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ling life of a regressed top star RAW novel - Chapter 95
94. 뜻밖의 만남 >
그는 견우와 우 팀장의 도움을 받아, 감독과 작가를 겨우겨우 회의실로 데려갔다. 사무실 안의 많은 직원이 두 사람이 보인 모습을 봤다. 다들 궁금한 표정이었지만, 우 팀장이 매서운 눈길로 쳐다보자 고개를 돌리고 일하는 척을 했다. 우 팀장은 끝까지 매서운 눈길을 거두지 않으며 회의실 문을 닫았다.
“우선 좀 앉으십시오.”
“그래요, 두 분. 앉으세요.”
견우와 우 팀장은 작감 사이에 낀 태주를 풀어주려 했다. 두 사람은 회의실로 옮기는 중에도 그의 팔을 꽉 붙든 채였다.
“흐허엉. 놓으면 가잖아요.”
“맞아요.”
“아니, 우리 배우님이 어딜 가신다고….”
“흐음.”
잠시 기다리자 두 사람이 진정하는 게 느껴졌다. 견우는 빠른 손놀림으로 두 사람 앞에 음료수를 내려놨다. 이제야 겨우 대화를 나눌 만한 상태가 되었다.
“진정되셨으면, 대화를 좀 나누어 볼까요?”
“큼큼.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감독과 작가 두 사람은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우 팀장은 잔뜩 수그린 두 사람에게 부드러운 목소리로 괜찮다고 말하고, 찾아온 이유를 물었다.
“이 배우님이 드라마에서 나가실까 봐서요….”
“저도 그러실 것 같아서….”
“그럼 두 분은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계셨나 보네요.”
“이, 이, 이렇게 되다니요.”
눈을 피하는 감독의 모습에 우 팀장의 머리에 열이 올랐다. 그녀는 혹시 태주가 이지명 합류를 원치 않는다고 이미 알린 게 아닐까 하고 의심했다. 만약 그런 거라면, 태주의 의견을 그대로 무시했다는 뜻이었다.
“우리 배우님이 이. 지. 명. 배우와 같이 촬영하는 걸 너무 걱정하셔서요.”
“그, 그게….”
“이. 지. 명. 배우 전작 시청률이 얼마였죠?”
“1.6%였습니다, 팀장님.”
“헙.”
정확한 수치를 듣자 우 팀장도 머리가 띵해지는 것 같았다. 저딴 수치를 기록한 배우를 누구 옆에 붙이겠다는 건지. 기가 찼다. 태주가 은퇴다, 차기작 안 들어올지 모른다, 얘기한 게 기우가 아니었다.
“1.6? 1.6%요? 이게 공중파에서 나올 수 있는 수치였어요?”
“….”
“우리 회사 배우님들은 예능에서도 그런 성적을 받은 적이 없는데. 어떻게 공중파 드라마에서….”
우 팀장은 한숨을 삼켰다. 눈앞의 잔뜩 기죽은 두 사람이 무슨 죄인가. 겁도 없이 못 먹을 것을 집어먹은 제작사 대표가 문제지.
그녀는 두 사람을 타박하는 말을 꾹 눌러 삼켰다. 그리고 태주를 신조선 사또 전에서 하차시킬 것을 다짐했다. 이젠 태주가 하고 싶다고 해도 그녀가 반대였다.
“제작 환경이 나아지셨으니, 우리 배우님보다 훨씬 좋은 분을 찾으실 수 있을 거예요.”
“네? 그런 배우가 있을 리가.”
“맞아요. 태주 씨 같은 배우 없어요.”
‘없으면, 알아서 잘하셨어야죠.’
우 팀장이 거절의 말을 꺼내자, 두 사람은 바로 태주에게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두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은 태주의 난처해하는 얼굴이나 미소 짓는 얼굴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바늘도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하게 벽을 친 배우가 있었다.
“어, 어….”
“죄송해요, 감독님, 작가님.”
“…태주 씨.”
회의실 안의 공기가 무거웠다. 감독과 작가, 그들은 태주의 부드럽지만 단호한 거절에 고개를 숙였다. 두 사람이 매달려볼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앞으로 벌어질 일을 생각하자 눈앞이 깜깜했다.
처음부터 자신들을 호의적으로 대해주던 것은 태주뿐이었다. 제작사 대표는 작품이 좋다면서도 사극이라는 이유로 두 사람의 기를 죽였다. 제작비가 많이 들고 광고가 안 붙는다며, 두 사람이 듣는 앞에서 계속 얘기를 꺼냈었다.
“저희가 죄송해요. 이렇게 되기 전에 막아야 했는데.”
“그, 그, 죄송해요.”
감독과 작가가 힘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감독은 차마 이 캐스팅에 자기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변명을 하지 못했다. 제작사 대표가 멋대로 받아들인 투자와 배우였지만, 그것을 막지 못한 책임이 자신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우기용은 감독의 권한이었지만, 멋대로 파트너 역을 바꾼 것은 실례였다. 드라마 내내 붙어 다니는 역할인데 상대에게 말 한마디 없이 바꿔버렸다. 그 바꾼 배우는 주연배우가 같이 촬영하는 일에 난색을 보였던 배우였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태주를 붙잡을 명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촬영환경이 좋은 것도, 출연료가 높은 것도 아니었다. 찾는 곳이 많은 유망한 배우가 작품 하나 보고 와줬었다. 그런 그에게 배려는커녕 무례만 저질렀다.
사실 그들은 제작사 대표가 투자를 받아들인 순간부터 어쩌면 이렇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드라마 제작보다는 투자비를 남겨서 이익을 보려는 대표가 있는 한 언젠가는 이렇게 될 일이었다.
“실례했습니다.”
“실례했어요. 가 볼게요.”
소득 없이 축 처져서 돌아가는 두 사람의 모습이 안쓰러웠다. 하지만 우 팀장도 태주도 출연계약 해지 의사를 번복하지는 않았다. 나오지 말라며 만류했지만, 태주는 그들을 배웅하기 위해서 따라나섰다.
“감독님, 작가님. 연락처 주세요.”
“네?”
“다음에 다시 작품 들어가시면 알려주세요.”
“아!”
“두 분 작품을 최우선으로 두고 볼게요. 이번에는 죄송해요.”
그는 자신이 지금 건네는 말이 그다지 위안이 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알면서도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가 있었다. 한 번의 실패로 그만두기에는 그들은 아직 젊었다. 그리고 박 작가의 재능은 그렇게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는 두 사람이 자신의 말에서 이번 작품이 끝이 아니고 다음 작품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길 바랐다.
*
트리즈의 대표는 우 팀장의 보고를 듣고는 알았다는 말만 했다. 그의 생각에도 이지명이라는 폭탄을 안고 드라마를 찍을 필요는 없었다. 앞길이 창창한 배우를 굳이 찍어 먹어보지 않아도 똥인 게 보이는 작품에 투입할 이유가 없었다.
“그쪽 제작사엔 내가 전화하지. 우리 이 배우는 괜찮아?”
“표정은 좋지 않았지만, 하차를 번복할 생각은 없어 보였어요.”
“기대를 많이 한 작품이었는데 말이지. 대본도 좋고, 이 배우 연기도 문제없고. 잘 될 거로 생각했는데…. 다 된 작품에 이지명 뿌리기라니, 참.”
“아직 확인 못 했는데요. 이지명 배우가 그렇게 연기를 못하나요?”
우 팀장은 오랜만에 대표의 구겨진 얼굴을 봤다. 회사도 집안도 문제없는 대표가 인상을 구길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지명을 말하던 태주도 그러더니, 어지간히도 연기를 못 하는 것 같았다.
“걔는 그냥 데이터 낭비야. 걔 연기 실력 확인할 필요도 없어. 시간 낭비야.”
“그 정도예요?”
‘대표님이 배우라는 호칭도 안 붙일 정도라니.’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인 대표가 이지명이 들어가는 작품에서 태주를 빼기로 한 것은 백 번 잘한 일이라고 칭찬했다. 그 소리에 우 팀장은 저도 모르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태주가 고집부리지 않고 바로 하차를 결심해준 것이 다행이었다.
*
제작사에 주연배우 출연계약해지라는 골칫거리를 던져 버린 대표는 속상했을 태주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그는 얼마 전에 알게 된 사이트에서 새로 나온 고양이 방석과 삑삑이 인형, 캣그라스 등을 마음껏 고르고 있었다.
– T rrrr~
“아이! 이 누님은 왜 또 전화야. 여보세요.”
– 여보세요. 최 대표, 나야.
“오랜만이에요, 누님 별고 없으시죠?”
– 좀 전까지 없었어. 그런데 누구 때문에 생긴 거 같아.
“하하하. 그럼 일 먼저 해결하세요. 일보세요, 누님.”
– 끊기만 해봐. 당장 미래한테 달려갈 거니까!
최 대표는 상대의 입에서 나온 이름 때문에 전화를 끊지 못했다. 그는 모니터 안의 귀여운 나비 장난감을 찜 해두고 통화에 집중했다.
“이 누님이 왜 이러실까. 우리 와이프 들먹이지 않기로 저번에 약속하셨잖아요.”
– 걔랑 나랑 알고 지낸 게, 최 대표가 알고 지낸 시간의 두 배야. 그보단 주연배우 뺐다며?
“뺐죠. 빼야죠. 망할 게 뻔한 작품에 그냥 둬요?”
– 뭐가 망할 게 뻔한 작품이야?
그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상대 때문에 귀가 얼얼해졌다. 귀여운 고양이 사진을 보느라 폰을 귀에서 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지금 성질낼 게 누군데 이래요? 이지명을 왜 우리 배우 작품에 넣어요?”
– 원래 우리 애가 하려던 거야.
“걔는 연기 말고 공부나 하라 해요. 민폐 끼치지 말고.”
– 민폐라니! 민폐 한 번 제대로 끼쳐줘?
최 대표는 짜증을 감추며 조곤조곤 이지명이 연기를 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자신의 배우가 허비한 시간과 노력을 아냐며 상대에게 따졌다.
– 그러니까, 그냥 하면 되잖아. 계약서 다시 써. 출연료 A급으로 맞춰줄게.
“됐어요. 다른 작품 주연 한 번만 맡으면 바로 A급으로 클 텐데. 굳이 안 그래도 돼요.”
– 최 대표! 정말 이럴 거야?“
“누님이야말로 정말 이럴 거예요? 누님 새끼만 새끼예요? 내 배우 경력은 망쳐도 돼요?”
– 그럼 어떻게 해. 드라마국에서 편성 취소한다고 하는데.
“잘됐네요. 남한테 폐 끼치지 않고.”
뿌드득, 이가 갈리는 소리가 난 후에, 상대편에서 석 달 뒤에 보자는 얘기를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통화에 잠시 웃고 나서 다시 태주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게 너무 많아서 고르기 쉽지 않았다.
만족스럽게 쇼핑을 한 최 대표는 그날 저녁 커다란 여행 가방을 꺼내놓고 짐을 싸고 있는 아내를 봐야 했다. 그녀는 놀라서 말리는 최 대표를 무시하고 열심히 옷가지를 가방 안에 챙겨 넣었다.
“뭐야? 대체 무슨 일이야?”
“일은 무슨 일이요. 혜경 언니가 크루즈 여행을 같이 가자네요.”
“뭐? 크루즈?”
“호호호. 네. 삼 개월 코스라고, 진이도 같이 오래요.”
그는 아내의 말을 듣자마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태주를 작품에 다시 넣는 걸 거절하자, 자신의 아내와 딸을 볼모로 잡은 것이었다. 어려서부터 친자매처럼 지내선지 전부터 둘은 자주 어울렸다. 비열하게도 그 점을 누님이 이용한 것이다. 아마 그의 아내는 지금 자신과 누님 사이에 벌어진 일은 전혀 모를 것이다.
‘이 아줌마가 지금 남의 와이프랑 딸하고 뭘 한다고? 삼 개월? 크루즈?’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즐거워하는 아내에게 화를 낼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전도유망한 배우를 망할 이지명과 같이 촬영하게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자신을 골치 아프게 한 원흉에게 전화를 걸었다.
– 왜? 최 대표?
“왜요? 지금 그런 말이 나와요?”
– 흥. 석 달 뒤에 보자니까.
“진짜 이럴 거예요? 이지명이 이쪽에 발도 못 붙이게 해 봐요?”
– 그러기만 해봐. 나도 가만 안 있어.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낮에 했던 통화와 같은 내용으로 실랑이했다. 하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이 정도로 압박하면 최 대표가 넘어오겠다 여겼던 그녀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요지부동인 최 대표가 아닌 드라마에 실제로 출연할 배우를 상대하기로 했다. 최 대표보단 이제 스물하나인 젊은 배우를 상대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 그럼 자리만 만들어줘. 내가 설득할게.
“그냥 지명이를 포기시켜요.”
– 내 말도 안 들어 처먹어! 내가 안 들어주면, 제 할아버지한테 쪼르르 달려간단 말이야!
“진짜 그분은 대체…. 후우. 알았어요. 자리 만들어 줄게요. 하지만 거기까지예요.”
– 고마워, 최 대표.
최 대표는 괜한 짐을 태주에게 떠넘긴 것 같아서 속이 불편했다. 그는 태주에게 줄 선물을 내일 더 고르기로 했다.
*
잘 알려지지 않은 회원제 레스토랑에 최 대표와 태주가 도착했다. 태주는 회귀 전에도 몇 번 온 적 없는 곳이었는데, 최 대표는 익숙한 듯 그를 안내했다.
태주는 골든쉽에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한다는 얘기에 회사 건물을 떠올렸었다. 이렇게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설마 대표가 직접 나오나? 에이, 대리인이 나오겠지. 제작사 차리기 전까지 대리인이 나왔다고 했었으니까.’
안내하는 직원을 따라 도착한 장소에는 문제의 이지명이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 태주에게 아주 익숙한, 하지만 절대 이런 곳에서 만나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이 있었다.
‘헉! 이게 무슨 일이지?’
태주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자신의 앞에 고급스러운 정장 차림으로 서 있는 사람이 그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항상 수줍게 인사하고 가끔 몸에 좋은 거라며 보약을 챙겨 주던 그녀가 맞는지 의심스러웠다.
대체 그녀는 왜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그것도 이지명을 옆에 달고서.
“어머나! 이분이 이태주 배우님? 세상에….”
‘맞잖아! 논현동 성덕 여사님!’
역시. 기억에 있는 목소리였다. 겉모습은 꾸미기에 따라 닮아 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 특유의 목소리는 쉽게 꾸며낼 수 없었다. 태주가 그녀를 만났던 자리에는 항상 사람들이 가득했었다. 그렇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워낙 특이해서 그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논현동 성덕 여사님.
팬클럽 아이디 성덕여신.
회귀 전 태주의 팬클럽에서 회장님 다음으로 가장 유명한 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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