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3
52. 위험한 기술 >
태산이 모습은 모두의 예상과 전혀 달랐다. 태주를 비롯해 모든 사람이 1차 성장을 한 태산이 덩치가 커지고, 좀 더 호랑이를 닮은 용맹한 모습이 되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1차 성장을 마치고 나온 태산이는 예전보다 체구가 더 작아지고, 털이 훨씬 더 길어졌다. 눈은 조금 더 커지고 촉촉하게 젖어서 빛났다.
“이럴 수가.”
“태산이?”
그 순간이었다. 태산이 앞발을 들어 까딱하고 발짓한 후,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걸 본 모든 사람이 태산이 근처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홀린 표정이 되어 태산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냐앙.”
‘헉! 이게 뭐야. 왜 이렇게 귀여워.’
태주는 이 상황이 이상한 것을 바로 알아챘다. 태산이가 귀여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 정도로 사람들을 홀릴 정도는 아니었다.
짝짝짝!
태주의 박수 소리가 사람들의 정신을 일깨웠다. 아니, 박수와 상관없이 갑자기 정신을 차린 모습이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태산이에게서 물러섰다.
“희, 태산이 상태창을 살펴줘. 대체 무슨 기술을 얻은 거야?”
“응. 으응? 태주, 애교래.”
“뭐?”
“애교! 주변의 모든 생물에게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애교를 본 생물이 부탁을 들어주게 됩니다.”
“애교? 공격 기술이 아니라?”
‘공격력은 충분한 것 같습니다.’ 라고 요원 S가 말했다. 그는 애교가 정신계 공격의 일종인지 확인이 필요하다며, 협회로 돌아가 자료를 찾아보겠다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 물론 조용한 한밤중의 정원이라 모든 사람이 그의 말을 들었다.
“해나. 가장 도움이 되는 기술을 얻을 거라고 하지 않았어요?”
“호, 호호. 내, 내가 그렇게 설명해줬지.”
“애교? 기술이 애교라니. 몸도 더 작아졌네요.”
“그, 그게 더 사랑스럽잖니.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모든 사람을 당황 시킨 태산이 갑자기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태주는 혹시 어딘가 이상이 생긴 것이 아닐까 하고, 놀라서 태산이에게 다가갔다.
부르르르.
태산은 몸을 한차례 털더니 1차 성장 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눈앞에서 태산이 모습이 익숙한 예전 모습으로 바뀌었다. 털이 약간 복슬복슬한 상태가 되고, 몸집도 다시 커졌다. 그 모습을 본 태주는 무언가 잘 못된 것이 아닌가 걱정되어 두 수인을 돌아봤다.
“휴우. 다행히 발동형 기술인가 봅니다.”
“그러게. 상시 적용되는 기술이었으면 큰일 날 뻔했어.”
“발동형이요?”
요원 S가 희에게 몇 가지 묻더니, 태주에게 설명해줬다. 태산이가 가진 애교라는 기술은 발동형으로, 태산이 원하는 시기에 제한적으로 쓸 수 있다는 얘기였다.
“제한적으로요?”
“네, 애교 기술에 걸린 상대는 백호 친구가 바라는 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이런 위험한 기술이 상시 적용된다면 그것도 문제가 될 겁니다.”
“제한은 뭔가요?”
“1일 3회 제한입니다. 지속시간은 5분이고요.”
설명을 들었지만, 이게 괜찮은 기술인 건지 아닌 건지 알 수 없었다. 위험할 때 몸을 지킬 수 있는 수단이 되어줄 수 있을까? 태주는 그 점이 걱정스러워 혹시 무슨 방법이 없는지 둘에게 물었다.
그러나 해나와 요원 S는 태산의 애교는 충분히 위협적인 기술이라 설명했다. 애교 기술 발동 중엔 세상 누구도 태산일 해치지 못할거라는 말로 그를 안심시켰다.
‘내가 보기엔 그냥 조금 더 귀여워 보이는 정도였는데, 다른 사람은 다른가?’
주인인 태주에겐 평소보다 조금 더 귀엽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정도였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겐 아니었다. 태산의 애교는 저도 모르게 태산이 앞에 무릎 꿇고 부탁을 들어주고 싶어질 정도로 강력했다. 태산이 부탁만 하면 무엇이든 사주고 싶어지고, 무슨 일이든 해주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럼, 이대로도 괜찮겠죠?”
“위험하지. 그건 위험할 정도로 사랑스러웠어.”
“맞습니다. 정말 위험한 귀여움이었습니다.”
태주는 바라던 형태는 아니지만, 어쨌든 태산이가 한층 안전해졌다는 사실에 만족하기로 했다.
*
처음 태산이 기술이 애교라는 걸 알았을 때, 대체 이 기술을 어디에 쓸까, 고민한 것이 무색하게 태산이는 기술을 아주 잘 써먹었다.
“냐아앙.”
“여기 있어. 우리 태산이, 이거 먹고 싶었어요?”
연우가 태산이에게 육포를 주고 있었다. 입꼬리가 올라가 있고, 시선이 태산이에게서 떨어지지 않는 걸 보니, 애교에 당한 것 같았다.
태주가 연우의 손에서 육포 봉지를 뺏었다. 벌써 세 개째였다. 점심도 배불리 먹은 녀석이 연우 손의 봉지가 전부 빌 때까지 육포를 얻어내려는 지 계속해서 애교를 부리고 있었다.
“요놈. 누가 이렇게 귀여우래? 응? 이렇게 귀여워서 되겠어?”
“푸흐. 형, 그렇게 야단치면 어떡해요.”
그도 어쩔 수 없었다. 간식을 먹고 싶어서 애교를 부리는 거로 크게 야단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니 이 정도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다행히 태산이 새로 얻은 기술로 사고를 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간식이 먹고 싶을 때, 하나 받던 거를 두세 개 받는 정도였다.
“욕심 없는 녀석이라 다행이야.”
육포를 물고 선반을 뛰어다니느라 정신없는 태산이를 보며 안심했다.
그날 저녁 태우는 폰으로 인터넷쇼핑을 하고 있었다. 태산이를 옆에 앉혀두고 간식을 고르고 있었다. 태산인 입이 까다로운 편이 아니라 주는 간식은 다 잘 먹었지만, 특히 좋아하는 것은 바삭한 우유 맛 비스킷과 소고기 육포였다.
“태산아 이거 살까? 이거 좋아하지?”
“냐앙.”
“아아! 사야지. 많이 사야지.”
태산에게 화면을 보여주며 물어본 순간이었다. 태산은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이 보이자 저도 모르게 애교를 사용했다.
반짝이는 눈으로 보며 ‘냐앙.’ 하고 운 뒤, 앞발로 태우의 다리를 짚고 섰다. 그 모습을 본 태우의 눈이 부드럽게 풀리고, 입꼬리가 올라갔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놀렸다. 순식간에 간식을 수십 개 담고 결제했다. 그리곤 행복한 표정으로 태산이를 품에 안고 소파 위를 굴렀다.
“택배요.”
“네, 감사합니다.”
태주는 세 개나 되는 박스를 안으로 들였다. 최근 이렇게 많은 택배를 받은 일은 없었다. 요리 동영상을 찍는 두 동생이 마트에 자주 들리기 때문이었다. 필요한 물건 대부분을 마트에서 직접 사는 편이었다.
택배 상자를 본 태산이 다리에 붙어서 박스를 달라고 ‘냥냥.’ 울었다. 가끔 받는 택배 상자는 대부분 태산이 장난감이 됐다. 박스에서 노는 걸 좋아해서 항상 재활용으로 내놓기 전까지 태산이가 가지고 놀게 건네줬다.
‘성장하더니 하는 짓이 더 귀여워졌어. 정말 발동형 기술이 맞나? 상시 발동 중인 거 아니야?’
태산이 성화에 상자를 건네주려 열었을 때였다. 내용물을 본 태주가 깜짝 놀랐다. 평소 달에 한 번씩 꾸준히 태산이 간식을 주문하지만 이렇게 많은 양을 주문한 것은 처음이었다. 태주는 혹시 다른 상자도 간식인가 싶어 전부 열어 내용물을 확인했다.
예상대로 나머지 박스 두 개 모두 고양이 간식이 가득 들어있었다.
“얼마나 산 거야? 이 정도면 몇십만 원은 가볍게 넘을 거 같은데.”
태우가 쓰는 카드는 어머니 카드였다. 어머니가 카드 명세서를 보고 뒷목을 잡지 않을까 걱정되었다.
“우유 맛, 우유 맛, 우유 맛?”
박스 세 개 분량의 우유 맛 비스킷이었다. 밥 대신 비스킷을 먹어도 두 달은 족히 먹을 수 있을 만한 양이었다.
“냐앙?”
태산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상자 안에서 놀고 있었다. 태주는 눈앞에 산처럼 쌓인 간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결국, 태산이 간식은 한 박스만 남기고 모두 환불받았다. 태주는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사정을 알아보았다. 태우에게 주문할 당시의 상황을 물어본 후 내린 결론은 태산이가 애교로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었다.
태우가 보여준 사진 속 간식을 보고 먹고 싶은 마음에 저도 모르게 애교를 쓴 것 같았다.
“위험한 기술이 맞았구나. 그나마 태산이 욕심이 간식하고 산책뿐이라 다행이야.”
*
김윤선의 독백을 끝으로 선율의 모든 촬영이 끝났다. 태주는 마지막 촬영에 맞춰 사람들하고 인사를 하기 위해 현장에 갔다.
이제영 감독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지만, 표정은 무척 밝았다. 촬영이 예정보다 일찍 끝난 데다, 결과물은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좋았기 때문이다.
태주는 몇 달간 같이 촬영했던 스태프들과 인사하고 사진을 찍었다. 추가 촬영 예정이 없어서, 재하의 모습일 때와 다른 상큼하고 깔끔한 모습을 한 태주가 옆에 서자 사람들이 몸을 슬쩍 뒤로 물렸다.
“아이 진짜, 김 감독님 왜 자꾸 뒤로 가요.”
“얼굴 크게 나오잖아. 네가 앞으로 가 인마.”
사람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작은 실랑이를 했다. 태주와 조금이라도 멀어지기 위해 슬쩍 옆 사람을 밀어냈다.
두 주연 사이에 선 이제영 감독이 그런 스태프들에게 이 두 사람 사이에 서는 자신을 보고도 실랑이냐며 한마디 했다.
적지 않은 나이지만 여전히 날카로운 눈빛과 턱선, 거친 남자의 모습이 매력적인 김윤선과 두말할 것 없이 빛나는 외모의 태주 사이에서 색바랜 야상을 입은 그의 모습은 상당히 눈길을 끌었다.
단체 사진을 찍기 위해 모인 모든 사람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영 감독보다 불쌍해 보이는 인물은 태주의 바로 옆에 선 남자 스태프 밖에 없었다. 한바탕 웃은 덕분에 다들 편한 표정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후시 녹음을 비롯해 남은 일은 여전히 많았지만, 중요한 촬영을 모두 마치자, 다들 한 시름 덜었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영화 개봉까지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잠시 쉬어 가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짧은 휴가 후엔 다시 마무리를 위한 일정이 빡빡하게 짜여 있었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이제영 감독의 말이 끝나자 다 같이 박수를 치면서 촬영의 종료를 알렸다. 몇 달간 고생한 이들의 얼굴에 뿌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후반 작업을 하는 몇몇을 빼면 모두 한참 후에나 다시 볼 수 있었다. 이제영 감독은 어쩌면 이 중에 다시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여러 차례 갖는 시사회 중에 한번은 만날 수 있겠지만, 개중엔 시간을 맞추기 힘든 사람도 있을 터였다.
조감독을 비롯해 스태프 대부분이 자신의 강행군에 군말 없이 맞춰줬다. 배우들 역시 최선을 다해서 연기해줬다. 그는 세트를 정리하는 스태프 한명 한명을 눈에 담았다. 그들과 같이 촬영장에서 보낸 시간이 덩달아 떠올랐다. 고맙고 아쉬웠다.
이제영 감독은 이 순간을 잊지 않기 위해, 세트에서 마지막 사람이 나갈 때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회식 장소로 가기 위해 건물 밖으로 나왔을 때였다. 사람들이 모여있는 게 보였다. 먼저 회식 장소로 출발했을 거로 생각한 태주와 김윤선의 일행이었다. 그들은 스튜디오 밖에서 이제영 감독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왜 이리 늦게 나와, 어서 와.”
“어서 오세요, 감독님.”
자신을 기다려주는 사람을 본 이제영 감독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는 코를 훌쩍이며 사람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김윤선이 그런 그의 어깨에 팔을 걸치고 회식장소로 이끌었다.
*
회식자리는 이미 시끌벅적한 상태였다. 태주 일행은 안쪽에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찬바람에 다들 코끝이 빨겠다.
“아유. 춥다.”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앉기 무섭게 다들 잔을 들었다. 태주도 따라서 잔을 들었지만, 왠지 낯설었다. 지난 버스킹 촬영 끝나고 회식에서 술을 마신 게 가장 최근에 마신 기억이었다. 한여름에 마시고 한 계절을 건너뛰어 한겨울이 되고 나서야 다시 술잔을 들었다.
회귀 전엔 시간이 나면 가끔 술을 마셨었다. 하지만 지금은 몇 달에 한 번, 그것도 영화 촬영 종료같이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마신다. 그런데도 전혀 술 생각이 나지 않았다.
‘희랑 매일 시간을 보내다 보니 술 마실 생각은 해본 적도 없네.’
“술잔 들고 뭐해?”
“아뇨, 그냥 오랜만이구나, 해서요.”
“하하. 촬영 중엔 한 번도 안 마셨지?”
“네, 마실 생각도 못 했죠.”
테이블에 둘러앉은 사람들 모두 그랬다. 점점 상태가 나빠지는 감독을 두고 술 한잔 마시자는 얘기를 꺼내는 사람은 없었다. 다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작업에만 몰두했었다.
두 배우 역시 다른 곳에 한눈파는 일 없이 촬영에 모든 시간을 썼다. 가끔 태주가 화보나 인터뷰 일정을 소화한 걸 빼곤 거의 모든 상황에서 촬영을 일 순위로 두었었다.
“이렇게 올 한해도 다 갔네.”
“그러게요. 선배님은 영화제 참석하세요?”
“아니, 봄에 개봉한 영화라 참석할 필요 없다.”
이번 시상식에서 공정성 문제가 다시 불거지는데, 굳이 그런 곳에 참석해서 기분 상할 일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차기작으로 드라마 들어간다 했지?”
“네. 16부작 월화, 미니요.”
“잘 생각했다. 초기엔 다양하게 해보는 게 좋아. 영하, 드라마 가리지 말고. 넌 재주도 많으니, 더 여러 가지 경험해보는 게 좋아.”
“네. 그럴게요. 선배님은요? 대본 많이 들어오죠?”
“그렇지. 딱히 끌리는 게 없어서 문제지.”
안주로 올라온 탕을 떠먹으면서 느긋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제영 감독은 인사 후 먼저 들어가고, 조감독이 스태프들과 어울리며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었다. 조감독은 김윤선이 있는 테이블에는 다가오지 않았다. 촬영을 위해 감량하느라 고생한 그의 식사를 방해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게 있긴 한데, 걸리는 점이 있어.”
“어떤 점이 걸리시는 데요?”
“연출을 맡을 거란 얘기가 도는 감독이 전에 안전사고를 냈던 사람이란 말이지.”
“음. 그 점은 확실히 신경 쓰이시겠어요.”
김윤선은 배우를 동료로 보지 않고, 도구로만 보는 감독에 대해 얘기해주며, 태주에게 그런 사람과의 작업은 하지 말라고 했다. 작품이 잘 되어도, 주변 사람을 망치는 악질이라면서 작품을 고를 때 미리미리 알아보고 선택하라는 충고를 해줬다.
태주 역시 회귀 전에 그런 감독을 몇 명 본 적 있었다. 김윤선이 이름을 말하지는 않았지만, 아마 그가 알고 있는 사람일 수도 있었다.
앞으로는 버스킹이나 선율처럼 좋은 사람들 하고만 작품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김윤선이 말한 감독 같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다가오는 한 해는 조금 더 세심하게 살피고,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기로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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