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2
71. 도깨비 무사 최종화 >
“꺄악!”
“여보!”
“으아앙!
건물이 흔들리고 선반 위의 물건들이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은 사람들 위로 깨진 등과 물건이 떨어졌다.
흔들림이 잠시 멎자 사람들이 입구를 향해 뛰었다. 언제 다시 건물이 흔들릴지 몰랐다. 하지만 주말 오후 쇼핑몰에는 장을 보러 온 사람이 많았다. 짧은 시간 안에 모두 건물 밖으로 나가기엔 무리였다.
먼저 나가려고 밀치는 사람, 눈물범벅으로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 한 손엔 아이 다른 손엔 아내를 부축하며 출구로 향하는 남자. 건물 안은 아수라장이나 다름없었다.
건물 밖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갑작스러운 지진에 도로 위는 난장판이었다. 사고 난 차량이 엉켜있었고, 이곳저곳에서 부서지는 소리와 경보음이 울리고 있었다.
이런 난장판에서 평소와 같은 모습을 한 것은 도깨비 왕뿐이었다. 그는 이런 장소와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옷을 입고 손엔 과자봉지 마저도 들고 있었다.
“냠.”
“왕!”
쇼핑몰 입구에서 뛰어나오는 사람들에 막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강인이 왕을 불렀다. 그런 강인의 뒤에서 왕이 평온한 얼굴로 나타났다.
“왜?”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왕께선 하실 수 있잖아요.”
“으음.”
강인은 내키지 않는다는 듯이 과자에 손을 가져가는 왕에게 다시 부탁했다.
“제발요. 어린아이도 있어요.”
“네 연인이 저 안에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사람들이 위험해요. 제발 사람들을 구해주세요.”
“이건 자연의 섭리야. 거스르는 것엔 많은 대가가 필요해.”
네가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물음이 담긴 눈빛이 강인에게 돌아왔다. 그는 왕이 말하는 대가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만,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그 안엔 그가 사랑하는 연인도 있었다.
“어린 도깨비야. 너는 또 본 왕에게 인간의 구원을 바라는구나.”
“왕. 어떤 대가라도 치를게요, 제발요.”
“흠. 되었다. 어린 도깨비에게 무얼 치르게 하겠느냐.”
굳게 결심한 듯 대가를 치르겠다, 말하는 강인을 물끄러미 보던 왕은 빙긋 웃더니 그를 뒤로 물렸다. 그리곤 항상 머리에 꽂고 다니던 긴 비녀를 뽑아 들었다.
긴 머리채를 고정하던 비녀를 한 손에 쥐고 춤추듯 원을 그리며 돌았다. 알아듣기 힘든 노랫말 같은 걸 읊조리던 왕이 바닥에 비녀를 꽂았다.
“쉬이. 아직은 이르다. 조금 더 자려무나.”
무언갈 달래듯 부드럽게 왕이 말을 건넨 후였다. 무섭게 흔들리던 땅이 잠잠해졌다. 그와 동시에 왕과 그 주변을 둘러싼 모든 것이 멈췄다. 허공에서 떨어져 내리던 간판도 사고가 난 차에 붙었던 불길까지 모든 것의 시간이 멈췄다.
“네 연인에게 가보거라.”
“감사합니다. 왕.”
왕에게 감사인사를 한 강인은 멈춰있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 그의 모습을 묘한 표정으로 보던 왕이 이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고고. 힘을 다 썼구나. 그만 돌아가 봐야겠다.”
그의 말이 끝나자 멈춰있던 것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다급한 표정으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왕을 한 번씩 돌아보다 떠났다.
왕은 그런 모습을 모두 눈에 담은 후, 맑은 목소리로 주문을 외웠다. 왕궁으로 돌아가는 주문이었다.
*
밑반찬으로 나온 잡채가 맛있어 태주는 연신 그것을 집어먹었다. 그런 그에게 박지헌이 드라마 장면을 보며 말을 걸었다.
“CG 제대로 들어갔다. 저 유리 조각 섞이면서 쏟아질 때 색감이 저렇게 예쁘게 나올 줄은 몰랐네.”
“그러네요. 와, 무서운 장면인데 너무 예쁘게 표현이 됐네.”
“너 저 이상한 주문 어떻게 한 거야? 노래하듯 하던데.”
“흠흠. 영업 비밀입니다.”
주문 비슷한 걸 외우는 장면은 정령들이 말하는 걸 조금 흉내 낸 것이었다. 심심할 때마다 회오리 동굴에 가서 정령하고 놀았더니 어느새 정령의 말투에 익숙해졌다.
그걸 술법을 펼치는 장면에 응용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신비롭게 보였다. 감독님도 마음에 들어 하고 그가 봐도 꽤 그럴싸했다.
“사람들 이대로 왕이 떠난 줄 알겠다.”
“하하. 도깨비 왕국은 인터넷이 안 되는데 어떡해요.”
사람들을 구해준 도깨비 왕은 지상에서 얻은 물건들을 챙겨서 왕궁으로 귀환한다. 하지만 곧 다급한 얼굴로 강인의 집에 찾아온다. 왕궁은 인터넷이 되지 않았다. 힘을 소모해 휴식이 필요했지만, 도깨비 왕은 게임에 접속할수 없자, 바로 다시 지상으로 내려와 버린다.
“아. 끝났다.”
“어떻게든 끝이 나긴 하네.”
잠시 뒤 한쪽에서 누군가 시청률을 외쳤다.
“마지막 화 17.9%, 순간 시청률 20.1 %입니다. 평균 시청률 16.5%.”
“와!”
정말 생각보다 시청률이 잘 나왔다. 공중파가 힘을 못 쓰는 요즘 미니시리즈에서 두 자릿수 시청률은 고무적인 수치였다.
“2차 갈 거지?”
“가야죠.”
음식도 거의 먹었고, 시청률도 만족스럽게 나왔다. 본격적인 술자리가 펼쳐지는 2차에 오래 있을 건 아니지만, 들르는 편이 나았다.
자리를 마무리하고 호프집으로 이동하는 그를 찾는 사람이 있었다. 윤비의 매니저였다.
“잠시 시간을 좀 내주시겠습니까?”
“네, 조용한 데로 가요.”
견우의 위치를 확인한 후에 윤비의 매니저를 따라가자 간판도 없는 카페 건물이 나왔다. 안에는 윤비가 미리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오랜만이에요.”
“…네, 오랜만이에요.”
두 사람이 자리를 잡고 앉자, 그 옆쪽으로 매니저들도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무슨 일로?”
“감, 감사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괜찮아요. 감사인사 들으려고 한 일은 아니라서.”
“그래도 꼭 인사를 드리고 싶었어요.”
도움 청할 곳이 아무 곳도 없었다는 얘기와 태주가 준 도움이 가벼운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어, 꼭 제대로 인사하고 싶었다고 윤비가 말했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왜 저였어요? 솔직히 저도 드라마는 처음이었거든요. 현장에 저보다 경력이 긴 배우들도 많았는데.”
“…태주 씨뿐이었어요.”
“네?”
“제가 계속 실수하는데도, 끝까지 현장에서 지켜봐 준 사람은 태주 씨밖에 없었어요.”
아! 태주는 그녀가 무슨 오해를 했는지 알아차렸다.
촬영장에 가면 대기실보다 현장을 지키면서 사람들을 보는 걸 즐기는 태주였다. 거기서 오해가 생긴 것 같았다.
그는 한 장면을 위해 수많은 스태프가 유기체처럼 움직여 배경을 만들고, 환경을 조성하는 걸 보는 것을 좋아한다. 또 사람들의 감정이 오가는 걸 보는 것도 좋아한다.
짜증 내다 미안해하고, 실수한 동료를 모르는 척 감싸주고 하는 감정의 교류를 지켜보면서 가끔은 연기 자료로 삼기도 했다.
윤비는 그런 걸 보느라 촬영장을 지키던 그의 모습을 자신의 연기를 지켜봐 주는 거로 오해한 것 같았다.
‘아. 이걸 말하기도 참 그러네. 오해라고 밝히면 어쩐지 못할 짓이 될 것 같아.’
“그, 그랬군요.”
“대본이 바뀌었을 때 일은 정말 죄송했어요.”
“아!”
“저도 제가 너무 많이 폐를 끼친 걸 알아요.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 그땐 정말 멍해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정신이 붕 뜬 기분이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였다. 촬영은 한 달 전에 끝났는데도 그녀는 여전히 촬영장에 혼자 서 있는 것 같았다.
윤비는 건강에 이상이 생긴 것처럼 보였다. 눈동자의 초점도 흐리고 몸도 더 말라 있었다. 아무리 스케줄이 바쁘더라도 한 달 사이에 이렇게 살이 빠진 것은 문제가 있어 보였다.
“지난 일이니 담아 두지 않을게요. 윤비 씨도 신경 쓰지 마세요.”
“……고마워요.”
비밀 유지서약까지 하고도 촬영장에서 연기지도를 부탁하는 매니저의 태도가 불쾌했었다. 조금이라도 대본을 봤으면 충분히 연기할 수 있는 장면에서 헤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었고.
하지만 지금 윤비는 그런 것을 따질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녀는 툭 치면 그대로 쓰러질 것처럼 보였다.
윤비의 분량이 편집과정에서 많이 잘려나간 것을 봤다. 하지만 그 일로 항의했다거나 문제를 일으켰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만약 그녀의 연기자 겸업을 진실로 바랐다면 절대 취할 수 없는 태도였다.
대체 LT에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인기 걸그룹 멤버를 왜 이렇게 다루는 건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건강 유의하시고, 다음에 기회 되면 뵙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자리를 옮기는 중이어서요.”
“네, 가보셔야죠. 이렇게 따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해요.”
“그럼.”
인사를 하고 2차 장소로 가는 그의 걸음이 조금 무거워졌다. 예전에 윤비와 비슷한 모습을 보였던 배우가 떠올라서였다.
그 배우는 수 개월간 루머와 악플에 시달리다 우울증에 걸렸었다. 정신과 치료도 받고 요양도 했지만,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엔 잠정적 은퇴를 선언하고 얼마 뒤 자취를 감췄다.
좀 전에 본 윤비는 그때 그 배우와 비슷했다.
“매니저님. 윤비 씨 기사 많이 안 좋은가요?”
“발연기로 불리는 정도는 아닙니다만, 좋은 평은 거의 없었습니다.”
“마음을 좀 굳게 먹었으면 좋겠네요. 어차피 연기 다시 할 것도 아닌데, 그냥 무시해버려도 좋고요.”
“그게 쉽지는 않지요.”
실제론 밝은 조명이 비추는 카페에서의 만남이었지만, 기분상 어쩐지 어두컴컴한 골방 안에서 만난 것 같았다. 비쩍 마른 몸을 팔로 감싼 채 천천히 말을 꺼내 놓는 그녀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이 들었다. 드라마의 좋은 성적에 고조되었던 기분이 가라앉았다.
*
LT 제작사에서 제작하려는 드라마 소식이 떴다. 예상대로 주연으로 김동현이 캐스팅되었다. 24부작으로 11월 초에 SBC에서 금, 토 에 방영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였다.
“이건 나도 기억난다. 공중파하고 케이블하고 금, 토 대전을 벌였었지.”
LT에서 제작하는 드라마는 초반 200억 드라마라 기사가 나갔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더 많은 제작비가 들어갔다. 거의 300억에 가까운 제작비를 사용했다고 나중에 알려졌다.
그리고 그 대형 드라마와 정면 대결을 펼친 케이블 드라마가 있었다. 제작비는 1/3 정도인 87억 밖에 들이지 않았는데, 화제성이나 완성도에서 LT의 드라마에 전혀 밀리지 않았다.
LT의 드라마 내용은 배신당한 국정원 요원이 용병이 되어 세계를 전전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복수하는 내용이었다. 볼거리 많은 해외 로케이션 촬영에 톱스타로 출연진을 꾸려서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방송을 시작한다.
반면 케이블 드라마는 사람들에게 이미 식상하게 여겨지는 상류층 얘기였다. 그들의 뇌리 깊숙이 박힌 계급의식과 도덕적 해이 등이 주제였다. 방송 전부터 지겹다, 참신함이 부족하다는 악평을 듣지만 수많은 유행어와 스타들을 배출하며 화려하게 막을 내린다.
오늘 미디어에 나온 김동현의 기사는 같은 24부작 금, 토 10시에 공중파와 케이블에서 각기 방송되는 두 드라마의 캐스팅 경쟁의 서막이 올랐다는 신호였다.
“용병대 귀족인가?”
드라마 제목이 아스타와 더 노블레스였다. 둘 다 11월에 방영 예정이었으니 태주가 들어가기엔 무리였다. 만약 더 노블레스에서 섭외가 들어오면 태주가 계약한 드라마와 촬영 일정이 바로 이어진다. 아니면 일정이 겹칠 수도 있었다. 체력적인 문제는 없겠지만, 회사에서 그렇게 스케줄을 잡지는 않을 것 같았다.
“8월 중순에 촬영에 들어가서 9월, 10월 두 달간 방송하고, 이어서 11월 중순에 방영하는 더 노블레스 촬영에 들어 간다라. 생각만 해도 미친 일정이네. 6개월간 드라마 두 개, 16부작하고 24부작을 이어서 촬영하는 일정을 잡을 리가 없지.”
가을 드라마는 태주가 알고 있는 드라마였다. 작가도 감독도 괜찮았었다. 다만 남자 주인공의 연기는 인간의 연기를 넘어선 무엇이었다. 로봇 연기라고 해야 할까. 실제로 주인공이 로봇이라는 설정이었다면 차라리 잘 어울렸을 연기였다. 남주의 연기력은 배역을 뺏는데 전혀 거리낌이 없을 정도로 엉망인 연기력이었다.
“그 좋은 시나리오를 그렇게 망치다니. 아무리 입봉 작감 콤비라지만 심해도 너무 심했지.”
사실 이 작품을 우 팀장은 별로 내켜 하지 않았다. 작가도 감독도 자신의 이름을 처음으로 내걸고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그녀에겐 의욕만큼 작품의 퀄리티가 나와줄 거란 믿음이 없었다. 유명한 작가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절대로 이 작품을 태주에게 보여주지 않았을 것이었다.
“이정임 작가 추천작품이라.”
사실 이 작품은 출연료도 많지 않고, 편성도 확정은 아니다. 우 팀장이 이 작품의 계약에 더 반대했던 이유이기도 했다. 작은 제작사, 신인 작가에 조연출 경력만 있는 감독. 믿음이 가지 않는 게 당연했다.
신조선 사또 전. 첫 부임지에서 벌어지는 의문의 살인사건을 쫓아 범인을 밝혀내고 억울한 피해자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물론 그 피해자는 고을에 소문난 미녀로 사또와 연인이 된다. 사또와 방자의 찰진 대거리가 재미 포인트였는데, 회귀 전 남주가 그 맛을 전혀 살리지 못했었다.
‘띠링!’
「태주 씨. 내일 회사에 잠시 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오전 10시에 모시러 가겠습니다.」
내일과 모레는 휴일이었다. 선율의 티저 반응이 괜찮아서, 홍보에 들어가기 전 체력관리 차원에서 주어진 휴가였는데, 일이 들어온 모양이었다.
‘에효. 회귀 전보다 더 바쁜 것 같네. 아무래도 오늘은 정원에서 좀 느긋하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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