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69
68. 고민거리 >
희가 태주에게 조사단이 모아준 전리품을 건네줬다. 요정 숲에서 이동된 것들은 많지 않았는지, 대부분 사막 왕의 피라미드의 물건처럼 보였다. 한껏 기대하는 표정으로 전리품 확인을 시작했던 태주의 인상이 어느새 찌푸려졌다.
“와, 잡동사니만 가득하네. 붕대 조각, 종이, 쇳조각, 이건 뭐지? 끊어진 샌들?”
“호호호. 당연하지. 엘프잖아. 분명 숨겨진 보물 같은 건 찾지도 않았을걸. 몬스터만 잡고 나왔을 거야. 사실 저런 곳은 보물 상자를 열어야 제대론데.”
“아아, 게으름뱅이들이라고 했죠.”
다시 한 번 엘프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 영화에서 그렇게 예쁘고 잘 생기게 나왔는데, 아니 실제로 만난 엘프도 예쁘고 잘 생겼었다. 그런데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게을렀다. 공략을 마치고 보물 상자도 열지 않을 정도로 게으를 줄은 몰랐다.
“어쩌면 엘프는 정령 때문에 더 게을러진 걸지도 몰라.”
“정령이 다 해줘서요?”
“그렇지. 정령들이야 과일 정도만 건네줘도 도와주잖아.”
“그렇죠. 엘프에게 정말 딱 맞는 도우미예요.”
해나는 태주의 도우미라는 말에 웃었다. 그 말 그대로였다. 아마 엘프에게 정령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들은 나무와 같이 말라죽었을지도 몰랐다.
“내일 도시락 싸서 보물을 찾으러 가볼까요?”
“호호호. 좋아. 간만에 솜씨를 좀 발휘해 볼까.”
다음 날 아침, 태주는 일찍 일어나 텃밭의 작물을 수확하고 왔다. 그리고 태산이와 희, 제퍼르를 데리고 피라미드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사실 준비라고 해도 특별한 건 없었다. 가방에 해나가 싸준 도시락과 회복 약 한 병을 챙긴 뒤 빗자루를 손에 쥐었다.
“해나 꼭 빗자루를 가져가야 해요?”
“호호호. 빗자루가 얼마나 쓸모 있는 물건인데. 아마 나에게 감사할걸?”
“알았어요. 다녀와서 얼마나 쓸모 있었는지 알려줄게요.”
2차 피라미드 탐험대, 아니 보물 원정대가 피라미드 안으로 들어갔다. 피라미드는 벽과 바닥이 모두 바위를 깎아 만든 듯한 벽돌로 되어 있었다. 군데군데 횃불이 밝혀져 있는 것은 슬라임 동굴과 같았다.
피라미드 안은 상당히 건조했다. 통로 군데군데에 모래가 뿌려져 있었다. 그 위를 걸을 때마다 모래가 쓸리는 소리가 났다. 태주는 통로의 모래를 보자마자 반사적으로 손에 든 빗자루에 시선을 줬다.
‘설마 통로의 모래를 치우라고 가져가라 한 건 아니겠지?’
“우선 왼쪽으로 쭉 돌아볼까?”
“좋아.”
태주는 이곳에 몬스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장소가 장소인지라 조금 무서웠다. 횃불이 비추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무언가 튀어나올 것처럼 보였다.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그랬다. 그는 조심조심 희를 따라갔다.
“여기, 여기서 해골 병사를 잡았어.”
“그래? 그럼 이 근처에 보물 상자가 있는지 찾아보자.”
태주는 빗자루로 벽을 톡톡 두드리면서 다녔다. 벽 뒤에 숨겨진 공간 같은 게 있으면 소리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냐앙!”
“응? 태주, 상자야.”
태산이 모래더미 속에서 상자를 찾아냈다. 그는 곧장 태산이와 일행이 모여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모래더미에서 상자를 꺼내려 했지만, 바닥에 고정된 것처럼 무거워서 포기했다. 대신 그는 들고 있던 빗자루로 상자 근처의 모래를 쓸어냈다.
“빗자루 엄청 쓸모 있다. 해나가 말 한 대로야.”
“히히. 태주, 빨리빨리.”
희의 재촉에 상자를 바로 열었다. 상자 안에는 화분이 있었다. 무슨 마법이 걸린 건지 알 수 없었지만, 마법 문자가 복잡하게 새겨진 화분이었다.
“이거 이대로 가지고 다니면 깨지겠다. 태산아, 이리 와봐.”
태주는 태산이 목에 매준 목걸이에서 육포를 꺼내고 화분을 넣었다. 육포를 꺼낸 김에 태산이 입에 하나 물려주고 잠깐 간식 시간을 가졌다.
“생각보다 넓은걸. 오늘은 상자만 열고, 다음에 다시 한 번 들어오자.”
피라미드 안에는 상자 외에도 여러 가지 챙길만한 게 보였다. 돌벽을 타고 자란 선인장에 맺힌 용과 비슷한 열매도 있었고, 대추야자 같은 게 자라는 나무도 있었다. 태주는 그런 열매를 빗자루의 자루를 사용해 몇 개 땄다.
“햇빛도 안 드는데 잘 자랐네.”
“먹는 거야?”
“응, 그런 것 같아. 이건 몇 개 챙겨가자.”
희가 처음 보는 과일에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현실에선 선인장 열매인 용과를 차게 식혀 후식으로 자주 먹었었다. 이것도 그런 맛이 날지 궁금했다. 일행은 선인장에서 딴 열매를 잘 챙기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희 요정 숲에서 엘프 본 적 있지?”
“응, 있어.”
“어땠어? 해나 말대로 게으름뱅이야?”
“아니. 비렁뱅이래.”
“뭐? 누가 그런 말을 했어?”
요정 여왕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요정 숲에선 나무에 늘어져 열매만 먹는 그들이 걱정되어 음식을 챙겨주는 요정이 많았다. 그렇게 얻어먹는 엘프를 보던 요정 여왕이 비렁뱅이라고 불렀다는 얘기였다.
‘진짜 게으른가 보다. 생긴 건 안 그랬는데.’
“냐아!”
“상자!”
“우와! 또 태산이가 찾았어? 장하다, 우리 태산이.”
태산이가 또 상자를 찾아냈다. 태주는 제일 먼저 상자를 찾아낸 태산이에게 호들갑스럽게 칭찬을 해주었다. 태산이 기분이 좋은지 ‘고롱고롱’ 소리를 작게 냈다.
상자를 감고 있는 거미줄을 빗자루로 잘 털어낸 후에 열었다. 해나의 장담대로 피라미드 안을 다니면서 빗자루 덕을 톡톡히 보고 있었다.
“이건 뭘까? 미라의 관처럼 생겼는데.”
“미라?”
“응. 크기는 작지만, 미라의 관 같아. 예전에 박물관에서 본 적 있어.”
“열어 볼까?”
“음. 으음. 음. 이건 여기에 두고 가자. 이상하게 기분이 별로야.”
그는 어쩐지 이 미라의 관을 가져가면 굉장히 피곤해질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관에서 미라가 나온다고 상상하자, 만지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보물 상자 안에 다시 관을 넣고 뚜껑을 꼭 닫았다. 자물쇠가 없는 게 조금 아쉬웠지만, 근처에 있던 무거운 돌로 상자를 눌러 놓으니 마음이 놓였다.
상자에서 돌아설 때 달그락 소리가 들린 것 같았지만, 무시하고 바쁘게 발을 놀렸다. 그는 돌아보려는 태산일 말리면서 그대로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일행은 느긋하게 피라미드를 탐색했다. 도중에 도시락도 먹고, 간식도 먹으면서 가벼운 기분으로 돌아다녔다. 중간중간 복잡한 길이 나왔지만, 미로에 익숙한 태산이 덕에 금세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태주 일행은 천천히 통로를 지나며 곳곳에 숨겨진 상자를 전부 찾아냈다. 해골 병사가 있던 흔적인 모래무더기를 찾으면 그 근처에는 상자가 있었다.
엘프 조사단은 정말 해골 병사만 처리하고 갔다. 상자에는 건드린 흔적이 전혀 없었다. 궁금해서라도 한 번은 열어 볼 법했는데, 상자는 거미줄과 먼지에 뒤덮인 채 그대로 놓여있었다.
일행은 좀 긴 산책을 한 것 같은 기분으로 피라미드에서 나왔다. 이미 공략이 끝난 빈 피라미드를 돌아본 것뿐이지만, 다녀온 보람이 있었다.
오늘 아침까지도 기운이 없던 태산이 피라미드를 돌아보고 나온 지금은 ‘냥냥’ 거리면서 발랄하게 걷고 있었다. 통통 뛰는 것처럼 가볍게 걷는 걸 보니 만족스러운 산책이었던 것 같았다.
*
[거울 상자], [지도 조각], [마법 화분], [갈고리 왕홀].정원 식구들은 탐색의 성과물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구경하고 있었다. 미라의 관처럼 두고 온 것도 있어서, 생각보다 물건이 많지는 않았다. 그래도 마법이 걸린 물건이 두 개나 되어서, 잠깐 산책한 성과치곤 나쁘지 않았다.
가져온 물건 중 거울 상자와 지도 조각은 이름 그대로의 물건이었다. 거울 상자는 화려한 황금 거울을 담은 상자였고, 지도 조각은 어느 지역을 그린 지도의 조각이었다.
마법 화분은 겨울 작물을 하나 키울 수 있는 화분이었다. 화분은 사막 같은 더운 지역에선 꽤 귀했을 것 같았다. 겨울 작물 재배를 못 하게 되어 아쉬웠던 태주는 이 화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은 갈고리 모양의 왕홀이었다. 영화나 사진에서 파라오가 들던 것과 같았다. 왕홀은 황금으로 만든 듯 묵직했다.
[갈고리 왕홀(희귀)사막 왕의 위엄이 서려 있는 홀입니다.
한 달에 한 번 사막의 군세를 소환할 수 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병사를 소환할 수 있다는데요. 해나, 해골 병사 본 적 있죠? 혹시 병사가 나무 열매를 딸 수 있을까요? 아니면 나중에 정원 꾸밀 때 불러서 부탁해도 될까요?”
“해골 병사가 정원 일을? 안 될 것 같은데.”
“그럼, 혹시 별똥별은 잡을 수 있을까요?”
“그것도 무리일 것 같은데.”
“에이. 이건 상점에 팔아야겠어요.”
그는 사막 왕의 군세를 소환할 수 있는 왕홀을 상점에 팔기로 했다. 해나는 그런 정원사를 말리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도 왕홀은 정원사에게 전혀 쓸모없는 마법 물품이었다. 차원 용병 같은 전투를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나 필요한 것이었다.
“해나, 이 열매 알아요? 선인장에서 따왔어요.”
“열매!”
“당연히 알지. 차게 해서 먹으면 아주 맛있어. 정원사 씨 얼음수정을 부탁해.”
태주는 해나가 말한 얼음수정을 따러 갔다. 얼음수정은 생각보다 자주 쓰이는 열매였다. 허브 티를 만들 때도 쓰였고, 차가운 음식을 만들 때도 쓰였다. 그는 가끔 얼음수정을 한 바구니씩 따서 회오리 동굴의 바람 정령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태산이, 순찰 가는 거야?”
“냐앙!”
“하하. 그래, 잘 다녀와. 육포 꺼내는 건 알지?”
“냐아앙.”
나무 사이로 지나가는 태산이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대답도 잘하는 게, 확실히 기운을 차린 것 같았다. 사실 그는 얌전해진 태산이 낯설었었다. 사고 칠 때마다 태산이 좀 얌전하고 말을 잘 듣게 되길 바랐지만, 충격을 받고 기가 죽어서 그렇게 되는 건 사양이었다. 차라리 활기차게 말썽을 부리고 다니는 게 백배 나았다.
갑자기 눈이 내리게 되는 바람에 준비가 부족해서 당황했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나쁘지 않은 경험이었다. 어느 순간 정원을 돌보는 것을 즐기기보다는 해치워야 하는 일감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예기치 못한 일이었지만, 그런 흐름이 한순간에 끊어졌었다. 매일 반복적으로 하던 정원 일을 한동안 쉬고 나니, 처음 느꼈던 두근거림이나 설렘 같은 감정들이 다시 느껴졌다.
‘내 손으로 심은 씨앗이 자라서 열매가 되기도 하고 꽃이 되기도 하는 게 신기했었는데, 어느샌가 무감각해져 버렸었어. 정원 일을 진짜 일로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
정원을 얻고 현실 시간으로 1년, 정원에서 보낸 2년을 합치면 3년 정도의 시간이었다.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익숙해진 정원 일이 조금 지겹게 느껴졌었나 보다. 태산이라는 말썽꾼 덕분에 벌어진 일이었지만, 다시 두근거리는 마음이 생긴 게 기분 좋은 태주였다.
*
촬영도 없고 다른 스케줄도 없었다. 도깨비 왕 배역이 인기를 끌어 홍보 일이 생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유로웠다.
‘아직 조연이라 그렇지 뭐. 주연 없이 혼자 행사가 들어올 정도는 아니지.’
사실 회사에서 많이 쳐내고 있는 걸 모르는 태주의 여유였다.
“태산이 산책 빼고 할 일이 없네.”
그는 느긋하게 아침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오랜만의 휴일에 방도 정리하고 김은형 팬에게 받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선물도 정리했다. 마지막으로 우편물 등 종이류를 모아놓은 바구니를 앞에 둔 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게 정말. 쓰기 참 그런 물건이네. 후우.”
태주는 얼마 전에 뿅 망치를 휘둘러 그에게 꼭 필요한 물건을 얻었다. 아주 바라던 것이었지만 실제로 얻고 나니 쓸 수 없었다.
[예술 체육요원 자격 생성권(보충역)]“예술 체육요원을 쓰면 국내나 국제 대회 입상기록이 생긴다고? 쓸 수도 없는 걸 왜 준거야. 고민만 되게.”
예술 체육요원 티켓을 쓰면 태주의 상황에 맞춰, 바이올린이나 클래식 기타 대회의 수상자 혹은 연극대회의 연기대상 수상자가 된다. 정원의 물품이니 써도 문제가 되진 않겠지만, 그에겐 그저 애물단지였다.
“일 년에 많아야 네다섯 명. 그나마 연극은 전멸. 이런 걸 쓸 수나 있겠냐고. 게다가 해당 직종에 종사해야 하는 기간도 있는 것 같았는데.”
볼수록 골치 아픈 티켓이었다. 욕심은 나지만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보였다. 어쩌면 정원의 물품이니 해당 업계에 종사해야 하는 시간이나 봉사시간 등에서 문제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 믿고 사용하는 건 모험이었다.
“연기 신청하고 회귀 전 입대한 시기에 다시 가는 게 나을 것 같네.”
회귀 전 태주는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군 생활을 했다.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르는 보직이었는데, 영외업무를 하는 곳이라 얼굴을 보고 뽑은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 보직이었다.
“얼굴 보고 뽑은 게 맞지. 면접도 봤으니.”
문제는 지금 한창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이었다. 회귀 전엔 1년 뒤에 군대에 갔었다. 그 자리에 다시 배치받으려면 때를 잘 맞춰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던 그는 곧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다. 지난 1년 자신이 바꾼 것이 많았다. 데뷔 시기가 달라졌고, 세상에 나오지 않은 영화를 두 편 찍었다. 군 생활에도 변화가 있을지 몰랐다.
“아아. 원래 하던 대로 학교 등록하고 휴학하고 그랬어야 했나?”
그건 솔직히 안 내켰다. 학교에 연극영화 관련 학과가 없기도 했다. 있다 해도 예대라 옮기기 힘들었겠지만, 있었다면 그렇게 산뜻하게 포기하진 않고 며칠 정도는 더 고민했을 것이다. 물론 등록은 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회귀 직후인 그 시기엔 내키지 않는 일은 그 무엇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16년을 노력한 것들이 한순간에 날아가고 계획하던 일들이 모두 엉망이 되었다. 표 내진 않았지만 허무한 감정이 심했었다.
그리고 신비한 꿈의 정원도 생기고, 그곳에서 운 좋게 집과 현금을 얻어서 든든하기도 했다. 소설에서 본 것처럼 회귀자의 이득을 챙겨볼까, 하는 얄팍한 속셈도 조금 있었다. 물론 생각보다 아는 게 많지 않아, 그것도 쉽지 않다는 걸 금세 깨달았다.
“에효. 이게 문제가 아니야. 딱 맞춰 입영신청을 하고 그 보직을 다시 받아야 해.”
영외업무, 사복, 스마트폰. 이 세 가지가 허용되는 곳은 정말 배치받기 힘든 곳이다. 사실 저 세 가지가 아무리 좋아도 한 번 군 복무를 했는데 또 해야 하는 상황이 편하진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태주는 쓰지도 못할 병역면제권보단 차라리 보직선택권 같은 게 낫지 않나 고민했다. 그런 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 1년, 별똥별 수집을 멈출 수 없는 이유가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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