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8
77. 미라 쿠첼루스 >
굳은 표정의 태주 때문에 택시 안에 침묵이 흘렀다. 그의 기에 눌려 태산이도 외국인도 조용히 있었다. 태주를 알아본 듯 택시 기사가 연신 백미러로 뒷좌석을 봤지만, 그는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태주의 침묵은 집에 도착해서 외국인을 소파에 앉힐 때까지 이어졌다. 태주는 동생들이 집에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말을 열었다.
“당신 정체가 뭡니까?”
“….”
“좋아요. 정체는 밝히지 않아도. 태산이가 위장하고 있는 걸 어떻게 알았습니까?”
“….”
외국인은 그의 질문에 답할 생각이 없는 것 같았다. 티테이블만 뚫어질 듯 보고 있었다.
“당신 대체 무슨?”
‘꼬르르르륵!’
“아! 후우.”
우렁차게 울리는 소리에 태주가 결국 추궁을 멈췄다. 그렇지 않아도 태산이 때문에 넘어져서 엉엉 울던 사람인데, 배고파하는 걸 보니 어쩐지 더 모질게 대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냉장고 안에는 먹을 것이 잔뜩 있었다. 그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딸기가 잔뜩 장식된 케이크였다. 아마 연우의 이번 요리 채널 주제가 딸기인 것 같았다. 딸기 케이크 외에도 딸기가 들어있는 디저트가 한 칸을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진정 효과가 있는 차하고 같이 내야겠다.’
딸기 케이크와 허브 티, 탄산수 등을 챙겨서 이름 모를 외국인이 있는 거실로 오던 태주는 곧 황당한 얼굴을 하고 말았다. 태산이 티 테이블 위에 올라앉아서 장난치듯 외국인을 감시하고 있었다. 외국인은 그런 태산이가 무서운지 긴 소파 구석에 구겨져 있었다.
“이놈! 하지 말라고 했지! 왜 사람을 괴롭혀? 응? 혼난다!”
“냐아앙.”
“안 돼. 어서 내려와.”
잘못한 게 없다는 듯이 순진하게 갸웃대는 태산이에게 단호하게 내려오라 말한 태주였다. 외국인의 정체가 의심스러운 건 사실이지만, 태산이가 계속 괴롭히게 둘 수는 없었다.
“이 녀석이 버릇없이 굴어서 죄송해요. 이제 못 하게 할 테니, 이것 좀 드세요.”
‘꼬르르륵.’
태주는 되려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배를 곯고 있는 외국인(불법 체류자처럼 보이는)을 괴롭힌 것 같아서 바늘로 양심을 콕콕 찌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자기 몫으로 챙겨온 탄산수의 반을 한 번에 비운 태주가 외국인에게 재차 음식을 권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음식에 손을 대지 않았다. 아니, 손을 대지 못했다. 어느새 켓 타워에 올라가서 다시 감시를 시작한 태산이 때문에 그는 자세도 편하게 풀지 못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태주는 태산이를 2층 방에 데려다 두었다. 그가 빈손으로 2층에서 내려온 것을 본 외국인은 그제야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태산이를 엄청 무서워하네. 위장이라고 바로 말하던데, 혹시 본 모습이 보이나?’
위장을 푼 태산이 모습은 태주 역시 본적 없었다. 그의 상상 속 위장을 푼 태산이는 카리스마 넘치는 강한 백호였다. 아니면 예전에 한 번 만난 적 있는 푸른 사자 정원사만큼 거대하고 아지랑이 같은 털을 가진 모습이었다.
‘그 사자 정원사처럼 신비로우면 좋겠다. 아아, 궁금하다.’
그가 태산이 본 모습을 상상하며 차를 마시는 동안 외국인은 그가 내온 음식을 전부 먹어치웠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포크를 입에 물고 있었다. 태주는 그 모습을 보고 다시 냉장고에서 먹을 것을 가져다주었다.
“잘 먹었습니다. 음식을 나눠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 마치셨으면, 잠시 얘기를 좀 나누죠.”
태주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태주는 자신과 태산이까지 그에게 소개했다. 태주의 소개는 묵묵히 듣던 그가 태산이에 관한 말이 나오자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저는 피어모트 쿠첼루스 타르티스 온가두 비에르디스 바스테트라고 합니다.”
“네? 피어…. 실례했습니다. 그 성함을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겠어요?”
“피어모트 쿠첼루스 타르티스 온가두 비에르디스 바스테트입니다.”
“…어떻게 불러야 하나요?”
쿠첼루스가 이름이라는 설명에 그렇게 부르기로 한 태주는 궁금했던 것을 묻기 시작했다.
“태산이가 위장 중이라는 건 어떻게 알았어요?”
“그 전에, 그 호랑이하고 당신은 무슨 관계입니까?”
“주인과 펫이지만, 가족으로 생각해요. 동생처럼 자식처럼 여기고 있어요.”
“그, 그렇군요.”
떨떠름한 표정을 한 쿠첼루스가 더듬으며 대답했다.
좀 전에 음식을 먹은 덕분일까, 머리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는 기억 속에 있는 인물이었다. 아니 이런 얼굴은 잊는 게 더 힘들었다. 남자는 이 이상한 곳에 떨어지기 전에 그 호랑이에게 무슨 짓을 했냐며 자신에게 소리치던 사람이었다.
“여긴 어딥니까?”
“…지구예요.”
“지구? 혹시 에르세스라는 나라를 아십니까? 아니면 바스테트 신님이나.”
태주가 고개를 저으며 들어본 적 없다고 얘기했다. 혹시 몰라서 폰으로 검색도 해봤지만, 그런 이름은 나오지 않았다.
쿠첼루스는 그의 대답에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는 자신을 에르세스 사막 왕국의 마법사이자 신관이라고 소개했다. 왕을 근거리에서 모시고 바스테트 신을 섬겼었다는 얘기를 했다.
그의 설명을 듣던 중 태주가 시계를 봤다. 7시 반이었다. 슬슬 동생들도 돌아올 시간이었고 태산이도 방에서 꺼내줘야 했다.
“쿠첼루스 씨 태산이를 꺼내줘야 할 것 같아요. 제가 잘 붙잡고 있을 테니 걱정마악! 이게 뭐야!”
태주가 태산이 얘기를 꺼내며 안심시키던 중 쿠첼루스의 모습이 바뀌었다. 멀쩡한 옷을 입은 모습에서 지저분한 붕대를 두른 모습이 되었다.
“미, 미, 미라. 헉.”
좀 전까지 눈앞 소파에 앉아서 차도 마시고 케이크도 먹던 사람이 시체로 바뀌었다. 태주는 온몸에 피가 식을 정도로 놀랐지만 바로 미라의 팔을 잡아서 들어 올렸다. 동생들이 오기 전에 이 미라를 치워야 했다.
“무, 무거워.”
뻣뻣하게 굳은 몸을 짐짝처럼 어깨에 메고 2층 방으로 옮기는 건 쉽지 않았다. 공포물을 싫어하는 태주는 동생들만 아니었으면 그를 그대로 버려버렸을 것이다.
낑낑대고 미라를 옮긴 태주의 얼굴에서 땀이 뚝뚝 떨어졌다. 좀 전까지는 놀라서 손발이 차가웠는데, 그새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이 사람이 추락자 맞았구나.”
마법을 쓸 줄 아는 일꾼이라더니 마법으로 꾸미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다 미라로 바뀌면서 마법이 풀리고 본 모습이 드러난 게 틀림 없었다.
쿠첼루스 미라가 감은 지저분한 붕대 때문에 침대에 올릴 생각은 못 하고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렇게 바닥에 굳어있는 쿠첼루스가 신기한지 태산이 그의 위로 올라가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냥냐앙.”
“그 사람, 아니, 그 미라 건드리지 마, 태산아. 지지야. 아니, 이게 아니지. 사람한테 지지라니. 아, 진짜.”
태산이를 말리고 태주는 침대에 누웠다. 간절하게 휴식이 필요했다.
*
정원 입구에서 태주는 쿠첼루스를 찾았다. 현실에서 물건을 가져올 때는 몸 주변에 물건을 두면 된다. 태블릿이나 기타는 정원에 가져갈 때 침대 주변에 두고 잠을 자면 가져올 수 있었다.
쿠첼루스 미라도 무생물로 판단될 것 같아서 침대 바로 아래에 딱 붙여서 두었는데, 정원에 넘어오지 못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으휴. 골치야.”
“태주?”
“희, 잠시만.”
그는 태산이를 땅에 내려 주고 가지고 온 물건을 오두막에 둔 다음에야 희에게 현실에서 겪은 일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희가 정원사 협회에 연락을 해줬으면 해. 추락자인 것 같은 미라를 데리고 있다는 얘기를 해줘.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물어봐 줘. 부탁해.”
“응, 알았어.”
희가 연락하러 간 후엔 평소처럼 일하기 시작했다. 놀란 것은 놀란 것이고 할 일은 해야 했다. 적은 인원으로 정원을 가꾸다 보니 조금이라도 일을 미루면 나중에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일이 커져 버린다.
“안녕하세요, 정원사님.”
“안녕하세요, 이나타 씨. 오랜만이에요.”
“예, 오랜만입니다. 추락자를 찾으셨다고요?”
“네, 원래 저희 정원에 설치된 피라미드에 있던 미라예요. 이름이…, 쿠첼루스예요.”
풀네임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대사가 많은 대본도 한 번 보면 외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은 그였지만, 쿠첼루스 미라의 이름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태주가 말한 이름을 이나타가 자신의 책에 적었다. 그녀의 책이 잠깐 반짝이더니 설명이 새겨졌다.
“으음. 그 추락자는 꿈의 세계의 정식 주민이 아닙니다. 정원사님 같은 분과 계약을 맺어 소속이 생겨야 정식 주민이 될 수 있습니다.”
“어?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추락자를 저희가 도울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헐. 그럼 어떻게 해요? 그 쿠첼루스 씨는 지구 출신도 아니신데요?”
“어쩔 수 없습니다. 우선 현실에서 일꾼 고용계약을 해보십시오.”
이나타는 쿠첼루스를 고용하는 것은 정원 시스템으로 고용하는 것과는 다를 거라며 설명해줬다. 그녀는 태주가 양피지에 고용계약서를 쓰는 걸 도와주며 다른 궁금한 점이 있는지 물었다.
“저녁에 갑자기 미라로 변했어요. 그 전까지 음식도 먹고 차도 마시고 그랬는데요.”
“온전한 부활이 아니라서 그렇습니다. 제대로 움직이려면 소속이 생겨서 꿈의 세계의 주민이 되어야 합니다. 그나마 그렇게라도 움직일 수 있는 건, 그가 바스테트 신의 축복을 받은 신실한 분이라 그렇습니다.”
그가 자신을 에르세스 왕국의 마법사 겸 신관이라고 소개한 게 거짓이 아니었다. 신의 축복을 받을 정도로 신심이 큰 사람이었다.
“바스테트 신은 고양이 모습을 한, 빛을 관장하는 신입니다. 아마 그 추락자는 계약이 없어도 낮에는 멀쩡하게 움직일 수 있을 겁니다. 일단 부활을 하긴 했으니까요.”
“낮에는 사람이고 밤에는 미라라는 거죠? 정식 주민이 되기 전까지.”
“네. 그렇습니다.”
반드시 계약서를 쓰고 그를 정원에 데려와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태주는 밤마다 미라와 같이 지내야 했다. 그건 정말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었다.
*
그는 정원에서의 시간이 끝날 무렵 현실로 가져갈 물건을 잘 챙겨서 입구를 넘었다. 익숙한 시스템 메시지를 들으며 현실로 돌아왔다.
“으헉.”
“허어억.”
“뭐, 뭡니까?”
“허어억. 그, 좀 전에, 가짜 몸이, 허억.”
시계를 보자 오전 6시 5분이었다. 평소에 그가 돌아오는 시간과 같았다. 그의 품에는 태산이 소란에도 얌전히 자고 있었다. 정원에서 오기 전까지 신나게 뛰더니 푹 자고 있었다.
커튼을 걷고 하늘을 확인하자 해는 보이지 않고 여전히 새벽의 푸르스름한 빛만 돌고 있었다. 하지만 쿠첼루스가 사람이 된 걸 보면 이미 해가 뜨기 시작한 것 같았다.
“후우. 쿠첼루스 씨. 어제 하던 얘기를 이어서 하죠. 혹시 꿈의 세계의 주민이 되는 계약을 한 적이 있습니까?”
그는 태주의 질문에 잠시 생각하더니 비슷한 것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관에서 기다리다 주인을 만나게 되면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살 수 있게 해준다는 계약이었습니다.”
“그 새로운 세상이 꿈의 세상인 것 같네요. 후우. 우선 제가 알아온 사실부터 말씀드릴게요.”
이나타에게서 들은 얘기와 챙겨온 고용계약서를 보여주면서 그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는 감격한 얼굴로 신에 대한 찬미를 늘어놓았다.
“아아. 자비로운 바스테트 신이시여. 이 미천한 종에게 그런 은혜를 베푸시다니. 온 세상을 비추시는 진정한 빛이신 바스테스 신께….”
“그, 그만 진정하세요. 축복이 있더라도, 저녁에는 미라가 되잖아요. 우선 고용계약을, 헉!”
‘쓱쓱.’
“읽어보시고 사인을 하셔야죠! 그냥 사인하면 어떻게 해요. 무슨 내용일 줄 아시고요.”
어차피 여분의 목숨을 사는 것이라며 그가 선하게 웃었다. 웃는 얼굴에 화를 내기 힘들었다. 어쩐지 누군가 떠오르며 답답한 기분이 드는 것 같았다.
“바스테트 신께서 인도하신 인연입니다. 믿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아니. 그래도 계약서는.”
쿠첼루스는 태주가 당황하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안을 둘러보고 있었다. 태주는 그 태평한 모습에 한숨을 삼켰다.
태주가 빈칸에 사인하자 계약서의 효과가 발동하는지 옅은 빛을 내기 시작했다.
‘파앗!’
“어라? 이거 전송되고 사라져야 하는데.”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잠시만요.”
태주는 급하게 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만약 그가 정원의 일꾼으로 등록되지 않았다면 오늘 저녁에 다시 미라가 될지도 몰랐다.
「태주, 피어모트 쿠첼라스으으, 너무 길어.」
‘이름은 넘어가자. 그 사람이 정원의 일꾼으로 등록되어 있어?’
「응. 이제 일꾼이야.」
‘다행이다. 알려줘서 고마워, 희.’
“휴우. 다행히 문제는 없네요. 정식으로 정원 소속이 되었어요.”
“그렇습니까? 그런데 정원은 무엇입니까?”
태주는 그에게 간단하게 정원이 무엇인지 설명해줬다. 그 이후로도 한참 동안 그가 궁금해하는 것을 알려주다 보니 어느새 아침이 밝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쿠첼루스 씨. 지금 그 모습은 마법인가요? 원래는 붕대 차림이죠?”
“네, 맞습니다. 제가 정신을 차린 지 얼마 안 돼서, 아직 옷을 못 구했습니다. 혹시 미라 모습이 더 좋으십니까?”
“아니요!”
“이곳 사람들은 미라 모습을 좋아하는 것 같던데요. 주인님은 특이하시군요.”
“헉! 주인님이라뇨. 왜 그렇게 부르세요.”
자신을 고용했으니 주인이라는 그에게 지구는 그가 살던 곳과 다르다는 얘기를 한참 한 후에야 호칭을 겨우 태주 씨로 바꿀 수 있었다. 신분제가 유지되는 왕국에서 온 그를 이해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것도 없는 데 지친다.’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쩐지 하루 치의 에너지를 벌써 다 써버린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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