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6
65. 제작 발표회 >
누워있는 태주와 내려다보는 태산이의 시선이 마주쳤다. 태주는 긴장한 채 태산이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는 여차하면 빠르게 몸을 피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태산이는 그런 그의 생각을 비웃듯 가볍게 몸을 움직여 선반을 밟았다. 태산이는 천천히 선반을 순서대로 밟고 바닥으로 내려왔다.
태주의 눈이 커지고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너, 너. 우리 태산이 아니지? 그렇지? 우리 태산이가 얌전하게 선반을 밟고 내려오다니.”
“형?”
“내가 소파에 누워있는데, 우리 태산이라면 절대 얌전히 내려올 리가 없어. 내 배 위로 뛰어내려야 정상이잖아.”
“형! 태산이 원래 얌전하게 내려와.”
“거짓말. 난 매일 밟혔는데.”
“그건 형이라 그런 거고.”
뭐라고? 태주는 자신이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자기가 얼마나 태산이를 아껴주는데, 자기라서 밟혔다고?
“그럼, 너희 소파에 누워있을 때, 태산이가 배 위로 뛰어내린 적 없어? 켓 타워에서.”
“없는데. 연우도 없을걸?”
“그, 그럼. 뒤에서 들이받은 적은?”
“없는데. 태산이가 얼마나 얌전한데.”
지금까지 태주 자신만 태산이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는 얘기였다. 태산이 주인인 자신에게만 마음껏 장난을 친 거라고 기뻐해야 할지, 자신이 만만해 보인 거라고 화를 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형이 너무 태산이한테 무르니까, 얘가 형을 만만하게 보는 거야.”
“내가 무르다고?”
“응. 형은 야단도 못 치잖아. 조르는 대로 다 해주고.”
“내가 그랬어?”
“응.”
태주는 생각과 다른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지금까지 태우와 연우가 무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자신이 그랬었나 보다. 태우가 날을 잡은 듯 태산이 교육에 관한 말을 길게 꺼냈다.
‘이런 장면 드라마에서 많이 봤는데, 사고 친 아이를 엄마가 야단치고, 아빠가 뭘 그런 거로 아이 기죽이냐고 편들다 욕먹고. 그럼 태산이가 내 아이인가? 보통은 이러다 아빠가 못 이기고 슬쩍 말을 돌리지 않나?’
얌전히 말을 듣던 태주가 길어지는 잔소리에 슬쩍 말을 돌렸다.
“아무리 귀여워도 가르칠 건 가르쳐야….”
“그보다 태산이가 오늘은 왜 이럴까?”
“그러게 오늘은 기운도 없고, 특히 더 얌전하네.”
아무래도 강화 받으면서 아파하는 모습을 본 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그때도 기가 죽어있었는데, 아직도 그런 것 같았다. 태주는 태산이를 안고 살살 쓰다듬으며 달래줬다. 태산이 그의 어깨에 얼굴을 얹고 얌전히 안겨 있었다.
“형, 나 다음 주에 보충 시작해. 태산이 다시 촬영장에 데려갈 거야?”
“흠. 매니저님은 봐주신다고 데려오라고 하시는데. 의상이 망가질 수도 있어서.”
“의상?”
“응. 그게 참. 이만저만 불편한 게 아니네.”
의상이 아니더라도 촬영장 분위기가 좋지 않아서 태산이를 데려가기 불안했다. 우 팀장님 말대로 회사에 맡기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촬영장이 혼돈에 빠졌다. 촬영에 문제가 생겨서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어서였다.
“뭐야? 쟤 무슨 약 먹었어?”
“누나! 큰일 날 소릴 하세요.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뭘 그리 놀라. 의심스러우니까 하는 소리잖아. 쟤가 지금 연기를 하고 있잖아.”
“그럼 잘 된 거잖아요. 그냥 다행이다, 하고 넘어가요.”
동영상을 건네준 보람이 있긴 했다. 물론 태주가 보여준 연기의 반도 따라 하지 못하는 수준이었지만, 예전처럼 눈에 거슬리지는 않았다.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는 사이 윤비에게 매니저가 다가가 태블릿으로 무언갈 보여줬다. 그녀는 가끔 고개를 끄덕이며 그것을 유심히 보고 있었다.
다시 촬영이 시작되고 이번에도 윤비가 NG를 내지 않고 촬영을 끝마쳤다.
“저 장면은 한 번 더 찍어도 될 것 같은데. 그냥 넘어가네요.”
“기대치가 낮아서 그래. 이 이상 좋은 씬은 못 찍는다, 생각하는 거지. 만약 내가 찍었어 봐, 그냥 NG지.”
“그건 그래요. 감독님은 거슬리지만 않으면 넘기시는 분위기네요.”
“너 같으면 저걸 잘 찍어 주고 싶니?”
태주 자신이라도 내키진 않을 것 같았다. 그나마 초반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것이니 이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무슨 방법을 쓴 건지 모르겠네.”
“….”
의심스럽다는 듯 윤비를 쳐다보는 조세라를 모른 척 대본에 시선을 돌렸다. 작품을 위해서였다지만, 아마 도와준 걸 그녀가 알면 자신에게도 욕설이 쏟아질 것 같았다.
“온갖 PPL은 다 제 차지네요. 오늘은 치킨이에요.”
“아하하. 그러고 보니, 너 촬영하면서 진짜 많이 먹더라. 뭐랑 뭐 먹었지?”
“음료수, 아이스크림, 과자에 오늘은 치킨이요. 아, 저번엔 짜장면이랑 탕수육도 먹었어요.”
“진짜 매화마다 먹는구나.”
“본방송 시작하면 먹는 CF 들어올 거 같아요.”
“하하하. 너 진짜 잘 먹긴 잘 먹더라. 감독님이 매번 칭찬하잖아.”
태주가 음식을 먹을 때 보여주는 감탄하는 표정이나 반응은 사실 희를 보고 배운 것이다. 희가 맛있는 것을 먹을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 표정을 짓는지, 그걸 보고 있으면 덩달아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그 표정들을 조금 배워왔을 뿐이데, 반응이 너무 좋았다.
‘우리 먹보 요정, 정말 그물 대포 사줘야 겠네.’
윤비의 씬이 끝났다. 몇 번 NG가 있긴 했지만, 지난 몇 주간 있었던 것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였다. 촬영을 마친 윤비가 태주를 돌아봤다. 아는 척을 하려는지 반가운 기색을 보였다.
“저게 미쳤나. 어딜 실실 쪼개.”
“누나, 제발 고운 말. 아니, 그냥 평범한 말 좀 쓰세요.”
견우가 나서서 윤비가 태주에게 다가오지 못하게 막았다. 그의 표정이 무섭게 굳어있었다. 그가 윤비와 그 매니저를 노려보는 게 보였다.
“너희 매니저지? 너희 회사도 들은 게 있나 보네.”
“뭐, 그렇죠.”
“너희 회사에선 뭐라 하디?”
“저한테 그런 얘길 자세히 해주겠어요. 이제 TV 데뷔하는데.”
“아! 맞다. 너 이게 데뷔작이지. 하도 편하게 있어서, 난 너 데뷔 한지 한 십 년은 된 줄 알았잖아.”
살짝 뜨끔했지만, 태주는 뻔뻔한 표정을 지었다. 촬영장에서 편하게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실제로 이런 촬영장이 익숙했으니까. 회귀 전에도 익숙했지만, 회귀 후에도 1년 동안 열심히 촬영장에 다녔다. 낯설어하는 게 더 어색했다.
*
윤비의 기사는 대부분 내려갔다. 하지만 그 흔적이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이미 업계에 박지헌의 소속사와 트리즈가 SBC와 불편한 관계라는 게 소문났다.
회사에선 그 소문을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고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성대한 제작 발표회로 연출진이나 출연진의 기분을 달래준다고? 헛소리.’
말 그대로 헛소리였다. 성대한 제작 발표회는 홍보를 위한 것이지, 출연자의 기분을 풀어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만약 태주와 두 주연이 제작진이었다면 이해할 수도 있었다. 보상으로 홍보에 힘을 써주는 것이니. 하지만 배우인 그들이 이해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두 주연도 태주도 그 정도로 그동안 겪은 불편을 잊을 리 없었다. 아마 이번 작품이 끝나면, 다시 SBC 작품에 들어가는 일은 먼 훗날이 될 것 같았다.
“내일 제작 발표회에 참석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갑자기 전할 얘기가 있다고 회사로 오라더니, 뜬금없이 제작 발표회에 참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졌나?
“네? 왜요? 저는 ‘히든카드’라면서요. 1화에서 CG 화려하게 넣고 등장시키실 거라고 그러셨는데.”
“참 별것 아닌데. 조세라 씨하고 박지헌 씨가 윤비 씨 곁에 앉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좌석 배치요? 감독님도 계시잖아요.”
정말 별것 아닌 거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박지헌은 윤비와 앉지 않으려 했고, 조세라는 아이돌을 전부 거부했다. 거기에 LT에선 윤비를 제일 끝에 앉히려 하지 않았다.
“아, 골치야. 뭘 그런 걸 가지고 그래요? 얼마 걸리지도 않을 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주연 두 분을 옮길 수 없으니, 이리저리 좌석을 배치해보다, 저희 쪽에 연락한 것 같습니다.”
“박정준 선생님이랑 작가님도 계시잖아요.”
“오 작가님은 카메라 울렁증이라 무대에 못 올라가십니다. 그리고 박정준 배우는 참석을 거절하셨습니다.”
“음.”
‘미디어에 많이 노출되는 자리를 배우가 거절한다고? 진짜 기분이 많이 상하셨나 보네.’
박지헌의 비서로 나오는 그 역시 박지헌의 촬영 시간이 자주 바뀌면서 피해를 봤었다. 아마도 그래서 그런 것 같았다. LT에선 김동현을 영입하면서 자신들의 영향력을 보여주려 한 것 같지만, 주위에 튈 불똥까지는 생각 못 했나 보다.
박정준에 관한 생각을 그만두고, 내일 갑자기 참석하게 된 제작 발표회를 떠올려보던 그는 곧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매니저님. 저랑 세라 누나랑 둘이 가운데 앉는데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죠.”
앉는 자리부터 따지기 시작하는 걸 보니, 내일 제작 발표회도 피곤할 것 같았다.
*
제작 발표회 당일이 밝았다. 사실 제작 발표회 예정일은 태주의 휴일이었다. 주연배우와 감독이 빠져 자연스럽게 휴일이 됐는데, 갑자기 제작 발표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휴일을 뺏긴 그의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게다가 이른 아침부터 단장해야 해서 피곤하기도 했다. 그나마 오랜만에 슈트를 입는 게 유일한 위안이었다.
“헐. 포토월에 서는 것도 거절했어요?”
“네. 윤비 씨랑 같이 서는 자리는 전부 거절하셨다고 합니다.”
“자매로 나오는데도요?”
“네. 윤비 씨는 단독 컷만 찍을 겁니다.”
그나마 입장 순서로 트집을 잡지 않아 다행이었다.
“태주 씨는 박지헌 씨랑 같이 한 번 더 서셔야 합니다.”
“네. 알겠어요.”
제작 발표회는 호텔의 연회장을 빌려서 하기로 했다. 준비된 물품이나 연회장의 규모는 상당히 호화로웠다. 동원된 미디어의 숫자도 상당했다. 우 팀장님이 말한 대로 SBC에서 규모는 확실하게 키운 것 같았다.
단독 촬영과 박지헌과의 투 샷만 찍은 조세라는 빠르게 사진 촬영을 마치고 다른 사람들의 촬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태주 역시 조연에 신인이라 빠르게 촬영을 마치고 내려왔다. 그와 조세라가 대기석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표정이 심상치 않아 보여 태주가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괜찮아요?”
“저거랑 자매 소리 들을 생각에 열불 나서 그러는 거야. 괜찮아.”
“배역일 뿐이잖아요. 진정하세요.”
드라마 설정상의 관계일 뿐인데도 불쾌해하고 있었다. 어지간히도 윤비를 마음에 안 들어 했다. 이러면서도 카메라 앞에선 사이좋게 웃을 거였다. 본인도 배우지만 이런 부분은 소름 끼치기도 했다.
*
주연배우, 감독님의 소개가 지나고 태주의 차례가 돌아왔다. 보통 아이돌이 있으면 그 사람들이 분위기를 띄우는 데 도움을 주곤 했는데, 오늘은 아니었다. 덕분에 막내인 태주에게 무언의 압력이 쏟아지는 것 같았다. 아마도 그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 메이커역을 해야 할 듯했다.
“최강 동안 도깨비 왕입니다. 비주얼을 맡고 있습니다. 하하하. 농담이고요. 수백 년간 도깨비 왕국을 다스린 절대 권력! 다이아몬드 수저 도깨비 왕 역을 맡은 이태주입니다.”
“하하하하.”
그는 부끄러움을 참으며, 아이돌이 하는 인사를 흉내 냈다. 카메라 앞에서 장난스러운 도깨비 왕을 연기할 때는 괜찮았는데, 이런 곳에서 하려니 어색하고 민망했다.
이어서 짧게 편집된 드라마 영상을 보고 내용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중요한 질문은 대부분 감독님과 주연배우 차례에서 끝이 났다. 태주에게 돌아오는 질문은 상대적으로 가볍고, 편하게 답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촬영하면서 힘든 점이요? 첫 번째는 날씨고요. 두 번째는 날씨예요. 세 번째는 날씨군요. 너무 추워요.”
손가락으로 꼽고 몸을 살짝 떨면서, 날씨 때문에 힘들다고 엄살을 부린 태주였다. 촬영장에서 있었던 불화나 불편한 것을 이런 장소에서 말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연예인은 이미지 장사가 전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만큼 보여주는 것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직업이었다. 이렇게 수많은 미디어를 앞에 두고 멍청한 소리를 할 사람은 없었다.
“도깨비 무사 많이 사랑해주세요. 그중에서도 도깨비 왕은 특별히 더 사랑해주시고요. 수백 년을 혼자 지냈더니 너무 외로워요. 사랑이 부족해요.”
“하하하.”
태주는 신인이라 사회자가 건네는 질문도 적고, 발언 기회도 적었지만, 그래도 앉은 자리가 자리인지라 줄곧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모 배우가 제작 발표회에서 잠시 인상 썼다가 찍힌 사진 때문에 루머에 시달렸던 걸 기억한다. 출연진과의 불화가 있다, 원래 태도가 불량하다 등 시끄러웠었다. 그는 그런 일이 생길 빌미를 주고 싶지 않았다.
“조세라 씨 촬영 중 후배를 위해 일정을 조정해 주셨다지요? 후배를 도와주신 이유가 있습니까?”
“호호호. 작품을 위해서였지요. 좀 더 나은 연기를 위해 필요하다는데, 그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울 수 있어요. 결과는 월요일이나 화요일 저녁 10시에 확인하실 수 있어요.”
불화 얘기를 진정시킬 생각인지, 사회자가 예정에 없던 질문을 했다.
“후배를 위해주시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그룹활동 일정을 많이 배려해주셨다고요, 평소에도 사이가 좋으십니까?”
“사이요? 당연히 좋죠. 자맨데요. 안 그래요?”
“…….”
조세라가 웃으면서 윤비에게 물었다. 윤비는 갑작스럽게 질문을 받아서 놀랐는지, 대답하지 못했다. 사고였다. 아까부터 인터뷰에 집중하지 않고 있더니 반응이 느렸다.
“하하하. 조세라 씨가 그렇게 예쁘게 웃으시면서 물으면 저도 당황할 것 같아요.”
“어머! 내가 그렇게 예쁘게 웃었어?”
“네, 비주얼은 제 담당인데, 너무 하세요.”
“호호호.”
조세라와 윤비 사이에 앉아있던 태주가 아무 말 대잔치를 벌였다. 상체를 테이블 쪽으로 슬쩍 내밀며 윤비를 시선에서 가렸다. 그가 말을 한 뒤에 윤비가 이어서 무슨 말이라도 했으면 좋았을 텐데, 아무 말도 없었다. 그나마 조세라가 가볍게 받아줘서 웃고 넘길 수 있었다.
‘뭐야? 아이돌이라며? 인터뷰 수도 없이 해봤을 텐데, 대체 뭐야.’
감독님과 무대 위 출연진 전체가 함께 인사하는 것을 끝으로 제작 발표회를 마쳤다.
제작 발표회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세라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태주의 도움으로 겨우 분위기가 나아졌던 촬영장에 다시 한파가 몰려올 것 같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