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
4. 태산
태주는 지난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 수 없었다. 새끼 고양이는 잠시만 눈을 떼면 바구니를 벗어나 이상한 곳에 가 있었다. 소파 밑, 책장 뒤, 욕실 매트 위 등. 갓 태어난 새끼가 어떻게 움직인 것인지, 화장실 한번 편하게 다녀오지 못할 정도로 바빴다.
“억. 피곤해.”
돌아온 후론 젊어진 육체 덕에 피곤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는데 지금은 눈만 감으면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았다.
고양이는 좀 전에 분유를 먹고 잠이 들었다. 두 시간에 한 번씩 분유를 먹이느라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벽난로에 가까이 갈까 봐, 급하게 펜스를 사다 치고, 바닥을 기어다는 고양이 덕분에 수시로 걸레질을 해야 했다.
“그런데 얘가 고양이가 맞나? 알에서 나온 고양이라니.”
상식적이지 않은 일을 하도 겪어 면역된 줄 알았더니 아니었나 보다. 알에서 고양이 앞발이 튀어나왔을 때는 정말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사실 알에서 나올 동물이 새, 그것도 새끼가 아닌 성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모 만화에서 봤던 것처럼 알을 깨고 나온 커다란 새가 정원을 마음껏 날아다니는 모습을 상상하고 있었다. 현실은 태주의 상상과 전혀 다르게 눈도 뜨지 못한 새끼 고양이가 나와서 당황했다.
“이렇게 어린 애를 정원에 혼자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로 데려가자니 좀 불안하고.”
펫으로 등록하면 현실로도 데려갈 수 있다고 하지만, 이렇게 어린 새끼를 데려가도 될지 걱정이었다. 정원과 지구의 환경이 달라 병이라도 걸리는 건 아닐지 하는 걱정에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꿈의 정원사용 설명서펫 : 정원사는 정원의 등급에 따라 최대 3개체의 펫을 지정할 수 있습니다. 펫은 정원에서 생활하거나 정원사와 함께 외출할 수 있습니다. 펫과 함께 더욱 다양한 활동을 하십시오.
현재 지정 가능한 펫 : 0/1]
“설명이 너무 간단한데. 우선 이름을 지어주고 등록해야 알 수 있는 건가.”
하양이, 이건 너무 흔한데. 냥이, 이것도 흔하고. 백설기, 그래도 고양이한테 백설기는 좀 너무한가, 검은 줄도 있는데. 장군이, 대장, 캡틴 이런 것도 별로고.
“태산. 태자 돌림에 새끼인데도 늠름한 자태가 멋지니까, 태산으로 하자. 마음에 드니? 태산아?”
뺙!
태산이 이름이 마음에 든 듯 시기적절하게 울음소리를 냈다. 다시 들어도 병아리 소리처럼 들려 웃음이 났다.
“펫 지정. 태산.”
백호? 호랑이?
태산을 펫으로 지정하자 이름 옆 괄호 안에 백호라는 종 이름이 나타났다. 고양이인 줄 알았는데 호랑이였다.
“넌 정말. 모든 게 예상을 벗어나는구나.”
품 안의 태산을 고쳐 안으며 태주가 한탄했다.
“어휴. 귀여우니 봐준다.”
앞발을 물고 챱챱거리는 태산의 모습에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음을 지은 태주가 젖병과 바구니를 챙겨 돌아갈 준비를 했다.
*
한쪽 머리가 눌린 모습으로 태주가 젖병에 데운 우유를 담고 있었다. 새벽에 정원에서 돌아온 뒤에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바닥에 늘어놓은 물건들을 치우고 가구 모서리에 수건을 접어 테이프로 붙여놓았다. 태산이 기어 다니다 부딪힐까 걱정되어서 위험한 물건들을 치우다 보니 아침이 다 되었다.
“형 잠 좀 자자. 30분도 못 잤다. 요 녀석아.”
뺙!
겨우 정리가 끝나 좀 쉬려는 찰나에 태산이 울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 것 같았다.
“형. 뭐해?”
“아! 얘 때문에, 태산이야.”
태주가 짚업 재킷 안에 담요로 둘둘 말아 품고 있던 태산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고양이? 완전 새끼잖아.”
“어, 오늘부터 같이 살 거야.”
부드러운 담요로 감싼 새끼 고양이는 어마어마하게 귀여웠다. 태우는 작고 귀여운 고양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줄곧 반려동물을 키우길 바라왔던 태우가 좋아할 줄 알았다.
“내, 내가 우유 먹여봐도 돼?”
“어. 이거 조금 식힌 뒤에 먹여. 형은 좀 씻을게.”
태산이를 맡기고 돌아서는 태주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태주도 처음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이었다. 알게 모르게 긴장을 많이 했는지 어깨가 뻐근했다. 뜨거운 물로 느긋하게 씻으며 굳은 몸을 풀어냈다.
이삿짐센터에서 사람이 나와 견적을 내는 동안에도 태우는 태산이를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우유를 먹고 잠깐 잠들었던 태산은 곧 온 집안을 신나게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태주 방은 새벽에 수건으로 가구 모서리를 가려두었지만, 거실이나 주방은 그대로여서 태우는 눈을 떼지 못하고 태산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지난밤 자신이 저런 모습으로 태산의 뒤를 따라다녔다고 생각하니 웃음만 나왔다. 처음 키워보는 반려동물에 모든 게 조심스러웠다. 함부로 안아 들지도 못하고, 기어가는 태산이 부딪힐까 봐, 가구 앞을 막아서는 태우의 모습이 재밌었다.
이사 날짜는 견적을 낸 바로 다음 날로 잡았다. 비수기여서 바로 예약할 수 있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안 계신 상태에서 옮기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는지 태우의 표정이 좋지 못했다.
“형 혼자 태산이 못 키운다. 형 없을 때는 네가 태산이 봐줘야 해. 아직 새끼라 혼자 두면 큰일 나.”
태산이를 핑계 삼자 마지못해서 수긍했다. 나중에 어머니가 오시면 집을 정리하자 얘기할 생각을 하며 버릴 물건들을 추렸다.
아침부터 골목이 분주했다. 이삿짐센터 트럭이 대문 앞에 와서 서고, 직원들이 커다란 바구니를 챙겨와 짐을 담기 시작했다. 재건축 얘기가 슬슬 도는 시점에 이사 가는 태주네가 흥미를 자극했는지 동네 사람들이 제법 모여들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오냐, 이사 하냐?”
태주의 인사에 대답하는 아저씨는 동네에서 수십 년간 세탁소를 운영하는 사람이었다. 태주는 동네 주민들의 궁금증도 풀어줄 겸 가볍게 대화를 나눴다.
“학교 근처에 방 얻었어요. 그쪽으로 옮기는 거예요.”
“어디?”
“마포요.”
“참. 네가 Y대 합격했다고 했지. 거기면 그냥 다녀도 될 거린데.”
“이참에 독립하는 거죠.”
“장하네, 장해. 학교도 좋은데 들어가고. 우리 도연이가 네 반만 되면 얼마나 좋겠냐.”
“도연이 체전 성적 좋잖아요. 대학교에서 서로 모셔 가려 할걸요.”
태우의 친구인 도연은 태주와도 꽤 친했다. 도연은 태권도 선수로 성적이 괜찮아서 좋은 대학을 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태우가 상처받고 힘들어할 때 그 사실을 알려준 것이 도연이어서 태주 역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전에 독립할 때는 여행 가방 하나에 옷만 챙겨서 나갔었다. 가구를 들이는 건 꿈도 못 꿀 정도로 작은 방이어서 태우를 데려왔을 때 꽤 고생했었다. 이번엔 다행히 집도 넓고 생활비도 충분했다.
동네 주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집에 들어오니 가져갈 짐들이 거의 다 포장되어있었다. 빠진 물건이 없나 확인한 후에 바로 옮기기 시작했다.
“진짜 이사 가는구나.”
태주는 태산이를 안고 있는 태우의 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주었다. 오랫동안 살아온 집을 떠나는 걸 불안해하는 태우가 이해되었다. 모험보다는 안정을 추구하는 성향인 태우는 환경 변화에 민감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는 잠도 못 자고 화장실도 편하게 못 다녔다.
“택시 타고 태산이랑 먼저가 있어. 형은 문 잠그고 갈게.”
“형이랑 같이 가면 안 돼?”
“먼지 먹는다. 너도 그렇고 태산인 아직 새끼라 탈 날지 몰라.”
등 떠밀어 태우를 내보낸 후에, 집안을 둘러보았다. 이십 년이 넘어서 돌아온 집을 며칠 만에 다시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후회로 남았던 일 한 가지를 바로잡을 수 있었기 때문인지 아쉽지는 않았다.
*
“태산아!”
태주와 태우는 침대를 제자리에 돌려놓고 있었다. 침대 밑에 들어간 태산이 나오지 못하고 빽빽 울기만 해서 어쩔 수 없이 침대를 들고 꺼내야 했다. 오전에는 책장이었다. 잠깐 눈을 뗀 사이, 책장과 벽 틈에 끼어서 책장을 들어내고 태산을 빼내야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태산이가 좀 클 때까지 케이지에 넣어서 키우자.”
“어떻게 그래. 아직 새낀데.”
“어휴. 정말이지.”
“큭큭. 귀여우니까 좀 봐줘, 형.”
한 뼘 크기의 새끼 호랑이 한 마리 덕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
“미쳤어요? 어떻게 쟤를 집안에 들일 수가 있어. 나한테 어떻게 이래?”
“그럼 찾아온 애를 내쫓으란 소리야?”
“더러워. 그 년이랑 낳은 애를 어떻게 내 집에 들여. 당장 쫓아내.”
그 아이가 오기 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외출하려 했는데 이미 아이가 집에 와 있었다. 전에는 저녁이 다 되었을 때쯤에 왔었는데, 바뀌었다.
“다녀왔습니다.”
부러 큰 소리로 인사하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싸우던 부모님과 한쪽에 서 있던 아이가 모두 자신을 돌아봤다.
“태주야.”
당황한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중소기업의 부장인 아버지는 회사에서 꽤 능력을 인정받는 분이셨다. 하지만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기업의 본부장인 어머니에 비해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계셨다.
아름다운 얼굴에 쉰이 넘었지만, 여전히 모델 같은 체형을 유지하는 어머니는 수입이나 능력, 사회적 지위 등 모든 면에서 아버지를 압도했다. 어머니의 모든 것이 아버지의 열등감을 자극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그리고 아버지가 자식인 자신에게도 열등감을 느꼈다는 사실은 훨씬 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오랜만이에요, 아버지. 건강하셨어요? 어머니, 여행은 잘 다녀오셨어요?”
집안의 분위기와 상관없이 평온하게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목소리와 다르게 냉정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직시하고 있었다. 태주의 눈빛을 읽었는지 태주의 어머니는 숨을 고르며 화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태주의 눈치를 보느라 시선을 가만두지 못하는 아버지와 대조적이었다.
“태우는 제가 데리고 살 거예요. 두 분이 이 생활을 끝내시든, 계속 이어가시든 상관없이요. 개인적으론 그만 정리하시길 바라지만, 그건 두 분의 일이니 참견하지 않을게요. 저는 어머니도 아버지도 행복하게 사시길 바라요.”
창백한 얼굴로 서 있는 아이의 팔을 잡고 밖으로 나서며 아버지에게 말했다.
“얘는 제가 데리고 있을게요. 어머니랑 얘기 끝나면 전화하세요. 정류장 앞 커피숍이나 패스트푸드 점에 갈 거예요.”
*
도르륵 눈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도 동그랗고 얼굴도 동그랬다. 태우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의 아이는 아버지와 붕어빵처럼 닮아있었다.
‘어휴, 나이를 먹어도 이런 상황이 어색한 건 마찬가지구나.’
“여기 케이크 맛있어. 음료는 오렌지 주스 시켰는데 괜찮지?”
“···.”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지만, 괜찮은 것 같았다.
“형은 이태주야. 19살. 이름이 뭐야?”
“···유민수요. 17살이에요.”
어머니 성을 따른 것 같았다. 요즘 시대에는 흠도 아니니 괜찮겠지.
“아버지를 찾아온 이유, 들을 수 있을까?”
“······.”
“네 잘못은 아니지만, 어머니한테 아버지도 너도 상처를 줬어. 아마 너도 알고 있었을 거야. 그런데도 일부러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
“동생이, 동생이 아파요. 조혈모세포이식을 해야 한대요. 저는 안된대요. 제가 오빤데.”
이전에는 알지 못했었다. 어머니의 히스테리에 태우를 데리고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들어갔었다. 아버지는 아이와 이미 집을 나간 상태였고, 이후로 따로 연락을 받은 적은 없었다. 어머니는 이 일을 계기로 고집을 꺾고 이혼절차를 밟았었다.
이복동생이 한 명 더 있었다는 것도, 그 아이가 병에 걸렸다는 것도 처음 들었다. 아마 어머니는 이 사실을 알고 아버지와 헤어질 결심을 하신 듯했다.
“몇 살인데?”
“···6살이요.”
“하!”
아버지는 대체 어쩌자고 일을 이렇게 만드셨는지. 다른 이복동생이 6살이라는 건 최소한 두 집 살림이 10년 넘게 이어졌다는 말이 아닌가.
“고개 들어. 네 잘못 아니니까.”
“···그래도 죄송해요.”
집에 찾아오기까지 얼마나 고민했을지 눈에 선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복형제를 찾았을 게 뻔했다. 전에는 어떻게 했을까. 다른 공여자를 찾았을까. 집안에 풍파를 일으켰던 사건이라고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유를 알고 나니 역시 마음이 편치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찾아왔는지 알겠다.”
“죄송해요. 하지만 제발 제 동생 좀 살려주세요. 제가 이렇게 빌게요.”
자리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 꿇고 빌려는 아이를 말렸다. 어차피 공여 가능하다면 해줄 생각이었다.
“그러지 마. 우선 검사는 받을 거야. 공여 가능하다고 하면 공여도 해주고. 그런데 그건 나만 할 거야. 만약 내가 불가능하다고 판정받아도 내 동생은 시키지 않을 거야. 혹시 이 얘기가 내 동생한테 들어간다면 검사도 공여도 하지 않을 거고.”
“가, 감사합니다.”
“감사는 검사 결과 나온 후에 해. 내 동생한테 연락하지 않겠다고 약속도 하고.”
“약속할게요.”
연락처를 교환한 후에 병원과 동생 이름 등을 물었다. 아이가 불쌍했지만, 이 일에 태우가 얽히는 게 싫었다. 검사 결과가 좋다면 본인 선에서 끝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 부디 좋은 결과가 있길 바랐다.
어머니와 얘기가 빨리 끝났는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카페로 찾아왔다. 아이는 구명줄을 얻은 조난자처럼 아버지를 반겼다. 아버지와 데면데면한 태우와는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태우가 이 모습을 봤다면 상처받았을 게 분명했다.
“어떻게 하시기로 했어요?”
“···정리하기로 했다.”
“태우한테는 직접 얘기하실 건가요?”
“아무래도 내가 그럴 여유가 나진 않을 것 같구나.”
몇 시간 정도 태우에게 할애할 생각도 없는 건가. 그래도 자식인데 최소한 마지막 인사라도 해야 하지 않나. 이런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여지없이 실망스러운 대답이 들려오자 이 이상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연락하지 마세요. 앞으로 무슨 일이 있든.”
“···.”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아버지 옆에 앉은 아이가 불안한 표정을 했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가족이 같이 먹을 식사를 준비하고, 휴가철에는 가족 여행지로 유명한 장소들을 찾아보는 태우를 알고 있었는지 묻고 싶었다. 아버지는 어렸을 때 미국 이모 댁에 방문한 게 유일한 가족 여행이었던 걸 알까? 그것도 아버지는 같이 가지 않았지만.
보호자 동반 체험학습을 친구 부모님을 따라가거나, 형인 자신이 대신해 줄 때마다 주눅이 들던 모습도 본 적 없을 것이다. 여러 경시대회에서 받은 상장이나 메달을 자랑도 못 하고, 서랍 안에 그대로 넣어둔 것도 모를 것이다.
지금까지 태우의 그런 모습을 외면했으니, 앞으로 행복해하는 모습도 볼 자격이 없었다. 보게 두지 않을 것이다.
“안녕히 계세요.”
아마도 이게 아버지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