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2
81. 용좌 첫 촬영 >
이른 아침부터 촬영장이 북적거리고 있었다. 태주 일행도 그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었다.
일행은 이곳저곳 눈에 띄는 스태프들에게 인사하며 분장실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먼저 와서 분장을 받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에게도 인사한 후에 태주도 본격적인 분장을 하기 시작했다.
“네 마스크는 참 특이해. 서구적인 것 같은데, 또 전통적인 머리 모양이나 화장이 잘 어울린단 말이지.”
“하하하. 다행이네요.”
“게다가 이 피부. 특별히 피부관리 하는 것도 없는데, 진짜 좋아.”
“아니에요. 저도 가끔 팩도 하고 그래요.”
실제로 태주는 다른 연예인 만큼 관리하지 않는다. 최근 그는 피부관리나 운동이 필요하다고 느껴본 적이 없었다. 힘의 보석, 강화석으로 강화를 한 후로는 잘 쓰던 피부 크림도 쓰지 않았다.
정원이 있는 한 현실에서 관리하는 일은 앞으로도 그다지 필요할 것 같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까, 너 운동도 따로 안 하지?”
“안 하긴 하는데요.”
“하긴. 네 몸 보면 운동은 필요 없을 것 같다.”
“그, 그렇죠?”
‘맞는 말이지. 운동이 뭐가 필요해. 생활형 노동 근육이 그냥 생기는데.’
태주의 몸은 상체, 하체 할 것 없이 잔 근육이 골고루 잘 발달해 있었다. 모두 정원에서 노동으로 가꾼 것이었다.
매일 텃밭을 가꾸고, 과일을 따는 생활을 해왔다. 가끔 조경수들의 가지치기도 하고, 위치를 바꾸기도 했다. 화단을 꾸밀 때는 흙이나 자갈 포대를 수없이 지고 날랐다. 그는 따로 운동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몸을 많이 쓰고 있었다.
미나와 어시스트들의 도움을 받아 의상을 모두 착용하자, 태주의 모습이 잘생긴 대갓집 도련님으로 바뀌었다. 머리까지 깔끔하게 묶어 정리하자, 대본 그대로의 모습이 되었다.
“이번 의상도 잘 어울린다.”
“화려한데도 움직이기 편하네요. 확실히 무복이 좋네요.”
도깨비 왕의 옷은 치렁치렁해서 움직일 때 항상 주의해야 했다. 그에 반해 이 의상은 말을 타거나 활을 쏘는 장면을 고려한 듯 활동성이 좋았다.
“오늘 활 쏘는 장면 찍지?”
“네. 말 탄 채 쏘는 장면이요.”
이번 용좌 촬영에는 활을 쏘는 장면이 상당히 많았다. 부하들과 사냥하는 장면, 마적이 쳐들어온 마을을 구원하는 장면 등에서 활을 쏜다. 그리고 3화 초반 태주가 성인 배우와 바뀌는 장면에서도 활을 쏜다.
*
촬영장 한쪽에 활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명사수인 이성계의 연습장면을 찍기 위해 만들어 둔 곳인데, 촬영 전에 활쏘기 연습을 해도 된다는 얘기를 들었었다.
“촬영 전까지 가서 활 좀 쏴 보죠.”
“지금 무술팀도 연습 중입니다. 정 감독님도 계시니 자세를 점검해달라 부탁드려 보십시오.”
“네, 그럴게요. 아! 스텔라는 아직 안 왔죠?”
“예, 오전 중으로 도착할 겁니다.”
태주와 견우는 촬영장 한쪽에 설치된 활터로 자리를 옮겼다. 견우의 말대로 활터에는 무술팀이 한창 활을 연습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십 대 이성계 역을 맡은 이태주입니다.”
“반가워요. 정대현이에요.”
정대현 감독과는 회귀 전에도 같이 작업한 적이 없었다. 유명한 감독이었지만, 한창 태주가 작품을 찍을 때는 그는 가끔 조언만 할 뿐 직접 활동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문하에 있던 무술 감독들이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했었다.
“국궁은 쏴본 적 있어요?”
“두 달 정도 연습했어요.”
“그래요? 그럼 우선 한 번 쏴봐요.”
“네.”
태주가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자세를 잡았다. 깍지 낀 손으로 화살을 시위에 걸고 천천히 숨을 내쉬며 활을 들어 올렸다. 줌 손을 이마 높이로 올렸다 내리면서 화살을 쏘았다.
‘투웅.’
“자세가 좋네. 따로 교정할 것도 없어. 지금 입은 거로 촬영하는 건가?”
“네. 이대로 촬영해요.”
“허허. 잘 생긴 사람이 그렇게 입고 쏘니까 보기 좋네.”
“감사합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 감독님의 칭찬을 들었다. 들리는 말에 따르면 칭찬보다는 야단을 많이 치시는 분이라고 했는데, 첫 만남에서 좋은 인상을 준 것 같았다. 궁술을 익힌다고 책이랑 영상도 찾아보고 연습에도 시간을 많이 들였는데, 보람이 있었다.
“사실 궁술은 나보단 최 팀장이 더 잘해요. 조금 이따 한 번 봐달라고 부탁해 봐요.”
“네, 그럴게요.”
깐깐한 무술 감독님의 칭찬에 태주의 입이 귀에 걸렸다. 방긋거리는 그의 얼굴을 보던 무술 감독이 허허허 웃으며 자리를 피했다.
오전 중에 도착할 거라는 견우의 말대로 말들이 시간 맞춰서 촬영장에 도착했다. 태주가 타기로 한 말, 스텔라의 운송트럭도 무사히 도착했다. 태주는 임시 마장 근처로 가서 스텔라가 내리는 것을 기다렸다.
스텔라는 5살짜리 암말로 짙은 갈색 털이 예쁜 말이었다. 그는 촬영 전에 스텔라가 있는 승마장에 가서 몇 번 같이 호흡을 맞춰봤었다.
“스텔라. 잘 지냈어?”
“푸르릉.”
“착하다. 오빠 안 보고 싶었어?”
스텔라가 자신을 알아볼 수 있게 잠시 거리를 두고 서서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스텔라에게 천천히 다가가 목덜미를 토닥이며 건강상태를 확인했다. 관리를 잘 받았는지 눈동자도 맑고 털에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푸릉. 푸르릉.”
“조금 이따가 달리게 해줄게. 지금은 좀 기다려야 해.”
운송트럭이 답답했는지 스텔라가 마장 안을 달리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아직 사육사에게 허락을 받지 않은 상태라 마음대로 탈 수 없었다. 태주는 스텔라를 다독여주고 분장실로 발길을 돌렸다.
촬영 전 확인이 필요한 것들을 모두 확인했으니, 이제 대본을 한 번 더 보면서 촬영준비를 해야 했다.
*
용좌의 첫 촬영은 이자춘이 등장하는 씬이었다. 태주와 다른 배우들은 모두 그 장면을 촬영장 한편에 서서 보고 있었다.
왕의 사신이 도착하고 그가 어명을 받기 위해 무릎을 꿇는 장면이 이어졌다. 중년 배우의 안정적인 발성과 연기가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심란한 이자춘의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는 눈빛에 태주는 속으로 감탄했다.
“컷. 오케이.”
‘짝짝짝.’
드라마의 첫 씬 촬영이 감독의 호쾌한 오케이 사인으로 끝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치면서 촬영의 순조로운 출발을 기뻐했다.
태주는 그 모습을 뒤로하고 바로 본인의 촬영지로 이동했다. 공민왕의 제안을 받아들이려는 아버지에 화가 나서 들판을 내달리는 장면을 찍어야 했다.
*
“자아. 리허설 한 대로만 합시다. 중요한 게 뭐라고요?”
“안전이요.”
“좋아요. 잘 기억하고 계시네요. 촬영도 중요하지만, 안전사고도 유의해야 합니다. 말 사이 거리에 주의하세요. 아셨죠?”
“네.”
태주 쪽의 촬영을 맡은 박 감독은 목소리 톤이 높고 밝은 성격이었다. 박 감독은 촬영 전 리허설 때부터 안전에 주의하라며 출연자에게 신신당부했다.
승마 장면이 많은 드라마라 특히 안전에 많은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어떤 사고든 위험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특히 낙마 사고는 자칫 커다란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 더 많은 주의가 필요했다.
‘시끄럽네.’
‘뭐?’
박 감독이 다시 한 번 주의사항을 말하는 도중 태주의 귀에 낮은 불평이 들려왔다. 그의 바로 옆에 서 있던 김지혁이 작게 내뱉은 말이었다. 그의 불평을 다른 사람들은 거리가 있어서 듣지 못한 것 같았다. 바로 옆에 붙어 서 있던 태주만 들은 것 같았다.
태주는 그 말을 듣자마자 바로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김지혁은 모로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그런 그의 시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핫.”
“이럇.”
태주가 먼저 말을 달려나가자, 뒤이어 호위 무사 역인 김지혁과 다른 배우 두 명이 따라붙었다.
처음엔 거리를 유지하던 김지혁이 어느 순간 태주를 위협하려는 것처럼 부딪힐 듯 말을 붙여왔다. 좀처럼 떨어지지 않는 김지혁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태주가 달리는 속도를 높여 거리를 벌려야 했다.
“컷. 이 배우. 리허설 했던 대로 속도를 유지해야지요. 우리 카메라가 어떻게 쫓아가란 거예요.”
“죄송합니다.”
치킨게임. 김지혁이 바라는 것이었다. 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져 태주가 겁을 먹고 속도를 높이면 NG가 난다. 그렇다고 제 속도로 달리면 충돌할 정도로 가깝게 말을 붙이며 위협한다.
‘촬영이 장난도 아니고. 이런 위험한 짓거리를 해.’
지정된 위치로 돌아온 태주는 김지혁을 노려봤다. 하지만 그와 눈을 마주친 김지혁은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태주는 고개를 돌리기 전 김지혁의 입가에 비웃음이 걸린 것을 똑똑히 보았다.
셋, 둘, 하나.
감독의 신호를 받고 태주가 다시 말을 달려나갔다. 다른 배우들도 그 뒤를 따라 말을 달리기 시작했다.
좀 전에 NG가 나온 위치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김지혁이 다시 거리를 무시하고 태주의 말에 자신의 말을 가까이 붙여왔다.
‘하! 한 번 당하지. 두 번 당할 것 같아.’
“하앗.”
태주가 스텔라를 옆으로 피하게 하고, 김지혁의 말 천둥이에게 조련 기술을 사용했다.
‘달려! 천둥아!’
‘두다다다다!’
“어! 어! 우와아앗!”
김지혁을 태운 천둥이 전속력으로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감독님의 멈추라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김지혁은 천둥을 제어하지 못했다. 천둥은 미친 듯이 앞으로 달려나갔다.
돌아오지 않는 배우와 말 때문에 촬영이 멈췄다.
멀어지는 김지혁의 뒷모습을 일별하고, 태주는 유유히 말을 돌려 시작지점으로 돌아갔다.
“김지혁 배우는 승마 배운지 얼마 안 됐나 봐요. 거리 조절도 못 하고, 말도 제어 못 하고. 역시 갑작스럽게 투입이 돼서 그런가.”
“네?”
“아아. 두 분은 모르셨구나. 원래 이영신 배우라고 극단출신 배우가 호위 역이었어요. 공교롭게도 촬영 열흘 전에 루머가 터지면서 김지혁 배우가 대신하게 됐죠.”
“루머요?”
“네. 오보였는데, 안타깝게 됐죠. 이영신 배우나 김지혁 배우나 둘 다 정말 안됐어요. 교체된 배우나 준비 없이 투입된 배우나, 모두 고생이죠.”
태주가 촬영을 기다리는 동안 가까이에 있던 단역 배우들에게 김지혁 캐스팅 얘기를 꺼냈다.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촬영하게 된 김지혁이 걱정된다는 말투였다.
‘이 정도는 가벼운 거에 속하지 않나? 김지혁이 한 짓에 비하면.’
십분 넘게 기다린 후에야 김지혁을 태운 천둥이 촬영장으로 돌아왔다. 천둥은 지쳤는지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말이 많이 지쳤네요. 감독님, 말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겠죠?”
“그래야죠. 어휴, 정말.”
태주가 천둥을 가리키며 박 감독에게 휴식이 필요할 것 같다는 말을 꺼냈다. 박 감독은 말 상태를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잠시 기다리자는 말을 꺼냈다.
천둥이 회복된 후의 촬영은 순조로웠다. 김지혁도 수작을 부리지 않았고, 태주 역시 조련 기술로 보복하지 않았다.
“김지혁 배우. 오늘 같은 실수는 참아줘요. 이 땡볕에 대체 몇 명을 기다리게 만든 줄 알아요?”
“…. 죄송합니다.”
“후우. 늦게 합류해서 촬영준비가 부족하면 말을 해요. 일정 조정해 줄 테니까요.”
“아닙니다. 앞으로 이런 실수는 없을 겁니다.”
“어휴.”
태주는 박 감독이 김지혁을 나무라는 말에 조금 놀랐다. 쾌활한 말투에 순한 인상이라서 화도 낼 줄 모를 것 같았는데, 그 자리에서 바로 면박을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태주도 앞으로 조심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촬영이 끝난 후, 태주는 준비해둔 과일과 채소를 챙겨서 마구간에 들렀다. 사육사에게 미리 허락을 구해두어서 바로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스텔라, 오빠 왔다.”
“푸르릉.”
“오늘 수고 많았어. 이거 먹자.”
스텔라가 좋아하는 사과와 당근이었다. 7월의 뜨거운 햇볕 아래서 몇 시간이나 촬영한 녀석이 대견했다. 그런 스텔라에게 주는 보상이었다.
“하하하. 맛있지? 너 주려고 정원에서 가져온 거야. 많이 먹어.”
“와그작. 와그작.”
“이거 하나는 천둥이 줘도 될까? 괜찮다고? 아이, 착하다.”
오늘 달리느라 수고한 천둥이에게도 사과를 하나 줬다. 그가 쓴 기술 때문에 한참 동안 전력질주를 해야 했다. 조금 미안했다.
그는 말들이 간식을 모두 먹고 건강상태 확인까지 한 후에야 안심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
숙소로 돌아온 후 태주는 말을 달리는 씬에서 김지혁과 있었던 일을 사람들에게 얘기했다. 앞으로 김지혁이 또 어떤 짓을 할지 모르지만, 트러블이 생길 것은 확실했다. 태주는 이 점을 일행에게 미리 말해 두는 게 낫겠다 판단했다.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위험하게 무슨 짓을 하는 거야, 그 인간은.”
“그러게 말입니다. 낙마 사고가 얼마나 위험한데, 그런 짓을.”
“냐아앙.”
얘기를 들은 일행은 자칫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을 벌인 김지혁을 욕했다. 본인에게도 위험한 일을 아무렇지 않게 벌인 그가 제정신인지 의심했다.
촬영 첫날부터 태주를 곤란하게 만든 김지혁이었다. 남은 촬영 동안 또 어떤 짓을 할지 걱정이었다. 일행 모두 안전하게 남은 촬영을 마칠 방법을 고민했다.
“쉽게 당해줄 생각은 없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어떻게 걱정을 안 하니. 하여간 어딜 가나 거지 같은 것들은 꼭 하나씩 껴 있어요.”
“미나 씨.”
“에이, 매니저님. 내가 뭐 틀린 말한건 아니잖아요.”
미나가 말을 험하게 하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떤 촬영장이든 문제는 항상 있기 마련이다. 이번 촬영장의 문제는 김지혁이었다.
“태주 씨. 촬영장에 저도 가봐도 될까요?”
“쿠첼루스 씨가요?”
“예. 태산이는 제가 꼭 안고 다니겠습니다.”
“오시는 건 상관없어요. 제 일행이라고 하면 되니까요. 그런데 기다리시는 동안 재미없으실 거에요.”
“괜찮습니다. 꼭 한번 보고 싶습니다.”
태주가 견우를 보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쿠첼루스의 출입 허가는 그가 받아 줄 것이다. 견우라면 태주가 촬영하는 동안에도 그를 잘 챙겨줄 것이다.
“내일은 다 같이 가겠네요.”
“호호호. 오랜만에 태산이 도시락을 챙겨 보겠네.”
“제가 챙길게요.”
“아니야, 내가 할게. 내일 누나 도시락이라고 태산이한테 생색낼 거야.”
“하하하. 그게 뭐예요.”
제 얘기를 하는 줄 아는지, 태산이 미나 옆에 붙어 치대기 시작했다. 둘의 실랑이를 보느라 태주는 보지 못했지만, 쿠첼루스의 눈이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