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7
76. 외국인? >
선율은 관객의 호평을 받으면서 꽤 좋은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영화 장르의 특성상 천만 같은 숫자는 꿈꾸기 힘들지만, 음악 영화로서는 준수한 성적이었다.
이미 손익분기점인 175만은 훌쩍 넘은 상태였다. 지금처럼 순조롭게 관객이 든다면 스크린에서 내릴 때는 충분히 만족할 만한 관객 수가 나올 것 같았다.
도깨비 무사와 선율의 연이은 성공은 그를 회귀 전과 비슷한 상황으로 만들었다. 모자 하나만 써도 잘 못 알아보던 사람들이 이제는 어느 곳에서든 그를 알아봤다. 덕분에 외출할 때 신경을 많이 써야 했다.
또 경제적인 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여러 가지 광고 수입에 영화의 개런티 등. 정산일이 기대되는 상황이었다.
인지도와 경제적인 이점 외에 그가 좋게 평가하는 점은 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았다는 것이었다. 안정적이면서도 관객을 사로잡을 줄 아는 그의 연기를 본 많은 관계자가 그에게 대본을 보내고 있었다. 그 질과 양은 예전에 받아보던 것과 확연히 달랐다. 그 점이 그를 기분 좋게 만들고 있었다.
“이건 무슨 섭외예요?”
“아아. 그건 이 배우님은 하기 힘든 걸 텐데요.”
“헐. 웬 낚시왕? 이거 혹시 낚시하는 예능이에요?”
“네. 차라리 ‘냉장고를 털어라’에 나가시는 게 낫죠.”
태주는 여전히 예능을 선택하지 못했다. 그 때문에 6월에 방송일정이 빌 것 같자, 우 팀장이 몇 개를 골라서 그에게 추천했다.
“대중들은 연예인이 TV에 안 보이면 노는 줄 알아요. 게다가 이태주 배우님은 지금이 위로 치고 올라가야 할 때니까, 가능한 방송에 많이 노출되는 게 좋아요. 그 목록에서 하나나 둘 정도로 골라보세요.”
“네. 이건 뭐에요? ?”
“미튜브 같은 곳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터에 도전하는 예능이에요. 진혁 배우님이 촬영 중이세요.”
“네? 진혁 형님이요? 드라마 안 하시고요?”
“네. 갑자기 퓨전 사극이 마음에 안 드신다고 거절하시더니, 예능을 고르셨어요.”
태주는 우 팀장의 말을 듣고 찔리는 구석이 있었다. 예전에 진혁과 통화하면서 그 퓨전 사극은 별로라고 세뇌하듯이 얘기를 한 적 있었다. 아마도 그래서 퓨전 사극 출연을 고사한 것 같았다.
‘출연 안 한 건 괜찮은데, 메디컬 드라마가 아니라 예능을 고르시다니. 참, 그 형님도 특이해.’
“그렇지 않아도 진혁 배우님이 이 배우님도 같이 촬영하자 하시더라고요.”
“절요?”
“네. 요리 영상 찍으신다면서 나중에 출연해서 식사하시래요.”
“그건 괜찮네요. 요리시키시는 거면 거절하려 했는데.”
진혁의 예능 외에 토크쇼 패널 섭외를 하나 받아들이고 태주는 회사를 나왔다. 오늘은 오후에 승마장을 예약해 두어서 바로 그곳으로 가야 했다.
*
정원에 오기 전에 태블릿에 영화와 애니를 새로 담아왔다. 요새 해나와 희는 저녁을 먹고 거실에서 같이 시간을 보낸다. 둘 다 지구의 영상물을 좋아해서 벌써 몇 번이나 새로운 것을 담아왔다.
그는 영상이 든 태블릿을 해나에게 건넸다. 둘은 태블릿 안의 영화를 보고 재밌는 것은 디스크에 담아서 나중에 다시 보곤 했다.
“오늘은 활터에서 연습하고 있을게요.”
“활쏘기 선생님은 필요 없어?”
“네. 쏘는 흉내만 내면 된다고 해서요.”
“호호호.”
그가 연습을 위해 활터로 갈 때였다. 제피르가 다가와 그의 주위를 여러 바퀴 돌았다. 무언갈 찾는 기색이었다.
“히히힝.”
“왜? 뭐 찾아, 제피르?”
“히히히히힝.”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 희!”
태주가 제피르의 말을 통역해줄 희를 찾는 순간 ‘땅’ 소리가 들리고 보호막이 씌워졌다.
“보호막?”
‘퍽.’
“으엑.”
보호막이 씌워진 것과 동시에 태주는 제피르에게 등을 차여 바닥을 굴렀다. 땅바닥을 한 바퀴 거하게 구른 태주가 바닥에 앉아서 제피르를 올려다봤다.
‘뭐냐? 발로 찰 거면서 보호막은 왜 씌워준 거야. 아프진 않지만, 기분 나빠.’
“너!”
“히히히잉.”
“헐. 차인 건 난데, 왜 네가 더 기분 나빠해? 응? 이 난폭한 녀석아.”
적반하장으로 구는 제피르에게 따져봤지만, 화가 난 듯한 울음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그가 답답한 듯 제피르가 몇 번 더 히히힝 소리를 내고 중앙의 큰 나무 위로 올라가 버렸다.
“태주?”
“희, 잘 왔어. 제피르한테 뭐에 화가 났는지 좀 물어봐 줄래?”
“제피르, 화?”
“응. 왠지 기분이 많이 상해있었어. 나한테 무어라 말하고 화를 냈는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어. 부탁해, 희.”
“응. 희가 물어볼게.”
그는 이 낯선 제피르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요사이 그는 제피르가 싫어하는 일을 한 적 없었다. 그리고 제피르는 어디가 아픈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제피르가 갑자기 화를 내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태주! 제피르는 태주가 다른 말이랑 친해지는 게 싫대.”
“뭐?”
“태주의 말은 제피르래.”
“그게 무슨…. 아! 승마장.”
오늘 오후에 승마장에 다녀온 걸 제피르가 어떻게 알게 된 것 같았다.
“오후에 다른 말을 타긴 했는데.”
“제피르가 슬퍼했어.”
“아니, 그게.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제퍼르를 타지는 못할 거 같은데.”
한 뼘 조금 넘는 크기의 제퍼르를 탈 방법이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제피르가 현실에서 큰 말로 변한다고 해도, 데려갈 방법이 없었다. 태주의 집은 투룸 복층의 오피스텔이었다. 갑자기 커다란 말이 생기면 둘 곳도 설명할 방법도 없었다.
“제피르는 펫인데. 현실로 못 가?”
“어, 그게 현실에서 사는 집은 이렇게 넓지 않아서.”
데려갈 수 없다는 말을 듣자, 희의 표정도 슬퍼졌다. 그는 이 작은 요정 앞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그런데 내가 현실에서 다른 말을 탄 걸 어떻게 알았을까?”
“우웅. 제피르는 태주의 말이니까?”
“어, 그래.”
정원에서 벌어지는 일은 가끔 그의 이해를 벗어나곤 한다. 이번 제피르의 일도 그런 것 같았다.
‘영화 수익 정산을 받으면 대출을 받아서라도 전원주택을 사야겠다.’
그는 현실에서 다른 말을 탄 일로 제피르가 슬퍼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에게 제피르는 태산이 같은 반려동물이지, 기승용의 말이 아니었다.
“현실에 돌아가면 집을 알아봐야겠다. 제피르! 잠깐만 내려와. 설명할게.”
“제피르.”
희가 태주의 부름에도 오지 않는 제피르를 부르며 나무 위를 향해 날아갔다. 둘 사이에 무슨 얘기가 오갔는지 잠시 기다리자 제피르가 내려왔다.
“제피르, 미안해. 현실에서 말을 꼭 타야 하는 일이 있어. 그래도 널 데려갈 수 있도록 내일 돌아가서 방법을 찾아볼게.”
“히히힝.”
“미안. 다른 말을 타서. 제피르, 슬프게 해서 미안해.”
“히히힝. 히이이잉.”
둘의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희가 제피르의 마지막 말을 태주에게 알려줬다.
“태주, 일 때문이라면 제피르가 이해한대. 하지만, 태주의 말은 제피르뿐이래.”
“당연하지. 나한테 말은 제피르가 유일해.”
“히힝.”
“이해해줘서 고마워, 제피르. 최대한 빨리 현실로 데려갈 방법을 찾아볼게.”
사실 그는 얼마전에 마음에 드는 부지를 찾았다. 집 뒤쪽으로는 산이 있고 부지 내에 시냇물이 흐르는 곳이었다. 부지는 개발되지 않아 편의 시설이 전혀 없었지만, 교통은 나쁘지 않았다. 서울까지 차로 30분 거리로 그에겐 문제가 되진 않았다.
그곳은 전혀 개발되지 않은 곳이라, 도로와 부지 빼곤 아무것도 없었다. 차를 타고 10분 정도 떨어진 전원주택 단지에 가야지 사람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정원의 레시피랑 재료를 가져가서 집을 지으면 좋을 텐데.”
정원의 레시피는 재료만 있으면 쓱쓱, 탕탕 소리를 내고 바로 건물이 완성된다. 현실에서 그런 마법 같은 일을 벌이면 문제가 될 것이다. 게다가 재료를 정원에서 가져간다고 생각하면 그 수수료를 감당할 수 없어 보였다.
*
인터뷰를 위해 촬영장으로 가는 중에도 태주는 전원주택지 구매에 관해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무릎 위의 태산이를 기계적으로 쓰다듬으면서 계속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고민하고 있어?”
“서울 근교의 전원주택부지를 봐둔 게 있거든요. 그런데 돈이 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헐. 이제 스물하나인데. 벌써 무슨 전원주택이야?”
“전원주택하고 나이가 무슨 상관이에요. 저는 그런 곳 좋아해요.”
태주는 자신이 사고 싶은 부지에 관해 그들에게 설명했다. 외지고 사람 없고 개발되지 않은 곳이라는 설명을 들은 둘의 표정이 애매해졌다.
“네 말이 맞다. 이건 나이랑 상관없이 취향의 문제야.”
“크흠. 취향 문제 맞아요.”
“너 CF도 많이 찍고, 화보도 꽤 찍었잖아. 그런 땅이면 살 수 있지 않아?”
“넓어서 그런가 모자라요. 영화 출연료 정산받아도 많이 모자랄 것 같아요.”
“빈 땅이라면서 그렇게 비싸?”
태주는 말을 아꼈다. 그가 사려는 땅의 실체를 안다면 지금보다 더 황당하다는 표정을 보게 될 것 같아서였다. 그의 눈에 든 땅은 부지만 2천 평이 넘는 곳으로 가격도 십수 억이었다. 데뷔 2년 차의 배우가 쉽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차피 먹깨비라고 불리는데, 그냥 가리지 말고, 들어온 먹는 CF 전부 찍을 걸 그랬어요.”
“호호호. 안 그래도 네가 찍은 아이스크림 광고도 반응 엄청 좋더라.”
“냐아앙.”
“그래요? 알았어. 계속할게.”
등을 살살 긁어 주던 손이 멎자, 태산이 계속 긁으라는 듯이 소리를 냈다. 그는 손톱에 긁히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다시 등을 긁어 주기 시작했다.
‘아! 그걸 쓰면 되겠구나.’
태주는 예전에 상점에서 봤던 물건을 떠올렸다. 탐정이 들고 다니는 돋보기 같은 물건이었는데, 사용하면 대상의 생산 연도나 제작자를 알 수 있었다. 그때 그걸 보고 나중에 다기 구매할 때 꼭 사서 써보자는 다짐을 했었다.
‘골동품 가게에서 그걸로 좋은 걸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돋보기 외에 현실에서 쓸만한 물품을 몇 가지 더 떠올린 태주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는 상상만 해도 좋은 기분에 태산이를 품에 꼭 끌어 안았다.
*
인터뷰 촬영은 얼마 걸리지 않는다. 게다가 저녁부터 내일까지는 예정된 일정이 없었다. 오랜만의 휴일이어서 일부러 태산이도 데리고 나왔다. 촬영이 끝나면 바로 일행이랑 반려동물도 출입 가능한 레스토랑에 갈 생각이었다.
“촬영 끝난 다음에 저녁 먹으러 가요. 요새 계속 태산이 봐주셨잖아요. 맛있는 것 사드릴게요.”
“호호호. 솔직히 태산이 데리고 오는 게 더 좋아. 기다리는 동안 태산이랑 노는 것도 재밌어. 또 평소엔 말썽도 안 부리고 얌전히 품에 안겨 있으니까.”
“맞습니다. 태산이가 힘든 게 걱정이지, 돌보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정말 고마워요, 두 분 모두요. 이따 드시고 싶은 것 다 시키세요. 다 사드릴게요. 하하하.”
그가 생각했던 대로 촬영은 금방 끝났다. 태주는 제작진과 인사를 나누고 스튜디오를 나왔다. 사람 없는 복도에서 태산이를 내려 주자 신이 나서 앞으로 가기 시작했다. 일행은 발랄하게 걷는 태산이 뒤를 느긋하게 따라 움직였다.
“냐아냥. 냥냥냐아앙.”
“왜 그래? 거기 뭐가 있어?”
복도를 잘 걸어가던 태산이 닫혀있는 비상구 문을 향해 울기 시작했다. 태산이의 반응을 이상하게 여긴 태주가 문을 열려 하자, 견우가 그를 말리고 문을 열었다.
사람 없는 복도에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퍼졌다.
“누구십니까?”
“으악! 호랑이!”
“뭐?”
갈색 피부의 외국인이 외친 호랑이라는 소리에 태주는 깜짝 놀랐다. 정확하게 태산이를 가리키며 호랑이라고 외친 사람을 향해 태산이 달려들었다. 어찌나 잽싸게 튀어나갔던지 그가 말릴 새도 없었다.
“냐아앙.”
“으악!”
“헉! 태산아!”
난장판이었다. 다 큰 성인이 태산이를 피해 빙글빙글 돌자, 태산이 끈이 꼬이건 말건 그를 따라 빙글빙글 돌았다.
‘꽈당!’
“헉! 괜찮으세요?”
“어흐으윽. 호, 호랑이가 왜, 왜 또 여기에….”
결국, 갈색 피부의 외국인이 태산이 끈에 엉켜서 넘어지고 말았다. 태주가 놀라서 그를 부축하려 했지만, 외국인은 그의 손을 뿌리치고 바닥에 엎드려 울기 시작했다.
“우선 좀 일어나세요. 바닥이 차가워요.”
“으허허엉. 내가 어떻게 다시 살, 후으엄. 왜 또 호랑이가….”
‘뭐지? 이 사람 아까부터 태산이를 정확하게 호랑이라고 부르는데. 우연인가?’
“진정하세요. 혹시 다친 곳이 있으면 말씀하시고요.”
“흐어어엉”
뭐가 그리 서러운지 그는 태주가 달랠수록 더 크게 울었다. 난감함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태주 옆엔 문제의 원흉인 태산이 고개를 갸웃갸웃하고 있었다.
“냐아앙.”
“으헉.”
“그만하라 했다. 태산이.”
태산이 슬그머니 다가가 앞발로 울고 있는 외국인의 얼굴을 건드렸다. 그는 태산이 앞발이 닿자마자 소스라치게 놀라서 몸을 일으켰다. 명백하게 겁을 먹은 듯한 모습에 태주가 이를 악물고 태산이를 말렸다.
외국인은 태주가 다리에 엉킨 끈을 풀어주고 몸을 일으켜줄 때까지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태산이가 건드린 얼굴에 손을 대고 멍하니 있었다.
“매니저님 이분 병원으로 데려가야 할 것 같은데요.”
“…설마 위장 중?”
“네?”
“이, 이런 수준 높은 위장이라니!”
“당신, 지금 뭐라고?”
위장이라는 단어를 듣자 태주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그는 현실에서 태산이가 위장 중인 걸 알아챌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지금 낯선 외국인이 태산이를 보며 두 번이나 위장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위 잡으부붑!”
“닥치세요. 한마디만 더 하면 가만 안 있습니다.”
“….”
또다시 위장이라는 단어를 말하려는 외국인의 입을 태주가 막았다. 그는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고 위압을 담아 외국인의 귓가에 닥치라고 속삭였다. 외국인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겁먹은 눈으로 태주를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외국인과 눈을 맞추고 확실하게 의사를 전한 태주가 일행에게 따로 가겠다는 말을 했다.
“매니저님, 누나 식사는 다음에 해요. 저는 이분 모시고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
“같이 가시죠.”
“그래, 태주야. 어떻게 혼자 가니.”
“아뇨. 태산이 때문에 벌어진 일인데요. 그리고 이분 아무래도 제가 아는 분 같아요.”
견우와 미나가 같이 가자고 재차 얘기했지만, 태주 한사코 거절하고 따로 택시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외국인을 연행하듯 택시에 태운 태주의 표정은 무섭게 굳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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