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2
91. 신인 작감과 중견 배우 >
태주의 차기작은 작가와 감독이 모두 신인이었다. 감독은 평범하게 경력을 쌓아온 사람이었다. 그에 반해 작가는 신인이었지만, 꽤 유망한 사람이었다. 공모전에서 당선되어 이정임이라는 스타 작가의 문하에서 몇 년간 경력을 쌓은 사람이었다.
처음 태주의 차기작을 찾을 때 우 팀장에게 대본을 추천한 것도 이정임 작가였다. 그 정도로 그녀에게 신임을 받는 작가였기에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우 팀장도 태주의 선택을 받아들였었다.
하지만 그녀는 드라마의 최종 출연진 리스트를 보면서 혀를 차고 있었다. 출연자 중 사또와 대립하는 역할을 맡은 지역 유지에 섭외된 배우가 배우들 사이에서 평이 좋지 않은 박동진이었기 때문이다.
“쯧. 하필이면 지역 유지 역에 박동진 배우를 섭외할 게 뭐람. 제작진이 정신이 있는 거야?”
“왜 그러십니까?”
“견우 씨 박동진 배우 몰라요?”
“예?”
박동진이 구설수로 몇 년간 촬영을 쉬고 자숙할 때 현장에서 일한 견우는 그에 대해 잘 몰랐다. 하지만 우 팀장은 로드에서 팀장급 경력을 쌓는 중에 보고 들은 것이 많았다. 박동진과 같은 현장에서 일했던 경험도 있었다.
“말을 함부로 하는 것도 있는데, 기가 약한 감독은 손에 쥐고 흔드는 타입이에요.”
“아!”
“작감이 다 신인이잖아요. 이 배우님은 주연이긴 하지만 이제 2년 차고. 아마 촬영장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활개 치고 다닐걸요.”
“신인 천지에 제작사까지 작은 곳이니. 하여튼 신경이 좀 쓰이네요. 견우 씨, 만약 박동진 배우가 우리 배우님에게 함부로 하면 단호하게 대처하세요. 봐줄 필요 없어요.”
말도 험하고 제멋대로인 박동진이 구설수로 몇 년간 자숙하고도 다시 재기할 수 있었던 것은 연기를 잘하기 때문이다. 아마 제작사에선 연기력이 좋은 중견 배우를 드라마에 넣으며 보험을 들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제대로 된 선택일지는 의문이었다.
*
작품 리딩부터 문제가 생길 일이 얼마나 될까? 태주는 자신의 경우 드라마는 100%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도깨비 무사에선 윤비가 첫 리딩에 참석하지 않았고, 나중엔 발 연기로 피곤하게 만들었다. 용좌에선 첫 리딩을 잘 마친 이영신이 갑자기 교체당했다. 그리고 지금 신조선 사또 전에선 한 중견 배우가 리딩도 마치지 않았는데, 연기 지적을 시작해서 리딩이 멈추고 말았다.
‘감독님이 나서셔야 하는데. 연기 지적은 리딩을 끝내고 하라고 정리를 하셔야 하는데, 참.’
신인 감독이라도 그 정도의 발언을 할 수는 있었다. 조감독으로 여러 번 작품에 참여했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입을 꾹 닫고 있었다.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입술을 달싹이다 마는 것을 보니, 하고 싶은 말을 참고 있는 것 같았다.
– 짝!
리딩 장안에 박수 소리가 울렸다.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친 사람을 쳐다봤다. 태주였다.
“벌써 두 시간이나 지났네요. 커피 한 잔씩 하고 계속하실까요? 매니저님.”
“예. 여기 음료수 받으세요. 빵도 있습니다. 골고루 사 왔으니 취향대로 고르셔도 될 겁니다.”
“아!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한 시간쯤 리딩이 진행되었을 때, 태주가 견우에게 부탁했던 커피와 간식이었다. 제작진이 준비한 음료가 있었지만, 이런 분위기를 중간에 끊을 방법으로 커피만큼 좋은 것은 없었다.
“이 배우님 잘 마실게요.”
“네, 많이 드세요. 드시고 다시 힘내요, 우리.”
“네에.”
감독과 작가가 자기 역할을 못 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는 실장이나 이사 같은 직책이 좀 있는 사람이 나서야 했다.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긴 시간 작업을 해야 하는 배우가 나서서 작가나 감독에게 얘기하는 것은 보기 좋지 않았다.
태주는 돌아가는 차 안에서 견우에게 부탁할 생각을 해두고, 우선은 리딩 장 안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일을 신경 썼다.
다행히 간식을 먹고 나서는 분위기가 좀 나아졌다. 박동진도 자신이 지나쳤다는 것을 아는지, 리딩을 끊지는 않았다. 어차피 대본 리딩이 끝난 후엔 반성하는 시간이 있다. 그때 지적해도 될 일이었다.
“야, 넌 대사를 왜 그렇게 쳐? 네가 무슨 대기업 비서야? 왜 목소릴 깔아?”
“…죄송합니다 ”
‘맞는 말이지. 대갓집 집사라도 무게감 있는 배역이 아니니까.’
리딩을 되돌아보고 고칠 점에 관해 얘기하는 시간, 박동진이 집사 역할을 맡은 배우를 야단치고 있었다. 태주는 박동진의 얘기가 맞다 생각했다.
“왜 내가 이렇게 말하니까, 떫어? 그럼 연기를 제대로 해. 이런 소리 안 듣게. 네가 잘하면 나도 편하잖아. 계속 그렇게 할 거면 차라리 네 옆에 앉은 애랑 대사를 바꿔. 네 옆에 앉은 걔가 너보다 그나마 낫더라.”
“…죄송합니다.”
“준비를 어떻게 한 거야? 어떻게 호흡이고 발음이고 제대로 된 게 없어. 이게 사극인 건 아는 거야?”
박동진이 말을 험하게 했지만, 모두 맞는 말이었다. 태주는 슬쩍 작가를 돌아봤다. 작가는 애매하다는 얼굴이었다. 지적하는 말투나 비난하는 모습은 옳지 않았지만, 그 내용은 정확했다. 작가가 대본에서 표현하고자 한 의도를 박동진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야! 너, 대사에서 힘 안 빼? 장면이 이해가 안 가? 대본 안 읽었어?”
“…죄, 죄송합니다.”
“연기가 우스워? 준비가 하나도 안 됐잖아. 이래서 촬영이나 하겠어?”
“….”
“허 참. 이젠 대꾸도 안 하네. 지금 내 말이 우스워?”
태주는 박동진이 다른 배우의 연기를 지적하는 걸 말리지 않았다. 박동진은 이곳에서 가장 연장자였고 연기경력도 제일 오래됐다. 게다가 연기도 잘했고 남을 지적할 만큼 대본도 충실하게 연구해왔다. 무엇보다 지금은 원래 리딩에 관해 얘기하는 자리였다.
공기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리딩 장 안의 배우 대부분이 박동진에게 욕을 먹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태주와 중년의 조연배우뿐이었다.
태주는 대본을 받았을 때부터 수없이 대본을 읽고 연습해서 배역을 준비했다. 그리고 조연배우는 배역연구를 제대로 해왔는지, 두 가지 방언이 섞인 대사를 맛깔스럽게 소화했다.
원래 자리를 정돈하고 분위기를 바꾸는 것은 감독이나 작가가 할 일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태주에게 그 역할을 떠넘기려 하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두 사람이 그나마 기댈 만한 사람은 주연인 태주뿐이었다. 두 사람은 대본을 보는 태주를 뚫어질 듯 쳐다봤다.
태주는 옆얼굴이 따가워 참기 힘들었다. 작가와 감독의 시선이 줄기차게 얼굴에 꽂히고 있었다. 그는 신인 작가와 감독의 뜨거운 눈빛을 외면하기 힘들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결국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박동진이 잠시 물을 마시는 사이, 태주가 입을 열었다. 그는 성실하게 준비해오고도 칭찬 한마디 듣지 못한 배우부터 칭찬하기로 했다.
“오재현 배우님은 배역 준비를 정말 잘해오셨네요. 방언이 두 지역 건데, 연구를 많이 하셨나 봐요. 혹시 그쪽 지역 출신이세요?”
“네? 저, 저요?”
“네. 말투에 두 지역 방언이 섞인 배역이라, 준비하시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굉장히 자연스러웠어요.”
“감, 감사합니다.”
이어서 박동진에게 대사에서 힘 빼라고 욕을 먹었던 사람에겐 체격이 좋아서 배역과 잘 어울린다는 칭찬을 했다. 그러는 한편, 조물주보다 높다는 건물주가 상대니, 큰소리 내면 쫓겨난다는 투로 대사에서 힘을 빼달라고 얘기했다.
그 후로도 태주는 사람들에게 부드럽게 칭찬과 질책을 섞어서 얘기를 건넸다. 태주 덕분에 분위기가 어느 정도 정리되자 감독이 나서서 1차 리딩을 끝내자는 얘기를 꺼냈다.
다들 감독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주는 사람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박동진에게 다가갔다.
“수고하셨습니다. 선생님.”
“수고는 무슨. 머저리들 데리고 소꿉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너그럽게 봐주세요. 첫 리딩이라 긴장해서 그랬을 겁니다. 다음부턴 잘 준비해오겠지요.”
“허, 첫 리딩에서 하는 꼴 보면 견적이 다 나와. 안 될 것들은 다 티가 나는 법이야.”
“하하하. 오늘 많이 혼났으니, 정신 차렸겠죠.”
박동진은 태주가 곁에 와서 말을 붙이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오늘 말이 과했다고 얘기하려는 걸 태주의 표정으로 알 수 있었다. 그는 그런 얘기를 비장한 표정으로 하려는 태주를 속으로 비웃었다.
주연이라면 아무리 나이 많은 선배라도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할줄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가 보기에 태주는 아직 애송이였다.
“선생님, 작품 잘 해봐요. 요새 사극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요. 사극 부흥에 힘 좀 써봐요.”
“뭐?”
“한동안 사극 안 나왔었잖아요. 이번에 각 방송국에서 사극을 준비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도 저희 작품이 스타트를 끊는 셈이니, 제대로 해봐요.”
“허, 참. 너 뭐냐? 나한테 따지려던 것 아니었어?”
박동진은 예상과 전혀 다른 얘기를 꺼내는 태주를 보며 ‘어쭈 요놈 보게.’ 하는 얼굴을 했다. 그는 좀 전의 말이 진담인지 요리조리 태주의 얼굴을 살펴봤다.
“에이. 연기 지적이야, 말씀이 과하시긴 했지만 맞는 말이었는데요. 욕먹을 정도로 준비 안 해온 사람들 잘못이죠. 이미 10화까지 나온 대본이에요. 얼마나 허투루 봤으면 그래요.”
“허.”
“작가님이랑 감독님이 신인이라 다들 쉽게 생각한 것 같아요. 준비가 부족하더라고요.”
조잘조잘 자기 옆에서 떠드는 태주를 보는 그의 머릿속은 복잡했다. 가만히 들어보면 태주가 말하는 내용에 자신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인 작가와 감독을 쉽게 생각했던 것은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허, 됐다. 알아들었으니까, 그만 가봐라.”
“이해해 주셔서 감사해요. 그래도 사극 부흥에 힘써 보자는 얘기는 진심이에요, 선생님. 사극 다시 제작하기 시작하고 첫 방영작품이 저희 거예요. 제대로 한 번 해봐요.”
“그래, 알았어. 가봐.”
공손하게 인사하고 돌아가는 태주를 보는 그의 얼굴은 나쁘지 않았다. 어린 녀석이 주연이라고, 자기 성격이 나쁘고 입도 험한 걸 알면서도 할 말 다하고 갔다.
‘그래. 주연배우가 저 정도 배짱은 있어야지. 그에 비하면 작가나 감독은 영.’
자신의 기에 눌려 한마디도 못하던 두 사람을 떠올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신인이라지만, 한마디도 못 하고 눈치나 보던 모습이 한심하게 여겨졌다. 그래도 그는 우선은 둘을 지켜보기로 했다. 주연배우가 일부러 와서 잘 해보자고 부탁하고 갔다. 한 번쯤 기회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
돌아오는 차 안에서 태주는 견우에게 박동진과 나눈 얘기를 간추려서 전했다. 그리고 작가와 감독이 제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는 얘기도 꺼냈다.
“오늘 감독님도 작가님도 배우들에게 얕잡아 보이셨어요. 박동진 선생님이 과하시긴 했지만, 그걸 그대로 둔 두 분도 문제가 있었어요.”
“그랬지요.”
“다음 리딩 때는 잘하셨으면 좋겠어요.”
“박동진 배우는 괜찮았습니까?”
“하하. 괜찮았어요.”
태주는 회귀 전에 이미 박동진을 겪어본 적이 있었다. 그가 입 험하고 제멋대로에 때때로 연출진을 무시하는 같이 작업하기 힘든 사람이라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다만 태주에게도 믿는 구석은 있었다.
박동진은 사극을 좋아한다. 사극으로 처음 데뷔를 했고, 비중 있는 역할을 처음 맡은 것도 사극이었다. 게다가 그가 조연상을 받았던 것도 사극이었다. 박동진 역시 사극 제작이 줄어든 것을 아쉬워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회귀 전에는 신조선 사또 전이 죽을 쑤면서 다른 곳에서 제작되던 사극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준비하던 사극에 대한 투자 규모가 줄거나 억지스러운 퓨전요소가 추가되는 상황이 벌어졌었다. 태주는 이번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제대로 찍고 싶었다.
“말씀이 험하셨지만 전부 맞는 말씀이었어요. 솔직히 그 집사 역할 하신 분은 박동진 선생님이 나서시기 전에 감독님이나, 작가님이 나서셨어야 했어요.”
“그렇지요. 두 분이 나서시는 게 가장 좋은 상황이었습니다.”
“현장에선 잘하시겠죠?”
“잘하실 겁니다.”
부디 그랬으면 좋겠다는 말로 대화가 끝났다. 견우에게 전할 얘기는 모두 전했다. 태주는 눈을 감고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집에 도착하는 짧은 시간 동안 그는 그렇게 골치 아팠던 첫 번째 리딩의 기억을 털어냈다.
*
집에 오자, 쿠첼루스와 태산이 그를 반겨주었다. 집에 태우와 연우가 없는 것 같았다. 쿠첼루스가 완드를 꺼내 놓고 있었다. 마법사가 없는 세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 후에 그는 알아서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태주를 위해서는 마법을 아끼지 않았다.
“오늘은 어떠셨습니까?”
“괜찮았어요. 쿠첼, 식사했어요?”
“아직입니다.”
“그럼 외출할까요?”
태주가 기대로 눈을 빛내며 그에게 외출할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쿠첼루스는 완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태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그는 짧은 주문을 외우고 완드로 태주를 가리켰다. 완드의 빛이 태주에게 스며들자 그의 얼굴이 흐려지다 서서히 바뀌었다.
“우와! 이건 볼 때마다 신기해요.”
“하하하.”
쿠첼루스의 환상 마법이 씌워진 얼굴에선 태주의 흔적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인지도가 오르자 태주를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특히 가족과의 외출이 힘들었다. 그가 힘들어지자 쿠첼루스가 나섰다. 그는 특기인 환상 마법을 태주에게 걸어주었다.
완드를 든 쿠첼루스는 왕실 마법사였다는 게 당연하다 여겨질 정도로 대단한 실력이었다. 태주는 그가 마법을 걸어줄 때마다 감탄했다. 쿠첼루스는 간단한 마법이라고 했지만, 그 마법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태주는 결코 간단하게 여기지 않았다.
쿠첼루스의 환상 마법은 CCTV 영상에도 환상이 찍힐 정도였다. 만약 나쁜 마음을 먹고 범죄에 이용한다면, 알리바이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런 일에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쿠첼, 태산이한테도 부탁드려요.”
태산이까지 쿠첼루스의 마법으로 모습을 바꾼 일행은, 낮에 쿠첼루스가 찾아둔 음식점을 목표로 집을 나섰다. 최근 태주는 이렇게 밤 나들이를 즐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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