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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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지나면 돌아온 지 꼬박 1년이 된다. 돌이켜보면, 회귀 후 보낸 1년은 주변 상황에 휩쓸린 경향이 컸다. 초반엔 어쩐지 현실감이 크지 않아 가볍게 넘긴 부분이 많았고, 나중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손쉽게 넘기기도 했다.
“긴장감이 없다고 해야 할까. 현실에서 심각한 일이 벌어져도, 정원에만 가면 몽실몽실한 기분이 되어버리니.”
실제로도 그랬다. 동화같이 따뜻하고 평화로운 정원에 있으면 현실의 고민은 잊게 된다. 게다가 순수하고 솔직한 희와 항상 같이 있다 보니 생각하는 것도 말하는 것도 비슷하게 변했다.
“신기한 일도 새로운 일도 가득하니까. 평소에도 꿈에 반쯤 걸쳐서 사는 느낌이긴 해.”
현실감을 갖기엔 정원이 좀 많이 신비로웠다.
“연기 16년쯤 하면 상은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느긋하기도 하고. 생각해보니 이게 문제인 것 같네.”
치트키라고 해야 할까. 어느 작품이 어느 해에 상을 받는지, 시청률 기록을 새로 쓰는지 대부분 알고 있었다. 자신이 출연했던 작품이 아니라 정확한 수치는 모르지만, 그해 붐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 있던 작품은 빼놓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그해에 상을 받을 작품에 지원할 수도 있고, 출연했던 작품에 다시 출연해서 여러 이득을 볼 수도 있었다.
다만 그런 일들은 여전히 내키지 않았다. 남의 기회를 가로채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했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하는 게 지루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와, 나 진짜 재수 없다. 재미없을 것 같다니. 남은 필사적인데.”
태주는 실수로라도 이런 생각을 남에게 밝히지 말자고 거듭 다짐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오만하고 눈살이 찌푸려지는 모습이었다. 만약 남이 태주의 생각을 알게 되면, 고깝게 여기는 정도로 넘어가진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자신은 누구보다 빨리 갈 수 있는 지름길을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항상 여유로울 수 있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모든 상황이 형편 좋게 본인에게 맞춰 줄 리 없었다. 또, 데뷔 시기가 바뀐 것처럼 미래가 바뀌는 일이 생길 것이다.
자신이 가진 정보는 유통기한이 있는 정보였다. 이런 사실들을 알고 있었는데도 지금까지 아무 고민 없이 지내고 있었다.
“음. 앞으론 신경 좀 써야겠다.”
태주는 금세 고민을 그만두어야 했다. 아니 그만뒀다. 발치께에 드러누워 있던 태산이 놀아주지 않는다고 바짓단을 잘근잘근 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버릇이 되기 전에 녀석을 주의시켜야 했다.
“형이 심각하게 반성 중인데, 태산이가 도움을 안 주네.”
사실 본인이 저런 오만하고 한심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게 창피해, 괜한 핑계를 대는 것뿐이었다.
*
정원에 향신료 나무가 생기고, 해나가 요리를 맡아주자, 식생활이 매우 다채로워졌다. 태주는 매번 맛있는 요리를 해주는 해나가 고마웠다. 아무 대가도 받지 않고 요리를 해주는 해나에게 정식으로 정원의 일꾼이 되어달라 부탁했다. 보수도 문제였지만, 혹시 무슨 문제가 생겨 손님자격을 잃고 추락하게 될까, 그게 걱정이었다.
태주의 부탁을 들은 그녀는 잠시 고민하더니 일꾼이 되는 걸 수락했다. 그는 그녀에게 앞으로도 요리를 맡아 달라 부탁했다. 정원 식구 모두 해나의 요리를 좋아하는 데다, 아주 가끔 요리에서 특이한 효과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태주!”
“어? 희 무슨 일이야?”
“손님이야!”
희가 급하게 오두막 안으로 날아와 태주를 찾았다. 오두막 안에서 해나와 얘기를 나누던 태주는 희의 부름에 손님을 맞으러 나왔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케이 푸스라고 합니다. 흔히 차를 좋아하는 신사라고 불리는 일족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이태주입니다. 이쪽은 관리자 희라고 해요.”
케이는 희를 이미 알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요정 숲에서 골든 유니콘을 타고 다니는 희를 본 적 있다는 얘기를 했다. 매일 제피르와 요정 숲에 다니더니 여러 사람에게 목격된 것 같았다.
“저희 일족이 도둑맞은 달의 문 아이템을 찾는 데 도움을 주셨다고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뭘요. 정원에 침입한 두더지 좀도둑을 잡다가, 겸사겸사 찾게 된 걸요.”
“하하. 사실이 그렇더라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태주가 케이와 얘기하는 사이에 해나가 요리 준비를 마쳤는지, 오두막 밖으로 나왔다.
“오! 레이디 해나. 이곳에 계셨군요.”
“미스터 푸스? 오랜만이에요. 혹시 그 아이템이 푸스 일족 거였나요?”
“예, 부끄럽게도 푸스 일족에서 도둑맞은 물건이었습니다.”
케이는 정말로 부끄러운지 손수건을 꺼내 이마를 닦는 척 얼굴을 가렸다. 사실 털이 잔뜩 난 이마에는 땀 같은 건 한 방울도 보이지 않았다.
“차를 좋아하신다니, 정말 잘 됐어요. 이번에 재배한 허브의 품질이 아주 좋아요. 차 한잔 드릴까요?”
“좋다냥! 큼큼. 좋습니다.”
“호호호. 미스터 푸스 그냥 편하게 얘기해요.”
케이는 어색하게 웃더니, 오두막 앞의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다 해나에게 케이의 상대를 부탁하고 차를 준비하러 갔다.
“레이디 해나 이곳에서 머무시는 겁니까?”
“네, 이 정원은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태주가 차를 가지러 들어가자, 희는 해나의 어깨에 앉아 케이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 해나의 칭찬을 듣고 부끄러워져, 포르르 날아 해나가 보지 못하게 숨어버렸다.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케이가 ‘냥냥냥.’하고 웃어버렸다.
“이 차는 향이 아주 좋군요.”
“마음에 드시면 자주 오세요.”
해나가 만들어 준 간식과 향이 좋은 차를 마시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냈다. 케이는 차를 마시는 한편, 자신이 가본 다른 정원에 관해 얘기해 줬다. 그의 얘기에 나오는 정원은 모두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물의 정원, 바위 정원, 지하 정원. 태주가 정원 한 구역의 테마도 못 골라 고민한 것과 다르게 다른 정원사들은 훌륭하게 정원을 꾸민 것 같았다.
우편배달원 팰리컨은 차를 좋아하는 신사는 골치 아픈 이들이라고 얘기했는데, 태주가 보기엔 그냥 재밌고 멋진 고양이 신사였다. 케이가 가끔 ‘냥.’이라는 어미를 구사하고 눈치를 보는 모습도 귀여워서 좋았다.
“감사인사를 전하려다 차까지 대접을 받았군요. 혹시 바라시는 것이 있습니까?”
“아니요, 괜찮아요. 침입한 두더지를 잡다가 겸사겸사 벌어진 일이니까요.”
“그러지 말고, 필요한 게 있으면 부탁해. 푸스 일족은 대단한 부자야. 마법 아이템 장인이 모여서 일족을 이루고 있어서 귀한 물건도 제법 많아.”
해나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옆에서 충고했다. 태주는 잠시 고민하다, 케이에게 치료 약을 얻을 수 있는지 물었다.
“치료 약은 쉽지 않군요.”
“음, 그건 미스터 푸스의 말이 맞아. 사실 수인이나 다른 생물들은 자체 회복력이 강하거든. 질병에 대한 면역력도 높고.”
“그렇습니다. 꿈의 세계에 속한 존재들은 현실 세계에서 잊히거나 사라진 이들입니다. 그 때문일까, 이곳은 질병이나 재난의 영향이 매우 적습니다.”
그 덕에 질병 치료에 관한 연구는 거의 하지 않는다며 케이가 말을 끝냈다. 옆에서 해나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니 그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태주도 정원에 올 때마다 한 번씩 상점에 올라오는 물품을 확인했다. 특히 소모품 탭은 빼놓은 적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현실 시간으로 일 년이 다 되도록 한 번도 질병 치료제를 본 적이 없었다.
“후우. 사실 지인 중에 병에 걸린 사람이 있어요. 그 사람에게 치료 약을 주고 싶었어요.”
“정원사님 그럼 이렇게 하시는 게 어떻습니까?”
“어떻게요?”
“임무를 수행해서 소원 카드를 모으는 겁니다.”
케이가 임무에 관해 설명하려 했지만, 해나가 말렸다. 정원사가 정원을 오래 비워두고 임무를 수행하러 다녀도 괜찮겠냐며 그의 의견에 반박했다.
해나의 설명에 따르면 가장 쉬운 임무도 최소 열흘은 필요하다는 얘기였다.
정원을 열흘이나 비워둘 수도 없지만, 정원에 체류 가능한 시간이 48시간인 태주에겐 불가능한 얘기였다.
“그래서 정원사분들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셨군요. 체류시간에 제한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그 소원 카드로 질병도 치료할 수 있어요?”
“치료만이라면 가능할 겁니다.”
하지만 꿈의 정원의 정원사가 임무를 수행할 방법이 없으니, 소원 카드를 얻을 방법이 없었다. 정원에 처음부터 임무 게시판이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에효. 차라리 상자에서 치료 약이 나오는 걸 기대하는 게 빠르겠네요.”
“상자!”
“깜짝이야. 왜 그러세요?”
케이가 다시 흥분했는지, ‘냥냥냥.’하고 울다 깜짝 놀랐다. 그는 부끄러운지 헛기침을 한 후에 이유를 알려줬다.
푸스 일족은 마법 아이템을 제작하는 일족이었다. 그중에 꽤 재밌는 물건을 만드는 일족이 있는데, 그가 행운을 높여 주는 물건을 만든 적이 있어, 그도 하나 선물 받았다는 얘기였다.
“아! 저도 하나 가지고 있어요. 금 숟가락이에요.”
“오호. 그런 물건은 귀하지요. 비록 효과가 아주 작지만, 확실히 좋은 물건입니다. 하지만 제가 말한 물건은 다르다냥. 헙. 다릅니다.”
“호호호.”
케이가 잠시 실례한다고 말한 후, 허공에 지팡이를 휘둘렀다. 그러자 지팡이 끝을 따라 빛의 선이 그어지더니, 네모난 문이 생겼다. 그가 그 속에 손을 넣어 작은 상자 하나를 꺼냈다.
“받으세요. 행운을 높여 주는 물건입니다.”
“고마워요. 지금 열어봐도 될까요?”
“물론이지요.”
태주는 좀 전의 신기한 문과 그보다 신기한 케이의 마법을 보고 놀랐다. 마법 물품 장인이라더니, 실제로 케이도 마법을 할 줄 알았다. 그런 케이와 같은 일족이 만든 아이템이라니. 태주는 아이템에 대한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어?”
상자 안의 물건을 보고 태주의 표정이 변했다. 그는 상자 안의 물건과 케이를 번갈아 보며, 이게 정말 선물인가 의심했다.
“마음에 드십니까?”
“음, 음. 죄송해요. 이건 제가 먹지 못할 것 같아요.”
“예?”
케이는 태주의 사과를 듣자마자 상자 안을 살폈다. 그 안엔 짜 먹는 고양이 간식이 한가득 들어있었다.
“냐냥? 아니, 이건 실수입니다. 다른 문을 열었습니다.”
“호호호. 정원사 씨가 이해해. 푸스 일족은 원래 이런 실수가 잦아. 다들 장난으로 오해하지만.”
다시 한 번 지팡이를 휘둘러 작은 문을 연 케이가 다른 상자를 건네줬다. 비록 두근거림은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기대를 감추지 못했다. 태주가 바로 상자를 열어 안을 보았다. 한 뼘 크기의 말린 생선이 들어있었다.
“혹시 이것도 잘 못 주신 건가요?”
“아닙니다. 그게 행운을 높여 주는 물건입니다. 드시면 10분간 행운이 비약적으로 높아집니다.”
“아! 감사합니다.”
“풉. 푸하하. 정원사 씨 그게 그렇게 보여도 정말 맛 좋은 생선이야. 태산이 눈에 띄지 않게 간수 잘해야 해.”
해나의 말에 태산이 생선을 먹고 상자를 여는 모습을 상상해 본 태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태산이라면 눈을 빛내며 앞발로 상자를 탁 쳐서 열 것이다. 그러다 좋은 물건을 얻으면 의기양양해서 ‘냥냥냥냥.’ 한참 동안 떠들 것이다.
“정말 잘 챙겨야겠어요. 요새는 해나가 오두막에 자주 있어서 덜 한데. 한동안 장난이 심해서 고생했었거든요.”
“태산은, 저기 있는 백호를 말하는 겁니까?”
케이가 가리킨 방향은 테이블 위로 드리운 나뭇가지 위였다.
태산인 언제 올라갔는지 나무 위에서 테이블로 뛰어내릴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티 포트에 간식 접시, 깨지기 쉬운 물건이 가득한 테이블 위로 뛰어내리려는 모습에 기겁한 태주가 벌떡 일어나서 태산이를 잡아챘다.
“이 말썽쟁이. 또 뛰려고 했지?”
“호호호.”
태주 손에 잡힌 태산이를 보던 케이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털이 가득한 고양이 얼굴에서 표정을 읽을 수 있는 게 신기했다.
“위장 중이군요.”
“네, 태산이는 현실에도 같이 다니거든요.”
“아. 제 말은, 정원에서도 위장 중이라는 얘기였습니다. 보통 펫은 정원사님과 외출할 때만 위장을 하지 않습니까?”
“그래요? 우리 태산이는 항상 이 모습인데요. 기술 사용할 때만 빼고요.”
케이의 말을 듣고 나니 이상했다. 현실에선 백호라는 종을 감추기 위해서 위장을 한다지만, 정원은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위장 중이었다. 만약 태산이에게 위장해야만 하는 무슨 사정이 있었다면, 태주가 몰랐을 리 없었다. 알에서 나온 순간부터 돌봐왔으니까.
“1차 성장 전일 때는 작은 게 당연하다 여겨서 생각 못 했는데, 그러고 보니 얘는 왜 정원에서도 위장 중인 걸까요?”
일행 모두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뜬 것 같았다.
케이는 그 후 차를 두 잔이나 더 마시고 돌아갔다. 돌아갈 때도 티타임이 끝나는 게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괜히 차를 좋아하는 신사 일족이라고 불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해나 미스터 푸스 일족은 모두 남성이에요? 신사 일족이라고 부르던데.”
“푸스 일족은 수컷이고, 켓시 일족은 암컷이야.”
차를 좋아하는 신사 일족이라는 말을 듣고, 영화나 애니에서 본 것처럼 고양이 신사가 아닐까 상상했었다. 빈약한 상상력이라고 놀려도 할 수 없지만, 어쩐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케이는 정말로 영국 신사처럼 슈트 차림을 하고 있었다. 모자에 지팡이, 장갑까지 착용한 채 정원에 찾아왔다. 그는 태주가 상상했던 모습 그대로여서 내심 더 반가웠다.
“현실에서 잊히거나 사라진 존재라는 건 뭐예요?”
“음. 꿈의 세계에 사는 수인이나 요정은 인간계에서 떠나오거나, 이미 잊힌 존재들이야. 자연스러운 시대의 흐름일 뿐이니까, 그런 표정 지을 것 없어.”
해나의 설명을 듣던 태주의 표정이 좋지 않았나 보다. 그녀는 그런 그를 달래면서 간단하게 설명해주었다.
“인간과 공존하던 세계에서 요정이나 이종족이 점점 환상으로 치부되다, 끝내 잊히는 경우가 생기곤 해. 그런 이들이 꿈의 세계로 오게 되지.”
“꿈의 정원은요?”
“현실과의 연결 고리 중 하나야. 정원 말고도 몇 가지 있어. 정원사 씨가 소속된 정원사 협회, 길잡이 협회, 용병 협회 내가 아는 건 이 정도야.”
“그렇게 많아요?”
“아마 더 있을 거야. 물론 각자의 영역이 나뉘어 있어서, 정원사 씨가 만날 수 있는 건 정원사 협회와 관계있는 이들뿐일 테지만.”
태주는 그 외에도 궁금했던 것들을 물었다. 해나는 그녀가 아는 것들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정원사 선정에 대해서도 물었지만, 해나도 그 부분은 잘 모른다고 했다. 그저 자격이 되는 이들 중, 진심으로 정원을 아껴줄 사람이 선정된다는 얘기가 정설로 여겨진다고 알려줬다.
이날의 티타임은 신비한 꿈의 정원의 비밀 한 자락을 들춰본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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