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57
56. 눈 내리는 정원 >
정원은 여전히 평화로웠다. 태주는 그런 정원의 한 곳에 앉아 기상변환권을 팔랑이고 있었다. 기상변환권, 정원에 30일간 눈이 내리도록 만드는 티켓이었다.
눈사람 만들기, 눈싸움, 눈썰매 등 겨울에 할 수 있는 놀이가 많았지만, 과일나무와 꽃을 보니 쓰기가 망설여졌다. 그가 티켓 사용을 고민하는 사이 해나와 희가 다가와서 그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눈?”
“오호. 이건 꽤 좋은 거네. 왜 안 쓰고?”
“과일나무가 걱정이라서요.”
“그렇긴 하네. 월동준비를 잘한 후 써야겠는걸. 대신 겨울에 나는 꽃이나 작물을 키울 수 있으니 그것도 나쁘진 않을 거야.”
“그것도 괜찮겠네요.”
‘한여름에 써볼까? 정원에 피서 오는 기분으로?’
기상변환권은 나중에 준비를 마치면 쓰기로 했다. 추운 날씨에 입을 옷과 먹을 것들을 충분히 준비하고, 겨울 작물도 공부한 후에 써보기로 했다. 그는 기상변환권을 거실 서랍장에 넣어두고 평소처럼 정원 일을 하러 갔다.
똑똑.
“정원사 씨. 일어났어? 정원사 씨, 당장 일어나야 할 것 같은데.”
“으으. 잠시만요.”
오두막 침실에서 태주가 힘겹게 일어났다. 밤새 웅크리고 잤는지 온몸이 꽁꽁 언 것처럼 뻣뻣했다. 이불을 걷자 한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얇은 잠옷 속으로 찬 바람이 숭숭 들어왔다.
“추, 춥다.”
태주가 침대 위 이불을 둘러쓰고, 방문을 열었다.
“무슨 일이에요?”
“그건 내가 묻고 싶은데.”
“네?”
“창밖 좀 볼래?”
태주는 오두막 거실 창을 통해서 정원을 확인했다. 녹색, 붉은색, 분홍색, 노란색 정원은 온갖 화려한 색상의 나무가 가득한 곳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흰색 단 한 가지만 있었다. 정원은 밤새 내린 눈에 온통 하얗게 물들어 있었다.
“눈?”
“맞아. 밤새 눈이 내렸어. 혹시 어제 보여준 기상변환권을 쓴 거야?”
“아니요! 그건 여기 서랍장에? 헉!”
서랍장 아래 찢어진 종이가 나뒹굴고 있었다. 이 오두막에 몰래 들어와서 이런 장난을 칠 녀석은 태산이 뿐이었다. 아마 어제 태주가 잠든 사이에 몰래 들어와서 이걸 찢은 것 같았다.
“태산이! 이놈 자식!”
“호호호. 잘 챙겨뒀어야지.”
잘 챙겨뒀었다. 서랍장 안엔 종이뿐이라 태산이가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몇 번 열었다가 흥미를 잃었는지 최근엔 연 적도 없었다.
“이거 취소는 못 할까요? 희에게 물어볼까?”
“내가 이미 물어봤어. 안 된다네. 30일간 이대로 지내야 해.”
“크읔. 현실도 한겨울인데, 정원까지.”
태주는 기상변환권은 한여름에 쓸 생각이었다. 월동 장비를 갖추고 더운 여름에 눈이 내리도록 만든 후, 혼자서 겨울을 즐길 생각이었다.
“우선 옷을 좀 챙겨 입지 그래?”
“후우. 그럼 난로에 불 좀 지펴주세요. 전 옷 좀 사 올게요.”
이불을 단단히 두르고 상점에 옷을 사러 갔다. 두꺼운 생활복부터 외투, 장갑에 부츠까지 모양은 신경 쓰지 않고 두껍고 따뜻해 보이는 것으로 골랐다.
“해나! 해나는 필요한 것 없어요?”
“괜찮아. 수인한테 이 정도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야.”
혹시 해나도 필요한 게 있을까 싶어서 물었지만, 괜찮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수인이 튼튼한 것 같다. 상점에서 산 물건을 오두막 안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물건을 사는 사이에 머리와 어깨에 눈이 쌓였다. 눈이 무서울 정도로 많이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양이 심상치 않아요. 이 티켓 효과가 원래 이런 걸까요?”
“확실히 너무 많이 내린다. 한나절만 더 내리면 오두막이 묻히겠어.”
태주가 겨울옷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해나가 따뜻한 수프를 컵에 담아 줬다. 그는 벽난로 앞 의자에 앉아 수프를 마시면서 걱정을 늘어놓았다.
“이거 마시고 밭에 가볼 건데, 큰일이네요.”
“기후에 영향을 안 받는 나무도 있으니까, 그건 괜찮을 텐데.”
“이렇게 많이 내릴 줄은 몰랐어요.”
수프를 마시는 잠깐 사이에도 눈이 쌓이고 있었다. 나무도 문제지만, 정원의 동물 식구가 걱정이었다. 태주는 적당히 식은 수프를 한 번에 들이켜고 확인하러 나섰다.
‘하아. 씻지도 못하고 아침부터 이게 무슨 일인지.’
“희. 제피르. 단단. 태산아. 다들 어디 있어?”
무릎까지 쌓인 눈을 헤치고 큰 나무 가까이에 가서, 희와 다른 녀석들을 불렀다. 이렇게 눈이 내리는데 희의 집은 괜찮을지 걱정이 된 태주가 공중 계단을 끌고 왔다.
“희?”
희의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눈에 파묻혀 있긴 했지만, 망가지거나 벽이 젖은 곳은 없었다. 태주는 급한 대로 장갑 낀 손으로 희의 집 위에 쌓인 눈을 털어 주었다.
“얘네들이 다 어딜 간 거야?”
불러도 오지 않는 태산이들은 천천히 찾고 정원을 둘러보기로 했다.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물건을 사야 했다. 미끄러운 길을 조심스럽게 걸어 온실까지 갔다. 텃밭을 확인하고, 밖에 내놓은 화분 중 온실에 넣을 수 있는 것은 넣을 생각이었다.
“이히히. 재밌다.”
“냥냐앙.”
태주가 찾아다닌 녀석들이 온실 앞에 모두 모여있었다. 희는 눈을 굴리며 놀고 있고, 태산이는 그냥 뛰어놀고 있었다. 단단과 제피르는 보이지 않았지만, 온실 안에 있는 것 같았다. 걱정과 다르게 다들 잘 놀고 있었다.
“희?”
“태주. 눈이야. 밤에 눈이 왔어.”
“응. 희, 잠깐만. 잡았다.”
살금살금 도망치는 태산이 몸통을 붙잡았다. 그는 태산이를 얼굴 높이로 들어 올려서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한껏 목소리를 깔고 야단을 치기 시작했다.
“누가 물건을 망가트리래? 응?”
“냐앙.”
“에휴. 이미 티켓 찢은 건 까맣게 잊었구나.”
왜 혼내는지 영문을 모르겠단 표정을 짓는 태산이였다. 태주 역시 이미 야단치기엔 늦었다는 걸 알지만, 답답해서 한소리 하는 것뿐이었다.
“너희 괜찮아? 안 추워?”
“희는 괜찮아. 태산이랑 제피르도.”
“단단은?”
“단단은 춥대.”
따뜻한 곳에 사는 자이언트 수달인 단단에게 이 추위는 좋지 않았다. 단단은 눈이 내리자 추위를 피해 온실로 온 것 같았다. 태주는 단단을 위한 아이템을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희. 이 눈 그치게 할 순 없을까?”
“왜?”
“너무 많이 내리는데. 나무들이 다 얼겠어.”
“눈은 무리야, 태주. 상점에 가자.”
상점에서 제일 먼저 펫 용품을 둘러봤다. 펫의 겨울용품이 종류별로 올라와 있었다. 그는 예전에 태산이에게 사줬던 밴드와 비슷한 것을 찾아봤지만, 같은 스타일의 물건은 찾지 못했다.
대신 보온 기능이 있는 펫 전용 반다나를 샀다. 레이스로 된 스카프와 털목도리도 하나씩 샀다. 해나와 태주 자신이 사용할 물건이었다.
“아! 바보. 보온 기능이 있는 물건을 현실로 가져가도 됐잖아.”
간단한 액세서리나 시계라면 자신이 써도 되고, 선물로도 나쁘지 않았을 텐데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태주는 보온 기능이 있는 다른 물품을 나중에 더 찾아보기로 했다.
“어? 이 목도리 생물 전체에게 쓸 수 있는 거잖아. 혹시 나무에도 쓸 수 있나?”
“나무?”
“응. 만약 효과가 있으면, 지금 정원에 있는 나무에 목도리를 매주면 될 것 같은데.”
“목도리? 나무? 태주, 해보자.”
상점에서 색색별로 털목도리를 샀다. 우선 오두막 근처에 심어둔 빵나무와 황금 종 나무에 털목도리를 매줬다. 만약 효과가 있어서, 나무에 쌓인 눈이 녹는다면 정원의 모든 나무에 목도리를 매주면 될 것 같았다.
“정원사 씨 뭐하는 거야?”
“목도리 기능을 시험해보는 중이에요.”
“보온 마법 기능?”
“네. 만약 효과가 있으면 정원 나무에도 매주게요.”
해나는 정원사의 귀여운 발상에 크게 웃고 말았다. 눈 내리는 게 싫다면, 기상변환권의 효과를 없앨 무효화스크롤을 사용하면 될 텐데, 목도리라니. 무효화 스크롤이 비싸지만, 마법 목도리 수백 개 가격 보다는 쌀 게 분명했다.
하지만 해나는 무효화 스크롤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녹색 털목도리를 맨 황금 종 나무를 둘러싸고 효과를 기다리는 모습이 즐거워 보였기 때문이다.
“들어와서 아침 식사를 하는 게 어때? 효과가 있으면 그사이에 녹지 않겠어?”
“해나, 아침은 뭐야?”
“호호호. 우리 먹보 아가씨가 좋아하는 달콤한 호박 수프와 미트 파이야.”
“호박 수프! 좋아.”
오두막 안은 벽난로의 열기로 따뜻했다. 눈 내리는 날에 벽난로 앞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니 저절로 입가가 풀렸다.
“해나 트리 하우스에서 춥지 않겠어요?”
“괜찮은데.”
“사실 정원이 레벨3이 되면서 오두막을 확장할 수 있었거든요. 별로 필요할 것 같지 않아서 그냥 두었는데, 해나가 오두막에서 지낸다고 하면 확장하려고요.”
“호호호. 괜찮아. 아까도 말했지만, 이 정도는 수인에겐 그냥 조금 쌀쌀한 정도야.”
*
지난 몇 달간 성실하게 DP를 모아둔 보람이 있었다. 수백 개의 목도리를 살 수 있었으니까. 태주는 산처럼 쌓인 목도리 중 현실로 가져갈 것들을 한쪽에 챙겨 뒀다. 두 동생, 견우와 미나. 그리고 다원 보육원에 가져갈 분량을 모두 챙기니, 그것도 한 짐이었다.
“이게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야.”
“응, 다행이야.”
“호호호. 향신료 나무는 붉은색 목도리로 묶을게.”
해나가 목도리 묶기를 도와주기로 했다. 태주는 산처럼 쌓인 목도리를 바구니에 담아 트리하우스 쪽으로 가져갔다. 열매가 많이 맺힌 나무부터 목도리를 묶어줄 생각이었다.
“태산이 이놈. 하지 마.”
“태산아 이건 물면 안 돼.”
하지만 방해꾼이 있었다. 색색의 목도리가 바람에 날리자, 잡으려고 폴짝거리는 태산이였다. 운 좋게 앞발에 목도리가 걸리면 신이나서 물고 늘어졌다. 목도리에 대롱대롱 매달린 태산이를 여러 번 떼어내며 작업을 마쳤다.
하얀 눈이 뒤덮인 정원에 알록달록한 목도리를 두른 나무가 가득했다. 목도리의 기능이 잘 작동하는 것 같았다. 나무의 꼭대기에만 눈이 하얗게 쌓였다.
“하하! 예쁘네. 크리스마스트리 같아.”
“크리스마스! 파티!”
얼마 전에 했던 크리스마스 파티를 떠올렸는지 희의 날개 가루가 사르르 퍼졌다. 정원에서 보낸 크리스마스 파티는 다 같이 모여서 음식을 먹고 논 게 전부였다. 특별한 이벤트는 없었지만, 다 같이 시간을 보낸 것만으로 꽤 즐거웠다.
“태주, 파티!”
“하하. 알았어. 저녁엔 파티를 열자.”
나무에 목도리는 전부 매줬지만,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다. 각 구역으로 이어지는 길의 눈도 치워야 했다. 아직 나무에 매달려 있는 열매도 얼기 전에 따야 했다. 겨울 작물도 심어야 하고 온실도 관리해야 했다. 눈이 내리고 있지만, 정원의 할 일은 줄지 않았다.
눈이 내리자, 태주는 혹시 수영장이 얼어서 아이스 링크가 되지 않을까 기대했다. 그의 기대는 빗나가지 않았다. 정원 일을 끝내고 가 본 수영장은 꽁꽁 얼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태주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몸을 움직이는 걸 좋아하는 태주는 겨울 스포츠도 좋아했다. 특히 스케이트 타는 걸 좋아했는데, 마침 혼자 쓸 수 있는 아이스 링크가 생겼다. 그는 수영장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상점에서 스케이트를 사 왔다. 그리고 바로 스케이트를 타기 시작했다.
그날 저녁엔 희가 바라던 대로 파티를 열었다. 꽃잎 수영장 옆에 모닥불을 지펴놓고 작은 파티를 즐겼다. 평소엔 오두막 앞 큰 테이블에서 놀았지만, 이번엔 수영장 근처였다. 태주가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 가도록 아이스 링크에서 나오지 않자, 그냥 그 근처에서 놀기로 했다.
아침엔 당황해서 정원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하지만 일과를 끝내고 여유롭게 돌아본 정원은 눈이 쌓여 조금 낯설었지만, 매우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정원에서 벌이는 작은 파티는 아주 즐거웠다.
갑작스러운 겨울이 정원에 찾아왔지만, 정원 식구들이 즐거워하니 태주도 괜찮은 것 같았다. 그는 어차피 벌어진 일, 30일이라는 짧은 겨울을 마음껏 즐기기로 했다.
*
밴 안에서 항상 대본을 보며 준비하던 태주가 오늘은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이어폰도 꽂고 집중해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평소 폰은 통화와 톡만 이용하는 태주라 이런 모습은 낯설었다.
“착한 고양이 프로젝트? 풋.”
“응? 아아, 누나.”
이미나가 태주가 보는 화면을 슬쩍 훔쳐보다 웃음을 터트렸다. ‘착한 고양이 프로젝트’는 고양이 전문가가 고양이와 문제가 있는 시청자를 방문해 행동이나 환경을 개선해 주는 프로그램이었다.
그녀는 태주가 보는 게 동료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일 줄 알았다. 그런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프로를 보고 있어서 웃음이 나왔다. 덕분에 훔쳐본 게 딱 걸리고 말았다.
“미안. 뭘 그렇게 집중해서 보나 궁금해서.”
“큼. 요새 태산이 장난이 너무 심해져서요. 매일같이 물건을 망가트려서 큰일이에요.”
“이제 한 살 좀 넘었지?”
“네.”
태주와 미나는 리딩 장에 도착할 때까지 태산이 장난에 대해 수다를 떨었다. 미나의 친구가 키우는 고양이도 장난이 심했는데, 3살 넘으니 얌전해졌다는 얘기를 했다.
그 얘기를 들은 태주의 눈이 거멓게 변했다. 다른 사람은 3년이지만 태산이 경우는 9년이었다. 아니 실제론 고양이가 아니니 더 길어질 수도 있었다.
‘예쁜 것과 피곤한 건 다른 거야. 이놈 자식이 앞으로 장난을 얼마나 더 친다는 얘긴 거야.’
이번 정원 사건은 후폭풍이 셌지만, 다행히 수습 가능했다. 하지만 또 다른 사고를 친다면 어떻게 될지 몰랐다.
“누나 이거 사연 신청 어떻게 하는 거예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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