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87
86. 다짐 >
드라마 용좌 제작진에 긴급회의가 잡혔다. 조연 배우 김지혁이 일으킨 난동과 그에 휘말린 트리즈의 배우 이태주를 달랠 방법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난 김지혁 안고 가는 건 반대예요. 찝찝하단 말이죠.”
“저희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문제는 대체할 배우를 찾아야 하는데….”
“그 전에. 김지혁을 자르면, 이태주가 계속 촬영하는 건 맞습니까? 혹시 지금까지 찍은 거 다 들어내야 하는 건 아닙니까?”
“그건 아닐 거예요. 아직 젊지만, 책임감 있고 성실한 친구예요. 문젯거리만 치워주면, 다시 잘 협조할 거예요.”
자신도 그렇게 생각한다며, 무술 감독이 박 감독의 의견에 손을 들어줬다. 회의를 위해 모인 사람들은 지금 가장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것을 깨달았다. 김지혁을 대체할 배우 선정이었다.
이미 김지혁으로 촬영을 계속한다는 의견을 지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지혁 씨 촬영은 이틀 분량이 다죠?”
“네. 이게, 또, 골치 아픈 게. 이태주 배우가 재촬영 스케줄을 빼주느냐, 그게 문젠데.”
“아! 그건 문제랄 것도 아니에요.”
“예?”
“이 배우 촬영하는 거 보면 이해하기 쉬울 텐데…. NG가 거의 없어요. 주변에서 실수해서 NG 내는 거 빼면 거의 그대로 통과예요. 굳이 추가 일정 안 빼도 될 걸요.”
박 감독은 태주와 며칠 촬영하면서 자신이 봤던 것들을 설명했다. 연기적인 부분에선 달리 말을 보탤 필요가 없게 준비를 잘해온다는 것과 이제 데뷔 2년 차인데도 현장 상황을 잘 파악해서 노련하게 맞춰준다고 얘기했다.
덕분에 태주와의 촬영은 꽤 순조로워서 굳이 추가 일정을 잡지 않아도 초반 분량을 재촬영할 시간은 충분할 것이라고 의견을 내놨다.
“그래도 이틀 정도는 빼달라고 해야죠. 만일을 위해서요.”
“그거야 제작진에서 알아서 하시고요.”
박 감독이 순한 얼굴로 제작진이 싼 똥이니 알아서 치우라는 냉정한 말을 날렸다. 옆에서 물을 마시던 촬영 감독이 사레 들러서 콜록 댔지만, 박 감독은 아랑곳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했다.
“하아. 진짜 전 기회만 된다면 이 배우를 주연으로 작품 하나 하고 싶어요.”
“아아. 진짜 괜찮은 작품이 나올걸.”
박 감독의 그 말에는 촬영 감독 역시 동의했다. 그들은 어떤 장르에 태주를 넣으면 좋을지 상상의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삼천포로 빠진 연출진을 버려두고 제작진들은 계속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하아. 안 그래도 트리즈 소속이라 조심스러웠는데, 하필이면 일이….”
“고민할 게 뭐 있어. 김지혁을 자르고 이영신이든 누구든 대체할 배우를 찾는다. 이 배우에게 사과하고 재촬영을 부탁한다. 간단하네.”
골치 아프다는 듯이 제작 PD가 얘기를 꺼내자, 딴짓하던 촬영 감독이 간단하게 정리했다. 사실 촬영 감독의 말 그대로였다. 김지혁을 자르고 대체할 배우를 찾아서 재촬영을 하는 게 정석이었다. 그나마 지금이 촬영 초반이라 촬영이 많이 진행되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럼 T&T 쪽은 제가 연락할게요.”
“하아. 작가님 쪽은 제가 연락하겠습니다.”
눈치 빠른 직원이 T&T 쪽에 연락하는 일을 먼저 맡았다. 제작 PD는 어쩔 수 없이 작가에게 연락하는 일을 맡았다. 이영신 배우를 하차시키고 김지혁을 쓰자고 강력하게 추천했던 작가였다. 그를 설득하기 쉽지 않아 보였다.
*
다른 사람들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태주는 태산이를 데리고 숙소 주변을 걷고 있었다. 견우도 미나도 자신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 맞춰서 행동하는 사람들인데, 그런 그들이 자신의 눈치를 보도록 만들어 미안했다.
‘어른스럽지 못했어. 화를 내야 할 상대는 내 일행이 아니라 김지혁이었는데.’
“태산이 덕분에 금방 정신을 차려서 다행이야.”
그는 숙소에서 조금 떨어진 마트까지 걸어갔다. 저녁을 먹으면서 일행과 마실 맥주를 사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숙소에 돌아온 그를 반겨주는 것은 화가 난 미나와 견우의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폰을 손에 든 채 누군가를 욕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네 기사 떴었어.”
“기사요?”
“그래. 너라고 정확하게 나온 건 아닌데, 조금만 생각하면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였어.”
미나가 건네준 폰 안의 기사는 그녀의 말대로였다. 누구라고 대상을 특정하진 않았지만, 사전 제작 사극, 조연 출연, 젊은 연기자 등의 단어로 태주라는 것을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배우 A 씨, 강남 SB 클럽 유명 DJ와 친분 과시…. SB 클럽은 환각 물질 및 마약 판매 의혹으로 수사를 받은 과거가 있는 곳으로…. 혹시 이거 보고 제가 약을 했다는 추측이 퍼졌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런 여론이 생길 만큼 기사가 퍼지지는 않았습니다.”
“기사는 이미 내려갔어. 지금 네가 보는 건 내가 찍은 스크린숏이야.”
“OMNews 박구진이라.”
‘김지혁이랑 관계있던 그 기자군. 김지혁 대체 나한테 무슨 원한이 있다고, 이런 기사를 올리게 한 거지?’
회귀 전 김지혁과 짜고 태주의 루머를 뿌렸던 기자였다. 그 기자에게 당한 것들은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었다.
“매니저님. 회사에선 뭐래요?”
“우 팀장님은 신경 쓰지 말고 촬영하시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만, 촬영장 쪽도 문제가 있어서….”
그리고 그녀는 견우에게 따로 태주 주변을 살피라는 얘기를 했다. 태주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이용당하고 있다거나 사건에 휘말린 것은 아닌지 살펴보라는 뜻이었다.
견우는 이런 의심 자체가 불편했지만, 우 팀장의 지시에 따를 생각이었다. 그가 본 태주는 가벼운 부탁은 거절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의 성격을 이용하려는 사람이 주변에 숨어있을 수 있었다.
“전 강남에 SB 클럽이라는 곳이 있는 것도 처음 알았어요. 저랑 친분을 과시했다는 DJ는 누군가요? 들어본 적도 없는데.”
“네가 클럽 다닐 시간이나 있었니? 지금도 지방 촬영장에 와 있는데.”
“그러니까요. 매니저님 혹시 여기서 이 기사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기사 나오면, 바로 법적 대응 해주세요. 경고 같은 건 하실 필요 없어요. 저랑 친하다는 DJ도 한 번 알아봐 주세요. 만약 실존하는 사람이고 기사와 같은 내용을 말하고 다녔다면,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 훼손 같은 방법은 전부 동원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과하지 않냐고 미나가 물었지만, 태주는 자신의 의견을 굽힐 생각이 없었다. 지금 무르게 처리하면 이런 사람들이 더 많이 달라붙을 게 뻔했다.
‘사람이 얌전히 있으니까, 우습게 보는 것 같네.’
“매니저님 말 바꿔서 죄송한데요. 회사에 지금 상태로는 용좌를 촬영하기 힘들 것 같다는 말을 좀 전해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제작진한테 도요.”
“예. 알겠습니다.”
회귀 후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 어지간하면 참고 넘어가는 선택을 했었다. 그래서 평소 자신이 무르게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덕분에 지금까진 주변과 원만하게 지내왔다.
하지만 이번엔 도저히 그렇게 넘어갈 수 없었다. 좀 전에 본 기사는 조금만 더 심했다면, 연예면이 아닌 사회면에 어울릴만한 기사가 될 수 있었다. 이번엔 김지혁의 장난이 도를 넘었다.
‘아직 김지혁이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본성이 어디 가는 건 아니지.’
회귀 전에 태주가 조사했던 것들은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데뷔 전에 벌인 한 가지 사건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데뷔 전 김지혁은 같은 학과 동기의 배역을 탐내서 빼앗은 일이 있었다. 그는 사람을 시켜 그 동기를 린치하고 무대에 오르지 못하게 만들었었다.
당시 김지혁의 동기는 누군가 사주해 자신을 해쳤다고 주장했지만, 사고를 당할 때 만취 상태였다는 게 알려져 아무도 그를 믿어주지 않았다.
태주는 해커에게 김지혁의 조사를 부탁했을 때, 해당 사건과 관련된 통화 내용을 들은 적이 있었다. 김지혁이 박구진에게 과거 일이라며 떠벌린 내용이었다. 박구진이 저장해놓은 통화 내용은 그 외에도 많았었다.
‘지금도 통화 내용을 저장하고 있겠지? 그나저나 이건 너무 옛날 일인가? 아! 아니구나. 지금은 얼마 전에 벌어진 일이겠구나. 그러니까. 겨우 2년 전에 벌어진 일이구나.’
박구진의 통화 녹음을 훔치는 일은 전에 한 번 부탁했던 해커에게 다시 부탁하기로 했다. 내용을 들어보고, 혹시 그 기록이 있다면, 피해자에게 넘기는 한편, 자신 역시 기자에게 제보할 생각이었다.
‘의뢰 비용은 좀 비싸도 일 처리는 믿을만하니까.’
운석이 찾아준 해커에게 그에게 피해가 가는 일을 의뢰하게 되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아니,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태주는 자신에게 솔직해지기로 했다.
솔직하게 말해 태주는 운석이 김지혁을 맡는 게 싫었다. 만약 담당 배우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운석이 욕을 먹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가 계속 김지혁을 맡다가 다른 사건에 휘말리는 것보단 나아 보였다.
‘능력 있는 사람이니, 회사에서 놀리진 않겠지. 직원도 적은데. 그러고 보니 희주가 올해 T&T에 들어가던가. 그래. 차라리 김지혁보단 희주를 맡는 게 낫겠다.’
태주는 김지혁을 치워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 이영신 같은 선량한 피해자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또 자신과 자신의 일행을 위해서. 이번에는 이기적으로 굴 것을 결심했다.
*
태주는 정원에 들어온 이후 정원 식구들과 쿠첼루스의 안부를 전해주고 태블릿에 새로 담아온 영화도 알려주는 등 잠시 대화를 나눴다. 그러고 나서 고민에 빠진 모습으로 멍하니 있었다.
“정원사 씨, 무슨 고민 있어?”
“아! 해나. 현실에서 못되게 구는 사람이 있어서요. 그대로 갚아줄 결심을 했거든요. 그런데 좀 심란하네요.”
“호호호. 왜? 봐주고 싶어?”
“아니요. 전혀요.”
김지혁이 연예계에 있으면, 앞으로도 피해 보는 사람이 계속 나올 것이다. 오명을 쓰거나, 다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었다. 그런 미래가 생길 걸 알고 있으면서 외면하고 싶지는 않았다.
“대체 왜 저럴까 싶어서요. 생긴 것도 괜찮고, 연기도 곧잘 하고. 소속사도 있고 돈도 많아 보이는데.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이해가 안 가서요.”
“호호호. 정원사 씨. 비틀린 사람들을 이해하려 하지 마. 그들에겐 이해도 동정도 필요 없어.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짓을 아무렇지 않게 벌이지. 그런 사람이 상대라면 다신 고개를 들지 못하게 확실히 누르는 게 최선이야.”
“역시 그래야겠죠?”
“정원사 씨가 선한 사람이라는 건 알아. 하지만 자신에게 해를 끼친 사람에게까지 선하게 구는 건 바보나 할 짓이야.”
태주의 얼굴에서 심란한 표정이 걷혔다. 해나의 말대로 나쁘게 구는 상대에게까지 좋게 대할 필요는 없었다. 사실 자기 몫을 챙기는 일조차 쉽지 않은 곳이 태주가 속한 연예계였다. 그런 곳에서 태주처럼 굴면 손쉬운 먹이가 될 뿐이었다.
‘지금까지 너무 좋은 사람들하고 좋은 환경에서 일한 게 사실이지. 이제 현실감각을 되찾을 때가 된 거야.’
“좋은 눈빛이네. 이제 괜찮아졌어?”
“네. 고마워요, 해나.”
“좋아. 그럼 정원사 씨. 이제 일을 하라고. 향신료 나무를 한 곳으로 모아주겠다고 했었잖아.”
“그, 그랬죠.”
해나가 도끼눈을 뜨는 게 보였다. 해나가 쓰기 편하게 향신료 나무를 한곳에 모아주기로 약속했지만, 계속 미루고 있었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해나를 오랫동안 기다리도록 만들고 말았다. 그는 이제나저제나 약속을 지켜주길 기다린 해나에게 변명할 말이 없었다.
‘처음에 분류를 잘할걸. 색깔별로 구분해서 심어놓은 게 실수일 줄이야.’
향신료 나무를 정리할 때 태주는 단순하게 색깔별로 모아놨었다. 어차피 요리는 할 줄 모르니 붉은 열매 나무는 붉은 것끼리, 노란 열매 나무는 노란 것끼리 모았다.
하지만 해나가 정원에 온 후에 그가 얼마나 엉망진창으로 나무를 심어둔 것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해나는 요리하기 전 향신료를 따러 정원을 한 바퀴 돌곤 했다. 향신료 나무가 정원 곳곳에 퍼져있어서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은 해나가 수고를 감수하고 요리를 해줬다. 하지만 언제까지 향신료를 챙기러 정원을 여러 바퀴 돌게 둘 수는 없었다.
“알겠어요. 해나, 전에 그린 도안대로 나무를 옮겨 심을게요.”
“호호호. 부탁해, 정원사 씨. 정원사 씨 좋아하는 레몬 타르트와 마들렌을 구워줄 테니, 힘내라고.”
“하하하.”
해나가 오두막으로 간 뒤에 태주는 바로 상점으로 달려갔다. 녹색 난쟁이 에릴의 소환권이 혹시 올라왔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아아. 없구나. 나무의 정령을 다루는 다른 난쟁이는 없나?”
그날 태주는 나무를 옮길 자리의 땅을 미리 파느라 하루를 다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은 해나의 감시 아래 향신료 나무를 옮겨 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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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김없이 같은 시간에 일어난 태주는 오늘따라 현실이 반가웠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 때만 해도 정원에서 마음을 다스리고 오겠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하지만 정원에서 내내 나무를 옮겨 심는 노동을 하고 나자 머릿속이 깔끔하게 정리됐다.
‘역시 머릿속을 비울 때는 몸을 피곤하게 하는 게 직방이구나.’
“냐앙.”
“읏차. 촬영장도 안가니, 오랜만에 아침을 준비해볼까?”
태주는 자신의 어설픈 요리 솜씨를 알기 때문에 어려운 것을 준비할 생각은 없었다. 토스트, 샐러드, 커피가 그가 준비할 아침 메뉴였다
그가 준비한 아침으로 식사를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숙소를 찾은 사람이 있었다. 조연출과 제작사 직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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