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6
75. 애교의 활용 >
바이올린 리허설을 하고 오자, 미나가 메이크업 세트를 정리하고 있었다. 태주의 출연 시간이 길지 않아서 촬영이 끝나면 바로 나갈 수 있게 준비하는 중이었다.
“이 건물은 오랜만에 온다. 그렇지?”
“네. 힐링 인터뷰 끝난 후에는 들를 일이 없었으니까요.”
“호호. 그땐 네가 인터뷰어였는데, 오늘은 반대네.”
“그렇네요. 익숙한 건물이라 그런가? 어쩐지 허전하네요.”
“태산이가 없어서 그래. 여기 올 때는 항상 같이 왔잖아.”
오늘은 일정 대부분이 인터뷰였다. 인터뷰 장소가 거의 카페나 음식점 등 반려동물이 갈 수 없는 곳이어서 회사에 태산이를 맡기고 왔다.
“너 예능 아직 못 골랐다며?”
“네, ‘탈출탈출!’인가 하는 방 탈출 게임 예능이 재밌어 보였는데, 좀 무서워 보여서 고민 중이에요.”
“아! 맞아. 그거 무섭더라. 저번 편에 귀신 나온 거 진짜 무서웠어.”
“그거랑 ‘총각네 농촌일기’인가? 여긴 태산이랑 같이 나와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건 별로야. 안 하는 게 나아.”
시즌1이 모 케이블의 유명한 예능을 고스란히 카피했다가 망한 프로그램이었다. 아마 시즌2를 찍어도 다시 인기를 얻지는 못할 거라며 미나가 그를 말렸다.
“태산이랑 같이 나갈 수 있다고 해서 혹했었는데.”
“그쪽이야 손해 볼 게 없지. 태산이 인기는 여전하니까.”
“맞아요. 태우가 태산이 파랑새도 하는 줄 몰랐어요. 팔로워가 어마어마해요. 저보다 많을걸요?”
준비를 끝내고 잠시 기다리자, 촬영이 시작됐다. 태주는 영화 음악 중 사람들에게 가장 익숙한 곡을 골라 짧게 연주했다. 이어서 선율을 금주의 영화 코너에서 소개하고 촬영이 끝났다.
“금방이네요.”
“그렇지, 뭐. 연주까지 다 해도 5분 좀 넘으니까.”
“가시죠.”
돌아오는 차 안에서 태주가 예능을 뭐로 골라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을 꺼냈다. 섭외 온 예능 중에 음악 관련한 프로그램은 해외 여행지에서 버스킹을 하는 것과 음악 관련 퀴즈풀이 밖에 없었다.
작년에 영화 버스킹에서 버스킹을 많이 했던 태주에게 끌리는 콘텐츠는 아니었다. 퀴즈풀이 예능 역시 마찬가지였다.
“패널들이 많이 나오는 스튜디오 예능은 너무 어려워 보여요.”
“호호호. 초보자한테는 쉽지 않아 보이긴 하더라. 넌 여행하면서 음식 먹는 거 하고 싶다며?”
“네, 그런데 많지 않더라고요.”
예능 섭외가 많이 들어오는 건 사실이지만 실속있는 것을 고르기 쉽지 않았다. 원래 예능에 관심이 많지 않아, 어떤 기준으로 골라야 하는 줄 모르고 있었다. 음악, 음식, 여행이 포함된 예능으로 고르려 했던 건 너무 단순한 방법이었다. 그 외의 조건, 출연진이나 제작진의 성향 등을 좀 더 알아보고 정해야 했다.
그날 저녁 태주는 오랜만에 동생들과 TV를 보고 있었다.
“너희 혹시 챙겨 보는 예능 있어?”
“어, 나는 코미디 올림픽하고 동네 형님은 챙겨 봐.”
“저는 뮤직 스케치하고 셰프 백의 요리 수업은 꼭 봐요.”
둘이 보는 것들의 차이가 확실했다. 태우도 연우도 본인의 취향이 듬뿍 반영된 프로그램을 골라서 보고 있었다.
“왜? 형 또 예능 나가?”
“회사에서 하나 골라 보라는데, 내가 뭘 알아야지.”
“하긴 형은 예능 잘 안 보니까. 전에 태산이랑 나왔을 때 재밌었는데. 태산이랑 같이 나갈 프로 없어?”
“별로 없더라. 아! 시간 됐다. ‘탈출탈출!’ 보자.”
태주가 기다리던 예능이 시작했다. 게스트 섭외가 와서 한 번 봤었는데, 그때는 너무 무서운 내용이어서 중간에 보다 말았었다. 오늘은 고고학자의 저택이라는 설정이라 괜찮을 것 같았다.
‘고대 이집트 문명을 연구하던 고고학자 박 씨 일가가 의문의 죽음을 맞았습니다. 우연히 이 저택에 들르게 된 연예인 5명이 저택에 갇혔습니다.’
“에이. 오늘도 무서운 얘기잖아.”
“형은 진짜 공포 싫어한다.”
“설정인 줄 알아도 별로야. 분장도 음악도 다 무섭잖아.”
“난 공포물 재밌던데.”
화면 속의 연예인들은 저택의 이곳저곳을 뒤지면서 탈출에 필요한 단서를 모으고 있었다. 노력이 통했는지 그들은 숨겨진 항아리를 발견하고 그 속에서 열쇠를 꺼냈다.
‘끼이이익.’
“무섭다면서도 꼭 저런 건 열더라.”
“단서를 찾아야지.”
스산한 효과음에 살짝 겁먹은 태주가 괜히 툴툴거렸다. 옆자리의 연우도 공포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지, 태주에게 딱 붙어 앉아서 화면을 보고 있었다.
‘꺄아악!’
“으악!”
“으헉. 뭐야?”
“하하하. 뭐야, 미라잖아.”
화면 속 연예인들이 비명을 지르자 연우와 태주가 따라서 질렀다. 둘은 어두운 방구석에 세워진 미라 때문에 깜짝 놀랐다. 지저분한 붕대를 둘둘 감은 채 어둠 속에서 조용히 서 있는 것은 모형이라고 아는데도 무섭게 느껴졌다.
“냐아앙.”
“태산아. 이리 와.”
“냐앙.”
태주가 발치에 누워있던 태산이에게 올라오라며 무릎을 탁탁 쳤다. 태산이 그 손짓대로 태주의 무릎 위로 올라와 자리를 잡았다. 그는 차가워진 손을 슬쩍 태산이 배에 대고 녹였다.
‘태산이 배는 따끈따끈하구나.’
화면 속에 음산한 미라의 모습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연예인들이 단서를 찾겠다며 미라 주변을 이리저리 돌았다. 그 때문에 어두운 방 안의 미라가 계속 화면에 비추어졌다.
태주 무릎 위에서 화면을 보던 태산의 눈에 미라가 들어왔다. 그 모습을 보고 태산이 냥냥 울기 시작했다.
“냐아아앙냥냐앙.”
“태산이 갑자기 왜 그래? 무서워? 쉿! 형들 TV 보게 조용히 해야지. 착하지?”
“냐아앙.”
“태산이 배고파? 간식 줄까?”
“냐앙!”
태주가 슬쩍 일어나서 주방에 간식을 가지러 갔다. 연예인들이 힌트를 얻고 2층으로 올라가고 있었다. 슬쩍 비친 화면 속 저택의 2층은 1층보다 더 무서워 보였다. 태산이 간식은 적절한 시기에 생긴 좋은 핑곗거리였다.
“요샌 소품도 엄청 신경 쓰나 봐. 미라 봤어, 연우야?”
“으응. 진짜 사람같이 만들었더라.”
“맞다! 우리 이번에 미니어처 피라미드 만들까?”
“좋아. 그럼 스핑크스도 만들자.”
태우의 공예 채널에 테마가 하나 늘어난 것으로 예능 시청을 끝마쳤다. 태산이가 드물게 TV 화면을 주의 깊게 봤지만,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우 팀장은 태주에게 오는 의류 광고는 거절하지 않는 편이었다. 태주는 외모도 훌륭했고 화보 촬영에도 능숙했다. 작업은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언제나 예정 시간 안에 끝마쳤다. 화보 촬영은 항상 광고주나 광고회사로부터 좋은 평을 받고 있었다.
“꺄아악!”
“이태주다.”
“그게 누군데?”
“도깨비 왕이잖아. 그리고 어제 선율 같이 봤잖아.”
“헐? 어제 그 바이올리니스트 맞아? 다른 사람 같은데?”
5월의 화창한 날씨를 화면에 담고 싶은 사진작가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장소 선정이 좋지 않았다. 평일 오후지만 한강 변에는 사람이 꽤 많았다. 태주와 여성 모델이 화보를 찍는 걸 보더니, 주변에서 사람들이 더 몰려오고 있었다.
“매니저님 사람이 너무 몰리는 것 같지 않아요?”
“아직은 통제가 되고 있으니 괜찮습니다만, 더 몰리면 문제가 되겠습니다.”
“굳이 한강에서 찍는 이유를 모르겠네. 그치 태산아?”
“냐아앙.”
“호호호. 내려가고 싶어요? 사람이 너무 많아서 안 돼요.”
화보 촬영이 끝나면 태산이를 데리고 한강공원을 산책할 거라고 기대에 부풀어 있는 태주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오늘은 바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았다.
‘찰칵찰칵.’
“태주가 볕이 너무 강하면 이거 씌워주라 하던데. 어디 보자.”
미나가 태산이에게 반려동물용 고글형 UV 선글라스를 씌워주었다. 검은색 고글과 목줄을 찬 태산이는 멋지고 귀여웠다.
“호호호. 세상에! 너무 귀엽다.”
“아! 선글라스. 이런 것도 있군요.”
“매니저님 저 사진 좀 찍어주세요. 우 팀장님한테 자랑해야지.”
태산이가 고글을 쓴 모습이 귀여워 사진을 부탁하는 미나였다. 원래부터 알아보는 사람이 많은 태산이였는데 선글라스까지 쓰자 사람들 사이에서 소란이 일었다.
통제선 안쪽에 미나에게 안겨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태산이를 촬영하려는 사람들 때문에 태주의 화보 촬영에 지장을 줄 뻔했다.
촬영이 잠깐 멈추고 태주가 일행에게 손짓으로 분장실을 가리켰다. 의상을 바꾸고 메이크업을 손봐야 할 타이밍이었다. 미나가 바로 태산이를 견우에게 안겨주고 그쪽으로 향했다.
“평일인데 사람이 많이 몰렸네요.”
“그러게. 이따 빠져나가는 데 고생 좀 할 것 같아.”
“간만에 태산이도 데려왔는데, 산책도 못 시켜주겠어요.”
“산책은 무슨. 안 밟히면 다행이게.”
한강에 처음 오는 태산이를 데리고 느긋하게 산책을 하려던 태주는 생각을 접어야 했다. 강변에 모여앉은 비둘기를 보고 좋아했는데, 사람이 이렇게 많아서야 비둘기는 구경도 못 시켜줄 것 같았다.
“다 됐다. 이게 마지막 의상이지?”
“네. 마지막이에요.”
미나에게 간단한 수정 메이크업을 받은 태주가 마지막 의상을 촬영하러 움직였다. 잠시 사라졌던 그가 나타나자 구경하던 사람들이 소란스러워졌다. 그의 이름을 부르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도 있었다.
“꺄아. 사랑해요.”
“잘생겼다.”
“이태주. 여기 봐.”
태주는 사람들 쪽을 돌아보지 않게 주의하면서 지정된 자리에 가서 섰다. 이렇게 사람이 많이 몰렸을 때는 가능한 자극하지 말고 빨리 일을 마치는 게 좋았다.
그는 같이 촬영하는 여성 모델과 사진작가의 지시에 따라 다정한 포즈, 삐진척하는 포즈 등을 취하면서 빠르게 촬영을 마쳤다.
*
촬영이 끝나고 스태프들이 장비를 정리하고 있었지만, 주변을 둘러싼 사람들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태주의 이름이 계속 들리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그냥 돌아갈 것 같지 않았다. 그들을 진정시킬 약간의 서비스가 필요할 것 같았다.
태주는 태산이의 선글라스가 잘 고정된 걸 확인한 후에 사람들 쪽으로 다가갔다.
“까악! 잘 생겼어요.”
“하하하. 감사합니다.”
“태산이 귀여워요.”
“오늘은 시크한 태산이에요.”
사인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었다. 물론 견우가 관리하는 태주의 공식 SNS 계정에 올리는 사진을 받으시라는 얘기도 잊지 않고 했다.
모여있는 사람들에게 사진도 찍어주고 가벼운 대화도 나누면서 주차장 쪽으로 이동하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매우 느렸다. 태주가 여기 있다는 정보를 듣고 사람들이 점점 더 몰리고 있었다. 한 걸음 앞으로 내딛기도 힘들었다.
“잠시만요.”
“까아! 가지 마요.”
“밀지 마세요. 다쳐요.”
“실례합니다.”
사람들이 진정되기는커녕 점점 더 흥분하고 있었다. 태주는 본인 생각보다 훨씬 강한 사람들의 반응에 조금 놀랐다. 회귀 전에도 데뷔작에서 인기를 얻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 데뷔 시기와 데뷔 작품이 달라지자, 그의 환경도 달라진 것 같았다.
회귀 전엔 독립영화에서 바로 미니시리즈 조연으로 데뷔했지만, 이번엔 인터뷰어로 일 년 가까이 활동하고, 상업 영화 주연에 화려하고 눈에 띄는 캐릭터로 데뷔했다.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영화 외에 예능과 광고도 찍었었다. 어쩌면 이런 변화는 당연한 일인지도 몰랐다.
“이거 빠져나가기 쉽지 않군요.”
화보 촬영 스태프들에게 도움을 받기엔 그쪽도 인력이 부족해 보였다. 현장에 즐비한 고가의 장비도 지켜야 해서 지원을 받는 건 무리였다
태주는 견우에게 강행돌파 하자는 신호를 보냈다. 어물거리다가는 더 많은 사람이 몰릴 것 같아서였다. 그는 태산이를 단단히 고쳐 안았다. 그가 견우와 눈을 맞추고 사람들 사이로 들어서려던 때였다.
태산이 사랑스러운 울음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까닥였다.
“냐앙!”
“허어억.”
“아아. 예뻐라.”
“냐아아앙.”
태산이 다시 한 번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러자 사람들이 천천히 길을 열어주기 시작했다. 홍해가 갈라지듯 태주와 일행이 지나갈 길이 몰려있는 사람들 사이에 생겨났다.
‘이건. 설마 애교인가?’
태주만이 지금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았다. 그는 태산이를 어깨에 걸치고 견우와 미나의 손을 잡고 빠르게 걸어나갔다.
태산이 애교 기술은 유지 시간이 5분이었다. 이어서 쓸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혹시 모르니 바로 장소를 벗어나는 게 좋아 보였다.
빠른 속도로 걸어 주차장에 도착했다. 태주 일행이 지나온 길 뒤쪽에서 사람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렸다.
“매니저님 바로 출발해요.”
“네, 네.”
“누나 타요. 정리는 안에서 해요.”
“어, 어어. 알았어.”
두 사람은 아직 제정신을 차리지 못했지만, 태주의 재촉에 반응해서 밴에 올랐다. 태주는 그때까지 얌전히 어깨에 매달려있던 태산이를 제대로 품에 안았다.
‘세상에. 태산이가 똑똑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어떻게 그 순간에 애교를 써서 길을 열었지?’
“태산이는 천재야. 태산이 네가 최고다.”
“어휴. 팔불출.”
“하하하. 팔불출이면 어때요. 나쁜 것도 아닌데.”
“호호호. 하긴 태산이 정도면 팔불출이 안 되는 게 더 이상하다.”
태주가 태산이 선글라스를 벗겨주고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기특하고 귀여워서 참을 수가 없었다. 짐을 정리하면서 그 꼴을 보던 미나가 혀를 찼다.
“그런데 어떻게 딱 그 순간에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냐.”
“하하하. 운이 좋았죠.”
“타이밍이 너무 좋잖아.”
“무사히 빠져나왔으니 됐잖아요. 이만큼 몰릴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미나는 그의 말에 동의하며 화보 촬영지를 한강으로 잡은 멍청한 담당자를 씹었다. 오늘은 그런 미나를 태주도 견우도 말리지 않았다. 평일 정오 조금 넘은 시간이라 사람이 많지 않을 거라면서 촬영지 변경을 받아들이지 않더니, 자칫 큰일이 날뻔했다.
그래도 그 덕분에 태산이 애교 기술이 이런 식으로 쓰일 수 있다는 걸 알아서 다행이었다. 생각지도 못한 유용한 활용법이었다.
‘남발하면 안 되겠지만, 오늘 같은 경우는 가끔 부탁해도 되지 않을까? 응? 태산아?’
밴에 설치한 숨숨집에서 앞발 장난을 치고 있는 태산이에게 속으로 질문을 건네보는 태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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