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79
78. 오류 >
쿠첼루스에게 욕실 사용법을 알려주고 갈아입을 옷도 챙겨준 후에야 한 숨돌린 태주였다. 스케줄이 없는 날이라 다행이었다. 쿠첼루스를 혼자 두고 일하러 가야 했다면 내내 불안할 뻔했다.
이제 일꾼 계약을 무사히 마쳤으니, 오늘 하루만 같이 지내면 그를 정원으로 데려갈 수 있었다.
‘오늘은 열두 시 넘으면 바로 정원으로 가자.’
쿠첼루스가 씻는 사이, 태주는 태산이 아침을 챙겨놓고 일어나라고 깨우고 있었다. 고기 냄새를 맡았을 게 뻔한데, 장난치고 싶은지 일어나지 않고 앞발만 뻗고 있었다.
“태산아, 일어나. 아침 먹어야지.”
“냐앙.”
“아침 먹어. 오늘은 태산이 좋아하는 오리고기야.”
“냐아아앙.”
그는 생식을 먹는 태산이 제때 밥을 먹지 않아 상한 걸 먹게 될까 봐, 날이 더워지면 식사 시간을 꼭 지키게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태주의 마음은 모르고 누워서 장난만 치는 태산이었다. 태산은 일어나지 않고 앞발로 손에 매달렸다가 다시 눕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에휴, 이 장난꾸러기.”
“주인님.”
“헉. 쿠첼루스 씨. 호칭이요.”
“아! 태주 씨. 이제 저는 무슨 일을 합니까?”
“여기서는 할 일이 없으세요. 정원에 가시면 같이 할 일을 찾아봐요.”
“냥!”
누워서 장난만 치던 녀석이 쿠첼루스의 목소리를 듣자 벌떡 일어났다. 태주는 그런 태산이 또 그에게 달려들까 봐 그대로 안아 들었다.
‘아! 이 둘을 어떻게 하지. 태산이는 영역을 지킨 거고, 쿠첼루스 씨는 계약한 것뿐이었는데.’
“그, 예전에 태산이가.”
“괜찮습니다. 해치지 않고 그냥 영역에서 내보냈던 거지요?”
“어? 네.”
쿠첼루스의 말을 들은 태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말 그대로였다. 자신이 그에게 설명하려던 것은.
“수호 동물은 익숙합니다. 함부로 영역에 침범했는데도 해치지 않고 내보낸 것은 자비로운 처사입니다.”
“이,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앞으로 그런 일 없도록 주의시킬게요.”
태주가 생각했던 반응과 달랐지만 너그럽게 받아 들여줘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나중에 뭐라도 보상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모르고 한 일이었지만, 괜한 고생을 하게 만든 셈이었다.
‘그런데 그게 자비 운운할 일인가? 당연히 해치면 안 되지.’
쿠첼루스는 태산이 행동을 당연하다고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태주는 겪어본 적 없는 일이라 당장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밤에 정원으로 가시기 전까지 편하게 계세요. 혹시 몸이 불편하진 않으시죠?”
“괜찮습니다. 창고 같은 곳에서 깨어나서 좀 놀랐지만, 바로 주인님, 큼, 태주 씨를 만나서 다행이었습니다.”
“그건 정말 다행이에요.”
정말 다행이었다. 내심 그가 이집트 같은 곳으로 가길 바랐었는데, 큰일 날 소리였다. 밤에 미라로 변하는 그를 사람들이 발견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낮에는 마법을 쓸 수 있지만, 저녁에는 무방비 상태의 미라가 되는 그였다. 그런 그가 이집트에 떨어졌다면, 혼자서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오늘 전 휴일인데요, 가볼 곳이 있어요. 같이 가셔도 되고 집에서 쉬셔도 돼요.”
“괜찮으시다면 같이 가고 싶습니다.”
“그래요. 같이 가요.”
그에게 오늘 가는 곳에 관해 설명하려는 순간 연우가 방에서 내려왔다.
“형,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잘 잤어. 연우야, 이리 와서 인사해. 이쪽은 형 아는 사람, 쿠첼루스 씨야.”
“네. 안녕하세요. 박연우예요.”
연우는 낯선 외국인이 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고, 아침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에게 태주가 같이 다기를 사러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다기요?”
“응, 다기도 사고. 근처에 골동품 가게도 한 번 가보고.”
“다기를 또 사요?”
“이번엔 중국식 다기를 사려고. 집에 있는 건 전부 서양식이라.”
골동품 재테크를 생각하고 돋보기도 사 온 태주였지만, 마음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그는 회귀 전 골동품을 좋아해서 많이 샀지만, 모두 직접 사용했었다. 애초에 골동품 재테크는 해본 적도 없고, 하는 방법도 잘 몰랐다. 그저 어떻게 돈을 모을까 고민하다 순간적으로 골동품을 떠올린 것뿐이었다.
“좋은 녹차가 생겨서 말이지. 정말 좋은 거라 제대로 된 다기로 마시려고.”
“그래요. 형.”
“가시는 곳에 골동품점이 있습니까?”
“네. 근처에 꽤 많이 있어요.”
골동품이라는 단어에 눈을 빛냈던 그였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이곳의 골동품에 관해 아는 것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골동품을 판단하는 기준이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단순히 오래되었다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진 않을 것이다.
“오래된 물건은 골라낼 수 있겠지만, 가치를 알지 못하니….”
“네? 오래된 물건을 알 수 있어요?”
“예,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것만 해도 사기는 안 당할 것 같은데요.”
왕실 마법사이면서 신관인 그에게 사기를 칠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대단한 강심장일 것이다. 아마도 주인은 그가 했던 소개를 흘려 들은 것 같았다.
“밥 먹고 사람들 많이 오기 전에 가봐요.”
*
태주가 사고 싶어 하던 다기세트는 바로 살 수 있었다. 그가 바란 것이 가게 정 가운데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된 상품이었기 때문이다.
“전 다기세트라고 해서 주전자랑 찻잔만 있는 걸 줄 알았어요. 이런 상이랑 집게 같은 게 한 세트라니 신기해요.”
“하하하. 중국 차는 뜨거운 물을 많이 쓰거든. 물이 빠지는 차판이 있으면 편해.”
다기세트를 산 뒤에는 천천히 걸으면서 상점들을 구경했다. 오픈 형 가게가 즐비한 곳이라 구경하기 좋았다. 일행은 오래된 만화책이나 장식을 지나 그릇을 파는 곳으로 향했다.
바라던 다기세트를 사서일까, 태주는 골동품을 봐도 흥미가 일지 않았다. 품에 안은 태산이를 쓰다듬으면서 느긋하게 보던 그의 눈에 한 골동품 가게가 들어왔다. 가판 위에 그릇과 찻잔 등 주방용품을 쌓아둔 곳이었다.
“연우야, 저기 그릇 파는 곳 가보자.”
“그릇이요?”
“응, 식기랑 찻잔 같은 것도 보자. 네 미튜브에 매일 같은 그릇만 올라오더라.”
“킥. 그건 맞아요.”
가게에 쌓여있는 그릇들은 받침이 없는 찻잔도 있고 살짝 금이 간 접시도 있기 때문인지 가격이 무척 쌌다. 그는 작은 하자가 있는 물품들을 뒤적거렸다.
흥미 없이 구경하던 그의 얼굴에 즐거운 미소가 생겼다. 손으로 만져지는 낡은 물품의 느낌이 맘에 들었다. 이런 오래되고 흠집난 것 중에서 좋은 물건을 찾는 것은 새 상품을 사는 것과는 다른 재미가 있었다.
“나중에 괜찮은 식기 세트 사줄게. 지금은 그냥 마음에 드는 거로 골라봐.”
이런 곳이 낯선지 망설이는 연우를 다독여서 그릇을 고르게 했다. 태주 역시 조심스럽게 접시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음. 이거 좀 괜찮은데.”
“그게요? 다이소에서 파는 접시 같은데요.”
“이건 사야겠다.”
“좋은 선택입니다.”
뒤에서 조용히 태주와 연우가 물건을 고르는 것을 지켜보던 쿠첼루스가 말을 꺼냈다. 그의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드는 태주였다.
‘쿠첼루스 씨, 혹시 오래된 물건이 보이세요?’
‘네, 지금 손에 드신 것과 저쪽에 있는 찻잔 하나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겁니다.’
태주는 쿠첼루스가 알려준 것을 바로 집어 들었다. 그는 당장 가방 안의 돋보기를 꺼내서 연도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이런 곳에서 꺼내 쓰기엔 너무 눈에 띄는 아이템이었다.
이 가게는 골동품보다는 플리마켓에서 파는 것 같은 물건들이 쌓여있는 곳이었다. 고가의 미술품이나 도자기가 아닌, 실생활에 쓰이는 것들을 파는 곳이었다.
이런 곳에서 골동품이라고 할만한 것을 고르는 게 가능한 것일까? 태주는 골동품이란 생각은 못 하고, 자꾸 눈이 가서 접시를 골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쿠첼루스는 찻잔이 접시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물건이라고 했다. 만약 두 개가 모두 골동품이라면 정말 대단한 일이었다.
일행은 연우가 고른 접시와 태주가 고른 것들을 계산하고 다시 가게들을 구경했다. 태주는 쿠첼루스가 한 번 더 알려주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
돋보기를 통해서 본 정보를 작게 소리 내어 읽어 본 태주는 할 말을 잃었다. 손에 든 파란 문양 접시가 갑자기 무겁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언젠가 뉴스에서 주워서 쓴 접시가 1억4천만 원 상당의 골동품이었다는 기사를 본 적 있다. 그 접시도 손에 든 접시처럼 대청옹정년제(大消II正年製)라고 바닥에 적혀있었다.
돋보기로 본 접시의 제작연도는 1724년이었다. 찻잔 역시 같은 시기의 물건으로 거의 300년 전에 만들어진 물건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TV쇼에 내보낼까?”
“왜 그러십니까?”
“이게 진품이어서요. 쿠첼루스 씨가 알려주기 전까지 전 이걸 실제로 사용할 생각이었거든요.”
“하하하. 수백 년이나 된 귀한 물건을 말입니까?”
“색이 예뻐서요. 과일이나 간식을 담으면 좋겠다 싶었는데 말이죠.”
골동품을 구해보자고 생각했지만, 정말로 손에 들어오니 난감했다. 별생각 없이 가판에서 집어 든 접시가 만약 1억4천만 원짜리였다면 누구나 깜짝 놀랄 것이다.
그는 선물이 들어있던 상자를 비워서 접시와 찻잔을 챙겨 넣었다. 감정가가 얼마일지 모르지만, 알록달록한 종이상자가 참 볼품없었다. 깨지지 않게 수건으로 감고 넣어서 더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당장은 골동품의 처리보다 중요한 일이 있었다.
쿠첼루스와 정원에 가는 일이었다. 12시가 되면 태주는 쿠첼루스와 함께 정원에 가서 살 곳도 만들어주고 할 일도 찾아줘야 했다.
*
정원의 따뜻한 공기가 그를 맞아줬지만, 그는 찬물을 뒤집어쓴 기분이었다. 마땅히 그와 같이 정원에 와야 했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태주, 쿠첼루스는?”
“같이 오지 못했어. 뭐가 잘못됐나 봐.”
“으응?”
“후우.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희에게 다시 한 번 정원사 협회에 연락해달라고 부탁한 태주는 차가운 물을 한 잔 마셨다. 만약 쿠첼루스가 정원에 오지 못하게 된다면 현실에서 그를 책임져야 했다.
정원사 협회에 연락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이나타가 정원으로 왔다. 태주는 그녀를 바로 오두막 앞의 테이블로 안내했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게 있어서 마음이 급했다.
“쿠첼루스 씨는 시스템상 일꾼이지만, 펫과 비슷한 상태입니다.”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일꾼은 정원에 소속되고 펫은 정원사님에게 소속되지 않습니까? 쿠첼루스 씨는 일꾼으로 등록되었지만, 소속은 정원사님으로 되어 있습니다.”
“네?”
“오류입니다. 만약 오류를 바로잡고 싶으시다면, 고용계약을 해지하시면 됩니다.”
고용계약을 해지하면 쿠첼루스는 저녁에 미라가 된다. 그건 절대 그가 바라는 것이 아니었다.
“제 소속인데 왜 정원에 못 오죠?”
“꿈을 통한 출입은 정원사와 펫만 가능합니다. 일꾼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이어지는 설명을 듣는 내내 태주는 상황을 해결하기 쉽지 않겠다는 생각만 했다.
꿈의 세계의 주민이 추락한 경우라면 찾아서 바로 소환을 하겠지만, 쿠첼루스는 그 경우에 속하지 않았다. 주민이 되기 전에 추락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펫처럼 자신에게 속했지만, 펫이 아니라서 꿈을 통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계약을 해지해서 미라가 되게 두는 것은 자신이 싫었다.
“협회에서 도움을 드릴 수 있는 건, 정원사님의 세상에서 쓸 수 있는 신분을 만들어 드리는 것까지입니다.”
“신분.”
그나마 신분증이라도 챙겨주는 것이 다행이었다. 신분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면, 다시 해커를 찾아야 했을 수도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일이 된 것인지 모르겠지만, 이미 쿠첼루스는 그가 고용한 상태였다. 앞으로의 일은 그의 책임이었다.
“이나타, 이런 오류가 자주 발생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사실 최근 정원사 협회에 여러 가지 이상한 사건 신고가 많이 들어옵니다. 정원사님도 겪으신 요정 숲 사건 같은 일이 자주 생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쿠첼루스 씨의 등록 오류도 같은 맥락일지 모릅니다.”
“원인은 모르나요?”
“예. 아직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습니다.”
이나타의 추측은 일리가 있었다. 오랜 시간 멀쩡하던 시스템에 문제가 생겨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보다는 요정 숲 사건처럼 문제를 일으키는 누군가가 있다는 추측이 받아들이기 더 쉬웠다.
*
태주는 침대 아래 잠든 쿠첼루스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의 잘못은 아니지만, 낯선 땅에서 살 게 만들고 말았다. 죄책감이 느껴졌다. 게다가 침대도 아니고 바닥에서 자는 것을 보니 더 미안해졌다.
왕실 마법사, 신관. 한 가지 직업만으로도 귀한 신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아무리 죽었다 다시 살아났다지만, 저러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게 좀 불편했다.
‘차라리 별똥별에서 얻은 보석을 팔아버릴까? 그걸 팔면 그 전원주택부지의 몇 배나 되는 땅을 사고도 한참 남을 텐데.’
힘의 보석을 얻은 이후에도 두 번이나 더 특이한 색의 별똥별을 잡은 태주였다. 그는 그 안에서 레시피 한 장과 커다란 다이아몬드 원석을 얻었다. 현금이나 DP가 필요하지 않아서 오두막 장식장에 두었지만, 필요하면 팔아서 써도 될 터였다.
“에효. 정원에서 얻은 것을 파는 건 최후의 보루로 하고. 우선 일을 좀 늘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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