 머리 묶는 데 쓰지 않고 팔찌로 써도 괜찮을 것 같았다.
‘아! 희는 선물도 사 왔는데, 나는 뭘 한 건지.’
희가 바닥 난 DP를 보면 어떻게 반응할지 살짝 겁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엔 치료 약을 기대하고 열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저 뽑기에 눈이 먼 것 같았다. 결과도 아주 쓸만한 물건을 얻은 것도 아니었다.
뽑기의 결과물이 쌓여있는 오두막을 슬쩍 돌아본 태주는 오늘은 일찌감치 현실로 돌아가기로 했다.
태주는 정원 어딘가에 숨어있는 태산이를 부르려다, 희의 주의를 끌까, 제피르에게 부탁했다. 황금 종 나무가 보이는 곳에 앉아 태주가 하는 양을 보던 그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개도 없는 데, 정말 잘 나네. 신기해라.’
제피르가 공중에서 맴도는 곳으로 가자, 태산이 흙바닥에 잠들어 있었다. 또 어딘가에 구덩이를 팠는지 발이 흙투성이였다. 평소라면 오두막에 데려가서 목욕을 시켰을 테지만, 오늘은 그냥 데리고 가기로 했다.
태주가 태산이를 안아 들고 잰걸음으로 정원 입구로 갈 때였다. 요정의 집에서 희가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오고 있었다.
“태주! DP가, DP가.”
“헉. 희, 미안. 일찍 가볼게.”
*
태주가 급하게 인사를 하고 현실로 돌아갔다. 그는 흙투성이의 태산이를 안은 채 잠에서 깼다. 태주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얼굴을 쓸어내렸다.
“대체 왜 그렇게 상자를 연 거야. 30개나 열다니. 정신이 나갔었나 봐.”
태주는 한심한 짓을 했다며 한참 동안 자책했다. 그 와중에 주머니에 든 물건이 자꾸 몸을 찔러대서 꺼내 보니 급하게 숨겼던 금 숟가락이었다. 만약 중간에 희가 오지 않았다면, 금 숟가락을 문 채로 상자를 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은혁이 게임을 하며 랜덤박스에 목메는 걸 보고 저게 무슨 짓인가 싶었는데, 자신이 그때 그가 하던 짓을 똑같이 하고 있었다.
“이걸 물고 있으면 행운이 늘어난다는 거지?”
띠링. 띠링. 띠링.
태주는 정원 메신저 알람을 무음으로 해놓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희가 보내는 메시지를 읽기 겁났다. 특히나 태블릿을 향해 뻗은 팔에 채워진 머리끈을 보니 더 그랬다.
“그래도 2만 DP 정도 남은 것 같은데. 그 정도면 한동안은 쓰지 않을까?”
정원의 고정 지출이라고 해봐야, 단단에게 주는 일당밖에 없었다. 얼마 되지 않는 DP라 부담도 없었다.
태주는 잠시 변명을 닮은 자기합리화를 했지만, 곧 머리를 부여잡았다. 한동안 그러고 있다, 태블릿에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확인만 했다.
‘태주, DP가 없어졌어.’
“미안, 희. 내가 다 썼어.”
‘태주, 큰일이야.’
“큼, 나무 열매 열심히 따야겠다.”
욕조에 따끈한 물을 받아 태산이를 넣어주었다. 태산이 기분 좋게 목욕을 즐기는 모습을 보다 태주도 씻기 시작했다.
오늘은 선율 촬영이 없는 날이었다. 다른 일정도 없어서, 느긋하게 집에서 쉴 수 있었다. 쉬는 김에 얼떨결에 정원에서 들고 온 금 숟가락을 시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혹시 나중에 정원에서 상자를 열게 될지도 모르니 금 숟가락의 효능을 미리 알아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는 시험을 위해 게임을 설치해 랜덤박스를 열지, 편의점에서 즉석 복권을 사올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태주는 게임을 잘 못 했다. 몇 번 은혁의 권유로 배틀 밸리에 도전했다가, 어마어마하게 욕만 먹었다. 그 이후 그냥 혼자서 즐기는 대전게임과 느긋하게 농작물을 키우고, 동물의 밥을 챙겨주는 농장 게임만 했었다. 그래도 최근 무슨 게임이 인기 있는지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전설의 재림 100 상자깡?”
전설의 재림은 태주도 알고 있는 게임이었다. 친구 은혁이 가끔 하는 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 초대하면 뭘 준다면서 초대 수락하라고 메신저로 뭐라고 했지만, 배틀 밸리 사건 이후로 게임을 거의 하지 않는 태주라, 가볍게 무시했었다. 그런 게임의 랜덤박스를 여는 영상이 미튜브에 있어서 호기심이 동한 태주가 확인해 봤다.
영상은 BJ가 100개의 랜덤박스를 열어서 좋은 아이템이 얼마나 나오는지 확인하는 것이었다.
“확률상 신화 급 아이템이 3%니까, 100개를 열면 3개 정도 나온다는 얘기지?”
10분 남짓한 영상을 모두 본 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영상 속 BJ가 기도도 하고, 제물이라며 감사인사도 하고,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서 100개의 상자를 열었지만, 단 한 개의 신화 급 아이템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상하네. 왜 안 나오지?”
태주는 영상에 나온 게임을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금 숟가락이 있으니 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는 오랜만에 PC를 켜 게임을 설치하고 랜덤박스를 구매했다. 영상처럼 100개를 열어 보고 싶었지만, 일일 구매제한이 걸려있었다.
30개 구매에 보너스 3개를 받은 태주는 금 숟가락을 입에 물고 상자를 열기 시작했다.
상자 열기는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났다.
게임을 플레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듣기론 운이 좋으면 강화도 잘된다고 하는데, 그럴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강화할 만큼 좋은 등급의 아이템이 없었다.
“확률이 이상한 것 같아. 아니면 그 제물, 이였나? 영상에서 그러던데, 너무 조금 산 건가?”
구매제한이 있는 게 아쉬웠다.
“어휴. 태산이 산책이나 시켜야겠다. 태산아 나가자.”
“냐앙!”
*
마스크를 쓰고 나왔지만, 워낙 태산이가 시선을 끌어서 알아보는 사람이 좀 있었다. 다행히 사인이나 사진을 요구하는 사람은 없어, 태주는 느긋하게 태산이와 산책을 즐겼다.
집과 가까운 공원은 항상 사람이 붐볐다. 자전거도 많고, 공놀이하는 아이도 있어서 태산이 끈을 풀어줄 수는 없었다. 그나마 지금이 평일 오전이라 사람이 적은 것일 뿐, 주말이 되면 사람이 너무 많아 공원 방문이 쉽지 않았다.
“냐냐앙.”
“화단 파면 안 돼. 아침에 목욕했잖아.”
최근 태산인 구덩이 파기에 심취해 있어, 눈만 떼면 온몸이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지금도 허벅지 높이의 화단에 올라가서 냄새를 맡고 있었다. 냄새 맡는 기세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보면 화단에 구덩이를 팔지도 몰랐다.
파파파팍.
태주가 말리는 말을 하자마자 태산이 구멍을 파기 시작했다. 태주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다행히 이곳을 보는 사람은 없었다.
“제발, 태산아. 그만 파.”
“냐앙!”
몸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가린 채 흙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막았다. 태산이가 구멍을 다 파면 다시 메워야 하니 흙이 바닥에 흩어지면 곤란했다.
“냐아앙!”
“으, 뭐야?”
태산이 흙 속에서 무언갈 파냈다. 흙투성이의 지저분한 동전 지갑이었다.
태주는 태산이 자신 앞에 자랑스럽게 내려놓은 것을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칭찬을 바라고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태산이를 마지못해 칭찬해줬다. 지갑을 열어 보자,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이 들어있었다. 안을 봐도 동전 지갑의 주인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태주는 한숨을 삼키고, 동전 지갑을 챙겨 공원관리사무소로 갔다. 흙투성이 동전 지갑을 받아 든 관리인 아저씨는 황당한 얼굴을 감추지 못했다. 두 손가락으로 지갑을 집어 든 아저씨가 분실물 바구니에 지갑을 던져 넣었다. 그리곤 태주를 빤히 바라보다, 비타민 음료를 한 병 건넸다.
“힘내, 학생.”
“네?”
무슨 이유에선지 응원을 받은 태주는 관리인에게 인사하고 공원을 나섰다. 아직 점심도 되지 않았는데, 어쩐지 피곤했다.
공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렀다. 과자 한 봉지와 컵라면을 하나 골라 계산하려던 때였다.
“손님. 이 라면 오늘부터 증정 이벤트 시작해요. 음료수 하나 고르세요.”
“네.”
‘운이 좋아졌나?’
태주는 공짜로 얻은 비타민 음료와 주스 팩 하나를 주머니에 나눠 넣었다. 어쩌면 자신의 랜덤박스 행운은 처음 희를 만났을 때 다 써버린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이렇게 소소하게 음료수도 얻는 걸 보면 운이 조금 회복된 것일 지도 몰랐다.
“즉석 복권 만 원어치만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