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3
72. 질병 완화제 >
오늘은 느긋느긋 열매를 먹은 것처럼 천천히 정원을 돌보고 있었다. 사실 정원 일 중 시급을 다투는 일 같은 건 없었다. 그저 태주가 어느 순간 몰두해서 빠른 속도로 해치우는 것뿐이었다.
“이쯤에 이벤트를 했었던 것 같은데.”
“이벤트?”
“응, 희. 예전에 달 사탕 나무 키웠던 것 기억나지?”
“응, 맛있었어.”
“하하하. 그게 현실 시간으로 이쯤이었거든.”
우수상으로 받은 생명의 저울은 희의 관리자 창고 어딘가에 들어있을 터였다. 잊고 있었는데, 이벤트 기억과 함께 떠올랐다.
“이번에는 어떤 이벤트를 하려나? 솔직히 정원에서 할만한 이벤트는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우웅. 먹기대회?”
“하하. 희 우리 정원에 그 대회에서 이길만한 사람은 없는데.”
희가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보통 사람이 먹는 것의 반도 되지 않는다. 희의 덩치를 생각하면 엄청나게 많은 양이지만, 사실 꿈의 정원의 주민들은 다들 음식을 많이 먹는 편이었다. 입이 짧은 제피르조차 덩치에 비하면 많이 먹었다.
“하여튼 무슨 이벤트가 할 시기가 된 것 같긴 해. 우편이 오는지 잘 지켜보자.”
“응.”
정원이 레벨 3이 되었지만, 바라던 것은 거의 하지 못했다. 카페 오픈도 지형 변경도 못 했다. 목도리를 되팔아 DP가 꽤 쌓였지만, 현실의 일이 너무 바빠서 정원을 신경 쓸 수 없었다.
오늘 저녁엔 다 같이 모여서 정원을 어떻게 꾸려갈지 논의해봐야 할 듯했다.
“아! 무술!”
“무술?”
“응. 혹시 모르니까. 무술을 한가지 익혀두려고. 소질이 있는 무술을 발견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정원에서 익힌 기술이라고 해봤자, 몇 가지 되지 않는다. 초기에 필요해서 익힌 농사, 요리, 낚시, 제약, 조련을 제외하면 따로 익힌 기술은 없었다.
“상태창. 기술이…. 별거 없구나.”
[기술:– 농사: Lv. 1(73%)
– 요리 : Lv. 0(0%)
– 낚시 : Lv. 0(0%)
– 제약: Lv. 1(20%)
– 조련: Lv. 1(30%)]
“조련 기술은 왜 이리 안 오르지? 아니, 기술 자체가 잘 안 오르는 것 같아. 희 기술은 Max가 몇 레벨이야?”
“Lv. 10이야.”
익힌 기술의 가짓수도 적었고 숙련도도 예상보다 낮았다. 정원에서 하는 일이 쉬운 만큼 레벨이 더디게 올라가는 것 같았다.
“뭘 익히는 게 나을까?”
“으웅, 활쏘기.”
“궁술?”
“응. 엘프는 활쏘기 잘해.”
“오, 영화가 전부 거짓은 아니구나. 활쏘기는 해본 적 없는데. 재밌겠다.”
상점엔 여전히 굉장한 숫자의 기술이 있었다. 태주가 바라는 궁술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활 종류별로 그에 맞는 자세와 쏘는 법이 따로 있는 것 같았다.
“활도 종류가 많구나. 이거 좋아 보인다. 갈색.”
“정원사 씨, 활 사게?”
“악! 해나. 제발 기척 좀.”
“호호호. 정원사 씨가 좀 둔한 거라고.”
태주가 시선이나 기척에 예민하게 굴지 않는 것은 맞았다. 하지만 그보다는 해나가 기척을 너무 잘 감췄다. 그리고 그걸로 이렇게 태주를 놀리는 걸 좋아했다.
“제 환경이 그런 부분에 너무 신경을 쓰면 버티기 힘든 곳이라서요. 적당히 무시하고 그래요. 그래도 해나가 너무 잘 숨기는 것 같아요.”
“호호호. 수인이나 펫이 성장할 때 얻는 기술은 원래 그래. 몸에 빨리 익고 활용도 잘하지.”
“아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태산이가 처음엔 애교를 아무 때나 쓰더니 요샌 자기가 조절을 하더라고요.”
“그건 너무 사기적인 기술이야.”
기술에 관한 얘기가 나오자 해나가 다시 그에게 아까 그 활을 살 것인지 물었다.
“네. 이게 멋져 보여요.”
“정원사 씨. 그건 정말 마스터나 쓰는 물건이야. 정원사 씨는 들지도 못할걸?”
“진짜요? 어쩐지 너무 멋지다 했어요.”
“가격도 만만치 않을 텐데?”
“크흠. 보려고만 했어요. 보려고만.”
“호호호. 우선 연습용 활을 사라고. 혹시 소질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해나의 말 대로였다. 요리나 낚시처럼 소질이 없는 기술일 수도 있었다. 궁술 기술을 익히고 연습용 활로 시험을 해봐야 했다.
“이런 기술을 가르쳐줄 선생님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음? 소환권을 올려두는 이들도 있을 텐데.”
“소환권이요?”
“전에 난쟁이들이랑 정원을 꾸몄다며. 일을 원하는 이들이 가끔 소환권을 올리는 거로 아는데.”
처음 듣는 사실이었다. 아무 때나 소환권을 사서 쓸 수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나 보다.
“신기하네요. 그럼 활쏘기를 가르쳐줄 선생님도 소환할 수 있겠군요.”
“소환권이 상점에 올라와 있으면 그렇겠지.”
이 소환권은 원래 용병 협회에서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정원사 협회에서 정원에 맞는 방식으로 고쳐서 사용하는 중이었다.
태주는 말이 나온 김에 기술 목록에서 궁술을 선택해서 배웠다.
상점의 기술이라는 건 간단하게 해당 기술의 기초를 몸에 새겨주는 것이었다. 소질이 있다면 그 기술의 기초에 해당하는 것들을 자연스럽게 쓸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태주는 단 한 번도 활을 쏴본 적 없지만, 궁술 기술을 익힌 것만으로 바른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또 화살을 시위에 거는 일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었다.
“와! 저 궁술에는 재능이 좀 있나 봐요. 실제로 활을 잡아보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알 것 같았어요.”
“호호호. 잘됐네. 자아, 활쏘기 연습을 하기 전에 활터를 만들라고. 정원에 빈 곳이 많으니 활터를 만들기 나쁘지 않을 거야.”
“활터 건물도 상점에 있던 것 같아요. 그걸 설치하죠.”
위험할 수 있으니 활터를 제대로 만드는 게 나아 보였다. 태주는 상점에서 활터 레시피와 재료를 사서 정원 한쪽에 건물을 세웠다.
“희, 정원도 이제 제법 공간이 찬 것 같지 않아?”
“으응. 하지만 아직도 많이 비었는걸.”
“정원이 정말 크긴 크다. 솔직히 이걸 한 번에 다 꾸미고 가꾸는 건 무리야. 지금처럼 천천히 꾸며나가야지. 앞으로도 같이 하자, 희.”
“응, 태주. 희도 같이 해.”
정원 시간으로 2년간 열심히 가꿨지만, 여전히 빈 곳이 많았다. 정원 규모가 큰 것도 있지만, 혼자서 관리하기 힘들어 조금씩 넓히는 방법을 쓴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나저나 이 상점엔 특이한 기술도 많다. 물 뿜기 같은 기술은 대체 어디에 쓰는 거지? 코끼리 수인이 쓰는 기술인가?”
“호호호. 코끼리 수인이라니. 물 뿜기 같은 건 인어가 쓰는 기술이야.”
“아! 인어. 한 번도 본 적 없어요. 정말 예쁜가요?”
“호호호. 취향은 존중할게.”
해나의 저 말은 무슨 뜻일까? 예쁘다는 것일까? 아니면 취향 존중이 필요할 정도로 독특하다는 얘기인가. 알 수 없었다.
*
정원 하늘을 가르고 펠리컨이 날아왔다. 몇 번 봐서 이제는 익숙한 펠리컨 우편배달원이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신가. 오늘은 요정 숲에서 보내는 우편이라네.”
“요정 숲이요?”
“아아. 받아보시게나. 난 이만 가보지. 일이 많다네.”
“네, 우편배달 고마워요.”
펠리컨 우편배달원은 특유의 ‘끼루루루룩’ 소리를 내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정말로 바쁜지 평소처럼 느긋하게 정원을 한 바퀴 돌고 가지 않았다.
“요정 숲이라. 아! 피해 보상인가 보다.”
“피해 보상?”
“응, 전에 보석 거울 파손 사건의 피해 보상 ”
두루마리 편지에 써진 내용은 태주의 예상대로였다. 하지만 그와 동봉된 보상품은 그의 예상을 뛰어넘는 물건이었다.
[질병 완화제(희귀)치료가 힘든 병의 진행 속도를 늦춰줍니다.
이종족 외 다수의 수인에게 사용 가능합니다.
최대 3회 중복 사용이 가능합니다.]
“이게 대체.”
“질병 완화제구나. 정원사 씨 지인이 아프다고 했지?”
“네. 그걸 요정 숲에서 어떻게 알고 이런 물건을….”
“히히. 태주 마음에 들어?”
“응? 혹시 희가 알려줬어?”
“응. 치료 약은 없었어. 그래도 여왕님에게 부탁했어.”
그는 자신이 완화제를 얻을 수 있었던 이유를 알았다. 그가 치료 약을 찾는 걸 기억하고 희가 요정 숲에 보상으로 그걸 청했었나 보다.
“맙소사. 희, 희는 정말 천사야.”
“희는 요정인데?”
“요정이면서 천사야. 세상에. 와, 이런. 너무 고마워, 희.”
자신에게 어떻게 이렇게 예쁜 요정이 생길 수가 있었는지. 세상 모든 찬사를 다 가져다 붙여도 모자랄 정도였다.
희는 항상 순수하게 자신을 도와준다. 진심으로 자신의 바람을 이뤄주려 노력한다. 그러면서도 바라는 것은 같이 시간을 보내며 행복하게 지내는 것뿐이다.
“세상 모든 요정이 희처럼 이렇게 예쁠까?”
“히히. 희 예뻐?”
“물론이지. 희, 내가 본 요정은 희밖에 없지만, 아마 희가 제일 예쁠 것 같아. 희는 제일 반짝반짝한 요정이야.”
“이히히. 태주도 예뻐. 반짝반짝해.”
태주는 손에 들린 연한 푸른 빛이 도는 약병을 쳐다봤다. 이종족이나 수인에게도 효과가 있을 정도라면 인간인 이제영 감독님에게도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완화제라.”
“인간이 완화제를 복용하면 효과가 더 클 거야.”
“네?”
“이종족이나 수인은 인간보다 면역력이 훨씬 좋은 종족이잖아. 그런 이들이 걸린 병을 늦추는 약이야. 보통은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사용하는 약이거든. 그런 약이니 인간에겐 훨씬 더 잘 들을 거야.”
이종족이나 수인이 먹으면 대략 3년 정도의 시간을 벌 수 있으니 아마 인간은 그 두 배 정도의 효과가 있을 거라며 해나가 알려줬다.
완화제를 복용하면 질병과 싸울 수 있게 힘과 체력을 북돋우어 주는 효과도 있어서 인간이라면 평소와 다름없이 생활할 수 있다는 얘기도 해줬다.
“이걸 이제영 감독님이 드시면 5년 정도는 건강하게 지내실 수 있다는 얘기죠?”
“아마 그렇겠지?”
“그런데 해나는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아요?”
“호호호. 정원사 씨 내가 살아온 시간이 얼만데, 그 정도도 모르겠어?”
“어? 해나 나이가 몇인데요?”
“저녁 안 먹겠다고?”
“….”
수인이어도 여성에게 나이를 묻는 건 실례였나 보다. 태주는 완화제를 잘 챙겨둬야겠다며 빠르게 걸어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해나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그날 저녁엔 해나가 솜씨를 발휘했다. 희가 좋아하는 음식도 여러 가지 만들고 태주가 좋아하는 음식도 많이 만들었다.
해나 역시 태주가 치료 약을 간절하게 찾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제약기술을 높인다며 빼놓지 않고 허브 티나 다른 약들을 만드는 것도 봐왔었다. 정원사 씨가 바라던 것과 조금 다르지만, 충분히 효과가 있는 물건을 얻은 일을 축하해줄 생각이었다.
“해나, 잘 먹을게요. 이런 성찬을 준비해줘서 고마워요.”
“호호호. 기분 좋은 일이 있었잖아. 이런 날은 맛있는 음식을 먹고 행복을 뻥튀기시켜야 해. 그래야 더 좋은 날로 기억에 남지.”
“하하하. 맞는 말이에요.”
기분 좋은 일이 있었으니 맛있는 걸 먹고 더 행복하게 기억하자. 단순하지만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해나가 차려준 음식을 먹으면서 태주는 이번에 끝난 드라마 촬영에 관한 얘기를 했다. 희나 제피르, 해나는 태주가 현실에서 어떻게 보내는지 듣는 걸 좋아했다.
“드라마는 좋은 성적으로 끝났어요. 이제 선율이라는 영화가 곧 개봉해요.”
“드라마라는 건 연극과는 다른 거라 했지?”
“네, 녹화된 영상을 편집해서 만드는 거예요.”
“흐음. 설명만으론 모르겠네.”
그에겐 너무 익숙해서 당연한 건데, 말로 설명하려니 힘들었다. 책이나 음악이라면 기억 소환권으로 만들어서 보여줄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다 곧 그는 손뼉을 짝하고 치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만물상이라고 불러도 좋을 상점에 영상 기억을 소환하는 물건이 없을 리 없었다.
예상했던 대로 상점에 기억하는 영상을 불러올 수 있는 기계가 있었다. 그는 상점에서 기억 소환권(영상)과 디스크, 플레이어를 사 왔다.
‘내 드라마를 다 같이 보는 건 좀 민망한데.’
그는 기억 속에 있는 드라마를 디스크에 담았다. 긴 소파에 태주와 해나, 희가 모여 그가 출연한 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조금 민망했지만, 옹기종기 모여앉아 같은 화면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공주님이야, 태주.”
“하하하. 공주님은 아니고 왕이야.”
“호호호. 이게 드라마구나. 재밌는걸.”
지금은 그의 기억을 소환한 것이라 가짓수가 많지 않았다. 디스크도 적어서 도깨비 무사 전편과 애니 몇 개를 담자 바닥이 났다. 태주는 희가 좋아할 만한 애니 몇 개를 떠올리고 나중에 태블릿에 담아와서 보여줘야겠다, 마음먹었다.
동화 같은 현실에서 사는 희라서 이런 걸 좋아할 줄은 몰랐다. 만약 알았더라면 진작 틀어줬을 텐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
태주가 자러 들어간 후에도 희와 해나는 계속 드라마를 봤다. 드라마 속의 태주는 정원에서 같이 지내는 태주하고 달랐다. 멋진 모습도 있었고, 웃긴 모습도 있었다. 희는 태주의 그런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오와!’하는 감탄사를 내며 즐거워했다.
해나 역시 드라마가 마음에 들었다. 정원사 씨가 설명한 배우가 어떤 건지 잘 알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가 수도 없이 많다니, 새로운 금맥을 발견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정원의 밤이 늦었지만, 여전히 작은 소음이 들려오고 있었다. 오두막 안에서 희와 해나가 보는 드라마 소리였다. 태산인 그 소리를 흘려들으며 굴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1차 성장을 마친 후로 태산인 자신의 영역인 정원의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정원 구석에서 놀고 있다가도 방문자가 정원에 들어서면 바로 알 수 있었다. 만약 침입자가 있다면, 시스템으로는 무리지만 태산인 바로 알 수 있었다. 관리자인 희도 찾지 못하는 침입자도 태산의 감지는 피해갈 수 없었다.
그런 태산의 귀에 며칠간 ‘끼릭끼릭.’ 하는 소리와 동굴 속에서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한번은 그 소리가 너무 심해서 밤새 정원을 돌아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범인을 찾지 못했었다.
태산은 만약 침입자를 찾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다짐했다. 그런 그의 귀에 오늘도 어김없이 그 소리가 들려왔다. 어제보다 소리가 크게 들리는 것을 보면 범인이 더 가까이 온 것 같았다. 태산이 주위를 경계하며 몸을 일으켰다. 감각에 걸리는 것은 없었지만, 정원을 한 바퀴 돌아볼 생각이었다.
“크르르르릉.”
새파랗게 눈을 빛내며 태산이 낮은 소리로 울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자신을 귀찮게 만든 침입자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경고가 서린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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