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
8. 소속사 오디션
운전면허 시험은 가볍게 통과했다. 이전에 십수 년이 넘게 운전을 했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차를 사는 건 천천히 고민하기로 했다. 지하철역도 마트도 가까워서 차를 살 필요 없다는 태우의 의견이 있기도 했고, 아직 성년이 되려면 몇 달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안녕하세요, 김도진 실장님.”
태주가 약속 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는데, 김도진 실장이 이미 회사 입구에 내려와 있었다.
“어서 오세요. 다들 기다리고 계세요.”
“네?”
“아! 사실 예정된 오디션은 이미 다 끝났어요. 태주 씨한테 알려드린 시간은 번외라고 할까. 제가 회사 사람들에게 말씀드려서 따로 뺀 시간이에요.”
“그런가요.”
“네. 사실 서류 마감도 끝난 상태였는데, 태주 씨가 마음에 들어서 억지를 썼습니다.”
갑작스러운 오디션 제안이었던 만큼 조금 문제가 있어 보였다. 금요일 오후 5시 반, 어쩐지 시간이 좀 애매하다고 생각하긴 했었다. 아무리 밤낮없는 연예 기획사지만, 금요일 퇴근 전에 일이 늘어나는 걸 좋아할 사람은 없었다.
‘시작부터 미운털을 박고 가게 되네.’
김도진 실장이 안내한 방으로 들어가자 여러 명의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태주는 익숙하게 그 사람들 앞으로 나서서 자세를 바로 했다.
“안녕하십니까, 19세 연기자 지망생 이태주입니다.”
“오! 프로필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
“좀 마른 것 같은데. 화면에 어떻게 보일지 모르겠네. 김 실장님 카메라 화면 좀 연결해 주세요.”
오디션장에는 실제 촬영에서 쓰는 카메라가 세팅되어 있었다. 책상 위 모니터 tv로 촬영 장면도 바로 확인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었다. 영상 녹화만 하는 다른 오디션보다 더 체계적이었다.
태주는 익숙하게 카메라의 정면에 섰다. 따로 위치를 알려준 사람은 없었지만, 워낙 익숙한 일이라 자신도 모르게 카메라의 가운데에 가서 섰다.
오늘 태주는 고급 슈트에 명품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었다. 오디션 전에 샵에 들러 메이크업도 받고 머리 손질도 했다. 전체적으로 귀족적이고 우아한 모습이었다. 오디션 지정대본에 엘리트 변호사 역이 있어서 그에 어울리게 꾸미고 왔다.
“스타일 보니까, 변호사 역인 것 같은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시작하세요.”
태주는 준비된 대본 전체를 멈추지 않고 연기했다. 상대역의 대사를 쳐주는 사람이 없어 가상의 상대와 연기했지만, 마치 진짜 눈앞에 상대를 두고 연기하는 것 같은 사실감이 느껴졌다.
‘반응이 없네. 오랜만이라 별로였나?’
“흠흠. 잘 봤어요.”
“혹시 자유연기 가능해요?”
“네.”
“준비되셨으면 시작하세요.”
태주는 자유연기까지 보는 지금 상황이 꽤 신기했다. 언젠가부터 오디션에서 자유연기를 한 적이 거의 없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습관처럼 자유연기까지 준비한 게 다행이었다.
“아! 내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가지고, 제정신이 아니었다니까. 아, 신기한 게 깨보니까 그때 기억나더라고. 하하하. 실수야. 응? 그래 실수든 아니든 내가 잘못한 건 알아. 내가 미친놈이야. 내가, 아, 정말 미친놈, 아휴. 아 진짜 미안해.” [응답하라 1988 박정민 역 중 발췌]
“오, 응팔 재밌었지.”
“잘하네. 고칠 데가 없어.”
“그러게요. 프로필 보면 경력이 전혀 없는 신인인데, 진짜 신인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예요.”
태주는 앞에 앉은 사람들의 얘기를 얌전히 듣고 있었다. 연기경력에 대해 딱히 할 말이 없기도 했고, 비록 오디션일 뿐이지만, 오랜만에 카메라 앞에 선 기분이 나쁘지 않아서 잠시 그 기분을 만끽하고 싶었다.
“실제 촬영감독이 찍으면 이거보다 낫겠죠? 너무 못 찍었다, 우리. 실물의 반도 안 나오네.”
“큼. 그건 어쩔 수 없잖아요.”
짝짝!
“지방방송 끄고, 인터뷰합시다.”
여러 가지 질문이 나왔다. 연기를 시작한 계기부터 앞으로 어떤 연기자가 되고 싶냐, 목표는 무엇이냐, 하고 싶은 연기 장르가 있냐 까지 쉴 새 없이 여러 사람이 질문을 했다. 인터뷰가 꽤 오래 이어졌지만, 태주는 자연스럽게 응답을 이어갔다.
“휘유~. 진짜 자연스럽네요. 전혀 신인 같지 않아요. 아, 나쁘다는 말은 아니니까 오해하지 마시고요.”
“음, 이건 좀 다른 건데. 혹시 노래하는 아깽이에 나온 고양이 형 맞나요?”
“우 팀장?”
“큽. 네, 맞습니다.”
긴장 없이 대답하고 있다가, 전혀 예상 못 한 질문에 당황했다. 심사자 중에 그 동영상을 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게 뭐예요? 노래하는 아깽이?”
“이거요. 미튜브 영상.”
우 팀장이라고 불린 여성이 스마트폰으로 영상을 켜서 사람들에게 보여줬다. 오디션장 안에 ‘삐약삐약 병아리~’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다.
“와아. 진짜 귀엽네.”
“이야. 무슨 고양이가 이렇게 노래를 잘해?”
‘이게 뭐라고 이렇게 민망하지.’
태주의 민망함과는 별개로 오디션은 아주 좋은 반응으로 끝이 났다.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합격, 불합격에 관한 논의보다, 계약 조건에 대한 내부 협의 때문으로 보였다.
*
“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오전에 회사로 갈게요.”
예상대로 트리즈에서 합격했다는 얘기가 나왔다. 자신이 합격했으니, 이제 남지혁은 어떻게 될 건지 궁금했다. 원래라면 남지혁이 트리즈의 신인배우팀의 배우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트리즈의 쌓여 진 인맥을 통해 굵직한 오디션들을 보고 영화 촬영에 들어갔을 것이다.
예전에 태주가 드라마 조연으로 들어갔을 때, 남지혁은 이미 5년 차 배우였다. 같은 조연이었는데, 처음부터 유명 드라마 작가의 작품으로 브라운관 데뷔를 하는 태주를 교묘하게 괴롭혔다.
태주는 처음 출연한 독립 영화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바로 캐스팅이 된 상태였다. 연기경력도 길지 않고, 무명기간도 없이, 바로 TV 드라마로 데뷔하는 태주는 사실 누구라도 질투할 만한 조건이었다.
어려서부터 뭐든 잘하는 편이라, 타인의 질투를 사는 일이 많았던 태주는 주변의 질시나 따돌림에 꽤 둔감한 편이었다. 그런 태주가 지칠 정도로 남지혁은 끈질기게 태주를 괴롭혔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남지혁도 남을 질투할 만한 상황은 아니지 않나? 단편이랑 독립 영화를 2년 정도 찍고, 트리즈랑 계약해서 바로 상업영화를 찍었잖아. 그 정도면 말 그대로 꽃길 아닌가?’
꽃길이 맞다. 물론 태주의 경우가 더 심한 꽃길이었지만. 우연히 들어간 연기학원에서 박재성이라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 기초를 탄탄히 다지고, 데뷔하기도 전에 소속사와 계약을 했다. 연기를 배운지 겨우 3개월 만에 독립 영화 주연을 맡고, 거기서 연기력을 인정받아 TV 드라마 조연으로 데뷔했다.
남들은 수년이 걸려도 해내지 못할 일을 단 일 년 만에 해냈고, 이후로도 좋은 작품을 만나서 승승장구했다. 상복은 없었지만, 작품 복은 많아서 고르는 작품마다 성적이 좋았다.
워낙 작품을 잘 선택해서인지, 태주가 차기작을 고를 때가 되면 대본이 말 그대로 쏟아졌다. 영화, 드라마 장르를 가리지 않고 흥행에 성공해서 ‘흥행보증수표’라는 흔하지만 믿음직한 별명을 얻기도 했고, 태주가 들어가는 작품에 서로 들어오려 배우들이 경쟁하기도 했다.
“내가 좀 먼치킨인가.”
다시 생각해보니 자신이 좀 잘났던 것 같다. 남지혁의 괴롭힘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남이 보면 질투할 만하다는 생각은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게 더 심했다. 데뷔 전에 트리즈라는 소속사와 계약을 했고, 만약 남지혁이 트리즈와 계약하지 않는다면, 그가 참가했던 영화 오디션을 자신이 볼 수도 있었다.
“운석이 형이랑 쥬쥬 누나가 걸리네. 원래라면 2년 뒤에 그 회사에서 만나는 건데. 어떻게 이쪽으로 오게 할 수 없나.”
쉽지 않아 보였다. 트리즈에서 신인배우팀을 이미 구성한 상태에서 배우 오디션을 본 것이기 때문에 만약 계약하면 그들과 함께 움직이게 될 것이다. 더러운 성격의 남지혁을 수년간 문제없이 돌본 것을 보면 능력도 나쁘지 않아 보였다.
워낙 오래전이라 남지혁의 매니저가 누구였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당시는 겨우 두 번째 작품에 TV 데뷔를 하게 된 데다, 촬영장에서 계속 남지혁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중이어서 제정신이 아니었다. 밤낮으로 모든 신경을 연기에만 쏟기 위해 노력했었다.
‘안 그랬으면, 촬영이고 뭐고 폭력사태로 고소당했을지도.’
이번에는 제발 남지혁 같은 사람과 얽히지 않기를 바랐다.
*
회사에 도착하자, 우 팀장님이 건장한 남자 한 명과 태주를 맞아 주었다. 태주는 우 팀장 옆에 서 있는 남자를 본 후에, 그가 전에 남지혁을 담당했던 매니저라는 것을 기억해냈다. 오래전이라 생각나지 않았는데, 실물을 보자 자신에게 찾아와서 사과를 건네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어서 오세요. 이태주 배우님.”
“안녕하세요. 그 호칭은 아직 좀 부담스러운데요. 편하게 불러주세요.”
“그럼 이태주 배우님이라고 부를게요. 전 이게 편해서.”
“네? 네.”
‘헉. 단호박이다. 절대 개기면 안 되겠다.’
우 팀장의 성격을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한 대화였다. 태주는 절대 거스르지 말자고 속으로 다짐했다.
“여긴 김견우 매니저예요. 이태주 배우님 담당.”
키는 180cm 정도로 태주보다 조금 작았다. 갈색 피부가 건강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뼈대도 곧고 굵어서 얼핏 보면 특전사나 경호원 같은 느낌이 났다.
소개와 인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계약 얘기를 시작했다. 트리즈는 평판대로 확실히 신인에게 건네는 계약 내용도 좋았다. 특별하게 거슬리는 내용도 없었고, 수익 비율도 5대5로 나쁘지 않았다. 나중에 비율을 조정해 주겠다는 내용도 추가한 후 계약을 하기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바로 계약을 하고 싶었지만, 태주는 아직 미성년자였다. 성인이 되려면 몇 개월 남았다. 결국, 보호자인 어머니의 동의가 필요했다. 태주는 그 자리에서 어머니에게 연락해 30분 정도 만날 시간을 얻어냈다.
*
어미니 회사 근처의 커피숍에 도착해 잠시 기다리자, 피곤한 낯을 한 어머니가 나왔다. 어머니는 여전했다. 아버지와 이혼절차를 밟는 중이라 신경 쓸 게 많을 텐데도, 흐트러진 모습이 전혀 없었다.
“계약서 먼저 보자.”
태주가 매니저에게서 계약서를 건네받아 어머니 앞에 놓았다.
“5대5 수익이 괜찮은 거니? 이쪽 업계는 잘 모르지만, 에이전시가 최대 20%의 수수료를 가져간다는 것은 안다.”
“에이전시랑 소속사는 좀 달라요. 소속사는 여러 가지 업무를 해요. 기획이나 육성도 하고, 홍보도 하고. 차량, 메이크업, 매니저와 코디네이터 지원 등 관리 업무도 하고요.”
“그런 거니? 그러면 초기에는 소속사도 나쁘지 않겠구나. 정산비율 조정에 대한 특약을 추가한 부분은 괜찮다만, 재조정 시기를 정해두거나, 누적 수익이나, 계약규모에 따른다고 기준을 정해두는 게 낫겠다.”
그 자리에서 조건을 추가하고 계약을 끝냈다. 회사에서 미리 생각했던 것과 많이 차이 나지 않았던 건지, 계약은 원활하게 마무리되었다.
태주는 어머니와 좀 더 대화하기를 바라 매니저를 먼저 돌려보냈다. 어머니도 회사에 연락한 후, 다시 자리에 앉았다.
“이혼하신다고 들었어요.”
“그래. 이젠 정리해야지.”
“앞으로 어떻게 하실 거예요?”
“지금과 다를 게 있겠니.”
이혼을 얘기하는 어머니의 얼굴에 옅은 분노가 스쳐 지나갔다. 용서를 바라기엔 아버지의 잘못이 너무 컸다.
“태우는 네가 잘 돌봐줘라. 난 솔직히 자신이 없구나. 그 사람 허물을 태우한테서 찾지 않을 자신이 없어.”
“걱정하지 마세요. 잘 돌볼 거예요.”
“그보다. 갑자기 소속사라니 무슨 생각이니?”
“배우가 될 생각이에요. 연기하는 게 좋아요.”
“학교는?”
“등록 안 할 거예요.”
“관계없는 학부라지만 Y대니 언젠가 도움이 될 텐데.”
아주 관심이 없는 건 아니었나 보다, 입학하는 학교와 학부를 알고 계실 줄은 몰랐다.
“괜찮아요. 나중에 필요하면 그때 다니면 돼요.”
“그래. 하긴 연예계도 다른데 신경 쓰면서 성공할 수 있을 정도로 녹록한 곳은 아닌 것 같긴 하더라.”
“그렇죠.”
대화를 끝내기 전에 어머니는 태우의 생활비와 학비를 대겠다는 얘기를 꺼냈다. 태주는 그렇게라도 태우에게 보상하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이해했다.
비록 좋지 않은 결말이었지만, 이혼은 어머니에게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었다. 태주는 어머니의 앞날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