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0
69. 팬과 서포트 >
본 방송이 시작된 후로 촬영 일정에 관한 간섭은 사라졌다. 현장은 한민혁 감독의 지휘 아래 빠르게 안정을 찾았다. 태주는 촬영장의 질서가 잡힌 것을 기회로 분위기도 좀 바뀌었으면 하고 바랐다.
“지헌 형. 형네 팬클럽에선 서포트 안 와요? 김은형 씨네는 서포트 못 해서 난리래요.”
“넌 촬영 얼마 안 남았잖아.”
“저야 마지막 화 분량은 미리 찍어뒀으니까요. CG 처리 필요해서 몰아서 다 찍었죠.”
“뭐냐? 왜 혼자 찍은 것처럼 그래? 같이 찍었거든.”
“하하. 하여튼 보름 좀 넘게 남았잖아요. 간식 차 한 번 쏘세요.”
박지헌은 자신에게 이렇게 운을 떼는 태주의 얼굴을 슬쩍 봤다. 별다른 사심이 있어 보이진 않았다. 촬영장 분위기만 신경 쓰고 있다는 게 눈에 보였다.
이제 보름 남은 촬영이었다. 출연진도 연출진도 표가 날 정도로 지쳐있었다. 분위기라도 가볍게 바뀐다면 촬영을 마무리하기 훨씬 수월할 것 같았다.
“알았다, 자식. 근데 넌 피부가 왜 이렇게 좋아? 남들은 다 피로에 찌들었는데, 넌 왜 이리 쌩쌩해?”
“젊어서?”
“어쭈.”
“하하하.”
강화를 받은 이후로 피부 상태가 굉장히 좋았다. 게다가 촬영의 피로는 그날그날 정원에서 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정신적, 육체적 피로가 쌓일 일은 그다지 없었다.
그런 그와 다르게 김은형은 피로가 눈에 보일 정도로 쌓여가고 있었다. 태주는 그가 힘들어하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도울 수 없었다.
‘자기한테 맞는 방법을 찾아야지. 나야 연기 시작했을 때부터 이 부분이 문제 된 적이 없어서, 도와줄 수도 없고.’
각 씬에 필요한 감정을 그때그때 바꾸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리고 잦은 감정의 변화만큼 한 씬의 감정을 긴 시간 유지하는 것도 힘들다. 김은형이 지금 겪는 문제는 감정을 긴 시간 유지하는 것과 그 감정에서 빠르게 벗어나는 것이다.
배역에 몰입을 잘하는 편인 김은형은 감정을 유지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거기서 벗어나기 힘들어했다. 초반에 그걸 눈치챈 태주는 그에게 스타라이즈의 곡을 반복해서 듣게 해봤다. 효과는 그저 그랬다. 그래서 지금 김은형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방법을 찾느라 애를 쓰고 있었다.
“쟤는 이제 배우 태가 난다.”
“김은형 씨요?”
“어. 괜찮아. 좀 더 다듬어야겠지만, 소질 있어.”
“네, 재능 있어요.”
태주가 흐뭇하게 웃으면서 김은형을 보는 모습을 보고, 박지헌은 헛웃음을 흘렸다. 김은형보다 다섯 살이나 어린 녀석의 시선이 마치 조카의 재롱을 보는 삼촌 같아서였다.
“네가 연기하는 것 봐줬었지?”
“그 정도는 아니고요. 대사 맞춰준 정도예요.”
“하여간. 너도 참 특이해.”
말 그대로 특이한 녀석이었다. 제일 막내면서 하는 행동은 마치 촬영장의 주인 같았다. 이곳저곳 두루두루 살피며 은근히 촬영장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이끌고 있었다. 하는 모양새만 보면 신인이 아니라 주연배우 같았다.
“너 김윤선 선배님이랑 영화 찍었다고 했지?”
“네, 5월에 개봉해요. 시사회 초대할게요. 보러 오세요.”
“어. 잊지 말고 초대해.”
연예인에겐 영화 시사회 참석하는 것도 일이었다. 박지헌도 태주도 그 사실을 잘 알았지만, 가볍게 웃으면서 약속을 잡았다.
*
김은형의 팬클럽에서 밥차 서포트가 왔다. 박지헌의 간식 차가 다녀간 후, 태주가 넌지시 김은형에게 서포트를 받으라고 얘기했다. 기회를 살피고 있었던 듯 바로 얘기가 오가고, 오늘 이렇게 밥차가 왔다.
“잘 먹을게요. 스타라이트 여러분.”
“꺄아. 저희 팬클럽도 아세요? 우리 은형이 잘 부탁드려요.”
“물론이죠. 그런데 저한테 부탁 안 하셔도 김은형 씨는 혼자서도 잘하세요.”
“호호호. 감사합니다. 여기요, 배우님 이것도 받으세요.”
팬클럽에서 준비한 선물은 아까 받았는데, 이건 다른 것 같았다. 그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웃으며 고맙다 인사했다.
김은형의 SNS에는 태주 얘기가 가득했다. 태주의 팬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칭찬 일색의 글을 매일 올렸다. 연기를 봐주고 다른 배우를 소개해 준 일. 촬영 팁을 알려준 일 등을 매일 올렸다. 덕분에 김은형의 팬 사이에서 태주는 은인 취급을 받고 있었다.
“이거 김은형 씨한테 전하라는 건 아니죠?”
“아하하. 아니에요. 배우님 드리는 것 맞아요.”
“너무 많이 주셔서 놀랐어요.”
“앞으로도 으뇽뇽 잘 부탁드려요.”
“으뇽뇽?”
태주가 으뇽뇽에 관해 묻기도 전에 김은형 팬들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잽싸게 사라졌다. 으뇽뇽은 아마 팬들이 김은형을 부르는 별명 같았다. 그런 팬들이 귀여워 그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풀렸다.
견우가 인증샷을 찍은 후에야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감사인사도 해야 했지만, 개인적인 선물은 받지 않는다는 얘기를 해야 했다. 이번엔 얼결에 받았지만, 원칙적으로 이런 선물은 받지 않는다.
식사자리에서 미나가 주변에서 듣고 온 얘기를 들려줬다. 이번 현장의 스태프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다녔다. 초반의 험악한 분위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미나 역시 마찬가지, 여자 스태프 사이에서 도는 얘기들을 가끔 전해 주곤 했다.
“오 작가님, 데뷔 초기에 SBC랑 헐값에 세 작품을 계약했나 보더라. 그래서 이 악물고 계약 터는 거래.”
“네? 전작은 해외에도 판매되지 않았어요?”
“그랬지. 그런데 오 작가님은 얼마 못 받았다더라. 이게 마지막 계약 작품이래.”
어쩐지 그 자존심 빼면 시체인 사람이 참는다 했다. 자신이 알던 오수현 작가라면 엎었어도 진작 엎었을 텐데, 역시 참는 이유가 있었다. 자신이 데뷔하기 전에 이런 사정이 있었다는 건 처음 알았다. 회귀 전 오수현 작가가 케이블하고만 작품을 했던 이유가 있었다.
“제 데뷔작은 참 사연이 많네요. 그나마 시청률이 잘 나오는 게 유일한 위안이랄까요.”
“그러게 말이다. 사연 없는 무덤 없다더니, 16부작 미니시리즈에 얽힌 게 뭐 이리 많니.”
시놉시스를 보자마자 꽂혀서 골랐는데, 골라도 어쩜 이런 골치 아픈 작품을 골랐는지. 한숨만 나왔다. 그나마 회귀 전처럼 망하지 않고, 시청률이 상당히 잘 나오는 게 불행 중 다행이었다.
*
도깨비 무사. 초반 촬영장 굴러가던 꼴도 그렇고, LT에서 내놓은 엉성한 해명기사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 별로 없었다. 하지만 시청률은 예상했던 것보다 잘 나왔고, 소속 배우의 인지도는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트리즈 사무실 안에는 드라마의 성적과 상관없이, 분노한 남성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왜! 왜! 왜에? 우리 태주 씨가 뭐가 부족해서? 그 얼굴에? 그 연기력에, 대체 왜 먹는 장면만 화제가 되는데?”
“크크크. 그것 보세요. 제가 말했잖아요. 태주 씨는 우리 손에서 어떻게 안 된다고 했잖아요.”
김도진 실장. 트리즈에서 홍보를 담당하는, 태주를 길거리 캐스팅한 그는 이번에 정말 태주의 이미지 작업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초반에 그가 열심히 띄워놓은 이미지는 드라마가 현대로 넘어간 후에 전부 바뀌었다.
“누군지 내가 잡아서 고소한다. 먹깨비? 태주 씨 얼굴에 먹깨비가 말이 되냐고. 게다가 그거 표절이야. 옛날에 만화에서 나온 거잖아.”
“그게 무슨 표절이에요. 먹신이랑 도깨비 합쳐서 나온 건데.”
“에이씨. 진짜 뭘 그렇게 맛있게 먹어서는.”
드라마 초반 커뮤니티를 예민하게 주시하도록 만든 동영상이 있었다. 도깨비 왕과 무사, 무사의 연인을 삼각관계로 보이도록 편집을 한 동영상이었다.
무사의 연인을 사이에 둔 삼각관계라면 괜찮았는데, 무사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처럼 보이게 편집된 동영상이었다. 회사에서 그 동영상을 발견한 즉시 내리게 하고 사람들의 반응을 주시했다.
하지만 곧 모두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방영 2주 차에 들어서서 태주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모든 사진과 영상이 먹는 모습만 올라오는 사태가 벌어졌다.
포털의 검색어도 도깨비 왕 XX 칩, 도깨비 왕 XX 치킨 같은 게 차지했다. 어찌나 맛있게 잘 먹던지, 음식 CF가 벌써 세 개나 들어왔다. 단가가 낮아서 거절했지만, 속이 쓰린 그였다.
“내가 진짜. 이 일 시작한 후로 이렇게 마음대로 안 되는 배우는 처음이야.”
“그런데 xx 치킨 매출 20% 오른 건 정말 대단하지 않아요?”
“대단하기야 하지. 근데 그거 태주 씨가 광고하는 거 아니잖아. 김은형 씨네 스타라이즈 광고지. 그러고 보니 왜 그쪽 PPL 들어온 걸 우리 태주 씨가 한 거야?”
“잘 드셔서?”
“악! 진짜! 대체 왜… 왜 그렇게 잘 드시는 거냐고!”
드라마 초반 김 실장은 태주의 이미지를 위엄있고 우아한 왕의 이미지로 띄우기 위해 노력했었다. 옥좌에서 오만하게 신하를 내려다보던 모습이나 무사에게 위엄있게 벌을 내리던 모습을 띄우려 했다.
태주의 이미지 작업은 매번 미묘하게 어긋났었다. 그걸 아는 부하 직원은 ‘우리 손을 이미 벗어났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홍보뿐이다.’라며 그를 말렸지만, 그는 작업을 강행했다. 사실 그에겐 다른 노림수가 있었다.
“의 남주 영민 왕은 태주 씨가 해야 하는데. 진짜로 이게 영상화될 거라는 얘기가 있다니까. 이게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 젊은 왕 하면 딱 태주 씨가 떠오르게 미리미리 밑 작업을 해둬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고요. 치킨 씬에 다 밀렸는데 왕의 위엄은 무슨 위엄이에요. 애초에 도깨비 왕이 그런 캐릭터도 아니잖아요.”
“나도 알아! 답답해서 그런다, 답답해서. 왜 태주 씨 이미지는 맨날 이상하게 가는 거냐고! 대체 멧돼지는 왜 잡고, 치킨은 왜 그렇게 잘 먹는 거야!”
“진정하세요, 실장님.”
웹 소설 ‘고정하세요, 전하!’는 현대의 여대생이 과거로 가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코믹하게 푼 작품이다. 그 작품 속 여대생과 사랑에 빠지는 왕 역을 태주가 맡길 바라서 작업을 했던 김 실장이었다.
아직 공론화되지는 않았지만, 그 웹 소설 작가에게 이름 있는 제작사가 공을 들이는 중이라는 걸 업계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리미리 왕 역에 태주의 이름이 거론되게 작업을 해두려던 것이었는데, 드라마에서 먹는 씬을 너무 잘 찍은 태주 때문에 모든 것이 수포가 되었다.
사랑스러운 희가 행복하게 먹는 모습을 본인 생각보다 더 잘 배워온 태주가 일으킨 문제였다.
*
태주의 팬카페. 그가 고등학교 1학년 일반인이었을 때부터 그를 좋아하던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지금은 그 규모가 상당히 커졌다. 신규 회원 가입도 많이 늘었고, 기존 회원들의 활동도 활발했다.
얼마 전부터 견우와 팬카페 회장이 공식 팬카페로 지정하기 위해 게시판 정리를 하는 중이었다.
지금 그곳의 게시판은 몇 가지 이슈로 시끌시끌했다.
[공지] 팬덤명 공모 중입니다.+999 [트리즈 서포트 신청 좀 받자.]+99 [스타라이트 도깨비 무사 서포트 후기 링크]– 내 배우 서포트 후기도 아니고, 남의 가수 서포트 후기 링크 올리는 거 솔직히 별로지만, 자료가 이거밖에 없어. ㅠㅠㅠㅠ
ㄴ ㅋㅋㅋ 아, 미쳐. 스타라이즈 팬클 링크.
ㄴ 내 배우 얘기를 왜 스타라이즈 팬클에서 TT 나만 슬픈 거?
ㄴ 이런 말 하기 그런데, 공식 SNS 보다 김은형 개인 SNS에 사진이 더 많아 ㅋㅋㅋ
ㄴ 서포트 신청은 언제부터 받을 건지. 일 좀 하자 쫌.
[우리 왕님 까지 마라. 진지하다.]– 도무갤에서 왕님 깔 때, 나도 별로 할 말 없었다. 인간 좀 구해달랐다고 뜬금 벌주는데 솔직히 저게 뭔가 했다. 그런데 오늘 거 보고 진짜 오수현 작가한테 뒤통수 세게 맞은 거 같아. ㅋㅋㅋ 강인이 왕궁 보물창고 털어서 애인 갖다 줬어! 강인아 왕님 보물창고를 왜 털어!!
ㄴ 왕님 뜬금없이 등장한다 했는데, 도둑놈 잡으러 온 거였어. ㅋㅋㅋ
ㄴ 신하들 몰래 데리러 왔는데, 거기다 대고 인간 구해달라니 나 같아도 빡 치겠다.
ㄴ ㅇㅇㅇㅈ. 근데 벌 내린 것도 신하들이 큰 벌줄까 봐 일부러 그런 거 같던데.
[왕님 숲카 다시 나왔으면 좋겠다.]– 난 갠 적으로 왕님 숲카 나왔을 때가 젤 좋았음. 진혁 아재랑 케미 좋았음. 박지헌보단 진혁임.
– 진혁 아쟄ㅋㅋㅋㅋ
– 난 정글의 규칙. 멧돼지 사냥ㅋㅋㅋㅋ
– 정글의 규칙2222
팬카페 게시글을 확인하던 우 팀장의 표정이 구겨졌다. 멧돼지 이슈는 잊을만하면 한 번씩 누군가 꺼내서 그녀를 괴롭혔다.
사실 태주에게 서포트를 보내고 싶은 마음은 회사가 더 했다. 분위기가 좋지 않아 기다리다 보니 어느 순간 박지헌과 김은형에게 순서를 빼앗겼다. 이틀 후면 태주의 촬영 일정이 마무리되니 이제는 서포트 차량을 보내도 의미가 없었다.
“태주 씨 좋아하는 카페 차 보내고 기사 좀 낼까 했더니. 눈치들도 좋아. 어떻게 그 타이밍에 서포트를 받는지….”
괜찮은 기삿거리를 놓친 걸 아쉬워하는 그녀였다.
드라마나 영화는 주요한 배역의 캐스팅을 일찌감치 끝낸다. 도깨비 무사의 왕 역할도 태주에게 6개월 전에 오디션 제의가 왔었다.
이제 3월, 드라마는 한창 방영 중이지만, 그녀는 태주의 차기작을 찾고 있었다. 그가 가을에 방영될 드라마에 출연하길 바라서 지금 부터 찾아둬야 했다.
“가을에 방영될 드라마는 주연으로 찾고. 상황 봐서 가능하면 신인상을 노려봐야지.”
“하하. 우 팀장. 너무 멀리 생각한다.”
“호호호. 들으셨어요? 그럼 어때요? 우리 배우님이 부족한 게 뭐가 있어요? 잘 생겼지, 성격 좋지, 연기력은 말할 것도 없잖아요.”
“거기다 멧돼지도 잘 잡고?”
“그놈의 멧돼지!”
그녀는 자신을 놀리는 김 실장을 일별하고 다시 일을 시작했다.
“오랜만이에요, 감독님 네, 네 그럼요 영화도 곧 개봉해요. 5월에요. 네, 네. 그럼 다음에 한 번 찾아뵐게요.”
“여보세요. 최 작가님? 방송 보셨어요? 프로필이요? 지금 보내드릴게요. 노래요? 통화 끝나면 바로 노래 선물 보내드릴게요. 가수 못지 않으세요.”
“그럼요, 프로필 보냈어요. 받으셨죠? 하반기 작품은 아직이죠. 우선 드라마 쪽으로 생각하고 계세요. 네, 네.”
우 팀장은 이번 도깨비 무사처럼 골치 아픈 작품을 미리 거르려 여러 인맥을 동원하고 있었다. 연락하고 연락받고, 자료를 받고 보내고. 그녀는 자신의 배우에게 좋은 작품을 안겨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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