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8
67. 엘프 조사단 >
꽃샘추위가 기승인 현실과 다르게 정원의 기후는 변함없이 온화했다. 태주는 잡동사니를 넣어둔 상자에서 뽕 망치를 휘둘러 만들어 낸 가죽공을 꺼내왔다. 한 번 튕기면 바람이 빠질 때까지 자동으로 튕기는 마법이 걸린 공이었다.
그는 여전히 너무 얌전한 태산이의 기운을 북돋워 주고 싶었다. 물론 그 자신도 오랜만에 태산이와 신나게 놀고 싶었다. 사실 밀린 정원 일을 잠시 외면하고 싶어서 태산이 핑계를 대는 이유도 조금 있었다.
“정원사 씨. 정말 그 공을 던질 거야?”
“네, 왜 그러세요?”
“흐응. 그래, 뭐든 겪어봐야 아는 거지.”
해나의 반응이 이상했지만, 태주는 오랜만에 공놀이할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그는 기대하는 태산이와 눈을 마주친 뒤 힘차게 공을 던졌다.
“태산아. 저쪽!”
‘다다다다, 쾅!’
어라? 태주는 지금 자신이 본 게 사실인지 의심스러웠다. 태산이 공을 쫓아 달려갈 때만 해도 잘 달린다는 생각뿐이었는데, 앞을 가로막은 나무를 태산이 들이받은 후엔 눈을 의심하게 됐다.
“어, 어? 멈춰, 태산아. 그만!”
“호호호호.”
오랜만의 공놀이에 흥분한 건 태산이가 더 심했다. 태산이는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공을 쫓아 미친 듯이 정원의 나무를 들이받으면서 다니고 있었다.
“호호호. 둘 다 너무 흥분한 것 같더라.”
“아아. 내 나무.”
“이건 정원사 씨 잘못이야. 빈터 쪽으로 던져야지. 자아. 그만 놀고 나무를 바로 세우라고.”
“흐윽.”
태주의 공놀이는 3분 만에 끝이 났다.
한참 뒤 태산이 바람 빠진 공을 물고 왔을 때, 태주는 불퉁한 얼굴로 나무를 바로 세우고 있었다.
“태주, 공문이야.”
“공문?”
쓰러진 나무를 거의 다 바로 세웠을 때, 태주에게 희가 우편물을 전해줬다.
“음. 요정 숲에 이상이 생겨서 조사단이 파견된다는데.”
“이상?”
“응. 희 피라미드에서 초콜릿이랑 마시멜로 먹었었잖아.”
“응 맛있었어.”
“하하. 그래. 아무래도 조사단이 그걸 조사하러 오는 것 같아. 원래 피라미드는 해골 병사나 미라가 나오는 곳이거든.”
“미라?”
“붕대를 온몸에 감고 이렇게 ‘우워어!’ 하면서 다니는 몬스터야.”
태주는 예전에 영화에서 본 미라를 흉내 내며 희에게 설명해줬다.
“태주, 태주. 희 미라 해줘.”
“뭐?”
어디에 흥미를 느낀 건지 미라가 되고 싶다는 희를 태주가 오두막으로 데려왔다. 언젠가 무지개색 리본 다발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걸로 희가 바라는 미라를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희 무슨 색 미라 할래?”
“으응. 주황색!”
“하하. 그래, 주황색 미라로 해줄게.”
주황색 리본으로 희의 몸을 살살 감아주었다. 날개가 걸리지 않게 조심해서 감아주고 나니 미라보다는 주황색 리본으로 포장한 선물처럼 보였다.
“킥. 희, 미라가 아니라, 선물이 되었어.”
“히히. 선물도 좋아.”
“하하하.”
공문에서 본 조사단이 올 때까지 둘은 그렇게 놀고 있었다.
*
요정 숲 조사단은 태주가 생각했던 수인들이 아니었다. 정원사 협회의 요원 S처럼 듬직한 체격의 수사관을 생각했는데, 전혀 아니었다.
반지를 가지고 모험을 떠난 호빗이 만났던 그 엘프였다. 귀가 사람보다 길고, 예쁘고 잘생긴 종족. 조사단은 모두 엘프로 구성되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정원사님.”
“안녕하세요. 피라미드로 안내해 드릴까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호기심을 드러내는 태산이를 꼭 안고 조사단을 사막 구역으로 데려갔다. 사막 구역은 눈이 내리는 동안 관리할 수 없어서 상태가 좋지 않았다. 선인장에는 목도리를 매줄 수 없어서 그대로 두었더니, 모두 죽고 말았다.
‘하필이면, 이렇게 상태가 안 좋을 때 오다니.’
조사단이 가고 나면 바로 선인장들을 다시 심어야겠다고 다짐한 그였다.
“흠. 이 선인장들은 어떻게 된 겁니까?”
“준비 없이 기상변환권을 쓰는 바람에 추위에 얼었어요.”
“혹시 제가 이 선인장들을 회복시켜도 되겠습니까?”
“가능할까요? 이미 죽은 게 아니에요?”
태주가 다급하게 조사단의 단장에게 물었다. 그는 그런 태주를 진정시키며, 온전히 회복시키는 것은 무리이고, 선인장들을 씨앗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다고 얘기했다.
“부탁드려요. 선인장들이 살아날 수 있는 것만으로 충분해요.”
“하하. 알겠습니다. 잠시만 물러나 주십시오.”
단장이 태주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마법 주문을 외웠다. 그의 주문이 시작되자 허공에 빛으로 만들어진 글자의 띠가 생겨났다. 그 글자의 띠가 선인장들을 휘감고 잠시 빛을 내자, 곧 선인장이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작아지기 시작했다.
“우와.”
“다행히 주문이 잘 걸렸군요. 시간이 지나면 지금 그 자리에 다시 선인장이 자랄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단장은 그런 태주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고 피라미드를 돌아봤다. 잠시 후 피라미드를 향해 주문을 외우더니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했다.
“흠. 안에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바깥에선 잘 모르겠군요.”
“어? 피라미드는 상급 난이도인데,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이래 보여도 모두 뛰어난 전사들입니다.”
“냐냐앙. 냐냐앙.”
태주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던 태산이 단장을 보더니 무어라 울기 시작했다. 단장은 그런 태산이를 잠시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백호도 함께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우리 태산이요?”
“예. 정원에서 벌어진 일이니, 정원 소속 인원도 같이 가는 게 낫겠습니다. 정원사님은…. 흠.”
“큼. 그럼 희를 데려가세요.”
“냥!”
그의 생각에 태산이 보다는 희가 같이 가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희는 정원의 관리자이기도 했고, 요정 숲의 조사단원과도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였다.
“냠냠. 또 줘.”
“여기.”
조사단원에게 뭔갈 받아서 먹던 희가 태주의 부름에 포르르 날아왔다. 달콤한 냄새가 나는 걸 보니, 달콤한 간식인 것 같았다.
“희, 조사단이랑 같이 피라미드에 다녀올래?”
“응, 피라미드 다녀올래.”
희의 승낙이 있자, 태주가 단장에게 희를 부탁했다.
“잘 부탁드려요.”
“선물입니까? 감사합니다.”
“네엑?”
주황색 리본을 두른 희를 선물이냐며 단장이 양손으로 감쌌다. 그 모습을 보고 태주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자, 그가 크게 웃었다.
“하하하. 농담입니다. 이 요정 아가씨가 유니콘과 같이 다니는 걸 숲에서 몇 번 본적이 있습니다. 얼마 전엔 얘기도 나눴지요.”
“아아. 놀랐어요.”
“시간이 없으니 사건을 먼저 처리하겠습니다. 일이 끝난 후에 사정을 말씀드리지요.”
“네, 수고하세요.”
*
태산이가 삐졌다. 평소 같으면 활기차게 정원을 돌아다닐 텐데, 지금은 오두막 구석에 웅크린 채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공놀이로 기운을 차린 것 같았는데, 다시 힘없는 모습을 보자 속이 상했다.
“태산아? 착하지. 형이랑 끈 가지고 놀까?”
“해나, 이 일을 어떻게 하죠?”
“호호호. 어쩔 수 없지. 조사단이랑 움직이기엔 희 아가씨가 나으니까.”
“아무래도 제가 단련을 좀 해야겠어요. 태산이 데리고 피라미드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요.”
“풋. 그래, 열심히 해봐.”
기술을 익히기 좋은 몸으로 강화되었지만, 드라마 촬영 등 신경 쓰이는 일에 단련을 차일피일 미루던 그였다. 하지만 오늘 조사단 단장님 반응도 그렇고, 태산이 상태도 그렇고, 무술을 배워야 할 것 같았다.
“태산아 형이 나중에 피라미드 데려가 줄게. 착하지, 응?”
“냐앙.”
말을 알아들은 듯, 부드럽게 달래는 그에게 태산이 안겨들었다. 강화사건 이후로 너무 얌전해진 태산이 낯설었다. 안긴 몸이 여전히 작고 따뜻해서 더 그랬다. 어서 기운을 차리고 예전처럼 말썽을 부렸으면 싶었다.
“해나, 나무에 묶어준 목도리 푸는 것 좀 도와주실래요?”
“이제 풀어주게? 상점에 되팔려고?”
“네, 그러려고요. 제값의 반도 못 받는 게 좀 걸리지만, 창고에 쌓아두기엔 너무 많아요.”
“몇 개는 내가 쓸 수 있을까? 만들고 싶은 게 있는데.”
구매한 물건을 되파는 것은 생산품을 파는 것과 달랐다. 상점에 구매했던 상품을 되팔 때는 샀던 가격의 30%밖에 돌려받지 못한다. 그리고 되파는 물품은 바로 DP로 바뀌며 사라진다. 여러모로 낭비지만, DP가 바닥인 상태라 어쩔 수 없었다.
“현실의 돈이 아니라서 그런가. 너무 막 쓰는 느낌이야.”
“호호호. 정원사 씨 이제 알았으니 앞으로 주의하면 될 거야.”
“네. 그럴게요.”
눈이 내리는 동안 나무들은 잠을 잔 것 같았다. 눈이 녹자마자 바로 열매들이 맺히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새에 맺히고 수확 가능할 정도로 커진 열매에 그는 다시 한 번 놀랐다. 목도리를 풀어주고 과일들을 따기 시작했다.
울긋불긋 사과~♪ 새콤달콤 맛있는 사과~♬
오랜만에 과일을 수확하니 저절로 흥이 났다. 희가 없어서 손수레에 과일을 따고 있었지만, 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즐거웠다.
“짝짝짝!”
“재밌는 노래입니다.”
‘으아! 대체 왜 지금 나온 거야. 아까 기다릴 때는 안 나오더니.’
나무에서 목도리를 풀어 상점에 파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래서 곧 조사단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기다렸었다. 한동안 기다렸지만, 나오지 않아서 과일을 수확하러 나왔다가 민망한 모습을 보였다.
“정원사님 잠시 시간을 좀 내주시겠습니까?”
“네. 오두막 앞에 테이블이 있어요. 그리로 가요.”
조사단 숫자만큼 미리 준비해뒀던 간식과 차를 내왔다. 태주가 우려준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단장이 사건이 발생한 원인을 알려줬다.
“요정 숲에 머물던 보석 거울들을 누군가 깨뜨렸습니다.”
“네? 누가 그런 짓을.”
보석 거울은 자신의 몸을 더럽힌 상대를 어지럽게 만든 후에 어딘가로 날려버린다. 그런 거울이 요정 숲 안에서 깨지고 말았다. 그 때문에 보석 거울 조각이 박힌 요정 숲의 생물과 물체들이 어딘가로 날려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럼 조각 중 일부가 피라미드로 이동됐던 건가요?”
“예. 요정 숲의 중요한 시설도 이동되었더군요.”
“아, 콩 나무! 그래서 콩 나무가 피라미드 안에 있었군요.”
“예, 지금은 피라미드 안에 남은 조각은 없습니다. 피라미드 안을 전부 돌아보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태주는 단장의 피라미드를 전부 돌아보았다는 말에 놀랐다. 태주가 희가 걱정되어 기다리긴 했지만, 사실 서너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그는 그사이 피라미드를 전부 돌아봤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전부요?”
“예. 아! 요정에게 전리품을 전부 건넸습니다.”
“어, 혹시 그럼 제가 피라미드에 들어가도 안전할까요?”
“물론입니다. 피라미드가 재작동하려면 100일이 필요합니다.”
태산이를 데리고 피라미드에 들어가 봐도 될 것 같았다. 태주는 약속을 바로 지킬 수 있을 것 같아서 기뻤다.
“이번 사건의 전체 피해 규모가 확인되면 보상이 지급될 겁니다. 회의 후 보상 내용이 결정되면 보내드리겠습니다.”
“보상도 있어요? 이건 사고인데.”
“요정 숲에서 제대로 보상을 하지 않으면, 정원사 협회가 나설 겁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정원사 협회에 지독한 마녀가 한 명 있습니다. 항상 녹색 원피스를 입고 다니는 데, 얼마나 원리원칙을 따지는지. 아주 골치 아픈 여잡니다.”
‘이나타 씨 얘기인가? 정원에 등불 선물해준?’
다른 조사단원들도 고개를 끄덕여 단장의 의견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보였다. 해나가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고 고개를 젓는 게 보였다. 아마 자신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엘프 조사단원들은 상당히 여유로운 성격 같았다. 느긋하게 간식을 전부 먹고, 희에게 뛰어난 바이올린 솜씨 얘기를 들었다며 연주까지 청해서 듣고 돌아갔다.
태주는 그들을 저녁 식사에 초대할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해나가 무섭게 눈을 부릅뜬 채 목을 긋는 시늉을 하며 안된다고 신호를 줘서 참았다.
“어휴. 저 게으름뱅이들.”
“네? 조사단이요?”
“그래. 엘프가 얼마나 게으른지 알아?”
“그래요?”
엘프는 태주가 영화나 책에서 봤던 것처럼 숲을 사랑하는 종족이 맞았다. 아름다운 외양인 것도 맞았다. 다만 그것뿐이었다.
“희와 펫이 피라미드에 다녀온 게 언젠데, 이제야 온 것 봐. 하긴 이것도 엘프치고는 굉장히 빠른 거지.”
“하하하. 그, 피라미드도 순식간에 돌 정도로 빠른 게 아니었어요?”
“하! 정령을 시켰겠지. 엘프는 게을러서 직접 안 움직여.”
태주는 선인장을 살려줬던 단장의 마법을 떠올리고 해나에게 얘기했다.
“마법도 쓰고, 강한 전사라고 했는데.”
“마법도 쓸 줄 알고 전사인 것도 맞아. 그런데 그건 거의 보여주기야. 평소엔 전혀 쓰지 않아.”
엘프는 평소 나뭇가지에 누워 손 닿는 열매를 먹는다. 손 닿는 곳의 열매를 다 먹으면 그제야 다른 나무로 움직인다. 그들은 나무 열매가 익어서 떨어질 때까지도 수확을 안 하고 그냥 둔다. 요정 숲의 과일은 빠르게 자라기 때문에 게으름뱅이인 그들이 굶어 죽지 않는 것이라고 해나가 설명했다.
요정 숲 과일나무도 때때로 열매를 따주고 돌봐줘야 했다. 하지만 엘프는 그 일이 귀찮아서 미루기 일쑤였다. 그래서 그들은 항상 정원사를 반겼다.
정원사들은 본능인지 뭔지 다 익은 열매가 나무에 그대로 맺혀 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했다. 또 비료가 모자란 나무도 못 본 척 넘어가지 못했다. 꼭 비료까지 뿌려 주고 돌아갔다.
그 때문인지 입장을 허가받기 힘든 요정 숲도 정원사에게만은 활짝 열려있었다. 정원사는 따로 허락이 없어도, 언제든지 아무 때나 요정 숲에 방문할 수 있었다.
‘아! 어쩐지 요정 숲은 꺼려지더라. 본능이었나 봐.’
“엘프는 게을러서 직접 요리도 안 하거든. 그런데 또 맛있는 건 좋아한단 말이지. 만약 정원사 씨가 식사에 초대했으면, 저들은 내일도 이 정원에 있었을걸.”
“그 정도예요?”
“이건 정말 새겨들어야 해. 저들은 정말 지독한 게으름뱅이야.”
태주는 해나의 설명을 듣고, 엘프에 대한 정의를 새로 내렸다. 그는 앞으로 엘프를 나무늘보와 동급으로 여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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