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6
85. 피해 의식 >
분장실의 소란은 제작진에게까지 얘기가 들어간 것 같았다. 태주의 분장실 밖으로 여러 사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다시 한 번 견우의 능력에 감탄했다. 이렇게 난리를 치는 김지혁을 대체 어떻게 관리할 수 있었는지. 능력이 뛰어난 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 그가 대단하게 느껴졌다.
“매니저님은 능력자셨어.”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나저나 촬영을 제때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그러게 말이다. 대체 무슨 짓인지. 하여간 이상한 사람이야.”
“맞아요. 이상한 사람이에요.”
오늘은 보조 출연자들도 많이 동원되는 촬영이었다. 이 이상의 소란은 사양하고 싶었다.
‘밖은 30도라고요. 제발 시간 안에 찍고 빠르게 퇴근하자고요.’
옆 방의 김지혁 일행이 다른 곳으로 옮기는지, 물건 끄는 소리가 한참 나더니 곧 조용해졌다. 겨우 평화로운 대기 시간이 찾아왔다.
촬영 시간에 변동이 있으면 스태프가 와서 알려줄 것이다. 태주는 그가 해야 할 일, 대본을 보며 촬영을 준비하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
촬영준비는 생각보다 빨리 마무리되었다. 시간에 못 맞출 줄 알았던 김지혁이 무슨 수를 썼는지, 시간 안에 준비를 마쳤다.
태주를 비롯한 출연자들이 세트장에 도착했다. 오전의 분장실 난동 소식을 들었는지 여기저기 김지혁을 보는 시선이 좋지 않았다.
태주는 그런 주변의 반응은 무시하고 감독의 지시 사항을 주의해서 듣고 있었다.
“지붕에서 화살 쏘는 장면, 조심하세요. 이 배우 동선 숙지했죠?”
“네, 수레 밟고 담벼락에 올라간 다음에 지붕에 숨기. 잘 기억하고 있어요.”
“좋아요. 미끄럽진 않지만, 폭이 좁아 걸을 때 신경 쓰셔야 해요. 정 감독님 말씀 기억하시죠? 담 위에서 움직일 때 조심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사실 태주는 일찌감치 나와서 세트 확인을 모두 마쳤다. 그는 촬영 전 세트를 점검하는 정대현 무술 감독을 발견하고 뒤를 쫓아다니면서 확인을 마친 상태였다.
정 감독은 자신을 쫄래쫄래 따라다니는 태주가 귀여웠는지, 일삼아 그의 동선에 있는 세트들을 살펴주었다. 태주가 해야 할 동작들도 직접 보여주며 주의할 점을 미리미리 알려주었다.
“실수 없이. 조심해서. 알았지요? 자아. 리허설 갑시다.”
“네.”
박 감독의 지시에 맞춰 다들 정해진 위치에 섰다. 태주 역시 마을 입구 부분에 서서 이성계의 감정을 끌어올리고 있었다. 그의 주변에는 호위 역인 김지혁과 두 단역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박 감독의 사인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검을 뽑아 든 채 촬영을 기다리던 김지혁이 돌연 비명을 지르며 검을 앞으로 던져버렸다.
“악! 아아악!”
“피해요!”
김지혁 바로 옆에 서 있던 태주를 단역이 붙들고 한쪽으로 물러섰다. 주변이 모두 그와 거리를 벌리는 와중에도 김지혁은 계속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촬영장 한쪽에서 리허설을 지켜보던 운석과 견우가 급하게 뛰어왔다.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의 배우에게 다가가 그들이 무사한지 살피기 시작했다.
“전 괜찮아요. 이 분이 도와주셨어요.”
“감사합니다.”
“뭘요. 너무 급해서 말도 없이 잡아당겼는데, 괜찮으시죠?”
“네, 괜찮아요. 도와주셔서 감사해요.”
태주가 자신을 붙잡고 피한 배우에게 감사를 표하는 사이에도 김지혁은 몸을 떨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그런 그를 운석이 달래고 있었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김지혁, 정신 좀 차려봐.”
“x발. 칼날에 괴물이.”
“뭐? 무슨 소리야? 칼날이 뭐?”
“x발. 칼날에 괴물이 비쳤다고.”
이해할 수 없는 김지혁의 행동 때문에 촬영장이 멈췄다. 사전 제작 드라마지만, 40편이나 되는 장편이었다. 일정이 빠듯했다. 지방 촬영이라 당장 다른 배우를 데려올 수도 없었다. 김지혁이 진정하고 다시 촬영에 합류하길 바라야 했다.
리허설을 멈춘 태주와 다른 배우들이 대기하는 곳으로 박 감독이 다가왔다. 그는 태주를 향해 바로 용건을 꺼내 놓았다.
“마을 안에서 활로 마적과 싸우는 장면을 먼저 찍어도 될까요?”
“마을 밖에서 요격하는 장면 말고요?”
“네, 김지혁 씨 상태가…. 오늘은 촬영하기 힘들 것 같아요.”
“그렇게 할게요.”
“고마워요, 이 배우 내가 진짜, 김지혁 씨 때문에, 참… ”
박 감독은 한 시름 놓았다는 표정으로 촬영을 준비하러 갔다. 태주 역시 바뀐 촬영 순서의 대본을 찾아 내용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침부터 김지혁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그러는 것을 보면, 오늘 촬영에 복귀하기는 힘들어 보였다.
“뭘까요?”
“예?”
“아까 괴물이 보인다고 소리치지 않았어요? 무슨 약이라도 먹나?”
“미나 씨! 그런 말은 함부로 하시면 안 됩니다.”
쿠첼루스와 잡담을 나누는 미나에게 견우가 엄한 목소리로 질책했다. 환각제나 마약 같은 루머가 연예인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잘 알고 있을 그녀였다. 그런데 그런 화제를 이런 곳에서 꺼내다니, 경솔한 언행이었다.
“죄송해요.”
“조심하십시오. 낮말은 새가 듣는다고 했습니다.”
“밤말은 쥐가 듣고요? 진짜 오랜만에 듣네요, 그 속담.”
“흠흠.”
*
검댕이 묻은 낡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마적에게 쫓겨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마을은 이미 마적의 수중에 떨어져,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마을 사람들은 바닥에 엎드려 어서 이 횡액이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그런 사람들 사이를 마적들은 마치 장에 구경 온 사람처럼 느긋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그렇게 지나가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보이면 붙잡아 자신의 말에 태우기도 했다. 마적들 모두 이 약탈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였다. 파공성을 흘리며 화살 한 대가 마적에게 날아왔다. 화살은 끌려가는 누이에게 매달린 아이를 향해 칼을 휘두르려던 마적의 손을 꿰뚫었다.
“크읔.”
“웬 놈이냐.”
다른 마적이 활을 쏜 자를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하지만 그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닥에 엎드린 마을 사람뿐이었다. 그가 다시 한 번 적을 찾아 마을을 돌아보려던 때였다.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날아와 그의 이마에 박혔다. 이어서 한 대가 더 날아와 손을 쥐고 웅크린 마적을 맞췄다.
“으아앙!”
“숨거라. 어서!”
담벼락에서 뛰어내린 이성계가 남매를 일으켜 담 아래 짚더미 속으로 숨겼다. 그 후, 그는 마적의 시체에서 화살을 챙겼다. 가벼운 동작으로 담 위에 다시 올라선 이성계는 그대로 달려 지붕으로 올라갔다. 그는 그곳에 몸을 숨기고 마적들의 동향을 살폈다.
그가 사라진 자리에 바로 다른 마적이 나타났다. 마적은 쓰러진 동료를 발견하자, 품에서 피리를 꺼내 비상 신호를 보냈다.
지붕 위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성계가 몸을 일으켰다. 그는 신호를 받고 몰려오는 마적을 겨냥하고 화살을 메겼다.
마을 안에 피하지 못한 사람이 아직도 많았다. 그 혼자서 마적을 모두 없애진 못할 테지만, 마을 사람들이 피할 시간은 벌 수 있었다. 아니, 벌어야 했다.
이성계는 능숙한 손길로 빠르게 화살을 메겨서 마적을 겨눴다. 백성을 뒤에 둔 그의 눈이 고요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컷. 오케이. 좋아요. 발밑 조심해서 내려와요.”
“네.”
박 감독의 오케이 사인에 태주의 긴장이 풀렸다. 좁은 담벼락과 지붕 위에서 움직이느라 한시도 긴장을 놓지 못했었다.
마을 전투 장면은 박 감독이 그리려던 그림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땀범벅이 되어서 수없이 분장을 손봐야 할 정도였다.
박 감독을 비롯한 촬영장 인원은 웃고 있었다. 모니터로 본 결과물이 예상보다 훌륭하게 나와서였다. 모인 사람들은 모두 땀으로 목욕을 한 것 같은 상태였지만, 흥분한 듯 크게 웃고 있었다.
“이야. 확실히 그림이 되네. 이게 사실 꽤 잔인한 장면인데 화면에서 눈을 못 떼겠어. 특히 이 아이들 숨기는 장면이랑 지붕에서 활 쓸 때 눈빛이, 어휴. 아주 사람을 빨아들이는 것 같아. 안 그래, 박 감독?”
“맞아요. 감독님. 겨우 십 대 역할만 맡는 게 아쉬울 정도예요. 그렇죠?”
“어, 진짜. 진짜로 찍는 보람이 있는 배우야. 하아. 아깝다, 아까워.”
출연자들이 돌아갈 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연출진은 쉬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 오늘 김지혁의 상태를 봤던 박 감독은 쉴 여유가 없었다. 그는 이대로 다른 촬영장에 가서 총괄 감독인 김 감독과 상의를 해야 했다.
‘오전에 분장실에서 난동 부린 것도 그렇고, 아까 촬영장에서 검 던진 것도 그렇고. 도저히 못 쓰겠는데. 이영신 배우가 스케줄이 괜찮으려나. 알아보지도 않고 괜히 잘라서는. 이게 대체 무슨 꼴이야.’
가장 최선은 김지혁이 정신 차리고 촬영을 무사히 마치는 것이지만, 어려워 보였다. 그리고 차선은, 염치없지만 이영신이 다시 오는 것이었다. 그는 이미 준비된 상태였기 때문에 바로 촬영에 투입해도 괜찮을 터였다. 물론 그것은 이쪽 사정이고,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이영신이 다시 드라마에 합류할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
쿠첼루스는 태산이와 산책가고, 미나는 의상을 정리해서 반납하러 갔다. 분장실에는 태주 혼자서 견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오늘 찍지 못한 부분을 언제 촬영할 것인지 제작진에게 확인하러 간 상태였다.
– 달칵.
“매니저님? 아!”
“…김지혁 배우. 무슨 일이시죠?”
심상치 않은 얼굴로 김지혁이 태주의 분장실로 들어왔다. 아무 말 없이 태주를 응시하던 그가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태주 뒤편 거울에 무심코 눈길을 주었다가, 또다시 괴물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너지?”
“…뭐가요?”
“네가 나한테 이상한 짓을 한 거야. 그렇지?”
“무슨 헛소리예요. 다른 용건이 없으시면 나가주세요.”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태주가 그에게 축객령을 내렸다. 태주는 오후에 그가 촬영장에서 한 짓을 아직 잊지 않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오는 말도 불친절해졌다.
퉁명스러운 태주의 말이 그의 화를 돋운 것 같았다. 김지혁이 쥐고 있던 물건을 태주를 향해 던졌다.
“x새끼. 죽어.”
– 콰장창.
“미쳤어요? 이게 무슨 짓이에요?”
“x새끼야. 원래 내 거였어. 전부 내 거였다고.”
김지혁이 던진 돌멩이가 거울을 깨고 바닥에 떨어졌다. 태주가 피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크게 다칠 뻔했다. 물론 그가 피하면서 거울이 깨진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콰앙!
“괜찮으십니까?”
분장실 문이 거칠게 열리고 견우가 뛰어들어왔다. 그는 들어오자마자 태주를 감싸 김지혁과 떼어 놓았다.
견우의 뒤를 이어 운석도 분장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역시 무슨 상황인지 파악한 듯, 바로 김지혁을 붙잡고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놔! 놔. 끼야. 이거 안 놔. 놓으라고, x새끼야! 죽여버릴 거야! 놔아!”
“제발, 정신 좀 차려. 대체 왜 이래. 김지혁. 정신 차려.”
그런 둘의 모습을 보는 태주는 속에서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운석이 그보다 어린 김지혁에게 험한 소리를 듣는 걸 보니 주먹에 힘이 들어갔다. 운석을 위한다면, 문제를 키우지 않는 게 최선이었다. 하지만 이런 꼴을 보고 그냥 넘기기는 역시 쉽지 않았다.
“매니저님, 회사에 연락 좀 해주세요. 도저히 촬영을 계속할 상황이 아닌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이 배우!”
“헉. 이태주 배우님. 잠시만요. 저희가 잘….”
김지혁의 난동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태주와 견우의 대화를 듣고 기겁한 표정으로 그를 말렸지만. 태주는 돌아보지 않고 바로 건물 밖으로 나섰다.
그런 그를 뒤따르기 전 견우가 무거운 눈빛으로 다른 사람을 둘러봤다. 이 사태의 책임을 묻는 듯한 눈빛이었다. 그런 그를 제작진 중 한 명이 붙들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매니저님, 잠깐만요. 얘기 좀 해요. 제발요. 지금 감독님한테 전화할게요. 네?”
“죄송합니다. 오늘은 우선 돌아가 보겠습니다. 감독님께는 제가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럼.”
붙잡는 사람을 떼어내고 견우도 건물을 나섰다. 그가 본 태주의 분장실은 난장판이었다. 만약 자신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태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지 몰랐다. 쉽게 넘어가선 안 되는 상황이었다.
*
돌아오는 차 안, 태주가 흉흉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손을 대면 베일 것처럼 날이 선 모습이었다. 일행은 그런 그에게 말을 걸지 못 하고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었다.
그때, 태산이 살며시 그에게 다가가 품에 안겼다. 태산은 그를 달래는 것처럼 품에 안겨 온몸을 비볐다. 태주는 태산이 그렇게 전해 준 온기 덕분에 겨우 마음을 진정할 수 있었다.
“어휴. 정말이지. 너 때문에 형이 화도 못 내겠다. 매니저님 회사엔 연락하지 않으셔도 괜찮아요. 우선 제작진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기다려보기로 해요.”
“연락은 해야 합니다. 일방적인 시비였지만, 일단은 T&T와 문제가 생겼으니 말입니다.”
“매니저님 말이 맞아. 이런 건 그냥 넘어가면 안 돼. 미친 인간 같으니.”
“미친 인간…. 확실히, 아까는 이성을 잃은 것처럼 보였어요.”
확실히 이상했다. 김지혁은 회귀 전과 전혀 다르게 굴고 있다. 그는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았다. 마치 뒷일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굴고 있었다.
태주는 김지혁이 대체 왜 자신에게 적대감을 드러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영신의 경우와는 달랐다. 이영신의 기사를 내보내고 하차시킨 일은, 그의 배역을 빼앗기 위한 것이었으니 이해가 갔다.
하지만 자신을 견제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왜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하는 것인지. 1화, 2화, 3화 초반. 자신의 촬영 분량이었다. 그것만 촬영하면 이 드라마에서의 역할은 끝이었다. 김지혁이 문제를 일으켜서 얻을 이익이 전혀 없었다.
‘내 분량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이럴 필요가 있나?’
태주는 몰랐지만, 김지혁은 그에게 원한에 가까운 감정을 품고 있었다. 그는 태주가 자신의 기회를 뺏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지금 태 주가 받는 대우도 그가 가진 평판도 모두 원래 자신의 것을 그가 빼앗았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태주가 자신을 제치고 트리즈에 들어간 것부터 트리즈의 관리를 받고 작품에 출연하는 것까지 전부, 자기 것을 빼앗은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태주가 출연한 예능도 영화도 자신이 출연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태주는 자신의 기회를 홈쳐간 도둑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짓밟고 뺏긴 것을 찾아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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