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1
70. 종방연 >
태주는 사무실에서 받아본 광고 목록을 보고 애매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자신이 드라마에서 찍은 먹는 씬이 화제가 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광고가 거의 음식 쪽으로 들어올 줄은 몰랐다. 농담처럼 먹는 광고가 들어올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우유, 피자, 도넛, 아이스크림, 만두. 많네요.”
“음식 광고 외에 화장품, 주얼리도 있어요. 의류 쪽은 스포츠 웨어부터 해외 SPA 브랜드, 아웃도어 브랜드까지 거의 모든 종류가 들어왔어요. 물론 슈트는 제외했고요.”
“아이스크림, 우유는 하고요. 음, 화장품이랑 주얼리도 할게요. 의류는 팀장님이 골라주세요.”
한동안은 광고만 찍어야 할 것 같았다. 회귀 전엔 연차가 쌓인 후론 광고를 일 년에 두세 편만 찍었지만, 데뷔 초엔 많이 찍었었다. 지금보단 단가가 조금 낮았지만, 음식 종류를 빼면 종류도 비슷했다.
‘사고 싶은 것도 있으니, 올 한 해는 바짝 벌어볼까?’
그는 최근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을 보고 있었다. 부지가 넓어 태산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곳을 찾는 중이었다.
온종일 뛰어다녀도 지치지 않을 정도로 체력이 좋은 녀석인데 현실에선 잠깐의 산책에 만족해야 했다. 또 바위산을 오르내리는 걸 좋아하는데 현실에선 켓 타워에서만 지냈다. 그 모습이 안타까워 이사를 생각하는 중이었다.
‘무인도 같은 걸 사면 태산이가 위장 없이 다녀도 되지 않나?’
“태주 씨?”
“네? 아, 죄송해요.”
차기작에 관한 얘기를 나누던 중이었는데, 집중하지 못하고 계속 딴생각을 하는 태주를 우 팀장이 일깨웠다.
“선율 홍보를 제외해도 가을 드라마까지 두 달 이상 비는데, 바라시는 게 있으세요?”
“이 시기에 다른 분들은 예능에 많이 나가시죠?”
“그렇죠.”
“음. 그럼 전 조연으로 한 번 더 들어갈까요?”
예능이 아닌 조연으로 짧게 출연할 작품을 찾아보려는 태주를 우 팀장이 말렸다. 주연으로 출연하는 영화가 곧 개봉하는데 굳이 조연을 한 번 더 맡을 이유가 없다는 게 그녀의 의견이었다. 그도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사실 지금 그에겐 빠르게 주연급으로 성장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자잘한 문제들에 얽매이지 않으려면 그만한 위치에 서면 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처럼 주변 상황에 휘둘리게 된다.
“차라리 예능에 나가는 게 낫겠어요.”
“솔직히 예능 섭외도 많이 들어와요. 이 배우님이 고르셔도 될 정도예요.”
“혹시 정글의 규칙도 있나요?”
“뭐라고요?”
“어, 팀장님이 추천해주시는 것으로 할게요.”
회사로 들어온 대본과 시놉시스들을 챙겨서 돌아왔다. 슬슬 차기작을 골라야 했다. 지금은 쉴 때가 아니었다. 바짝 인지도와 몸값을 올려두어야 할 때였다.
태주가 섭외 요청을 받은 예능 목록에는 정말 그가 골라도 될 정도로 많은 프로가 있었다. 우 팀장에게 추천을 받겠지만, 자신도 한 번 찾아보는 게 좋을 거 같았다. 예능 중 언제나 인기 있는 음악, 음식, 여행 이 세 가지가 포함된 것을 찾으면 될 듯했다.
“이거 좋아 보인다. 미식 여행가. 맛있는 걸 먹으면서 여행하면 되는 건가?”
적은 예산으로 해외를 여행하는 예능도 있고, 오지에서 생활하는 것도 있었다. 이런 예능들은 좀 고생스러울 것 같았다. 그래도 만약 태산이와 같이 나갈 수 있는 프로라면 한 번 고민해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
광고 촬영장 안에는 이미 사람들이 모두 도착해 준비하고 있었다. 태주와 일행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서며 이곳저곳에 인사했다.
“우선 분장 먼저 받으시고요. 아동 출연자 도착하면 알려드릴게요.”
“네, 부탁드려요.”
스태프가 나간 사이 태주는 메이크업을 받고 옷을 갈아입었다. 우유 광고에선 진리처럼 여겨지는 흰색 의상으로 갈아입은 그의 옷매무새를 미나가 가다듬어 주었다.
“누나, 제가 애기 우유까지 뺏어 먹게 생겼어요?”
“푸하. 콘셉트잖아.”
“그렇긴 한데, 혹시 사람들한테 그렇게 보이나 해서요.”
“그렇게 안 보여. 나중엔 결국 애기한테 따라주잖아.”
이번 우유 광고는 태주와 아동 출연자 한 명이 같이 나온다. 나이 차 많은 형제가 식사 중 마지막 남은 우유를 두고 티격태격하다가 형이 동생에게 양보하는 내용이었다.
광고 회사도 광고주도 익숙한 이 콘셉트에 태주를 넣어 보곤 바로 마음에 들어 했다고 한다. 덕분에 태주는 자신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난 우유 광고라서 순수하고 신선한 이미지로 갈 줄 알았어요.”
“호호호. 지금 네 이미지는 그거에서 조금 벗어났지.”
태주가 모든 준비를 마치고 나자 아동 출연자가 도착했다. 잠시 기다리자 옷을 갈아입은 아이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햇살 유치원 5살 김동우입니다.”
“와, 동우 정말 멋지다. 인사도 또박또박 잘하네. 형은 이태주라고 해. 오늘 잘 부탁해.”
“히, 네.”
“그럼 같이 감독님한테 가서 오늘 어떻게 찍을지 얘기 들어볼까? 손잡을래?”
“네.”
뽀얀 볼에 곱슬머리를 한 동우를 데리고 오늘 찍을 내용을 확인하러 갔다. 이미 여러 차례 듣고 확인했지만, 본 촬영에 앞서 한 번 더 꼼꼼하게 확인하는 게 나았다.
나이 차 많이 나는 형제 두 사람이 세트에 마련된 식탁에 앉아있었다. 빈 잔을 앞에 두고 잠시 서로 눈치를 보다, 형이 재빠르게 우유를 집어 들었다. 비어있는 자신의 잔에 따르려던 형이 멈칫했다. 손이 느려 우유를 잡지 못한 동생이 울상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모습에 형이 아쉬운 얼굴로 자신의 잔에 따르려던 우유를 아이의 잔에 따라주었다.
“컷. 태주 씨 표정이 너무 얄미워요. 조금만 가볍게.”
“네, 알겠습니다.”
화면 속 그는 우유를 먼저 집고 동생에게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어 보이는 장면에서 과한 감정을 보여줬다. ‘내가 먼저 집었지.’ 정도로 보여줘야 하는데 너무 아이를 놀리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사실 이것은 태주가 고의로 낸 NG였다. 동우는 나이보다 연기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아직 아이라선지 표현을 머뭇거리고 있었다. 그는 그걸 알아채고 일부러 동우의 감정을 끌어내려 과장되게 표현한 것이었다.
“동우는 흰 우유 좋아해? 형은 흰 우유도 좋은데 사실 딸기 우유를 더 좋아해. 동우는?”
“초코 우유.”
“초코 우유도 맛있지. 이게 초코 우유면 좋겠다. 그치?”
시간이 지나자 동우는 세트가 조금 익숙해진 듯했다. 태주는 반복되는 촬영 중간중간 동우의 긴장을 풀어주려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그의 노력이 통했는지 예정된 시간 안에 순조롭게 촬영을 마칠 수 있었다.
이제 세트에서 지면 광고용 사진만 촬영하면 모든 광고 촬영이 끝난다. 물론 계약된 홍보 일정이 따로 있지만, 그건 나중에 할 일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동우 오늘 잘했어. 다음에 또 보자.”
‘꽉.’
“하하하.”
광고 촬영을 하는 동안 태주가 편해졌는지, 동우가 꽉 안겨왔다. 그는 자신의 품에 가득 안긴 동우가 귀여워 웃음이 절로 나왔다.
“매니저님. 동우랑 저랑 사진 좀 찍어 주세요.”
“하하. 네. 이리로 오세요.”
견우에게 사진을 부탁한 후에도 태주는 동우를 안고 다니면서 스태프들과 사진을 찍었다. 동우 역시 태주에게 얌전히 안겨서 사람들과 인사했다. 그런 두 사람의 흐뭇한 모습이 광고 촬영현장 메이킹 카메라에 고스란히 찍히고 있었다.
*
도깨비 무사가 인기리에 방영 중일 때 태주는 계약한 광고 촬영에 매진했다. 봄 시즌 특별 기획 상품의 화보도 여러 개 찍고, 다른 콘셉트 화보도 많이 찍었다. 특히 의류 쪽은 계열별로 한 가지씩 화보를 찍었다.
이미 그가 찍은 것 중 우유 광고는 방송에 나가고 있었다. 1분 남짓으로 편집된 메이킹 영상도 여러 사이트에 올라가 화제가 되었다. 아이가 귀여워 어쩔 줄 몰라 하는 태주의 표정이 사람들의 호감을 많이 샀다.
실질적인 매출이야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지만, 광고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좋은 것만은 사실이었다.
“내가 먹는 거로 광고계의 블루칩 취급을 받을 줄은 몰랐는데.”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태주는 이내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했다.
“회귀 전에 멋진 건 많이 해봤으니, 이번엔 이런 것도 괜찮을 것 같네.”
회사에선 태주를 고급스럽고 귀족적인 이미지로 보이고 싶어 했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그는 솔직히 지금 이 상황이 마음에 들었다. 재미도 있었고.
‘기대하는 이미지가 다양해지는 만큼 배역을 맡기 편해질 테지.’
어차피 곧 드라마가 끝나면 도깨비 왕의 이미지도 얼마 못 간다. 특히 선율은 도깨비 왕과는 전혀 달랐다. 사실 그는 악하거나 잔인한 이미지의 배역으로 데뷔하는 것만 아니라면 전혀 상관없었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에 관한 생각은 그만두고 내일 열릴 종방연에 대해서 떠올렸다. SBC 안에서 한 감독과 오수현 작가를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는 방 CP 얘기는 알고 있었지만, 그 사람 정보가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방 CP, 대체 누구지? 분명히 LT 제작사 대표이사는 심 씨였는데. 중국인이라는 말도 있었고. 뭐 상관없지.”
그는 내일 종방연에 챙겨갈 물건을 한 번 더 확인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일부러 종방연에 가져가려고 정원에서 챙겨온 물건이었다. 꼭 제대로 써봐야 했다.
*
종방연. 스태프들과 출연진 전체가 모이는 회식은 촬영 중에는 쉽지 않았다. 이렇게 종방연에나 모두 모일 수 있었다. 마지막 촬영이 끝난 후로 처음이니 사람들을 보는 건 한 달 만이었다.
“준비하시죠. 레드카펫은 짧게 서셔도 됩니다.”
“네.”
여의도의 음식점 앞에서는 이미 기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음식점 앞쪽엔 좁은 레드카펫이 깔려있었다. 오늘 그가 입은 옷들은 얼마 전에 광고를 찍은 해외 SPA 브랜드 옷이었다.
‘찰칵찰칵. 화르르륵 “조금만 천천히 걸어주세요.”
“태주 씨 이쪽 봐주세요.”
사진 촬영하는 소리가 이어졌다. 눈을 뜨기 힘들 만큼 카메라의 플래시가 터지고 있었다. 잠시 멈춰 서서 사진 찍을 시간을 주고, 목소리가 들린 쪽도 봐준 후에 종방연장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레드카펫을 지나가는 태주의 모습은 신인이라고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여유로웠다.
“꺄아. 어떡해. 어떡해.”
“하하하. 여기에 사인 하면 되는 건가요?”
“네, 네네. To. 도깨비 무사 갤러리라고….”
“네. 먹깨비라고도 적어드려요?”
“어흐흑. 네에.”
도깨비 무사 후원갤러리에서 종방연 서포트 인원이 와있었다. 태주는 그들이 내미는 사인지에 사랑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먹깨비라는 별명도 같이 적었다.
그에게 먹깨비라는 별명도 적어달라 부탁하고 싶었던 갤러리 대표였지만 차마 눈부시게 잘 생긴 배우에게 말을 못 꺼내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먼저 사인지에 그렇게 적어주자 이상한 감탄사를 흘리고 말았다. 창피해하느라 진행을 잊은 대표 대신에 태주가 나섰다.
“현수막 앞에서 사진 찍으면 되죠?”
“네, 네.”
서포트 팀의 대표가 대답하기 무섭게 태주가 현수막 앞에 자리를 잡았다. 입구가 복잡해서 빨리 사진을 찍고 자리를 비워주려는 생각이었다.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사진을 찍은 후에 메이킹 영상을 찍는 카메라를 향해 짧은 감사인사와 도깨비 왕의 표정과 대사를 보여주는 서비스까지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이미 스태프들이 들어와 있었다. 그들과 인사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자, 하나둘 주요 출연진이 들어왔다.
“오셨어요?”
“일찍 왔네.”
“형, 얼굴 엄청 좋아졌네요.”
“한 달간 푹 쉬었지.”
근황에 관한 얘기를 잠시 하고 있자, 사람들이 속속 도착해 빈자리를 채웠다. 얼추 자리가 차고 한 감독이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후 종방연의 시작을 알리려 할 때였다.
“하하하. 한 감독 아직 시작 안 했지?”
“…방 CP님.”
“하하. 내가 딱 맞춰서 왔네. 오! 오 작가도 오랜만.”
양복을 차려입은 방 CP가 다른 사람 한 명을 데리고 종방연장에 찾아왔다. 태주는 근처에서 한 감독의 표정이 빠르게 구겨졌다 펴지는 것을 보았다.
‘에이, 이거 써야겠네. 안 보여서 안 쓰려고 했더니.’
방 CP가 크게 웃으면서 사람들에게 악수를 청하고 있었다. 종방연의 시작을 알리려던 한 감독은 그 모습에 고개를 젓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하하하. 이태주 배우, 드라마 잘 봤어요. 젊은 사람이 연기를 참 잘해.”
방 CP가 태주에게 악수를 청했다. 태주는 그런 그의 손을 공손하게 잡고 마주 인사를 했다. 방 CP는 그런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는지 연신 어깨를 두드리면서 그를 칭찬했다.
“다음에 봐서 작품 하나 하자고.”
‘뿌부웅.’
“!”
민망한 소리에 태주가 과장되게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방 CP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는 조금 당황한 얼굴로 방 CP에게서 한 걸음 물러섰다. 그런 그를 보던 방 CP는 뻔뻔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뽕뿡빵뿌우웅’
“!!!”
방 CP의 동선을 따라 요란한 소리가 종방연장 안을 울렸다. 태주는 예의 바르게 참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아니었는지 코를 잡는 사람, 웃음을 참느라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웩!”
“푸흡, 우엑!”
비위가 약한 사람이 있었는지 토하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이곳저곳에서 비슷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뽕뽕뿌우웅!’
“이, 이건, 내가….”
얼굴이 벌게진 채 변명을 하던 방 CP에게서 요란한 소리가 났다. 사람들은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와 거리를 벌렸다.
그런 사람들의 반응에 방 CP가 우렁찬 소리를 길게 남기면서 뛰듯이 종방연장을 벗어났다.
“아하하하.”
“하하하.”
태주가 웃음을 터트리자 너도나도 웃음을 터트렸다. 사람들이 한바탕 웃어젖히고 분위기가 진정되자 한 감독이 종방연의 시작을 알렸다.
“고생했다. 하필 너랑 악수할 때 그러냐.”
“킥. 괜찮아요.”
[장난꾸러기 키트(스티커)요란한 소리를 내는 투명한 원형스티커이다.
스티커를 붙이면 움직일 때마다 요란한 소리를 낸다.
유지시간: 30분]
뽕 망치를 휘둘러 나온 물건 중 하나였다. 희와 정원에서 둘이 붙인 뒤 재밌게 놀았었다.
방 CP와 악수하면서 슬쩍 손등에 붙였는데, 효과가 아주 만족스러웠다. 사실 냄새는 없고 소리만 나는 것이었는데, 태주가 참으면서 물러서는 연기로 냄새가 난다는 착각을 사람들에게 심어줬다.
‘이 정도 복수는 괜찮겠지?’
태주는 생각보다 효과가 좋은 아이템을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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