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7
66. 관리와 보호 >
돌아가는 차 안에서 미나가 심각한 표정으로 윤비의 얘기를 꺼냈다. 그새 제작 발표회에서 있었던 일이 기사가 되었다. 한마디도 하지 않고 딴짓을 하던 모습이 그대로 실린 기사가 잔뜩 올라가 있었다.
“걔는 진짜 무슨 생각이라니? 가뜩이나 안 좋은 얘기가 도는데.”
“저도 모르겠어요. 오늘은 어디에 정신을 팔고 있던 건지, 영 집중을 못 하더라고요.”
“전에 조세라 씨가 인터뷰했지? 무단이탈하고 사과도 안 했다고.”
“직접 한 건 아니지만요. 세라 누나네 회사에서 흘린 기사 맞을 거예요.”
처음 도깨비 무사 시놉시스를 봤을 때, 이 작품이 기억나지 않았던 게 자신이 이 시기의 드라마를 잘 모르기 때문인 줄 알았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아마 이 드라마가 망한 드라마여서인 것 같다. 시청률이 낮아 기억에도 남지 않았던 작품인 것 같았다.
“윤비 때문에 열심히 하는 다른 아이돌 출신만 괜히 같이 욕을 먹네. 김은형 씨만 해도 얼마나 열심히 하니?”
“그러게요. 발음도 그새 다 고쳤더라고요.”
“그나저나 내일부터 다시 촬영인데 피곤하겠다.”
“어휴. 오늘은 정말 푹 쉬어야겠어요.”
피곤할 게 뻔한 내일의 촬영을 위한 휴식이 필요했다.
*
3월도 머지않은 겨울의 끝이 다가오는 시기였지만, 촬영장은 여전히 한겨울 같았다. 제작 발표회가 끝나고 예상했던 대로였다. 그나마 A팀 촬영장은 나았지만, 윤비의 씬이 많은 B팀 촬영장은 숨도 쉬기 힘들 정도였다. 촬영장으로 이동 중, 견우가 태주에게 일정 조정이 있을 것 같다며 얘기를 꺼냈다.
“김동현 씨 계약 기사 보셨습니까? 예상대로 LT와 계약을 했습니다. 이제 좀 촬영장이 제대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그래도 분위기는 좋아지기 힘들 것 같아요. LT에서 이해할 만한 변명을 했어야죠. 배역에 몰두한 상태라, 제작 발표회에서 그런 모습을 보였다. 양해 부탁드린다. 누가 생각한 거래요?”
“그쪽도 당황해서 부라부라 올린 기사 같습니다.”
“대체 LT같이 큰 회사에서 왜 이러는 걸까요?”
“….”
그는 정말 LT의 대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회귀 전 그가 데뷔했을 때 LT는 이미 국내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대형기획사였다. 일처리도 나쁘지 않았는데, 대체 지금은 왜 이 모양인지 알 수 없었다.
회귀 전 대형 제작사의 로비에 천만 관객을 달성하고도 아무 상도 받지 못한 적이 있었다. 그곳이 LT 제작사는 아니었지만, 그 때문에 대형 제작사에 감정이 좋진 않았다. 그래도 그들의 일 처리는 신뢰하고 있었다.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는 그들은 그만큼 잡음이 나지 않게 주변 관리를 잘했다. 그런데 이번엔 어쩐 일인지, 계속 자잘한 문제가 끊이지 않고 생기고 있었다. 평소 그들의 일 처리 방식으로는 절대 보이지 않았다.
견우는 LT 사내의 지저분한 권력 싸움을 태주에게 알리기 힘들었다. 외부 자본 유입과 갑작스러운 규모의 확장으로 LT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상태였다.
이권을 둘러싼 기존의 임원들과 새로 들어온 임원들 간의 경쟁, 배우 팀과 가수 팀 간의 알력, 기존 배우 팀과 새로 유입된 톱스타 팀 간의 차별 등. LT 내부는 상당히 시끄러웠다.
그런 상황에서 제대로 된 대응이 나올 리가 없었다.
“이제 곧 본 방송인데 골칫거리네요. 사람을 가리고 싶지는 않지만, 앞으로 LT 소속이랑 같이하는 건 피하고 싶어요.”
“최대한 피하실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사실 저희도 이 정도로 엉망일 줄은 몰랐습니다.”
이런 생각을 트리즈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한동안은 LT라는 이름에 의문부호가 따라다닐 것 같았다.
태주는 작게 한숨을 쉬며 견우에게 답답함을 말했다.
“전 잘 이해가 안 가요. 상황이 상황이라지만 자기가 맡은 일이잖아요. 남에게 도움을 청할 정도로 잘해보려는 생각도 있었고요.”
“그렇지요.”
“플라워걸로 벌써 몇 년이죠? 4년? 5년? 그만큼 됐으면 알지 않아요? 이슈 한 번에 무너질 수 있다는 거? 다들 좋아서 그 자리에서 웃고 있던 것은 아니잖아요.”
견우는 태주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게 좋겠다 판단했다.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어 윤비를 돕겠다고 나섰는지 모르지만, 그때 막았어야 했다. 그러지 못한 게 후회됐다.
아마 그녀를 돕는 것은 본인 말대로 힘든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의가 반드시 선의로 돌아오는 경우만 있는 것도 아니고, 도움이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경우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번 경우만 봐도, 동정심이든 작품 때문이든 그가 준 도움이 상대의 부주의한 태도로 인해 헛수고가 되고 말았다.
앞으로 이번처럼 태주를 이용하려는 일은 계속 생길 것이다. 그의 동정심을 이용하려는 사람도 있을 테고, 약점을 잡아 협박하려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작품을 위해서라며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사람도 나올 게 분명했다. 그런 경우 아마 태주는 본인에게 무리가 아니라면 그냥 받아들일 것 같았다.
태주는 작품에 들어가면 자신의 손해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편이었다. 선율을 촬영하는 도중에도 그랬었다. 조금만 일정을 바꿔 예능이나 CF에 나갔다면, 여러모로 도움이 됐을 텐데 전혀 그러지 않았다. 이제영 감독의 상태를 봐서라고 해도 뻔한 손해를 감수했었다.
지금까지 그가 봐온 태주는 무리한 부탁이 아니라 판단하면 가볍게 승낙했다. 깐깐하게 손익을 따지길 바라는 것은 아니지만 승낙하기 전에 한 번 더 고민하길 바랐다.
태주는 어리고 사회 경험이 적어서 그런지 긴장감이나 경계심이 부족했다. 어쩌면 주변 환경이 그에게 호의적이고 여유로운 편이라 그런지도 몰랐다.
“태주 씨, 윤비 씨 일은 그만 신경 쓰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태주 씨가 그렇게 신경 써줄 가치가 없는 사람입니다.”
“후우. 그럴게요.”
한숨과 함께 대답하는 태주를 슬쩍 본 그는 조금 낮아진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조심스럽게 걱정을 담은 말을 꺼냈다.
“남을 돕는 건 괜찮습니다. 무리하시는 것도 아니니까요. 하지만 이번처럼 좋지 않은 결과도 생길 겁니다. 앞으론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하셔야 합니다.”
“네, 이번엔 저도 경솔했다고 생각해요. 앞으론 주의할게요.”
태주에게 주의하겠다는 대답을 들었지만, 견우의 속이 편해지진 않았다. 그는 남을 돕고도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온 현실을 상기시키고, 주의하라 얘기하는 상황을 달갑게 여길 정도로 막돼먹진 않았다.
그는 앞으로 태주의 주변을 더 세심하게 살피기로 했다. 이번 같은 일이 다시 벌어지지 않도록, 태주에게 접근하는 사람을 꼼꼼하게 확인할 생각이었다. 이런 일에는 상대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했다. 자신의 배우가 소통을 잘하는 편이라 다행이었다.
*
CG 후처리가 필요한 씬이 많은 태주는 단독 씬일 경우 보통 이른 새벽부터 촬영했다. 오늘 역시 새벽부터 촬영장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는 당일 분량의 촬영을 마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러 다니고 있었다.
“벌써 봄이네요. 벚꽃 구경 갈까요?”
“네 스케줄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걸 갈 여유가 있겠니?”
“아아. 광고랑 여러 가지 있었죠.”
트리즈 내에선 생각보다 일을 많이 하는 것에 비해 잘 오르지 않는 인지도를 고민하고 있었다. 방송 노출이 적어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이번 드라마를 계기로 바뀌었다. 광고도 많이 들어오고 예능 섭외도 많이 들어오고 있었다. 미나의 말대로 꽃구경하러 갈 시간을 내기는 힘들어 보였다.
태주 일행이 들어간 세트 안에는 조세라와 윤비가 한창 촬영을 하고 있었다. 태주는 두 사람의 촬영이 멈추길 조용히 기다렸다.
‘여기 분위기가 왜 이러니?’
‘음. 대본이 바뀌었네요.’
‘그래? 촬영 길어질 것 같으면 그냥 가자.’
‘네.’
그가 받은 대본은 변경된 부분이 없었는데, 조세라와 윤비 두 사람이 나오는 장면은 대사와 분위기가 바뀌었다. 사전에 윤비에게 건네준 영상과 내용이 조금 달랐다. 그 때문인지 촬영 진도가 나가지 않고 있었다. 그는 그 모습에 고개를 젓고 일행과 조용히 세트에서 벗어났다.
“이태주 배우님!”
태주의 이름을 부른 사람은 윤비의 매니저였다. 그는 다급한 얼굴로 태주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런 그의 앞을 견우가 막아섰다.
“무슨 일이십니까?”
“저, 그게….”
“말씀하시죠.”
“그, 윤비 씬을 좀….”
태주의 표정에 서리가 내렸다. 차갑게 식은 눈에선 온기가 한점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도깨비 왕이 인간에 대한 혐오를 나타내는 것 같았다.
“무슨 얘기를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그, 연기를 좀….”
“내 시간을 참 싸구려 취급을 하시네요. 그렇게 버릴 시간 없어요.”
“아, 아닙니다. 그게 윤비 스케줄이 너무 많아서….”
“그만. 그 이상 다가오지 마십시오.”
자존심을 내려놓고 남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그에게 동정이 생길 법도 했지만, 태주는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활동 중인 아이돌의 바쁜 스케줄? 이곳에 바쁘지 않은 사람은 없었다. 총지휘자인 한 감독부터 말단 스태프까지 몇 시간 못 자고 초췌한 모습을 한 채 일하고 있었다. 다들 밥 먹을 시간까지 아껴가며 작품에 매달리고 있었다.
만약 윤비가 태주가 건네준 영상 외에도 대본을 조금이라도 봤다면, 좀 전의 장면에서 헤매지 않고 연기를 했을 것이다. 남의 도움만 바라지 않고, 그녀 스스로 조금이라도 노력을 했더라면 충분히 연기할 수 있는 씬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대본이 약간 바뀐 것에 당황해서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의 없고, 염치없는 상대를 위해 이 이상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군요.”
태주의 거절 뒤로 견우의 경고가 이어졌다.
“잊고 계신 걸 굳이 상기시켜 드려야겠습니까?”
“그, 아닙니다.”
“얘기는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견우에게 막혀 다가오지 못하던 그가 주저하다 돌아섰다. 돌아서는 그를 보며 견우는 윤비와의 일을 마무리하는데 좀 더 신경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일련의 상황을 보고 궁금해하는 미나를 달래며 밴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미 호기심이 발동한 미나를 말리지 못했다. 밴 안에서 집요하게 진상을 캐묻는 미나에 태주는 결국 윤비를 도와준 일을 털어놓았다.
그리고 등짝을 맞았다.
“그런 쓸데없는 짓을 왜 해! 물러터져서는.”
“읔. 아니, 저 정도로 개념이 없을 줄은 몰랐어요.”
“남들이 다 너 같은 줄 알아? 개념 없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큼. 미나 씨.”
“매니저님도 마찬가지예요. 얘가 그러면 말려야지, 옆에서 뭐하셨어요!”
말 수 적은 매니저와 말은 잘하지만 따지는데 약한 태주는 그녀에게 반항하지 못하고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힘겨운 시간을 보냈다.
태주 자신을 위해 화를 내주는 것은 고마웠다. 하지만 등이랑 팔뚝이 좀 많이 아팠다. 손은 크지 않은 것 같은데 손길이 참 매서웠다.
*
‘저는 똑같은 내용으로 어투랑 단어만 바꿔가면서 그렇게 오래 말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미나 씨가 좀….’
미나를 먼저 내려줘 들릴 리도 없는데, 두 사람은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얘기하고 있었다. 그러다 서로 멋쩍어 ‘흠흠’ 헛기침을 했다. 집에 거의 다 와서 다행이었다.
“태산아. 형 왔어.”
“냐앙!”
새벽같이 나가서 저녁이 다 된 시간에 들어온 형을 태산이 귀여운 소리로 반겨줬다. 그를 꽤 반기는 걸 보니 밖에 나가고 싶은 모양이었다.
“산책가고 싶어?”
“냐앙.”
“헐. 온종일 집에만 있었던 것처럼 구네. 태산이, 아까 한 시간 나갔다 왔잖아. 왜 아닌 척해?”
“킥. 우리 태산이 체력에 한 시간으론 부족하지. 이리와. 형이랑 산책가자.”
깜찍한 거짓말쟁이에게 끈을 잘 매어준 후에 집을 나섰다. 나오기 전 긴 머리는 모자로 잘 감췄다.
평소 태산이 산책은 태산이가 가는 길을 따라간다. 오늘은 공원으로 가는 길이 아닌 주택가 쪽 길이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아니면 낮에 그쪽 길은 다녀왔던지.
“어디로 가는 거야? 그쪽은 너무 어둡잖아.”
“냐앙.”
태산이 자꾸 불빛이 없는 길로 가려 했다.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이는 태산이에게는 문제가 없는 길이지만 그에겐 쉽지 않았다.
“냐아앙.”
“냐냐앙.”
“뭐, 뭐야? 고양이들?”
길고양이 무리가 태산이 근처로 몰려왔다. 골목대장이라는 별명은 힐링 인터뷰에서 얻은 것이었는데, 여기서 써도 문제없어 보였다. 지금까지 동네 고양이를 불러 모은 적이 없는데, 뭔가 전할 말이 있는 것 같았다.
“태산아 이제 그만하고 가자.”
고양이들이 모두 모여서 무슨 얘기를 나누는 건지 모르겠지만, 점점 우는 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길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근처에 있다면 민원을 넣을 수도 있었다. 다행히 태산이 다시 길을 가기 시작했다.
“무슨 얘기를 한 건지, 나중에 희한테 물어봐 달라 해야겠다.”
정원에서 희에게 태산이 동네 고양이들과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들은 태주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태주는 태산이가 보호해줄 거래. 다른 친구들에게도 부탁해두었대. 태주, 도움이 필요하면 다른 친구에게 얘기하래.’
고양이에게 부탁할 일이 생길 일도 없겠지만, 태산이 다른 고양이에게 그런 당부를 한 사실이 충격이었다. 요 며칠 계속 시무룩한 채로 다녀 걱정하게 하더니, 저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이 강화 받으면서 아파한 걸 보고 트라우마가 생겼는지도 몰랐다. 아니면 보호에 대한 강박을 느끼는지도 몰랐다.
그는 예전에 태산이 슬라임킹을 잡고 의기양양하게 굴던 걸 떠올렸다. 그때도 겨우 2개월 차였는데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했었다. 대체 태산이 머릿속의 자신은 어떤 모습인 건지. 궁금하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묘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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